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예상 밖의 이벤트 (1)
클로에 주라는 이름의 여성과 악수를 나누려는 짧은 순간, 나는 참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뭐 잘못 먹었냐는 듯 경악하는 제임스 일행.
심지어 클로에의 동료들마저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도끼눈을 뜨는 윌리아와 탐탁지 않은 기색을 보이는 시에나까지.
그저 악수 한 번 나눌 뿐인데, 주변의 반응들이 너무 다양했다.
-척.
개의치 않고 클로에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아니라 윌리아가.
“뭡니까?”
클로에는 황당함을 표하며 얼굴을 들었다.
갑자기 윌리아가 숄더 차지로 나를 밀치고는 그녀의 손을 대신 맞잡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상치 못한 윌리아의 행동에 의아함을 표했고, 방금까지 쑥스러워하던 클로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 태도가 이전과 너무 극명하게 달라서 같은 사람인가 싶은 정도.
윌리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백호 씨는 여우 알레르기가 있어서요.”
난 그런 거 없는데?
그리고 갑자기 웬 여우?
윌리아의 대사에 시에나가 킥킥 웃음을 터트리고, 뒤늦게 여우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나는 당황했다.
설마 착하디착한 윌리아가 다짜고짜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당신 NPC 맞죠?”
“NPC는 편의상 표현일 뿐 저흰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 그 말은.”
“나라를 등에 업고 남자 친구에게 찝쩍대지 말란 겁니다.”
윌리아의 발언에 나는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반응을 보여야 했다.
만화였다면 ‘띠용’이란 효과음이 울려 퍼질 만큼.
‘우리 사귀는 거였어? 언제부터?’
당연히 기분 나쁠 이유가 없다.
윌리아는 성격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내 이상형 그 자체였으니까.
그동안 썸 비스름한 걸 타면서 그녀와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입장인 만큼, 느닷없는 남자 친구 선언에 입꼬리가 씰룩씰룩 위로 솟구쳤다.
윌리아의 폭탄 발언에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천사의 고리를 머리 위에 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성녀와 다름없어 보이는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때문에 내가 NPC인 그녀와 사귄다고 이상함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클로에는 뜬금없는 상황 전개에 짧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꼬리 치는 것까진 모르겠지만, 관심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솔직히 백호 님만 한 후광을 가진 사람을 처음 봤거든요.”
“후광?”
후광이란 말에 내가 의문을 표하자, 그녀는 간단히 답을 주었다.
“스킬입니다. 사람이 가진 전투 포텐셜을 볼 수 있는.”
포텐셜.
즉, 잠재력을 볼 수 있다는 의미.
나는 그런 스킬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감탄사를 흘렸다.
아마 그만한 능력이라면 극상급 스킬일 것으로 추측된다.
“크, 클로에 그건 누설 금지인…….”
그런데 클로에의 대답에 제임스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아무래도 그녀의 능력은 보안을 위해 함구해야 하는 건가 보다.
‘하긴.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전투원 육성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스킬이니까.’
당장 나만 하더라도 ‘전투 잠재력 확인 스킬’을 갖고 있다는 한국계 미국인 클로에가 탐이 났다.
클로에는 제임스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게 한 발 다가왔다.
“그리고 후광도 후광인데, 당신의 팬이기도 해서 더욱 놀란 겁니다.”
“네?”
“빼코TV의 빼코 님이시잖아요?”
잠시 잊고 있던 예명.
덕분에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설마 구독자님?”
“네!”
맙소사.
이렇게 귀한 분이 미국에 계셨다니…….
콩나물 님에 이은 두 번째 구독자의 등장에 나는 반가움을 표하며 그녀와 악수를 나누려 했지만.
-척.
이번에도 클로에의 손은 내 여친이 된 윌리아가 대신 맞잡았다.
* * *
클로에에겐 세상이 돌변하기 전 한가지 취미가 있었다.
그건 바로 유명하지 않은 하꼬들의 개인 방송을 탐방하는 것.
정확하겐 아무 하꼬에게나 관심을 주는 게 아니라, 뜰 것 같은 가능성이 보이는 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뜨고자 하는 사람들은 열의가 있다.
때문에 그들의 똥꼬 쇼가 더욱 눈물 나는 거기도 하고.
클로에는 그런 사람들의 노력에서 재미를 느꼈다.
‘이 사람은 금방 뜨겠네.’
빼코TV(PEKO TV)도 대재앙 이전 그녀가 즐겨 보던 채널이었다.
해당 채널은 ‘캐치 앤 쿡’과 ‘서바이벌’을 메인 콘텐츠로 하는데, 구독자가 많지 않음에도 모든 영상엔 영어 자막이 달려 있었다.
기억하기 쉬운 닉네임과 자막을 달기 쉽게 대사를 조절하는 것을 보며 해당 유튜버가 꽤나 전략적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더불어 편집도 유튜브 감성에 맞게 제대로 되어 있고, 촬영 장비도 준수해서 영상을 보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
신인의 허접함 또한 매력이라 생각하는 그녀로선 취향에 100% 맞다고 보긴 힘들었지만, 영상들이 재밌어서 꾸준히 챙겨 보았다.
비록 빼코TV의 빼코는 대재앙으로 인해 빛을 보는 일 없이 그녀의 머리에서 사라졌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클로에의 성격이 삐뚤어지긴 했어도 즐겨 보던 채널의 유튜버를 만나게 되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가 몰라볼 정도로 멋있어진 데다가 생전 처음 보는 전투 포텐셜의 금빛 후광을 보니 절로 관심이 가는 건 당연했다.
