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예상 밖의 이벤트 (2)
발표된 이벤트 내용은 ‘토너먼트 방식의 대전’.
그에, 함께 있던 사냥꾼 협회 멤버들이 비명과도 같은 감상을 내뱉었다.
“엑!?”
“이러면 결과가 정해져 있는 거잖아!”
“누가 협회장님을 이기겠어?”
불만 섞인 반응.
하지만 모두의 말투엔 묘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는 이벤트가 아니어서인지 모두들 안도하기도 했다.
[해당 이벤트는 레벨 20 이상의 ‘활동 유저’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레벨 20 미만, 혹은 타인의 지원으로 레벨을 올린 ‘비활동 유저’는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참가 인원은 총 20,512,840명.]
[대전은 15라운드로 진행이 되며, 1~10라운드까진 4인 1조로, 11라운드인 32강부터 결승까진 2인 1조로 진행됩니다.]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생존자의 메시지창 우측에 ‘대전 감상하기’란 메뉴가 생성되며, 특정 인물을 검색하여 대전을 감상하거나 채널을 돌려 원하는 대전을 선택해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딱 선을 그어서 레벨 20 이상, 활동 유저만 이벤트 대상으로 취급했다.
우리 부모님이 바로 비활동 유저라 할 수 있으니, 아마 이벤트엔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생존자 21억 명 중 2천만 명 정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건, 레벨 20만 돼도 상위 1%란 건가.’
레벨 10에서 20 사이면 안정적으로 저렙 몬스터를 사냥하며 먹고살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을 든 이들이 많이 멈춰서는 구간이 그쯤이니, 이번 이벤트는 향상심을 가진 사냥꾼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그럼 뭐해. 이벤트가 토너먼트 방식의 대전이면, 결국 나처럼 레벨 높은 사람이 무조건 유리한 건데.’
첫 번째 달의 이벤트가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서인지, 두 번째 달의 이벤트는 전체가 강제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었다.
하지만 세 번째 달의 이벤트가 토너먼트 방식의 대전이면, 다시 그들만의 리그로 회귀하게 되는 거 아닐까?
어쩌면 이벤트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같단 예상이 틀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능력치가 상대의 수준에 맞춰 보정됩니다.]
[이벤트에 참여하는 유저분들께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여 대전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돌아왔다.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시스템이 고렙 유저의 일방적인 폭주를 약간이나마 제한한 것이다.
“오?”
“이러면 가능성이 좀 생기나?”
솔직히 고생해서 올린 레벨이고 그를 통해 얻은 능력치가 지금의 것인데, 밸런스를 위해 보정된다는 점이 적잖이 불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제약마저 없다면 이벤트는 뻔하게 끝나고 말 테니까.
그래도 아이템과 스킬에 제약을 두지 않는 것을 보면 고레벨 유저들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진 않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감탄사를 터뜨리는 협회 멤버들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대전 대기 장소로 이동됩니다.]
그리고 곧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공간이동 특유의 느낌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 * *
눈에 들어온 것은 순백의 공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공간.
천장과 벽이 보이지 않음에도 야외란 느낌이 없고, 어디서 흘러들어 오는 건지 모를 빛으로 인해 주변은 한낮처럼 밝았다.
그런 특별한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온갖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이벤트 참가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우와. 개크네.”
그런 내 주변엔 윌리아와 시에나가 있었고, 그 외 협회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전송과 동시에 위치가 랜덤으로 배치가 된 것 같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NPC 동료여서 언제나처럼 함께인 거고.
‘그런데 이벤트 참가자만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나?’
나는 윌리아와 시에나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설마 NPC인 그녀들도 대전 장소로 이동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언제나처럼 함께여서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다시 생각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 궁금증은 윌리아와 시에나가 풀어 줬다.
“어? 저희도 대전에 참가한다는데요?”
“오! 재밌겠다!”
인간과 동료로 묶인 관계여서일까?
NPC인 두 사람에게도 참가 메시지가 뜬 것이다.
“보상 관련 내용 있나요?”
“네, 보상도 정상 지급된다고 합니다.”
“오오.”
아주 좋은 소식이다.
