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48화 (148/273)

148화 위세 (2)

“이제 우리가 보유한 시나리오 조각이 2개가 되었군! 좋았어!”

현재 사냥꾼 협회는 시나리오 조각을 구하기 위해 북한 곳곳을 뒤지며 열을 올리고 있는 상태였으나, 역시나 쉽게 바로 발견될 리가 없었고, 한반도 내의 시나리오 조각은 7개에서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사냥꾼 협회보다 먼저 남부 패밀리에서 새로운 조각의 주인이 등장했다.

바로 남부 패밀리의 주요 간부이자 광주광역시팀의 리더 최준우가 8번째 시나리오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덕분에 남부 패밀리의 대표인 김시우는 크게 기뻐했다.

“혹시라도 사냥꾼 협회에 대항할 생각은 아니지?”

하지만 남부 패밀리의 다른 간부들은 기쁨보단 걱정이 컸다.

이유는 괜히 사냥꾼 협회에서 자신들을 아니꼽게 여길까 봐.

솔직히 남부 패밀리가 대한민국의 2위 사냥꾼 단체인 건, 협회 측이 이를 용인해 주고 있기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과 세력 다툼이라도 발생했다간 자신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냥꾼 협회 최강전력인 서백호 파티가 나서지 않더라도 그 밑에 선, 아니, 그 밑의 밑에 선이 나서도 충분히 남부 패밀리를 해체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너희들…….”

기뻐해야 할 일에도 쉬이 기뻐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김시우는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시우를 향해 동료들이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우리보다 족히 몇십 배는 큰 중화 청년단이 어떻게 해체됐는지.”

“…….”

사냥꾼 협회가 신 상하이방과 손을 잡고 중국 정권을 교체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중화 청년단이란 거대 단체는 공중분해 되었으며, 몇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는 과장 없는 사실로, 현 대한민국 후방의 제일 권력자 2작사 사령관에게서 전달받은 정보였다.

사냥꾼 협회의 활동은 대한민국 사의 유례없는 쾌거라는 평을 듣고 있다.

비록 적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중화 청년단이라지만, 엄청난 수의 사람을 죽인 건데도.

‘세계사에서 인간끼리의 전쟁은 수없이 일어났고, 세상이 바뀌면서 인간의 목숨값이 가벼워지긴 했다지만……. 이게 기뻐해도 되는 일일까?’

물론, 인구 대국 중국의 한반도 침입이 원천 봉쇄된 것은 기쁜 소식이긴 하다.

하지만 사냥꾼 협회의 경쟁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남부 패밀리로선 순수하게 좋다고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이기도 했다.

“알고 있겠지만, 패밀리 내부에선 사냥꾼 협회에 통합되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어. 솔직히 나도 걔들과 경쟁하고 싶진 않고.”

김시우는 걱정 가득한 동료들의 발언에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나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그들과 싸우기 위해 시나리오 조각을 모으는 게 아니니까.”

김시우의 대답에 그때서야 동료들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알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가 정해져 있음을…….

‘분명 사냥꾼 협회에 흡수되겠지.’

그렇기에 김시우는 시나리오 조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몸값을 높여 나은 조건으로 흡수되기 위해.

‘최선의 방법은 남부 패밀리의 형태를 온존시켜, 사냥꾼 협회의 동맹으로 남는 것.’

때문에 협상을 대비해 가진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뭐, 좋아. 네가 그렇다면 믿을 게.”

다행히 동료들은 그런 김시우를 믿었고, 그의 계획을 지지했다.

덕분에 시나리오 조각 탐색은 멈추지 않고 차질 없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조각 중 14번 조각의 보유자가 등장했습니다.]

[한반도에 배정된 20개의 시나리오 조각 중 3번 조각의 보유자가 등장했습니다.]

사냥꾼 협회의 성남팀 최도겸이 북한의 강원도 지역에서 9번째 조각을 획득했고, 서울 1팀 윤시아가 의정부에서 10번째 조각을 획득했다.

모처럼 좁혀졌다고 생각한 차이가 다시금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시나리오 진행률이 50%를 달성하게 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한반도의 시나리오 진행률이 50%를 달성했습니다.]

