육지 (1)
다른 곳보다 지대가 높은 월광도의 어느 언덕.
나는 선이 길게 그어진 스타트라인을 눈에 담으며 있는 힘껏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온몸의 근육이 응축되었다가 폭발하듯 팽창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에너지는 마치 1000cc의 경차 엔진이 1000마력이 넘는 하이퍼카의 출력을 내는 느낌이다.
체구와 근육량에 맞지 않는 오버 파워.
이게 모두 보통사람의 4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치를 갖고 있기에 벌어지는 기현상이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나는 힘껏 스타트 라인을 밟았다.
점프를 위해 응축된 근육이 다시금 폭발력을 토해내는 그 순간.
‘도약.’
타이밍에 맞춰 도약 스킬을 사용했다.
나는 앞으로 발사되듯 튕겨 나가고, 강한 바람이 전신을 때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껏 붙었던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발아래에 디딤판을 만들어 밟고 또 힘껏 뛰었다.
‘도약. 디딤판. 도약. 디딤판. 도약. 디딤판.’
그렇게 마력의 절반을 소진한 나는 허공을 딛고 서서 발아래 백사장에 꽂힌 깃발을 바라보았다.
“신기록이네.”
그리고 이내 다시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갔다.
‘역시 스킬 사용이 숙련되니, 이동 거리가 조금이나마 늘어나긴 늘어나는구나.’
천년삼을 섭취한 나의 마력은 30.
거기에 윌리아로부터 블레스를 받으면 능력치가 20% 상승해 최종 마력은 36이 된다.
나는 그 36의 마력으로 방금 850미터의 거리를 이동했다.
도약과 디딤판을 한번 쓸 때마다 47미터를 뛰었다는 의미다.
“좋아.”
이동 거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계획에 여유가 생기는 셈이니 나는 크게 만족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갈 수 있어.”
디딤판과 도약 스킬의 조합으로 하늘을 달리는 연습은 충분히 했고, 무려 1만 코인을 쏟아부은 끝에 마력 회복 물약도 손에 넣었다.
이제 남은 건 실행뿐이다.
*
[호감도 75%]
윌리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호감도.
80%가 되면 동료로 받을 수 있는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함께 육지를 모험하게 될 날이 기대되네요.”
“하하, 선물 챙겨오겠습니다.”
동료가 된 NPC는 펫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웨이포인트를 이용하면 함께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이번에 육지행에 성공만 한다면, 그녀 역시 이 월광도를 벗어나 큰 땅에서 함께 모험을 즐길 수 있단 뜻이다.
때문에 그녀는 꽤나 기대가 된다는 표정으로 내 육지행이 성공하길 기도했다.
[가의도로 이동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나는 웨이포인트를 이용해 유일하게 저장된 다른 지역인 가의도로 향했고, 멍멍이와 뚱이가 그런 나를 배웅했다.
-팟!
잠시 후, 풍경이 바뀌고 가의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라면 안전구역에 누군가 앉아 있을 법도 한데, 오늘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들 겨울을 대비한 식량 생산을 위해 농사 중인 모양이다.
평소라면 안전구역을 벗어나 마을이 위치한 서쪽으로 향하겠지만, 오늘의 목적지는 가의도 북쪽 끝이다.
해당 지역은 마을 주민들이 접근을 하지 않는 구역이다.
[그랑 다이어 울프 / 레벨: 10]
[그랑 다이어 울프 / 레벨: 10]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들이 꽤나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마을 사람들에게만 위협이지, 내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깨갱!
나는 가볍게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나아갔고, 약 30분 정도가 지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의도가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모두 산이어서 이동에 오래 걸렸다.
“방향이···. 아, 저기 보이네.”
그리고 나는 마을 주민들에게 빌려온 망원경으로 바다를 살피며 1차 목적지인 암초섬을 찾았다.
가의도에서 약 1.5km 떨어진 장소.
저기까지 한 번에 닿기만 하면, 이후 암초섬들이 몇백 미터 간격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육지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문제는 이 1.5km의 거리다.
현재 내 마력으로 한 번에 건널 수 있는 거리가 850미터이니, 외부의 도움 없이는 한 번에 건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비장의 아이템을 꺼내 살폈다.