이 두 사람이라면 손쉽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저 사람들 뭐지?”
“머리 위에 천사의 고리가…….”
“엘프? 그런데 저 엘프 계속 허공에 떠 있네?”
“남자 장비 쩌네.”
우린 어딜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화려한 외형은 곧 고레벨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니, 사람들은 알아서 시선을 피하고 주변을 비우며 공간을 만들어 줬다.
하지만 우린 이런 반응과 시선이 익숙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오!? 자판기!”
그런데 그때.
언제나처럼 침대 위를 뒹굴듯 허공을 유영하던 시에나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에 나와 윌리아도 뭔가 싶어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곧 멀지 않은 곳에 도미노처럼 일렬로 띄엄띄엄 설치된 자판기를 볼 수 있었다.
“먹을 거다!”
놀랍게도 자판기엔 지금은 구하기가 힘들어진 탄산음료나 과자 같은 가공식품들이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전투를 구경하면서 먹고 즐기란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자판기에 다가갔더니.
[500코인]
콜라 한 캔을 500코인에 판매하는 배짱 장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가격 미쳤네.”
500코인은 웬만한 사냥꾼이라면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그렇다고 마구 사용하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쓸어 담죠!”
“오우!”
-덜컥! 퉁! 덜컥! 퉁!
하지만 우리 파티엔 해당 사항이 아니다.
몬스터 한 마리를 잡으면 몇만 코인씩 획득하는 입장이니까.
나와 윌리아, 시에나는 잘 됐다며 미친 듯이 자판기에서 가공식품들을 뽑아 인벤토리에 쑤셔 박았다.
나는 주로 탄산음료를, 윌리아는 초콜릿이나 쿠키 등의 달콤한 디저트를, 시에나는 감자칩 같은 짭짤한 과자를 구입했다.
우리가 구입한 물품의 수가 오래지 않아 100개를 넘기고 거기서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변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자판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까?
[이벤트 시작 전, 대전 규칙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잠깐의 대기 시간을 거친 후 이벤트 진행 메시지가 다시금 떠올랐다.
[대전은 1~10라운드까지 사방이 가로막힌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32강인 11라운드부터 더 넓은 자연 지형에서 전투가 진행됩니다.]
[경기장 이동 직후, 능력치는 상대 수준에 맞춰 보정됩니다. 대전 시작 전 달라진 능력치의 적응할 수 있는 5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5분이 지나면 카운트다운과 함께 대전이 자동 시작됩니다.]
[대전의 제한 시간은 10분이며, 상대를 ‘처치하거나 항복’을 받아 내면 승리합니다.]
[제한 시간이 넘었음에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심사를 통해 승리자가 결정됩니다.]
[대전 승리 후 20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며, 휴식 시간이 끝나면 바로 다음 라운드 대전이 진행됩니다.]
상대 매칭 후 보정(5분), 전투(10분), 휴식(20분)이 한 사이클이며 이를 반복한다는 뜻.
한 사이클의 소요 시간이 35분이니, 15라운드까지 계산하면 8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런데 승리 조건에서 항복을 받아 내는 건 그렇다 치고, 처치를 하라고?’
설명을 잘 읽다가 ‘처치’란 단어를 발견한 나는 미간을 좁혀야 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혹시라도 죽음을 기본 전제로 한 이벤트인가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해당 이벤트에서 적의 공격에 치명상을 입더라도 죽지 않습니다.]
[단, 사망 판정을 받거나 항복을 한 패배자는 즉시 대기실로 이동됩니다.]
[이벤트 점수는 대전이 끝날 때마다 바로 정산받습니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면 그게 무슨 이벤트겠는가.
메시지 내용에 주변 사람들도 안도하며 수긍하는 게 보였다.
[대전 중 회복 물약, 스크롤 등은 사용할 수 없지만, 함정이나 트랩 등 전투 도구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환수, 정령을 제외한 펫과 오토마타 등의 활용이 제한되며, 지인 혹은 동료들 간의 장비 공유는 부정행위로 판단하여 실격 처리됩니다.]
꽤나 긴 설명 메시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렵지 않게 룰을 이해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던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1라운드가 매칭되었습니다. 대전이 진행되는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백호 님! 파이팅하세요!”
