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위세 (3)
월광도 하늘에 가오리처럼 생긴 비행체가 날아다닌다.
그건 경비형 오토마타로 정해진 구역에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가 발생하면 파이어 샷(마력탄+파이어) 사격으로 토벌한다.
경비형 오토마타는 레벨 60의 와이번과 1:1로도 맞짱을 뜰 수 있으며, 레벨 30 이하의 몬스터는 어떤 종류건 원샷 원킬로 토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경비형 오토마타를 지원하는 게 토레프가 만든 ‘포탑’이란 자동 공격 장치다.
-딸깍딸깍.
한 변의 길이 3미터, 무게만 5톤에 달하는 정육면체의 쇳덩이는 높은 기둥 위에 설치되어 등대처럼 회전하고 있다.
오토마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동이 자유로운 타입이라면 포탑은 육중한 덩치 덕분에 고정형 포대라 할 수 있다.
다만 포탑을 만들기 위해선 토대가 되는 스킬북이 필요하다.
포탑은 마나석을 에너지원 삼아 스킬을 발현하며, 장착된 스킬북의 종류에 따라 위력이 결정된다.
‘극상급 스킬북으로 포탑을 만들면 그야말로 학살 장치가 되겠지.’
하지만 스킬북도 그렇고 현재 드래곤 둥지 근처에서나 채집이 가능한 마나석도 너무도 귀한 물건인지라, 쉬이 남발해서 설치하기 힘들다.
특히 스킬북은 사람이 배울 수량도 부족하여 거래 가격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건 왠지 전쟁을 대비한 장치 같아. 나중에 모든 시나리오 조각이 모이고, 인간끼리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주요 거점 방어용으로 쓰이게 되지 않을까? 그때쯤이면 사람들의 수준도 더욱 높아지게 되니, 스킬북의 가격도 안정될 테고.’
지금 단계에서 이만한 시설을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아무래도 사냥하는 몬스터의 수준이 수준인 만큼 스킬북 습득률도 높은 편이고, 이번에 이무기 던전을 공략하고 대량의 스킬북을 얻게 되면서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월광도에는 시험 삼아 두 개의 포탑을 설치했는데, 각각 화염구(상급 스킬)와 마력탄(중급 스킬)이 내장되어 있다.
더구나 포탑의 마나석은 소모품이 아니라 자동 충전이 가능하며, 중급 스킬은 하루 200회, 상급 스킬은 하루 100회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포탑의 무서운 점은 두 개 이상의 스킬을 조합하여 새로운 공격 옵션을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마력탄에 관통 스킬을 더하면, 관통 마력탄이 쏘아지게 된다.
당장은 스킬북이 귀해 어쩔 수 없지만, 나중에는 성벽 위로 빼곡히 설치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키우는 닭들 말일세.”
“네.”
“그중 먼저 들였던 닭들이 알을 낳았던데, 알고 있는가?”
토레프의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닭은 4~5개월 정도 커야 알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벤트 상점에서 사 와 키우기 시작한 닭들은 이제 겨우 2달째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벌써요? 병아리 상태에서 이제 겨우 두 달 되었을 뿐인데?”
“아무래도 이벤트 상점표 동물은 성장이 빠른 것 같아. 닭도 그렇고 소와 돼지도 이제 겨우 두 달째라 보기 힘든 덩치야. 솔직히 돼지와 수탉은 언제든 도축해도 되겠어.”
이거 예상보다 빠르게 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식사 메뉴가 더욱 풍성해지겠네요.”
내 말에 윌리아와 시에나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나의 시선이 커다란 박스형 건물로 옮겨졌다.
마트 건물처럼 생긴 그곳은 다양한 가축들이 층층이 자리하고 있다.
성장한 가축들에게서 달걀 및 우유도 얻고, 바로 도축 및 가공할 수도 있는 반자동화 시설이다.
더불어 그 옆에도 비슷한 건물이 한 채 있는데, 그 안에선 온갖 농산물이 자라고 있다.