[마력 회복 물약 / 소모아이템]
-소진된 마력을 회복한다.
“잘 부탁한다.”
나는 포션병을 쥐고 기도했다.
“이게 뭐라고 긴장되냐?”
세상이 변하고 모든 도전이 목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다.
이론상으론 문제가 없다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삐끗하면 골로 갈 수밖에 없다.
“뭐, 괴물이 우글대는 바다 위를 달리는 건데 긴장되는 게 당연한가?”
나는 달릴 준비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바닥을 다지고.
이리저리 몸을 푼 다음.
목적지를 응시했다.
-다다다닥!
이어서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내달렸다.
‘도약!’
섬의 경계를 박차자, 발아래로 서해 특유의 짙은 바다가 펼쳐졌다.
-탓! 탓!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바다 위를 날았다.
다만 새들과 나의 다른 점이라면, 날개가 아닌 발로 수시로 공중을 차며 비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여길 보고 있는 와이번은 없네.’
마력이 빠르게 증발해 간다.
이전이라면 더없이 든든할 36의 마력이 너무도 빠르게 말라 갔다.
“흡!”
-파앗!
그리고 유의해야 할 건 마력의 소모뿐만이 아니다.
바닷속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려오는 검은 그림자들.
하나같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해양 몬스터들이다.
[에이엑투스 / 레벨: 50]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비행 몬스터라도 되는양 한 파충류 형태의 몬스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기겁한 나는 해당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장소에 디딤판 스킬을 사용했고,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텁!
거대한 아가리가 아슬아슬 내 발밑에서 다물어졌다.
녀석은 이내 커다란 파도를 만들며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레벨 50짜리 몬스터가 갑자기 솟구치는 곳, 그것이 지금의 바다다.
그러니 항상 긴장해야 한다.
‘마력은 아직 괜찮아. 여유 있어.’
이론상 마력포션을 사용하면 1.7km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을 터이다.
한두 번 스킬을 낭비했다고 마력소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파아아앗!
그렇게 공기를 가르며 바다 위를 달리길 약 1분.
드디어 마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꿀꺽
나는 디딤판을 밟고 달리다가 살짝 속도를 줄여 마력 회복 물약을 꺼내 섭취했다.
물약은 문제없이 소모된 마력을 빠르게 채워갔고, 금세 충만해진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좋아!”
마력 회복 물약 덕분에 지장 없이 허공을 이어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보인다.’
1차 목적지인 암초섬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저기만 닿으면 된다.
저기만 닿으면···.
-푸확!
중간중간 솟구치는 해양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고, 혹시라도 육지 쪽에서 비행 몬스터가 날아오는 거 아니냐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나아갔다.
-타닥.
“됐다.”
그렇게 미친 듯이 허공을 내달리던 나는 끝내 1차 목적지에 닿았다.
1분 1초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무사히 암초섬에 다다른 나는 뒤도 보지 않고, 안전텐트를 꺼내 들어 암초섬에 설치했다.
[전투 중엔 안전텐트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전투 중엔 안전텐트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전투 중엔 안전텐트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안전텐트를 설치했습니다.]
어떤 해양 몬스터에게 어그로가 끌려 있었는지, 한동안 안전텐트가 설치되지 않았지만, 이내 어그로가 풀리면서 무사히 안전텐트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나는 마력을 충천하기 위해 텐트 안에 몸을 던져 넣었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에 설치를 했음에도 안전텐트 내부는 너무도 안락했다.
‘이제 거의 도착했다.’
이 섬에 도착한 이상 육지행은 8할 정도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크게 안도한 나는 실없이 웃으며 소모된 마력을 충전했다.
***
정부에선 전국 9개 지역을 선별해 피난 구역을 구축했다.
선택받은 9개 지역은 ‘서울, 인천, 수원, 대전, 광주, 대구, 부산, 울산, 제주’.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지역주민들은 각자도생하며 고군분투해야 했다.
처음엔 다들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먹을 게 떨어지면 그때서야 고픈 배를 부여안고 집을 나섰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운명은 둘로 나뉘었다.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변화에 조금씩 적응해나가거나.
