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84화 (184/273)

184화 피버 타임 (1)

떠돌이 상인 소환권 기존 11장 중 7장을 쓰고 4장이 남았다.

사용한 7장의 소환권으로 얻은 유일 등급 장비 중 사냥꾼 협회의 몫은 3개.

그리고 그 몫으로 레바테인(검)과 스발린(방패), 페일노트(활)를 건네자 강이솔은 크게 놀랐다.

“검, 방패, 활이네요? 너무 좋은 것들만 양보해 주시는 거 아닙니까?”

협회에 건넨 장비들은 단독으로 보유해도 전투력이 크게 상승하는 것들.

그에 비해 우리가 가져간 투구, 반지, 화살, 대낫은 대부분 후 순위로 선택할 만한 장비들이다 보니, 좋은 걸 마치 협회에 양보한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배려는 했을지언정 양보라고 할 순 없다.

“우린 유일 등급 무기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욕심을 부려 무기를 중복으로 선택해 봤자 전투력이 기존에 비해 크게 상승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예 기존에 가진 장비와 중복되지 않는 걸 선택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협회의 전력이 한 단계 더 뛰어오르겠군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검과 방패, 활은 범용성이 좋은 만큼, 누구에게 줘야 할지 선뜻 고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검과 방패에 비해 사용 조건이 까다로운 활조차 경쟁자가 매우 많았다.

한국은 양궁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워낙 많아 고위 사냥팀엔 양궁 선출이 한 명씩은 꼭 껴 있을 정도였다.

“지금 협회에 평균 레벨 100을 넘긴 파티가 얼마나 되죠?”

“메인 5개 팀에 박행기 팀, 권미영 팀, 김진욱 팀, 조유나 팀까지 9곳입니다.”

메인 5개 팀은 윤시아(서울1팀), 김현수(수원), 최도겸(화성), 김민희(가의도), 박성만(제주도)을 뜻하고.

그 뒤를 서울2팀과 서울3팀, 인천팀, 여주팀이 뒤따르고 있는 형세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여주팀이 이렇게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게 의외다.

리더의 통솔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뛰어난 퍼포먼스를 가진 메인 사냥꾼이 그 팀엔 없었으니 말이다.

“비록 조유나 팀엔 특출난 전투 능력을 가진 개인은 없어도, 리더인 조유나 씨 본인이 워낙 뛰어난 지휘관이니까요.”

“지휘 능력으로 모든 걸 커버한다는 겁니까?”

“조유나 팀의 전투를 지켜보면 낭비되는 인원이 하나도 없고 모두 높은 전투 능력을 보여 주더군요.”

“신기하네요.”

과연 사냥꾼 협회의 총참모라는 걸까?

나는 감탄사를 흘리면서도 이내 강이솔을 보며 미안하단 표정을 지어야 했다.

“강이솔 씨 파티의 평균 레벨은 몇입니까?”

“현재 93입니다.”

고레벨이긴 하지만, 항상 최상위 팀의 포지션을 지켜 오던 것을 떠올리면 많이 떨어졌다.

협회의 실질 운영자로서 할 일이 원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바란 일인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유일 등급 장비 분배는 앞서 말한 9개 팀 내에서 뽑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원 선별은 강이솔 씨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그런 강이솔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이런 식으로 힘을 실어 주는 것뿐이었다.

내 결정에 강이솔은 웃어 보이며 맡겨 달라 자신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결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이솔은 윤시아 팀 소속 궁수에게 페일노트(활)를, 김현수에게 레바테인(검)을, 최도겸에게 스발린(방패)을 맡겼다.

어째 메인 5개 팀 중 사냥꾼 협회 짬밥이 높은 이들에게 몰아 준 모양새지만,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강이솔의 선택을 믿기로 했으니 말이다.

“선생님 저는 제 손으로 유일 등급 장비를 구할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주신다면 거절하진 않을게요!”

덕분에 나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의도에 갔을 때, 김민희로부터 미련 가득한 각오를 들어야 했다.

* * *

내가 지금까지 마주한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몬스터는 월광도 북부에 둥지를 갖고 있는 드래곤이다.

[실버 드래곤 안타레스 / 레벨: 300]

우린 주기적으로 북부 호수 지역에 있는 드래곤의 둥지에 들러 마나석을 채집하고 있는데, 오가며 다른 곳으로 날아가던 녀석을 몇 번이고 본 적이 있다.

심지어 드래곤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다행히 녀석이 이쪽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전투가 발생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전투가 벌어진다면 인간들 사이에서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파티라 해도 순삭을 당했을 것이다.

우리가 드래곤의 이목을 끌 정도가 되려면 적어도 레벨이 250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 있는 놈처럼 말이지.’

새까만 공간 속, 핏물이 군데군데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지하 공동.

[보스 순혈귀 카밀 / 레벨: 250]

나는 예고 없이 눈앞에 등장한 괴물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놈은 실버 드래곤 안타레스에 이어 내가 본 가장 강한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를 갑작스레 마주한 우리 파티는 크게 당황해야 했고, 기겁한 나는 누군가를 향해 소리쳤다.

