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38화 (138/273)

138화 대비는 완벽 (4)

[웨폰 체인저 / 등급: 희귀]

-팔찌 형태의 장비로 내부에 10개의 무기를 보관할 수 있으며, 각 무기에 1에서 10까지 번호를 부여한다.

보관된 무기는 명령어를 이용해 바로 꺼내 쥐거나 다른 무기로 즉시 교체할 수 있다.

-사용 명령어는 원하는 무기의 번호와 함께 ‘장착’ 또는 ‘교체’, ‘수납’이라 말하거나 생각하면 된다.

-모든 능력치 +2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나와 너무도 상성이 좋을 것 같은 장비.

이런 게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나로선 감탄사를 흘리며 웨폰 체인저를 시험해 보기 위해 얼른 손목에 채웠다.

나는 칼날의 길이를 5미터까지 조절할 수 있는 거마도를 꺼내 웨폰 체인저 팔찌에 가져다 댔다.

[거마도에 번호를 부여해 주십시오.]

그러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떠오르고, 나는 바로 응답했다.

“3번.”

[거마도가 3번 무기창에 보관됩니다.]

그러자 팔찌 위로 홀로그램처럼 푸른빛의 숫자 3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한 홀로그램 이펙트.

알고 보니 웨폰 체인저는 꽤나 화려하고 눈에 띄는 장비였다.

이어서 나는 겁화의 야태도에 4번을 부여해 웨폰 체인저에 보관을 했다.

팔찌 위로 숫자 3에 이어 4가 새롭게 떠올랐다.

나는 바로 무기 장착을 시험했다.

‘3번 장착.’

짧은 명령어를 내뱉자 팔찌 위에 떠 있던 홀로그램 숫자 3이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면서 거마도가 오른손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쥐어졌다.

복잡한 과정 없이 신속하게 손에 쥐어지는 것을 본 나는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4번 교체.’

교체도 자연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거마도가 겁화의 야태도로 딜레이 없이 교체되었다.

마치 마술 같은 느낌.

‘무기를 이미 쥔 상태에서 한 번 더 장착 명령어를 사용하면 어떻게 되지? 다른 손에 쥐어질까?’

그래서 추가 장착 실험을 했고.

‘4번 장착.’

예상대로 겁화의 야태도가 왼손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뒤이어 나는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웨폰 체인저에 보관했다.

다만 딱 하나, 내 의지에 따라 날아오르는 춤추는 검만 예전처럼 허리춤에 걸어 놓았다.

‘1번 교체, 1번 수납, 1번 장착, 2번 장착, 3번 장착.’

이후로 나는 웨폰 체인저의 사용법을 숙지했다.

그로 인해 추가로 알게 된 게 3가지가 있다.

1. 양손에 무기를 쥔 상태에서 또 무기 장착 명령어를 사용하면, 눈앞의 허공으로 새로 호출한 무기가 나타난다.

2. 교체는 양손 모두 자유롭게 가능하다. 교체하고자 하는 손에 무기를 의식하면서 명령어를 사용하면, 그 손의 무기가 교체된다.

3. 소환한 무기를 떨어뜨린 상태에서 수납 명령어를 사용하면 자동으로 회수된다.

정말 너무도 편리한 장비 아닌가.

나는 1~6번의 숫자가 시계처럼 떠오른 팔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들어?”

“너무 좋네요! 하하!”

갑자기 퀘스트의 보상이 업그레이드되더니, 이런 보물을 획득하게 될 줄이야.

나는 웨폰 체인저 덕분에 에밀의 이미지가 급격히 좋아짐을 느꼈다.

[에밀의 호감도가 10% 올라 75%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다고 그녀를 동료로 맞이할 생각이 드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다간 또 잡혀가는 거 아닙니까?”

내 물음에 에밀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래서 뭔가 했더니, 다름 아닌 안전 텐트였다.

안전 텐트를 설치하면 직경 5미터 내의 공간에 몬스터가 접근할 수 없는 안전 구역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범위 안에 있다면 잡혀갈 일은 없을 거다.

“나 앞으로는 안전 텐트 안에서만 생활할 거야.”

에밀의 방구석 폐인 선언에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다른 주민분들은요?”

“아, 저희도 있습니다. 한동안은 이 안에서만 생활해야겠네요, 뭐.”

고렙의 몬스터가 득실대는 곳에서 안전 텐트는 필수품인 모양이다.

이로써 하늘섬 세일론에 자리한 엘프 마을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엘프들의 단체 방구석 폐인 선언과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 * *

서울 청와대 생존 구역.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래? 이제 보존 식량도 동났다며? 그런데 저렇게 고기가 듬뿍 든 곰탕을 주다니?”