“결승에서 보자!”
그리고 윌리아와 시에나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장으로 강제 이동했다.
다시금 풍경이 바뀌고.
약 300평 규모의 연무장이 눈에 들어왔다.
장외 없이 벽에 둘러싸인 정사각형의 경기장 모서리엔 대전 상대들이 한 명씩 자리하고 있었고, 백인 남성, 흑인 남성, 동남아시아계 남성이 내 상대로 배정되었다.
[스킬로 강화된 능력치가 초기화됩니다.]
[유저들의 능력치를 확인.]
[대한민국의 서** 님을 기준으로 능력치가 최종 보정됩니다.]
-프랑스 ***피에르 님의 능력치가 220 상승합니다.
-베트남 응우엔*** 님의 능력치가 305 상승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주마 님의 능력치가 358 상승합니다.
[변화된 능력치를 신체가 빠르게 적응합니다.]
그리고 경기장 입장과 동시에 위와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메시지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된 모양이다.
“무, 무슨?”
“대체 능력치가 얼마나 되길래.”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능력치 총합은 420 정도.
그들의 능력치가 220에서 358이 상승해야 나와 비슷한 수치가 되었다.
프랑스인의 경우 기존 능력치가 200이란 소리이니, 템빨을 생각하면 장비의 강화 수준에 따라 레벨이 80~90 정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 사냥꾼 협회로 쳐도 고위 간부 클래스.
안 됐지만, 대전 운이 나빴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응?”
그런데 대전 시작 전부터 너무 눈에 띄고 만 걸까?
프랑스인을 중심으로 나를 제외한 세 사람이 아예 한데 모여 작전을 주고받는 게 보였다.
‘아니, 저래도 되는 거야? 이러면 강한 사람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잖아?’
시스템이 능력치와 다르게 장비와 스킬은 건들지 않았으니, 그래도 고레벨 유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시 후, 카운트다운과 함께 대전이 시작됩니다. 대전을 원치 않으실 경우 ‘항복’을 외치시기 바랍니다.]
[3]
[2]
[1]
* * *
“어어? 저것들 지금 작당 모의 중이네?”
이번 3개월 차 생존 이벤트는 참가자가 정해져 있지만, 그렇다고 참여하지 않는 일반 생존자들이 아예 버려진 건 아니었다.
메시지창 우측에 대전 감상하기란 버튼이 있는데, 이걸 누르며 홀로그램 영상이 눈앞에 떠오르고.
[채널 돌리기]
[채널 번호 입력]
[대전 참가자 검색]
-국가
-소속 단체
-이름
랜덤으로 채널을 돌리거나, 특정 인물을 검색하여 대전을 시청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많은 이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유명한 사냥꾼 또는 단체를 검색했다.
그리고 한국에선 대다수가 사냥꾼 협회의 멤버들을 찾아봤는데, 서백호와 그의 파티원들이 속한 그룹에선 압도적인 능력치 차에 상대편들이 시작 전부터 작당 모의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저거, 저거 비겁하게.”
그에 사냥꾼들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청자들조차 열을 올려야 했다.
능력치 보정까지 들어간 마당에 3:1로 싸우게 되면 불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건 해당 영상을 지켜보는 청와대 회의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새롭게 회의 참석자가 된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 소장을 포함한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런 이들의 우려는 괜한 것임을 곧 알게 되었다.
[3]
[2]
[1]
[대전 시작]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콰쾅! 서걱! 쿵!
대전자들이 맥없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서백호가 3명을 쓰러뜨리는 데 공격 스킬 따윈 필요 없었다.
그저 도약 스킬을 사용하며 품에 파고들면, 상대들이 무슨 수를 쓰든 일격에 목이 베이고 말았다.
[대한민국 서** 1라운드 통과]
[소요 시간 00:01]
능력치 보정이 들어간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 차이였다.
이번 생존 이벤트는 그간 소문으로만 알려졌던 강자들의 실력을 일반인들이 똑똑히 지켜볼 수 있는 기회.
덕분에 서백호의 실력을 처음 본 이들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