이 두 개의 시설로 나는 농축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 시설들을 만들기 위한 설치 비용과 유지 비용이 상당하지만, 남는 게 코인뿐인 내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월광도는 그럭저럭 형태를 갖추었구먼.”
확장 공사까지 한 저택과 돔 형태의 방어벽, 포탑 2대, 축산 시설, 농산 시설까지.
하지만 토레프가 만든 건 그것들로 끝이 아니다.
포탑과 연동되는 감시탑도 세워 놨으며, 농축산 건물 옆으로 냉동 창고, 냉장 창고, 일반 창고까지 큰 규모로 지어져 있다.
그뿐 아니라 저택만큼이나 화려하게 지어진 펫 숙소와 혹시 모를 방문객을 위한 숙박 시설, 500평 규모의 지하 대피 시설, 깔끔하게 정돈된 길까지.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네, 제가 보기에도 월광도는 이거면 충분한 거 같아요.”
누가 여길 무인도였다고 생각하겠는가.
월광도는 충분히 발전했으니, 이젠 가의도를 이렇게 꾸미면 될 것 같다.
“참, 김씨 아저씨는 어때요?”
“그 양반? 뭐, 썩 나쁘지는 않아.”
생산 스킬은 스킬북 형태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관련 기술을 가진 NPC에게 배워야 습득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김씨 아저씨를 토레프에게 붙였다.
“건축 기술 정도는 어찌어찌 전수할 수 있을 것 같아. 야금 기술과 세공 기술은 힘들 것 같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당장 필요한 건 건축 기술자였으니 말이다.
토레프는 월광도에 이어 가의도를 개조시킨 후, 사냥꾼 협회 도시에 투입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그가 할 일이 참 많다는 뜻이다.
“건축 기술은 사용하다 보면 등급이 오를 수도 있어. 그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야.”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통신 시설을 구축하는 게 가능해지지.”
“오오, 그거 기대되는군요.”
나는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해 나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재앙 발생 전보다 생활 환경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사냥터 문제로 성장 속도에 제동이 걸린 상태지만, 마계와 같은 새로운 사냥터 발굴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이 문제도 곧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 * *
“으그그그극!”
가의도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째가 된, 김씨 아저씨의 아들 김 군(김태식)은 따뜻한 침대를 벗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는 밤새 미등 역할을 해 준 월광도 특산품인 야광이끼가 든 유리병을 햇빛이 드는 창가 자리로 옮기며 안에 물을 아주 조금 부었다.
야광이끼는 충분히 햇빛을 쐬게 하고, 습도를 맞춰 주면 오랫동안 빛을 뿜기 때문에 형광등 대용으로 쓰인다.
이어서 김 군은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었고, 방을 나서며 부모님이 계신 거실로 향했다.
“어? 이 냄새는?”
그러자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주방으로 달려간 김 군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식탁 위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계란프라이와 제육볶음이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평범하게 감자밥에 생선구이가 끝이라 생각했던 만큼,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엄마, 이게 웬 거야?”
“아, 양계장 닭들이 달걀을 낳기 시작했거든. 그래서 앞으로는 꾸준히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오늘부터 돼지랑 닭고기(수탉)도 배급될 예정이래.”
“오오!”
덕분에 김 군은 모처럼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마을 이곳저곳을 꾸미기 위해 나가시고, 김 군은 사냥꾼인 만큼 장비를 갖추고 웨이포인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서울 용산으로 이동했다.
“김군 형이다!”
“형!”
그는 용산에 자리한 어느 보육 시설에 들어섰는데, 그를 보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에 김 군은 인벤토리에서 대재앙 이전에 생산된 과자와 초콜릿 등을 꺼내 아이들에게 건네주었다.
어제 외곽을 탐색하면서 운 좋게 전복되어 있는 편의점 트럭을 발견했고, 그 안에 있던 과자들을 챙겨 온 것이다.
“와아!”