정부에서 지급하는 식량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은 선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기름진 냄새에 깜짝 놀라야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배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릇 한가득 고기를 받아 가는 모습을 보게 되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들으니까 몬스터 고기라더군.”

하지만 그 고기의 정체를 알게 되자 기쁨에 물들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다들 표정이 묘해졌다.

“모, 몬스터? 몬스터는 죽으면 뼈나 가죽 정도 남기고 빛이 되어 사라지잖아. 그런데 무슨 고기?”

“듣기론 정부에서 북한과 협력하여 몬스터 사체의 보존 방법을 알아냈다는구만.”

“그래? 하지만……. 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몬스터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건지.”

“이미 독성 테스트 같은 거 전부 끝났대. 대부분의 몬스터 고기는 문제없이 먹을 수 있다더군.”

추운 겨울 따끈한 열기를 토하는 고깃국물을 보고 있노라면 목구멍으로 침이 절로 넘어가지만, 역시 몬스터의 고기라고 알게 되면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선 정부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아무 고기나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건 그랑 다이어 울프 고기로 만든 거라니, 거부감은 좀 덜하지.”

“그랑 다이어 울프? 그 커다란 늑대?”

“맞아.”

정부에선 사람들의 거부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적어도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를 식용으로 택했다.

다들 몬스터라고 해서 이족 보행을 하는 오크 정도를 떠올리다가 그랑 다이어 울프라고 하니, 그나마 경직됐던 얼굴이 풀어졌다.

“그랑 다이어 울프라면 먹는 걸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네.”

그렇게 허기를 못 이긴 사람들은 잠자코 그랑 다이어 울프 곰탕을 받아 갔고.

큼지막한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담긴 국그릇을 보며 하나같이 입맛을 다셨다.

“에잇, 몰라.”

사람들은 한참 동안 고기와 눈싸움을 벌이다가 하나둘 입을 대기 시작했고.

“오오!”

그 맛이 준수함을 넘어 상당히 맛있었기 때문에 감탄사를 흘리며 곰탕을 흡입했다.

“푸하! 이거 꽤 맛있는걸?”

“그러게 말이야! 이상한 잡내도 없고!”

“밥 한 공기에 깍두기만 있었어도 최고일 텐데.”

“이게 어디야.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하하, 그런가?”

덕분에 모처럼 배부르게 한 끼를 해결한 이들은 포만감에 배를 두들기며 오랜만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추운 겨울, 생존을 위해선 음식을 잘 섭취해야 한다.

식용 가능한 몬스터 고기의 등장은 주민들의 생존력과 사기를 높여 줄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 * *

에밀을 구조하고, 정부에서 처음으로 몬스터 고기를 식용으로 뿌린 후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세상엔 큰 변화가 발생했다.

그건 바로.

현대 무기(화기)의 완전 침묵이었다.

이는 기존 강대국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권력의 중심이 총에서 레벨로 완벽하게 넘어갔음을 증명하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많은 국가에 혼란이 발생하고, 정부와 대립하는 단체들이 목소리를 키워 갔다.

당장 중국만 하더라도 한 몸처럼 움직이던 중화 청년단이 중국 공산당 정부와 결별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나름 평화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죠.”

밖에서 보기엔 한국은 꽤나 안정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화기가 힘을 잃어 간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기어 나오기 시작한 건지, 사냥꾼 협회의 문을 두들기는 정치인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당히 개소리만 지껄이고 사라지면 상관이 없는데, 놈들은 정부를 흔들며 우리의 이름을 들먹이는 통에 이간질이 되고 있다는 거다.

덕분에 우린 정부에서 혹여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닐지, 주의 깊게 살펴야 했는데, 하필 이 행동을 정부가 알아채게 되면서 불필요한 오해가 쌓여 가는 중이었다.

“문제가 되는 정치인들이 누굽니까?”

“전 민진당 소속 조인강 의원과 전 국민당 소속 안혜준 의원입니다. 그들이 친 사냥꾼 협회 소속 정치인임을 표방하며 청와대에 극딜을 넣고 있죠.”

“그들이 왜 그러는 걸까요?”

“정치를 모르는 저희가 권력의 중심에 서면 자신들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는지요.”

“그러니까,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청와대를 흔드는 거다?”

나는 청와대와 적대하고 싶지 않다.

어수선하던 전 정부와 달리, 지금의 김응수 대통령 정권은 나름 제 역할을 잘해 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날파리들이 꼬이는 이 상황이 매우 못마땅했다.

