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정령형 몬스터 (3)
***
“헤이 험프리쑤! 돈두댓!”
나는 장난스런 외침과 함께 엘프와 미군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전혀 장난스럽지 않았다.
당연스럽게도, 갑작스레 내가 난입했다고 해서 두 진형이 전투를 멈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컥!”
-콰아앙! 퍽!
전투는 나름 치열해 보였지만, 미군 측에만 시체가 쌓여가는 것처럼 상황은 일방적이었다.
미군은 방어라인을 단단히 꾸리고 사냥꾼들로 하여금 반전을 노린다는 계획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 사냥꾼들이 레벨 60~70대의 정령형 몬스터들에게 붙들려 꼼짝을 못하니, 엘프들의 활 질에 미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시체만 늘려가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군도 후방에서 엘프들을 향해 박격포를 쏘고, 대전차 미사일과 유탄 등을 날렸으나.
애석하게도 현대 무기는 이능 앞에 제 위력을 발휘하질 못하고 엘프들을 보호하는 방어막에 모조리 막혀 버렸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내가 무얼 했나 하면···.
-콰아아앙! 쿵!
-키에에엑!
-콰앙!
“끄악!”
그냥 시야에 들어오는 존재라면 미군이건 정령형 몬스터건 칼등으로 쳐서 각각의 진영으로 날려 보냈다.
피아 구분 없이 전부.
희귀 등급의 무기인 무왕의 보검이 휘둘러질 때면 마치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마냥 인간이든, 몬스터든 허공을 펄펄 날았다.
덕분에 일부 미군의 총질과 정령형 몬스터들이 내게 공격을 가해오기도 했지만.
-티티티팅!
-서걱!
나는 가볍게 검으로 총알들을 튕겨내고, 정령형 몬스터들의 스킬을 베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얼마나 두 진형 사이에 끼어들어 강제 진압을 이어 갔을까?
결국, 미군들은 질린 표정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내가 칼등이 아닌 칼날로 쳤더라면 자신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단 사실을 이해한 것이다.
-티티티티티팅!
그럼에도 엘프들은 미군을 죽이겠다며 검기와 같은 기운이 깃든 화살을 연거푸 날려왔지만, 나는 이번에도 화살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도약 스킬을 돌진형태로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은 눈으로 좇기도 힘든 스피드가 만들어지고.
달려가기 너무 먼 거리의 화살은 아예 블링크로 공간이동을 해서 쳐내니,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윌리아님. 폭발 스킬 공중에 쏴주세요.’
‘네.’
그래도 엘프들은 쉬이 포기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자, 나는 결국 윌리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콰아아아앙! 콰아앙! 쾅!
그러자 두 진영 사이를 가로 지르듯 폭발 스킬이 연이어 허공에서 작렬했다.
그에 미군들은 물론, 엘프들까지 당황했다.
“으악! 뭐, 뭐야!?”
“숙여!”
“오, 하나님!”
미군들은 하나같이 기겁하며 영어로 쏼라쏼라 떠들었는데, 마치 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렵지 않은 대사들뿐이라 알아듣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어쨌든 윌리아의 적절한 백업 덕분에 엘프들의 움직임도 멈췄다.
엘프 5명과 정령형 몬스터 30마리 vs 미군 약 500명이 나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했고.
곧 내 곁으로 윌리아가 블링크를 사용해 순간 이동을 해왔다.
“대체 무슨 짓이냐!?”
영어를 못해서 미군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엘프들은 아니었다.
그러자 한국어 패치가 되어 있는 NPC 엘프들이 내게 윽박을 내질렀다.
그에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엘프 여러분.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된 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로페즈(엘프) / 레벨: 82]
-호감도: 0%(중립)
[제드(엘프) / 레벨: 79]
-호감도: 0%(중립)
[카밀라(엘프) / 레벨: 80]
-호감도: 0%(중립)
나는 스윽 엘프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NPC지만, 내가 이제껏 보아온 NPC들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그건 바로 레벨이 존재한다는 거다.
보통 NPC는 레벨이 없다.
윌리아가 그랬고, 해롤드, 토레프, 막심도 그랬다.
윌리아의 경우 내가 동료로 받아들이면서 나와 같은 레벨이 매겨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엘프들은 달랐다.
처음부터 레벨이 정해져 있고, 인간을 공격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전투가 가능한 NPC라 그런가? 활동 범위도 넓고, 특이하긴 하네.’
다행이라면 나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은 데다가 그들의 적인 미군에게도 똑같은 짓을 해서인지, 그들과 나의 관계가 중립에서 나빠지지 않았다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뭐야? 쟨?’
[시에나의 호감도 10% 상승했습니다.]
