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64화 (64/273)

< 이상지형 (3) >

***

나는 믿을 수가 없단 표정을 짓는 콩나물님의 모습에 쓰게 웃으며 물었다.

“갑자기 사라지셔서 찾았습니다.”

“어, 어떻게 여길?”

그들이 납치된 곳과 이곳까지의 거리가 꽤나 있다.

찾으려고 해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터.

나는 기쁨과 감동, 슬픔 등 여러 감정이 공존하는 콩나물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제가 구하러 왔으니 이제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런 내 대답에 돌아온 건 걱정이었다.

“이곳 녀석들이 구제 불능의 쓰레기 악당이긴 하지만, 그 강함은 진짜입니다. 특히 리더는 격이 달라요. 저를 구하러 와주신 건 감사하지만, 돌아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들에게 나는 희망이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것을 종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단 의미.

특히 나의 무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이런 말을 한다는 것에 나는 놀라움을 느껴야 했다.

‘리더의 강함은 격이 다르다?’

나는 이 순간 위협보다 흥미를 느꼈다.

더불어 제대로 씻지도 못해 거지꼴로 감옥 안에 갇혀 있음에도 내 걱정을 해주는 콩나물님의 인성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네?”

아까부터 이곳 경비들이 열심히 콩알탄을 날려대고 있다.

당연히 총알은 윌리아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고, 자신들의 행위가 총알 낭비란 것을 안 경비들을 검을 뽑아 들려 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에 죽이면 안 되는 놈들이 있습니까?”

이미 콩나물님이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부터 보령 사냥팀은 아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위해 물었다.

“위, 위험한데···.”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요.”

나는 뜸을 들이는 콩나물님을 향해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에 마른침을 삼킨 그가 주변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동료들이 하나같이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결심한듯한 콩나물님이 말했다.

“전부 인간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는 죽어도 싼 놈들입니다.”

“콩나물님처럼 복장이 후줄근한 사람들은요?”

“그 사람들은 저희처럼 납치를 당해 사냥에 이용당하고 있는 노예들이에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렇게 목표를 설정한 나는 매직블럭을 쌓아 만든 감옥에서 등을 돌렸다.

그러자 가장 먼저, 지하에 있다고 믿기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곳곳에 퍼져 조심조심 접근을 시작한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하나같이 레벨 30이 넘는 고렙의 사냥꾼들.

대충 보아도 2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었다.

“윌리아님. 저쪽 날리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윌리아에게 콩나물님의 구조를 기념하는 축포를 부탁했다.

“폭발.”

이어서 윌리아의 강력한 원거리 공격 스킬, 폭발이 내가 가리킨 곳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끄아아악!”

“아아악!”

“뭐, 뭐야!?”

그곳엔 7명의 사냥꾼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전국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레벨의 사냥꾼들이 윌리아의 폭발 앞에 단숨에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일부가 날아갔다.

누군가는 윌리아가 날린 압축된 마력을 위험하다 여겨 방어막을 펼쳤지만, 급이 그리 높은 방어막은 아니었는지, 강렬한 폭발이 발생하자마자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곳을 가리켰고.

“폭발.”

-콰아아아아앙!

“으아악!”

이번에도 폭발이 작렬하며 사람들을 쓸어 버렸다.

방어막을 펼치건 말건 상급 방어막이 아닌 이상 폭발 스킬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폭격과 같은 공격이 이어지니, 우왕좌왕 대던 놈들이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붙어야지 무지막지한 폭발 스킬을 쓰지 못할 거라 판단한 모양이다.

뭐, 정석적인 판단이다.

법사를 상대할 땐 역시 거리를 좁혀야 하는 법이니까.

‘일섬.’

하지만 우리 팀엔 법사만 있는 게 아니다.

녀석들과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나는 타이밍에 맞춰 검강을 담은 발도술을 펼쳤고.

섬전처럼 휘둘러진 일격은 다섯 명의 사냥꾼을 양단했다.

범위 안에 있는 거라면 검, 방패, 갑옷까지 전부 싹 베었다.

“이, 이럴 수는···.”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녀석들.

“으악! 젠장!”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비명을 질러야 했다.

어떤 공격에 맞아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템까지 벴어!”

악당에게 아이템 수습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내 일격에 양단된 장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수, 수선 가능할까요?”

-찰칵.

“글쎄요?”

아이템 수선은 공방에서 할 수 있다.

문제는 양단된 아이템을 수선해본 경험이 없단 거다.

아무래도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 윌리아는 깜짝 놀라 머리를 쥐어 잡은 나를 스마트폰으로 타이밍 좋게 찍어댔다.

위기감 없는 우리의 모습에 콩나물님 일행은 물론, 남아 있는 보령 사냥팀 멤버들도 그대로 굳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앞으로 목만 베야겠네요.”

“그게 안전하겠죠.”

어디까지나 장비가 안전할 거란 의미다.

나는 남은 놈들을 청소하기 위해,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보령의 사냥꾼들을 시야에 담았다.