김 군은 자신이 협회장 서백호의 도움으로 잘 살고 있는 만큼, 여유가 생긴 자신도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재앙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수시로 기부를 하고, 이렇게 과자나 장난감을 구해 보육원을 방문했다.
덕분에 그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이 많이 통통해졌네요?”
“아무래도 몬스터 고기라도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돈 있는 사냥꾼들은 굳이 몬스터 고기를 입에 대지 않지만, 나라의 지원으로 먹고사는 국민들에게 몬스터 고기는 없어선 안 될 귀한 식품이었다.
추운 겨울 적어도 배를 곯지 않게 된 건 다행이지만, 자신은 협회장의 지인이란 이유만으로 따뜻한 집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구하기도 힘든 달걀과 돼지고기를 요리해 먹었다.
때문에 순진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나도 크면 형이나 협회장님처럼 사냥꾼이 될 거야.”
“하하, 그래.”
김 군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이후 김 군은 보육원을 나와 거리를 거닐었고, 밤새 눈이 내려 하얗게 변한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 펭귄처럼 한데 뭉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배정된 텐트를 개조해 비닐과 박스, 옷가지 등을 덧대어 작은 집을 만들었다.
그 안에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20~30명까지 모여 체온을 나누며 겨울을 이겨 냈다.
아마 서백호가 없었다면,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도 저 안에 끼어 있을 터.
김 군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김 군! 여기!”
그리고 그는 곧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용산에서 모이자고 한 거야?”
동료들과의 약속 덕에 편하게 보육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원래대로라면 그들은 성장의 탑에서 바로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파티의 리더인 최공찬이 일정을 바꿨고, 그로 인해 이들은 용산에서 만나게 되었다.
“실은 우리 스승님이 신기한 필드를 발견했거든. 그래서 오늘은 다 같이 스승님 파티를 지원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신기한 필드?”
협회장의 제자인 김 군이 끼어 있는 만큼, 최공찬 파티의 대우는 사냥꾼 협회 내에서도 톱이다.
덕분에 그들은 협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낼 수 있었고, 이제는 최공찬의 스승인 길종혁 파티와의 레벨 차이도 10 이내로 좁혀진 상황.
그래서 이젠 길종혁 파티의 백업 자원으로 뒤를 받쳐 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어, 여의도 국회의사당 지하에 울창한 숲이 우거진 거대 필드가 있다고 하더라.”
“던전이 아니라?”
“응. 언제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필드야. 등장하는 몬스터는 듀라한과 올더 듀라한이래.”
서울에 그런 곳이 있다고?
심지어 국회의사당이면 올림픽공원과 함께 사냥꾼 협회의 도시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장소다.
때문에 김 군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냥꾼이 활동하는 장소에 아직 그런 곳이 알려지지 않고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이.
“듀라한만큼 꿀파밍이 가능한 몬스터가 없는 거 잘 알지? 그동안 성장의 탑에서 레벨만 올렸으니, 이번 기회에 장비 파밍이나 해 보자고.”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자신들이 장비를 갖추기보단 오로지 레벨업에 몰두한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모두들 협회의 지원 덕에 굳이 파밍을 하지 않아도 준수한 장비를 이미 갖추고 있었지만, 이게 완전하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살리자는 파티장 최공찬의 주장에 동의하며 결국 여의도로 향했다.
“그곳이 알려지면 금세 사람들로 붐빌 거야. 그러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금 열심히 꿀 빨자고.”
그들은 원효 대교를 이용해 여의도에 들어섰다.
비록 원효 대교 중간이 끊어져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이 디딤판 스킬을 갖고 있었기에 여의도에 진입하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어, 왔어?”
잠시 후, 김 군과 최공찬 파티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닿았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길종혁 파티와 합류했다.
“어제 하루 동안 탐색해 본 결과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더라고. 신규 필드라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협회의 간부인 길종혁의 말에 김 군은 조금이나마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그때, 김 군이 문뜩 궁금한 게 있다며 질문했다.
“필드의 이름이 뭔가요?”
그건 바로 해당 필드의 지명이었다.
“마경의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