[시에나(엘프) / 레벨: 87]
-호감도: 10%(관심)
내게 호감을 보이는 엘프조차 있었다.
‘설마···. 나한테 반했나?’
다섯 명의 엘프들 가운데서 레벨은 가장 높은데, 키는 제일 작고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귀엽게 생긴 엘프였다.
“뭔데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 거냐!?”
두 번째로 레벨이 높은 로페즈란 엘프의 외침에 나는 시에나란 이상한 엘프에게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당연히 전투를 중재하기 위해 왔습니다.”
“중재? 이쪽의 경고를 일방적으로 무시한 주제에 막상 전투가 벌어지고 질 것 같으니, 이제 와서 중재자를 불렀단 말인가?”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군이 불리해지자 7번 조각 소유자가 다급히 도움을 청한 거니까.
더구나 NPC들이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니, 미군이 이들의 경고를 무시한 것도 맞겠지.
“저희가 몬스터와 다른 점이라면 의견을 주고받으며, 그에 따른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거절한다면?”
“저들의 편을 들 수도 있습니다.”
“흥, 우리가 그걸 무서워할 것 같은가.”
그러면서 로페즈란 여성 엘프가 손을 들자.
지금 우리가 자리한 들판 너머 숲속에서 엘프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며 금세 엘프의 수가 5명에서 15명으로 3배가 늘어났다.
하나같이 레벨 70이 넘는 엘프들.
만약 그들도 앞선 엘프들처럼 정령형 몬스터를 부린다면 나조차 위험할 수 있다.
‘아, 이건 좀.’
덕분에 속으로 크게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솔직히 치고빠지기를 한다면 어찌어찌 싸울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니.
“그쪽에서 마음에 드는 제안을 해온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런데 그때.
여태까지 잠자코 있던 작은 엘프가 나섰다.
아까 난데없이 호감도가 10% 오른 엘프 말이다.
누가 봐도 가장 어려 보이는데, 레벨은 제일 높다.
그리고 그 높은 레벨만큼 엘프들 사이에서 신분도 어느 정도 높은 편인 듯 보였다.
“하지만, 시에나님.”
그도 그럴게, 방금까지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로페즈란 엘프가 화를 죽이며 시에나에게 공손히 말을 높였기 때문이다.
잘하면 큰 문제 없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저들은 우리의 경고에도 일반 정령을 공격했다. 타락한 정령을 해치우는 건 상관하지 않으나, 일반 정령을 공격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그럼에도 인내심을 발휘하여 수차례 경고를 해줬건만 저들은 무시했다. 아마도 일반 정령이 타락한 정령보다 레벨이 낮아 사냥하기 편해서 욕심을 부린 것 같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선 철저하게 미군의 잘못으로만 보였으니까.
“혹시 대화가 안 통한 거 아닐까요?”
저들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대부분이라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NPC들은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럴 리가. 심어라는 스킬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의사를 전달했다. 그건 언어의 제약이 없어.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스킬이니까.”
일종의 텔레파시 스킬인 듯하다.
즉, 이걸로 확정.
100% 미군 잘못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꼬마 엘프 시에나에게 물었다.
“누구에게 경고를 전달했습니까?”
“저기 사냥꾼 중 레벨이 제일 높은 자에게 전달했다.”
나처럼 탐색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그녀는 한곳을 가리켰다.
[로버트 게일 / 레벨: 40]
수도권에서도 몇 되지 않는 레벨 40대의 사냥꾼.
아마 높은 확률로 그가 7번 시나리오 조각의 보유자가 아닐까 싶다.
엘프들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이내 자신들에게 시선이 향하자 미군은 하나같이 긴장했다.
“그럼 가서 이야기 좀 나눠 보고 오겠습니다. 괜찮을까요?”
“그러도록 하지.”
외형과 달리, 아저씨 말투를 가진 시에나의 허가에 엘프들은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에 나는 허공으로 파이어샷(파이어+마력탄)을 쏘아 올렸고.
-펑!
곧 제임스 최를 등에 앉힌 멍멍이가 날아왔다.
“제임스?”
몇몇 미군이 그를 알아보았다.
“통역 좀 해줘야겠습니다.”
“아, 알겠슴다.”
멍멍이가 몸을 털자 제임스 최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는 그를 일으키며 통역을 부탁했다.
“구조요청을 받고 왔습니다.”
그리고 제임스가 내 말을 전하니, 레벨 40의 로버트 게일과 독수리 무늬의 계급장을 단 미육군 대령이 함께 걸어 나왔다.
“가, 감사합니다. 상황은 해결된 겁니까?”
잔뜩 겁을 먹은 미육군 대령.
아무래도 죽을 거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엘프들의 요구를 따른다면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겁니다.”