그러자 녀석들은 하나같이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블링크.’

도주라는 그들의 마지막 발악을 공간이동 스킬 한 번으로 짓밟아 버렸다.

-촤악! 촤악!

나는 검에 검강을 담아 녀석들의 목을 하나씩 날렸다.

그들도 살기 위해 쾌격이나 검기 등의 스킬을 사용해 왔지만, 나는 가볍게 피하거나 검강으로 쳐내며 목을 노렸고, 앗 하는 사이 모두가 쓰러져 지하 공동엔 납치되었던 사람들만이 남았다.

“와, 와아아아아!”

“대단해!”

우리의 활약에 탈출 희망이 생겨서일까?

사람을 죽였음에도 나와 윌리아는 환호와 칭송을 받았다.

뜬금없지만, 마력은 단순히 스킬의 사용횟수를 늘려주는 능력치가 아니다.

마력 수치가 올라갈수록 사람의 정신력 또한 강인해진다고 윌리아가 그랬었다.

덕분에 살인 행위에도 멘탈이 흔들리는 일이 없다.

그 증거로.

“이야, 다들 부자구만. 코인도 많고, 특수 등급의 아이템이 하나씩은 꼭 껴있네?”

나는 빠르게 시체에서 아이템과 코인을 수습했다.

그 행동이 너무도 익숙해 보였는지, 콩나물 님은 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무려, 레벨 30대의 사냥꾼 20명을 터는 거다.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다.

***

서백호가 강하다는 것쯤은 공나무도 알고 있었다.

스킬이 아닌 검놀림만으로도 몬스터를 압박하는 게 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꽤나 예전의 이야기.

현실은 게임이 아닌 만큼 언제 어떻게 성장이 막힐지 모르는 일이고, 최근에 본 보령 사냥팀의 리더 이지우의 포스가 워낙 대단해서, 서백호에게 도주를 종용한 거였다.

그러나 다시금 마주한 서백호와 윌리아의 무력은 상식을 가볍게 넘어서 버렸다.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앙!

-서걱!

“와, 와아.”

“미친···.”

예전에 만났을 때도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같은 인간이 맞나?’란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스킬이 이렇게 강해도 될까 싶을 만큼 위력적인 폭발에,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발검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을 양단하는 검격까지.

“저런 사람과 아는 사이였습니까? 아아, 하늘이 우릴 버리지 않았구나.”

“감사합니다. 이런 곳에 귀한 분이 계셨네요.”

주변의 반응만 봐도 충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노예들은 살기 위해 하나같이 공나무와 그 일행에게 아부를 쏟아냈다.

서백호와 윌리아는 순식간에 공동 안에 있던 관리자들을 제거했고, 시체에서 주섬주섬 아이템을 회수한 후 다가왔다.

-철컥. 철컥.

이어서 서백호는 맨손으로 감옥의 잠금장치를 뜯어버렸다.

‘대체 근력이 몇이시길래?’

쇠로 만들어진 잠금장치가 이렇게 쉽게 뜯기는 거였나?

공나무와 노예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뻐끔거려야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것은 강자에 대한 두려움.

아무래도 이곳에서 핍박을 받으며 생활했다 보니, 몸이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내 서백호의 편안한 음성을 듣게 되자.

시야가 뿌예지며,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미친 듯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인연이건만, 절망 속에 있던 자신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밀어 주니, 너무 감사해서 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가 울기 시작하자 같은 홍성팀 멤버들은 물론, 주변의 다른 노예들까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들의 모습에 위로가 서툰 서백호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때.

“이게 뭔, 개 같은 상황이지.”

듣는 것만으로 등골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목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이곳의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절망의 존재.

현재 이 공간의 주인인 이지우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서른 명에 가까운 부하들을 이끌고 계단으로 연결된 지상 쪽 출입구에서부터 천천히 허공에 떠서 내려오고 있었다.

“단체 비행 스킬인가?”

“저건 비행 스킬이라기보다 부유 스킬이라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아이템 스킬이려나? 그럼 좋을 텐데요.”

“시체서 스킬은 수습할 수 없으니까요?”

“네.”

감옥 안의 노예들은 하나같이 겁에 질려 있는데, 서백호와 윌리아는 그런 이들을 보며 벌써 저들을 처치하고 아이템 얻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모두가 이지우를 어려워 했다.

노예들은 물론, 같은 동료들까지.

때문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두 사람의 신선한 반응에 공나무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낮은 웃음을 흘렸다.

“울다가 웃으면···. 뒷말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서백호는 그런 공나무에게 실없는 말을 내뱉었다.

-슈욱!

그런데 서백호가 농담을 위해 시선을 돌린 그 틈을 노린듯.

한 줄기의 빛이 엄청난 속도로 윌리아를 향해 날아들었다.

-탕!

하지만 그 빛은 재빨리 발도를 한 서백호의 검에 의해 튕겨졌고, 빙글빙글 날아든 무언가가 공나무의 가랑이 사이로 틀어박혔다.