[중립 도시의 위치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됩니다. 단, 웨이포인트는 직접 이동하여 등록하셔야 합니다.]

[중립 도시에 상점과 NPC가 생깁니다.]

[상점을 운영하는 NPC를 통해 다양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지한 물건을 코인을 받고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중립 도시의 공개와 NPC의 등장.

무엇보다 기존 상점에 없던 물건 판매 기능이 생겼다.

‘즉,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쌓이는 잡템과 소재를 일괄적으로 판매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뜻. 이는 사냥꾼들의 수익이 더욱 증가함을 의미한다.’

이는 중립 도시의 상업 활동을 활성화시킬 매우 좋은 기능이었다.

사냥꾼 협회는 재료 아이템을 매입해 공방에서 장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지만, 그들이 모든 소재를 매입하는 건 아니었기에 일괄 매매는 아주 유용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때문에 남부 패밀리에서도 이를 애용하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중립 도시가 있는 철원은 그들에게 너무 멀었다.

‘웨이포인트 점퍼가 있으면 쉽게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을 텐데…….’

사냥꾼 협회는 10개씩이나 보유하고 있는 웨이포인트 점퍼가, 씁쓸하게도 남부 패밀리엔 단 한 개도 없다.

김시우는 중립 도시가 사냥꾼 협회에 의해 활성화되어 가는 모습을 얌전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왜?”

“협회장을 중립 도시에서 만났을 때, 웨이포인트 점퍼를 언제든 빌려줄 테니, 필요할 때 요청하라고 했어.”

“과연 빌려줄까? 그들도 웨이포인트 점퍼를 이용해 협회 멤버들을 중립 도시로 옮기는 거 같던데.”

웨이포인트 점퍼는 한 개로 50명을 옮길 수 있으며, 하루 10회 이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자기들이 쓰기에도 빡빡할 텐데 과연 빌려주겠냐는 동료들의 의문에, 김시우는 이렇게 말했다.

“협회장은 허튼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니, 빌려줄 수도 있어.”

그동안 자존심 때문에 쉬이 빌려달란 말을 하지 못했으나, 자존심이고 뭐고 지금은 모두 쓸데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부 패밀리는 웨이포인트 점퍼의 대여를 사냥꾼 협회에 요청했고, 용도를 묻는 협회 관계자에게 그들은 솔직하게 중립 도시 이용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진짜 빌려주네?”

그랬더니, 귀하디귀한 전략아이템을 너무도 쉽게 빌려주었다.

김시우는 얼떨떨해하는 동료 간부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차라리, 빌려주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는 사냥꾼 협회에서 자신들을 돌봐야 할 대상이지,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과 같았다.

‘일방적인 라이벌 의식 따윈 버리고, 이제 그만 그들의 밑으로 들어갈까?’

남부 패밀리 멤버들이 중립 도시를 애용하게 되면 자신들과 사냥꾼 협회의 격차를 더욱 크게 느낄 터.

김시우는 선택의 때가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 * *

이런저런 사건으로 인해 생존 3개월 차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직 생존 이벤트까지는 4일이 남았지만, 이제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빠르게 흐르는 시간 만큼 레벨은 빠르게 올리지 못했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레벨이 오르게 된 지 벌써 꽤 된 상태이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삼 일에 한 번꼴로 레벨업을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나마 나아.’

내겐 며칠에 한 번씩 레벨업을 한다는 게 흔치 않은 경험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거였다.

윤시아를 비롯해 김현수, 최도겸 등 사냥꾼 협회의 2진 라인의 현재 레벨이 80대임에도 매일 레벨업을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우리 파티가 그동안 얼마나 비정상적인 성장을 거듭해 온 건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하긴, 그게 당연하긴 해.’

윤시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이다.

나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투 감각이 좋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끄는 10인 파티의 돌파력이 같은 레벨이던 시절의 우리 파티보다 떨어진다.