단도직입적인 내 말에 통역을 위해 중간에 껴있는 제임스 최가 움찔거렸다.
이어서 그는 내 지시사항을 전했고, 이야기를 들은 로버트 게일과 대령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못마땅한가 보다.
그에 나는 더욱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 없으면 저 엘프들 이길 자신 있어요? 아까보다 쪽수도 더 늘어났는데.”
현실을 인지시켜주니 그제야 미군은 지금의 상황이 패전에 대한 보상 협상임을 알게 되었다.
그나마 내가 끼어들어 이렇게라도 살 수 있게 된 거다.
나는 앓는 소리를 내는 대령을 보며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쪽에서 수차례 경고를 해줬음에도 왜 무시를 한 겁니까?”
내 물음에 대령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황당하단 얼굴로 로버트 게일을 가리켰다.
“저기 엘프들의 리더가 이 양반에게 계속 경고를 보냈다는데요? 타락한 정령의 사냥은 상관없지만, 일반 정령을 공격하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요.”
“처음 듣습니다만?”
나는 현재 극상 등급의 스킬 ‘진실의 눈’을 활성화시킨 상태.
상대가 거짓말을 하면 알아챌 수 있게 붉은 기운을 풍기는데, 대령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보니, 당신이 문제였구만? 당신이 엘프들의 경고를 무시해서 엄한 사람들만 죽었네?”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로버트 게일도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의 대답과 동시에···.
-스멀스멀.
붉은색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로버트 게일에게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말했다.
“NPC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으면, 내가 중재를 시도해도 무시했을 테고.”
그러자 대령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묘하게 변하며 일제히 로버트 게일에게 향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요?”
재차 물어도 그는 억울하단 태도로 일관할 뿐이었다.
나는 혀를 찼다.
이 이상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진실의 눈은 참 좋은 스킬이지만, 이런 인물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인간 혐오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으면 바짝 엎드리세요. 저들이 이 인간을 원하면 넘겨 주시고.”
나는 대령을 향해 말했고, 대령은 로버트 게일을 향해 심기 불편해진 반응을 보이면서도 곤란해 했다.
아무래도 주한미군 중 가장 레벨이 높은 그를 쳐내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구조요청을 받고 오신 거 아닙니까? 당신들이 있다면 충분히 저 괴물들과 싸워볼 만할 것 같은데요?”
로버트 게일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왜?”
“뭐요?”
“내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을 위해 엘프같이 희귀한 NPC와 적대해야 하는데?”
냉정한 내 대답에 거짓말쟁이 로버트 게일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그런데 그때.
-휘익!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걸 살기라 해야 할지··· 아무튼 차갑고 따끔한 기척이.
노리는 곳은 내 어깻죽지였다.
[피해라.]
그와 동시에, 좀 전에 대화를 나눴던 시에나의 목소리가 텔레파시처럼 머릿속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군···.’
대충 이게 무슨 상황임을 알아챈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어깨를 틀었다.
그러자.
-퍽!
아슬아슬하게 내 어깨를 스치듯 비껴간 화살이.
“끄어어···.”
“게일!”
정확하게 로버트 게일의 미간에 틀어박혔다.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딱 로버트 게일의 머리에만 화살이 꽂혔다.
상대가 힘 조절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레벨 80 이상의 엘프라면 아예 머리를 관통시킬 수도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겠더군. 일단 그 인간을 처치한 것으로 봐줄 테니, 나머지 인간들에겐 꺼지라 전해주겠나.]
분명 이게 아까 그녀가 말했던 ‘심어’라는 스킬 같았다.
‘멋진걸?’
이쪽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 같자, 아예 협상을 그녀 마음대로 끝내 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시에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자넨 남아서 이야기 좀 나눔세.]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엘프들은 원래 서 있던 언덕에서 50미터 정도 뒤로 물러났다.
“엘프 쪽에서 이번 사태의 범인을 처치한 거로 봐줄 테니, 그냥 돌아가랍니다.”
미군은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분개할 법도 했지만.
이 사달이 로버트 게일 때문에 벌어지게 됐다는 사실 때문인지, 분위기는 침울해져도 당장 큰소리치며 분노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시신 수습해서 돌아간다.”
결국, 대령은 엘프의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후퇴를 결정했다.
“저, 저도 이만 갈게요.”
“통역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최도 그들을 따라 물러났다.
나 또한 얘기 좀 하자는 엘프에게 가려는데, 눈앞에 예상치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라 발걸음을 세우게 했다.
[당신의 11번 시나리오 조각이 사망자로부터 7번 시나리오 조각을 흡수했습니다.]
[현재 보유한 시나리오 조각은 7번과 11번 두 개 입니다.]
의외의 선물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