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37화 (137/273)

137화 대비는 완벽 (3)

계단 협곡에 있다는 다크엘프 소굴은 깊고 긴 동굴을 따라 이동하니 나왔다.

그곳은 손으로 깎아 만든 듯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다듬어진 지하 공동이었다.

우리 파티는 그곳에 닿기까지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는데, 아무래도 동굴의 특성상 전투를 치르면 소리가 울려 필연적으로 다크엘프들의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 파티는 새로이 팀에 합류한 다크엘프 펫 다켈프와 함께 큰 위기 없이 앞으로 나아갔고, 납치당한 에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공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스멀스멀.

“킁킁. 야, 이놈들 바비큐 하나 봐.”

“그러게요. 맛있는 냄새 나네.”

다크엘프 소굴에 도착하니, 우리를 반겨 준 것은 고기 굽는 냄새였다.

적이 쳐들어 왔는데, 뭘 그렇게 맛있게 굽나 싶어서 내부를 살피니…….

“으악! 나 죽어! 나 죽는다!”

불붙은 장작더미 위에 에밀이 묶여 있었다.

맛있는 냄새의 정체는 우리의 구조 대상이었던 것이다.

“…….”

난데없는 마녀사냥의 화형식을 직관하게 된 우리 파티는 말을 잃고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어? 야야! 뭐 해! 발바닥 타고 있잖아!”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에밀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지며 어서 자신을 구하라고 소리쳤다.

그에 시에나가 급히 화살을 날려 그녀의 구속을 풀었다.

“야이 미친 엘프야아아악!”

하지만 문제는 구속구가 풀리자 에밀이 자유 낙하를 시작했으며, 그녀의 발밑에 펼쳐진 건 새빨간 불구덩이란 것이다.

다행히 그녀에겐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와 윌리아가 동시에 발판 스킬을 사용하며 에밀을 공중에 띄웠기 때문이다.

“완전 회복.”

동시에 윌리아가 완전 회복 스킬을 쓰니 새까맣게 그을린 에밀의 발이 말끔하게 회복되었다.

덕분에 에밀은 자기 발로 화형식이 진행되던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는 줄 알았네.”

우리는 그런 에밀에게 다가갔고, 그녀를 불구덩이에 빠뜨릴 뻔했던 시에나가 황당함을 담아 물었다.

“불장난하다가 화형식 당할 뻔한 소감이 어때?”

“뭐래? 다른 건 몰라도 너 때문에 골로 갈뻔한 건 알겠다!”

에밀은 그런 시에나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푹!

“악!”

시에나는 에밀이 덤벼들자 손가락 두 개로 가볍게 그녀의 눈을 찔러 제압했다.

덕분에 에밀은 양손으로 눈을 감싼 채 바닥을 굴러야 했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두 사람의 행동에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스윽.

하지만 우린 이내 긴장해야 했다.

공동 내부 곳곳에 자리한 건물들 뒤에 숨어 있던 다크엘프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빽빽! 뒤로 가세요.”

그런데 다크엘프의 쪽수가 심상치 않다.

레벨 130이 넘는 놈들이 족히 50은 넘어 보였고, 보이지 않는 곳에 또 얼마나 있을지 예상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일행들을 천천히 뒤로 물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넓은 곳보단 상대적으로 좁은 동굴에서 싸우는 게 다수와의 전투에 유리할 것 같았으니까.

[그 마녀를 내놓아라.]

그리고 그때.

에밀의 화형식이 진행되고 있던 곳에서 한 다크엘프가 신기루처럼 등장했다.

[필드 보스 다크엘프 흑기사 웨인 / 레벨: 150]

왜 안 나타나나 했다.

앞선 퀘스트에서도 레벨 150의 네임드가 등장했었으니까.

이번에 등장한 녀석은 전신을 플레이트 아머로 감싸고, 한손 방패와 한손 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빈틈없이 너무도 단단해 보이는 모습.

더구나 다크엘프 마을에서 상대했던 족장이 네임드였던 반면 이 녀석은 필드 보스다.

아마 족장보다 훨씬 강할 터.

[필드 보스 다크엘프 흑기사 웨인이 단거리 공간이동 방해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파티 내 보유 스킬인 블링크와 그림자 이동이 일시적으로 사용 불가 상태가 됩니다.

그뿐 아니다.

이 필드 보스는 듣도 보도 못한 스킬로 단거리 공간이동 스킬을 봉쇄해 버렸다.

“이건 좀 아닌데.”

그런 특별한 녀석이 무려 50명이 넘는 수의 다크엘프 암살자와 도둑을 대동하고 있다.

감히 덤벼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상대였다.

‘이걸 깨라고 만든 퀘스트 맞아?’

때문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던 우리 파티의 백스텝이 점점 빨라졌다.

“스탑! 스탑!”

그리고 우리가 나왔던 동굴로 다시 막 들어갔을 때, 파티 최후방을 지키는 시에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정지를 외쳤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쩍 고개를 돌리니, 독 단검을 든 다크엘프 도적 떼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퇴로를 차단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우회로가 있던 모양이다.