그녀가 보유한 스킬에 따르면 후광이 밝으면 밝을수록 높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클로에가 확인한 포텐셜이 가장 높은 사람은 새하얀 후광을 지닌 본인과 제임스였는데.
빼코, 아니 서백호는 놀랍도록 찬란한 금빛의 후광을 갖고 있었다.
-째릿.
그래서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서백호의 곁엔 윌리아란 철벽이 있어서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클로에는 뺨을 씰룩이며, 결국 사무적인 대화를 이어 가야 했다.
“동맹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녀의 물음에 구독자란 이야기를 듣자마자 인자해진 서백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하, 당연히 긍정적이죠.”
굳이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 필요는 없는 법.
서백호의 쾌활한 반응에 클로에를 제외한 모든 미국인들이 크게 안도했다.
“하지만 당장 답은 줄 수가 없습니다. 관련 내용의 최종 결정권자는 제가 아닌 대통령님이니까요. 일단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거면 충분합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귀를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윌리아와 기 싸움을 하고 있는 클로에의 앞으로 제임스가 끼어들며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반지를 하나 꺼내 서백호에게 건넸다.
그건 통신 반지였다.
“언제든 결정되면 연락 주십시오.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서백호는 통신 반지가 엽전처럼 엮인 줄에 제임스가 건넨 반지를 추가했다.
저렇게 많은 통신 반지를 본 게 처음인지라 제임스는 어색하게 웃어야 했다.
“당장 내일 생존 이벤트가 진행될 테니, 아마 이틀은 지나야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고 생각했는지, 서백호는 클로에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한두 번 정도는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하꼬에게 구독자는 귀중한 법.
서백호는 자신이 어렵던 시절 응원해 준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 했다.
그에 클로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의 그 모습에 제임스는 또다시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물러났다.
“설마 진짜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겠지?”
“이봐 공주님, 대체 그 행동 뭐야? 진심인 거야?”
서백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제임스와 LA팀의 멤버들이 굳은 얼굴로 클로에에 물었다.
서백호의 앞에서 보인 낯선 클로에의 말투며 몸짓 손짓 하나하나가 이들에겐 크나큰 충격이었으니까.
“엿 먹어.”
클로에는 그들의 물음에 언제나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 그래. 이게 클로에지.”
오늘의 일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리라.
* * *
“설마 그 여자에게 관심 있으신 거 아니죠?”
미국팀이 떠나고 예정대로 마족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산을 오르던 내게 윌리아가 물어 왔다.
그에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곤 솔직하게 말했다.
“동맹과 별개로 그녀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투 포텐셜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이 있다면 우리 사냥꾼 협회는 더욱 강해질 테니까요.”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성으로서의 관점은 아니란 이야기.
그러자 윌리아는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백호 님은 구독자란 사람들에게 무른 면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걱정했습니다.”
물론,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건 진심이다.
하지만 그것과 이성으로서의 관계는 별개다.
나는 슬쩍 윌리아를 바라보았다.
역시 예쁘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느낌.
그래서 연인답게 화끈하게 손이나 맞잡아 보려 했는데.
-덥석.
“쓸데없는 짓 말거라.”
시에나가 근엄한 표정으로 윌리아와 내 사이에 끼어들며 방해했다.
덕분에 나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헛기침을 해야 했다.
* * *
마족 NPC 나인포의 퀘스트는 현재 진행형.
그리폰과 히드라의 사냥은 순조로웠지만, 소재 드롭률이 높지 않아 퀘스트 클리어까진 제법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협회장님, 모두 배치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말고 마경을 벗어나야 했는데…….
이유는 하나.
바로 약 30일 주기로 진행되는 생존 기념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좋습니다. 그럼 휴식을 취하면서 메시지가 뜰 때까지 대기하도록 하죠.”
“네, 그렇게 전달해 놓겠습니다.”
지난달엔 생존 기념 이벤트로 웨이브가 발생했다.
전혀 이벤트답지 않던 이벤트.
덕분에 생존자들 사이에 희생이 발생했고, 정부와 우리 협회는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리 시민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다.
그리고 사냥꾼들이 즉각 싸울 수 있게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미리 대기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3개월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지난 세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합니다.]
[생존 점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며, 보상은 인벤토리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연례행사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지난 세 달간 전 세계 인구 79억 5,395만 2,577명 중]
[57억 7,420만 2,373명이 사망했으며]
[21억 7,975만 204명이 생존했습니다.]
생존 점수가 정산되는 동안 사망자와 현재 생존자 수가 표기되는 것 역시 같았고.
어김없이 그달의 성적표가 떠올랐다.
[서백호 님의 생존 점수는 581,348점으로 상위 0.000001%인 1등급에 속하며, 전체 순위는…….]
[1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생존 점수에 따른 순위표를 공개합니다.]
[전 세계 순위표]
1위. **** / 레벨: - / 581,348점
2위. **** / 레벨: - / 330,380점
3위. **** / 레벨: - / 313,694점
4위. **** / 레벨: - / 308,005점
5위. **** / 레벨: - / 292,487점
6위. **** / 레벨: - / 281,390점
7위. **** / 레벨: - / 240,870점
8위. **** / 레벨: - / 236,850점
9위. **** / 레벨: - / 223,420점
10위. **** / 레벨: - / 215,205점
[생존 점수 순위에 따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또한 순위에 따른 보상으로 설치형 웨이포인트와 기념 배지 등이 지급되었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하느냐가 중요했다.
다들 순위를 확인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고.
곧 이벤트와 관련된 메시지가 떠올랐다.
[생존 3개월 기념 이벤트가 실시됩니다.]
[3개월 기념 이벤트는 토너먼트 방식의 대전입니다.]
[곧 대전 장소로 전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