“정부 새끼들, 피난 지역을 선별할 거면 전국 각 지역에 고루 분포시키던가. 그냥 인구수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하면 어떡하냐고. 시발, 충남 태안에서 제일 가까운 피난처가 100km 떨어진 수원이라는 게 말이 돼?”
“그냥 인구 많은 도시를 선택하는 게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거라 판단했겠지.”
“하아, 어떡하냐. 정말 수원까지 가야 하나? 100km 이동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몬스터의 배치 장소를 파악한 우리 동네를 다녀도 위험한데, 처음 가는 지역을 100km나 이동하자고? 그냥 죽자는 뜻이지.”
하지만 변화에 적응해나가고 있다고 해서 이들의 시련은 끝난 게 아니다.
몬스터만큼이나 위험한 존재들이 수시로 생존자들의 삶을 위협했으니까.
“그럼 계속 여기 있게? 저 새끼들 종노릇하면서?”
“하아···. 나도 모르겠다.”
몬스터만큼이나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
그건 바로 같은 인간이었다.
정부의 선택을 받지 못한 지역이라 하면, 더 이상 정부의 룰에 따를 필요가 없는 지역이란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무법지대’란 뜻이다.
“차라리, 만리포로 가는 게 어때? 거긴 안전구역도 있고, 경찰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다며?”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경찰들 말이지? 듣기론 여길 차지한 놈들이 만리포의 끄나풀이란 소문도 있던데? 녀석들이 K2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거 보면 마냥 허튼 소문은 아닌 것 같아.”
“뭐? 하, 시발. 무슨 왕과 영주야?”
“시간이 지나면 정말 왕과 영주가 될지도 모르지. 고작 열흘 만에 이 꼴인데.”
충남 태안 파도리가 그 ‘무법지대’의 극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약 800명 규모의 생존자 그룹이 총기로 무장한 단 20명의 외부인들에게 장악된 것.
그들은 무장을 앞세워 생존자들에게 패악질을 서슴지 않고, 강제로 코인 수집을 지시하는 등 정말 왕처럼 행동했다.
“저기, 슬라임 나왔네.”
“이대로 놈들의 코인 셔틀이나 하며 살아야 하는 건가?”
“차라리 우린 나은 거야. 슈퍼마켓 아저씨네 딸과 아들이 녀석들에게 끌려갔다가 반시체가 되어 나왔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서울에서 아이돌 연습생 했다던 애들?”
“그래.”
“시발, 다른 지역은 사람들끼리 협동도 잘만 한다던데.”
“녀석들이 오기 전까진 우리도 괜찮은 그룹이었어. 그런 악질들이 들이닥치는 순간 전부 똑같아지는 거지.”
파도리의 주민인 최익헌, 최익찬 형제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했다.
“누가 그 악한 새끼들 안 잡아가나.”
“그러게 말이야.”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먼 하늘에 쓰레기들을 청소해달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타타타타탕!
“우왁! 씨!”
“뭐, 뭐야? 총소리?”
그런데 그때.
조용하던 마을에 요란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소리가 울려 퍼진 곳은 생존자들이 한데 모여 캠프를 이룬, 파도리 폐교 방향이었다.
“이 미친놈들 또 무슨 짓을!”
거의 난사나 다름없는 총소리에 그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두 사람의 노모 역시 폐교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배정된 일도 내팽개치고 폐교를 향해 달려가야 했다.
“쏴! 쏘라고!”
“컥!”
“사, 살려!”
“시발! 왜 한 놈을 못 잡아!”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마을을 장악한 총기 무장범들이 고작 한 청년에게 무참히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저게 무슨?”
놀랍게도 총기 무장범들이 검을 쥔 청년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쩔쩔맸다.
청년은 무협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밟으며 날아다녔다.
때론 손끝에서 푸른빛의 탄지공을 날리기도 하고.
반투명한 호신강기를 펼쳐 총알을 막아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푸른 검기로 총째 사람을 썰어 버리는 무위였다.
“맙소사. 무림인이 실존한다고?”
무협지를 즐겨 읽던 두 형제에겐 청년의 모습이 무림의 절대고수로 비쳐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협객, 협객이 나타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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