나는 혀를 찼다.

“어쩐지 일이 쉽다 했어.”

앞뒤가 막힌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귀환 스크롤은 사용 가능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흑기사가 사용한 스킬이 ‘단거리 공간이동 방해’라 그런지, 아니면 아이템의 특성이 그런 건지, 이벤트 상점표 귀환 스크롤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혹시 싶어 물어보는 건데요. 에밀 님, 제가 설치한 간이 웨이포인트 저장했나요?”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면 가장 최근에 이용한 웨이포인트로 도주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말하면 이건 웨이포인트가 저장되어 있지 않으면 도주할 수 없단 뜻과도 같다.

사냥꾼이라면 웨이포인트 저장은 당연한 일이지만 NPC는 그렇지 않았다.

“아, 아니.”

즉, 귀환 스크롤을 이용한 도주는 우리 파티만 가능하고, 에밀은 불가능하다는 뜻.

그렇다면 귀환 스크롤을 사용하는 순간, 에밀은 죽고 퀘스트는 실패로 끝나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선 퀘스트가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도주를 선택해야겠지만…….

다행히 나는 시도해볼 만한 3가지 방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1. 성검 칼립소의 성검방출 스킬로 정면의 다크엘프 도둑들을 날려 버린다.

2. 듀랜달의 일검양단 스킬로 정면의 다크엘프 도둑들을 날려 버린다.

3. 성검 칼립소와 듀랜달의 스킬을 동시에 사용해 정면의 다크엘프 도둑들을 날려 버린다.

과정만 다를 뿐, 목적은 전부 같았다.

의기양양하게 동굴을 막아선 다크엘프 도둑들에게 미안하지만, 녀석들을 날려 버리는 게 전제 조건이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3번을 시도해 보는 게 낫겠지.

물론, 이 방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뒤에서 달려들 필드 보스를 떨쳐 낼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도주를 위한 마지막 퍼즐로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하는데…….

단단히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건지, 크게 당황한 에밀이 다급히 내 망토에 매달리며 이리 말했다.

“배, 백호! 어떻게 해. 뭐라도 좀 해 봐! 무, 무사히 빠져나가면 내가 귀한 보물 챙겨 줄게!”

[퀘스트의 보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오잉?’

에밀의 말에 이어진 메시지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상황에 따라 퀘스트 보상을 올려 받을 수 있다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상이 업그레이드된 순간, 금융 치료의 효과인지 필드 보스를 떨쳐 낼 방법을 금세 떠올렸다.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린 나는 시에나와 윌리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내 계획을 들은 두 사람은 심플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떤가, 그 마녀를 내놓을 생각이 들었나?]

우리의 속내를 모르는 필드 보스 다크엘프 흑기사가 고압적인 태도로 물어 왔다.

그의 입장에서 에밀은 놓쳐선 안 되는 악당.

우린 그 악당의 행동대원 겸 끄나풀이라 할 수 있다.

“글쎄?”

[네 녀석들도 태워 죽여 마땅하지만……. 우선순위에서 그 마녀가 위다. 순순히 마녀를 넘긴다면 살려 줄 수도 있어.]

흑기사의 눈엔 우리가 빠져나가기 힘든 함정에 빠진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에 에밀의 동공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지랄.”

하지만 내 대답에 에밀은 감동받은 표정을 짓고, 흑기사는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졌다.

[그럼 죽어야지.]

흑기사는 부하들에게 일을 떠넘기는 타입이 아니었다.

가장 선두에 서서 직접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에서 확실하게 우릴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흑기사를 바라보며 검을 빼 들었다.

왼손엔 성검 칼립소, 오른손엔 듀랜달.

둘 모두 유일 등급의 무기로 필살기급의 공격 스킬을 갖고 있다.

“상대가 무슨 패를 갖고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자신만만한 건 안 좋아.”

[뭐라?]

“폭주, 분신.”

그리고 나는 뛰어들 자세를 취하는 흑기사의 행동에 앞서, 폭주 스킬과 분신 스킬을 사용했다.

내 의지에 따라 폭주 스킬을 사용한 분신이 번개처럼 흑기사에게 튀어 나갔다.

[흥! 어디 얕은…….]

그런데 분신이 흑기사에게 달려듦과 동시에…….

“아이기스.”

“아이기스.”

“아이기스.”

나와 윌리아, 시에나는 차례로 금속의 방어벽을 소환하는 스킬을 사용해 흑기사가 들어설 통로를 겹겹이 막아 버렸다.

[아이기스의 조각 / 등급: 희귀 / 이벤트 상점표]

-20m*10m*5m 크기의 매우 강력한 방어벽을 5분간 소환하는 팔찌.

-직선 공격에 대한 단순 방어력만큼은 최상급 방어막을 능가하며, 하루 5회 사용할 수 있다.

[어?]

그리고 상황이 잘못 돌아감을 느낀 다크엘프 도둑들에게 몸을 날리며 성검 칼립소와 듀랜달의 내장 스킬을 선물했다.

‘성검방출, 일검양단.’