그건 바로 화살이었다.

양궁에서 쓰이는 종류의 화살.

만약 화살이 3cm정도만 더 위에 박혔더라면 공나무의 귀중한 곳에 구멍이 생길 뻔했다.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은 공나무는 서백호에게 시선을 옮겼으나, 그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있어서 잠자코 안전한 곳으로 물러났다.

“우리 리아씨의 예쁜 얼굴을 노려? 안 되겠네, 이 새끼들. 변신 중 공격 금지처럼 완전히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 주려 했는데.”

“죽어!”

그리고 윌리아는 적들을 향해 폭발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

항상 온화하고 차분한 윌리아가 타인을 향해 ‘죽어’라는 단어를 외치며 폭발 스킬을 퍼붓고 있다.

-콰아아아앙! 콰콰콰쾅!

덕분에 괜히 시비를 걸었던 녀석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고, 서른 명의 적 중에 10명이 공중에서 폭사했다.

누군진 몰라도 상급 방어막 스킬이 깃든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급 방어막이라 해도 폭발 한번은 버틸 수 있을지언정 두 번은 견디지 못했고, 곧바로 새로운 상급 방어막을 생성하자 윌리아는 타깃 포인트를 이용해, 폭발 스킬을 세 방향으로 날렸다.

폭발이 깃든 마력 하나는 위로, 하나는 옆으로, 하나는 직선으로 쏘아졌다.

하지만 이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던 마력이 방향을 틀면서.

-콰아아아아아아앙!

거의 동시에 방어막을 때렸다.

그로 인해 이전과 차원이 다른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공동에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 결국 한데 뭉쳐 있던 적들이 투신하듯 지면으로 몸을 던졌다.

-탁. 탁.

레벨이 폼은 아닌 모양이다.

다들 도약 스킬을 가졌는지, 지면과 충돌하지 않고 무사히 착지했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들은 윌리아의 폭발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30명 중 21명이 죽고, 이제 겨우 9명이 남았다.

나는 탑을 끼고 윌리아와 숨바꼭질을 하는 그들을 보며, 짧게 감상을 내뱉었다.

“무게 잡더니, 꼴 좋네.”

이런 내 혼잣말에 감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연신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저 이제 마력 10 남았어요. 마력이 찰 때까진 백업만 해야 할 것 같아요.”

한껏 흥분했던 윌리아가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물러나며 내게 바통을 넘겼다.

그러자 산개했던 녀석들이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줘서 윌리아가 마력을 회복하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지우 / 레벨: 45]

[김민성 / 레벨: 43]

[최은백 / 레벨: 42]

상대들의 레벨이 심상치 않다.

보아하니, 레벨이 40이 넘거나 그에 근접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었다.

윌리아가 알아서 잔챙이들을 정리해주고, 지금 달려오는 녀석들은 메인디쉬였다.

‘평균 레벨이 40이 넘다니.’

솔직히 이 정도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집단이라 볼 수 있다.

비록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죽이는 건 아깝단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녀석들이 윌리아의 얼굴에 화살을 날린 순간, 죽어 마땅한 그들의 죗값이 더 무거워졌다.

어쩌겠는가.

아까워도 버려야 할 때가 있는 거지.

-촥! 서걱!

나는 기세 좋게 달려들던 레벨 39의 방패+한손검으로 무장한 남성을 스킬도 없이 슬쩍 몸을 틀어 검기가 깃든 검을 피하고는 목을 베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레벨 40의 레이피어를 든 남성이었다.

펜싱 좀 했는지, 기세가 제법 매서웠지만, 오히려 나는 레이피어를 상대로 맞찌르기를 했다.

결과 내 검이 그의 이마를 꿰뚫은 반면, 상대의 검은 내 어깨 위 허공을 찌른 것에 그쳤다.

능력치 차이가 크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어서 특이하게도 할버드를 쥔 레벨 38의 남성과 일본도를 쥔 레벨 40의 남성까지 스킬 없이 신체 능력과 검술 능력만으로 제압했다.

“저, 저게 무슨?”

“······.”

덕분에 뒤이어 달려오던 다섯 사람의 발이 제자리에 멈췄다.

레벨 42부터 45까지.

아마도 그들이 보령의 메인 사냥팀 같았다.

“저놈도 대장이랑 같은 부류인가?”

“검술 스승 아이템 소유자라고?”

그런데 녀석들이 영문 모를 말을 하며 긴장한다.

‘검술 스승 아이템이라니?’

그때, 탐색 스킬로 본 이 중 최고 레벨의 이지우가 입을 열었다.

“아주 성대하게 나대는군.”

다부진 몸에 험악한 얼굴. 외모만으로 어딘가 직업 군인이 연상됐다.

그런데 대장이란 놈은 앞선 전투를 보고도 자신감이 상당해 보였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녀석들이 말한 검술 스승이란 아이템 때문이 아닐까 싶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