‘특출나게 뛰어난 10인 파티가 3인 파티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이건 그냥 우리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레벨이 20 이상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는 걸 당연시 여기고, 던전에 일정 간격으로 리젠되는 네임드와 보스 사냥이 아닌, 비정기적으로 등장하는 낯선 특수 몬스터 사냥에도 거리낌 없이 달려든다.

게임에서나 통할 법한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몸소 보여 주는 게 바로 우리 파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하이리스크’가 없어진 전투를 치르니, 레벨업 속도가 느려지는 게 당연했다.

‘앞서 나가는 건 좋지만, 그놈의 사냥터가 문제다.’

하늘섬 세일론은 참 좋은 곳이다.

한 곳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머물며 사냥한 것이 처음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세일론도 놔줄 때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가 세일론을 대신할 사냥터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계?”

그러던 차에, 나는 한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 종종 보이고 있는 마계란 단어.

혹시 그곳에 가면 더 강하고 많은 사냥감을 발견하게 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동료가 되면서 월광도를 한창 치장 중인 NPC 드워프 토레프에게 마계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다.

“다양하고 또 새로운 금속이 매장된 곳이라고 듣긴 했네.”

그랬더니, 그는 들고 있던 망치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윌리아도 그렇고, 시에나도 그렇고, 관련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물은 건데, 그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듣게 되자 나는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몰라.”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아는 정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럼에도 나름 희망적인 상황.

토레프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계가 실존하는 필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계에 갈 수 없다면 굳이 이런 불필요한 설정을 만들 이유가 없다.

나는 마계를 고렙존, 혹은 숨겨진 거대 필드 같은 거라 예상했다.

“개척은 선구자의 운명이네.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앞서 걸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르면 되지만, 선구자인 자네는 모든 것을 개척해 나가야 하지. 그러니 힘들 거야.”

토레프는 아재 개그 없이 나를 응원한다며 그리 말했다.

모처럼 정상적인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렸고, 나는 그가 만들고 있는 시설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뭘 만드시는 겁니까?”

NPC인 토레프는 내 세 번째 동료가 되었지만, 윌리아나 시에나와는 달리 전투원이 아니다.

비전투원인 그는 여러 제작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안에는 건축을 포함한 다양한 기계 장치 제작 스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토레프를 종종 이렇게 불렀다.

SCV라고.

“혹시 모를 외부 공격에 대비한 방어벽이네.”

토레프가 덩그러니 솟아 있는 기둥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둥에 작은 스위치가 설치된 게 눈에 들어왔고.

그가 스위치를 누르자.

-쿠쿵! 고고고고고!

느닷없이 바닥이 열리면서 금속으로 이뤄진 두꺼운 벽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 벽은 내 저택과 주변 일대를 완전히 뒤덮으며 돔 형태가 되었다.

나는 상상치도 못한 광경을 보며 입을 떡 벌려야 했다.

이건 며칠 뚝딱거린다고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 정도면 축구장 한 개는 뒤덮고도 남을 크기였기 때문이다.

“한 번 벽을 칠 때마다 정령석이 1개씩 소모되네.”

정령석은 전기석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만큼 대량의 전기를 머금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다.

레벨 70 이상은 되어야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해지는 만큼, 정령석은 상당한 값어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건 그게 하나도 아깝지 않은 시설이었다.

“서, 설치비가 어느 정도 듭니까?”

“100평당 20만 코인 정도일세.”

“최대 얼마나 크게 지을 수 있어요?”

“5천 평 정도일까? 그 이상의 공간은 쪼개서 만들어야 하네.”

생각보다 좋은 가성비와 큰 커버 면적.

여유가 된다면 사냥꾼 협회 도시에 설치하거나, 정부와 협의를 통해 생존 구역에 설치해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시설의 강점은 안전 구역과 달리 인간의 침입도 막을 수 있다는 것.

추후 사람끼리의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엄청난 효율을 자랑할 터이다.

나는 감탄사를 흘려야 했다.

역시 토레프를 동료로 맞이한 건 정답이었다.

이 방어 시설을 비롯해 그의 손길 거친 월광도는 완전히 미래 지향적인 곳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누구나 보면 감탄을 흘릴 수밖에 없는 그런 장소.

그게 지금의 월광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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