때문에 이렇게 말을 했다.

“그냥 제거하죠.”

그에 강이솔, 윤시아 등 주요 간부들이 깜짝 놀랐다.

“정치인들을 죽이자고요?”

“네.”

“하지만 공개 석상의 인물을 해치우면 우리의 이미지가……. 잘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강이솔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흔드는 건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겁니다. 고로 그들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암 덩어리죠. 암은 초기에 도려내야 합니다.”

나는 애초에 역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냥꾼 협회의 존재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 되었으니까.

“으음, 그럼 어떻게 그들을 처리해야 자연스러울까요.”

내가 두 번이나 강조를 하니, 결국 회의 방향은 정치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로 흘러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살기 위해, 혹은 악행을 막기 위해 사람에게 검을 휘둘러 본 경험이 있다.

피가 무서워 내 지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게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협회를 위한 행동일 뿐이다.

나는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그떡이며 나섰다.

“제 펫으로 그들을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윌리아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곧 그녀의 뒤에서 여성형 다크엘프 암살자 다켈프가 등장하자 모두 헛바람을 삼켰다.

[다켈프 (다크엘프 암살자) / 레벨: 131]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켈프의 정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거다.

단순 레벨만이라면 이들과 북한에서 토벌한 로드급 엘더보다 높았다.

때문에 다들 크게 놀라며 눈을 의심했다.

“암살은 전문가에게 맡기죠.”

윌리아가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자 협회의 고위 간부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켈프는 금세 모습을 숨겼고, 우린 사냥꾼 협회 최고 회의라 이름을 붙인 시간을 이어 갔다.

“선생님! 저요! 저! 의견 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회의가 이어졌을까?

회의가 재미없는지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의견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민희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학교 수업인 양 갑자기 손을 들며 난리를 피웠다.

가의도 청년단의 리더인 그녀는 충분히 이 회의에 참석할 능력이 되었기에 아무도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네, 말씀하세요.”

나는 김민희에게 발언권을 주었고, 그녀는 씩씩하게 일어나 말했다.

“저희 협회에서 문화 사업을 했으면 합니다!”

“문화 사업?”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뜬금없는 의견에 다들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김민희는 자신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말을 추가했다.

“이른바 협회의 이미지를 높여 줄 사업들을 진행하잔 거죠.”

설명이 덧붙여져도 몇몇 사람들은 그게 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으나, 나와 강이솔을 포함해 몇몇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처럼 어두운 회의실에서 음모를 꾸밀 것 같은 게 우리 협회의 이미지잖아요.”

“어? 그렇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단호한 김민희의 대답에 나는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 거리를 제공해서 친밀한 이미지를 쌓았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요?”

“음, 옛날에 TV가 귀하던 시절에는 한 집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TV를 봤다고 하던데 맞죠?”

그러면서 김민희가 최도겸을 바라보았다.

그의 나이가 아직 20대 중반인데 교도소에서 고생했던 경험인지, 30대의 외형을 갖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김민희의 저격에 최도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저, 저도 그 세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드라마들 보면 그랬던 거 같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협회 시설 앞에 TV를 설치하는 거예요. 전기는 태양광을 쓰고 DVD를 이용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거죠.”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김민희에게 저격을 당했던 최도겸이 의아해했으나, 김민희는 후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의미 있죠. 오락 거리가 씨가 마른 지금의 삭막한 세상에서 그만한 오아시스가 어딨겠습니까? 다들 인상 쓰고 한숨만 내쉬는 상황에서 웃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아요?”

“음…….”

“TV는 그냥 예시인 거고. 방법은 많습니다. 지금 활동을 못 하고 있는 연예인들 모아서 순회공연을 해도 되고. 더 단순하게 협회 앞에 오디오로 노래만 틀어도 돼요.”

어느새 사람들은 김민희의 말에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마음 놓고 쉬고, 웃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 우리 협회 이미지는 절로 좋아지겠죠.”

그럼 자연히 우리의 지지도 또한 높아질 거다.

어떤 좋지 않은 사건이 벌어지더라도 자발적으로 쉴드를 쳐줄 사람들이 많아질 거란 의미다.

확실히 김민희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좋습니다. 채용하죠.”

“아싸!”

우린 결국 그 의견을 채용했다.

통통 튀는 의견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회의는 머지않아 끝이 나고.

또 며칠이 더 흐르며, 사냥꾼 협회 도시의 완공일은 점차 가까워졌다.

더불어 이무기를 사냥하기 위한 레벨도 가까워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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