폭주 스킬의 사용 효과로 인해 느리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성검에서 방출된 광선이 직선상의 다크엘프 도둑들을 삼켜 버리고.

이상함을 느껴 먼저 몸을 피한 몇몇 놈들에겐 듀랜달의 일검양단 스킬이 작렬했다.

다크엘프 소굴과 연결된 동굴은 그리 좁지 않지만, 연이어 날아든 두 스킬을 피해 낸 건 단 세 놈뿐이었다.

‘단번에 뚫는다.’

하지만 그 세 놈은 당황한 나머지 몸이 굳었고, 나는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검을 휘둘러 놈들의 목을 베었다.

길목을 막고 있던 다크엘프 도둑을 빠르게 일소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가죠.”

내 전투를 처음 본 에밀은 벙어리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놀란 모습을 보였다.

우린 그대로 들어왔던 동굴을 따라 도망쳤다.

“아이기스!”

“아이기스!”

그리고 중간중간 잊지 않고 금속 벽으로 장애물을 만들었다.

-콰콰쾅!

머지않아 땅이 울리면서 들려오기 시작한 굉음.

아무래도 흑기사가 내 분신을 처치하고 아이기스 조각으로 만든 방어벽을 파괴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폭주 스킬까지 쓴 내 분신이 흑기사를 물고 늘어진 시간은 겨우 5초 남짓.

하지만 이 시간은 찰나의 순간을 두고 싸우는 우리에겐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었다.

더불어 우리가 이동하는 중간중간 방어벽을 설치한 덕분에 흑기사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삐익!

“룡룡아!”

결국, 우리는 동굴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나는 눈앞으로 빛이 스며들자마자 펫 소환 피리를 불었다.

최대 비행 속도가 마하 1에 달하는 룡룡이가 내 지시에 따라 미사일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고, 우린 제때 그런 룡룡이를 올라탈 수 있었다.

-쇄애애액!

“으악! 뭐 날아온다!”

그런데 흑기사는 이런 우릴 얌전히 보내 줄 이유가 없다.

그림자로 이뤄진 듯한 새까만 랜스가 협곡의 벽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쳐 왔다.

그 속도는 룡룡이의 비행 속도를 상회했으며, 품고 있는 기운 역시 흉포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랜스를 향해 성검을 겨눴고.

-파앗!

이내 성검 방출로 그 공격을 막아 냈다.

-콰아아아아아앙!

-고고고고고!

레이저처럼 뻗어 나간 푸른 광선이 새까만 랜스와 충돌하자, 강렬한 빛이 발생하며 지면과 공기를 뒤흔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 랜스는 지금까지 마주한 몬스터의 공격 스킬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위력을 품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성검을 뚫어 낼 수준은 아니었지만.

[폭주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폭주 스킬이 끝이 나며, 오늘의 최대 과제라 할 수 있는 에밀 구조에 성공했다.

“고, 고마워!”

죽다 살아난 에밀은 부끄럽다는 듯 몸을 비틀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약속대로 그냥 보상이나 더 내놔.’

* * *

“소장님!”

“제인!”

우리가 에밀을 구해 오자 의뢰인인 제인은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이어진 건 보상 타임이다.

나는 퀘스트를 완료하며 제인에게 예정대로 ‘아공간 반지’라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아공간 반지 / 등급: 희귀]

-15m*15m*15m의 정육면체의 내부 공간을 가진 아공간 반지다.

-아공간 반지는 내부가 허용하는 부피 내에서 무게 제한 없이 물건 보관이 가능하다.

‘오!’

아이템의 설명을 읽은 나는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무게 제한 없이’라는 문구에서 인벤토리와의 차별점이 확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벤토리는 사용자가 직접 들 수 있는 물건만 담을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별명이 힘벤토리다.

하지만 아공간 반지는 다르다.

내부에 여유 공간만 있으면 아무리 크고 무거운 물건이라도 보관이 가능하니 분명 귀중히 쓰일 것이다.

‘월광도에 슈퍼카 콜렉션도 만들 수 있겠는걸?’

덕분에 그동안 무거워서 월광도로 못 실어 나르던 물건들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보상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내 시선이 에밀에게 향했다.

큰 보상을 약속해 놓고, 갑자기 ‘선물은 바로 나’와 같은 개소리를 하면 드롭킥을 꽂아 넣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에밀은 그런 뻘짓은 벌이지 않았다.

“자, 약속했던 추가 보상.”

그리고 그녀에게서 추가 보상을 건네받은 나는 헛바람을 삼켰다.

[웨폰 체인저 / 등급: 희귀]

-팔찌 형태의 장비로 내부에 10개의 무기를 보관할 수 있으며, 각 무기에 1에서 10까지 번호를 부여한다.

보관된 무기는 명령어를 이용해 바로 꺼내 쥐거나 다른 무기로 즉시 교체할 수 있다.

-사용 명령어는 원하는 무기의 번호와 함께 ‘장착’ 또는 ‘교체’, ‘수납’이라 말하거나 생각하면 된다.

-모든 능력치 +2

괜히 에밀이 보물이라 칭한 게 아니다.

이건 나같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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