“나인포 이 자식아!”

“제, 제가 위험한 곳이라 했잖아요! 이, 이럴 땐 그냥 도망치세요!”

곧이어 왕좌와 같은 곳에 앉아 있던 레벨 250의 보스 몬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우린 뒤도 보지 않고 귀환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파앗!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보스 몬스터는 즉시 붉은 광선을 날려 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린 아무 이변 없이 그곳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바뀐 주변의 풍경.

피비린내 가득한 공동에서 아늑한 빛이 일렁이는 지하 내 안전 구역으로 변했다.

시에나는 바로 달려가 나인포에게 초크를 걸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윌리아는 많이 놀랐는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다.

“대장님! 대장님! 제가 죄인을 끌고 왔습니다요!”

그사이 시에나는 나인포를 끌고 와 내 앞에 무릎을 꿇렸다.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던 만큼 나인포를 내려 보는 내 입꼬리는 심하게 꿈틀거렸다.

“우리 암살하려던 거 아니지?”

“저, 절대 아닙니다. 애초에 해당 장소가 변칙성이 강한 곳이라고 알려 드렸잖아요.”

“아무리 변칙성이 강해도 저런 놈이 중간에 튀어나오는 건 아니지 않아?”

“끄응…… 죄송합니다. 저도 설마 보스급 순혈귀가 이런 곳에서 튀어나올 거란 예상치 못해서.”

순혈귀는 순수 혈통의 뱀파이어를 뜻한다고 한다.

놈에게 물리면, 정신을 장악당해 부하로 부려진다나?

나는 서늘해진 뒷골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실의 눈도 나인포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알리고 있으니.

“하아, 됐어.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현재 우린 마경의 중심부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명 ‘마경의 뒤틀림’이란 장소인데, 주로 레벨 180~190의 마속성 몬스터가 등장하며, 190레벨 이하의 네임드와 보스 몬스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임드와 보스 몬스터 때문에 다소 빡세긴 하지만, 현재 우리의 레벨이 176이고, 속성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운이 좋으면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곳이니, 나름 기대가 컸고.

“순혈귀를 상대로 전투가 벌어졌다면 저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

“하, 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경의 뒤틀림’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지형이 수시로 바뀌는 곳이란 점이다.

덕분에 전투 중 갑자기 몬스터가 정면이 아닌 뒤에서 등장하기도 하는데, 재수가 없으면 그 몬스터가 네임드나 보스일 수도 있다.

또한 낮은 확률이긴 해도 레벨 210~220대의 특수 몬스터가 등장하기까지 하니, 나인포도 우리의 성장 플랜을 짤 때는 이곳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싸우고 있는 이유는 나인포의 플랜에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래 나인포의 플랜은 레벨 180까지였어. 그런데 대만 사태로 인한 외부 활동으로 이미 그 레벨에 거의 달성했지.’

그래서 우린 계획을 변경해야 했고, 위험해서 배제했던 이 장소 또한 활동 구역에 넣게 된 거였다.

‘위험하다는 건 알았지만, 레벨 250의 보스몹이 나오는 건 선을 세게 넘은 거 아닌가?’

레벨 250 이상의 특수 몬스터는 모두 ‘준드래곤급’이라 칭한다.

이는 아직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의 강함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경의 뒤틀림’보다 성장이 느리긴 해도 안정적인 사냥터를 갈까요?”

“안정적인 사냥터라면?”

“지난번에 방문했던 어스웜 사냥터입니다.”

“아, 거기?”

마경의 뒤틀림은 너무 위험한 장소.

그래서 사냥터를 다시 바꿔야 하나 모두가 고민했다.

하지만…….

“아냐, 그냥 이곳에서 사냥하자. 두 사냥터는 보상 차이가 너무 크니까. 어떤 곳인지도 이제 알게 됐으니 방금 같은 상황이 발생하거든 또 튀면 되는 거고.”

“괜찮겠습니까?”

내 주장에 나인포의 시선이 윌리아와 시에나에게 향해진다.

두 사람에게도 괜찮겠냐고 의견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백호 님의 의견에 따를 뿐입니다.”

“맞아. 백호를 따라서 손해 본 적은 없으니까.”

나를 향한 맹목적인 신뢰에 나인포는 쓰게 웃었다.

우린 다소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마경의 뒤틀림을 공략해 나가기로 했다.

* * *

우리가 위험천만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경의 뒤틀림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

“피버 타임입니다!”

“피버?”

“피버!”

아마 그건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 한 번 찾아오는 피버 타임.

바로 나인포에게 양도받은 소환형 악마 기간테스를 불러내는 시간이었다.

[붕괴의 악마 기간테스를 소환합니다.]

-지지지직! 파아앗!

신장 100미터, 전신이 아다만티움과도 같은 강도의 근육으로 이뤄진 거인.

레벨은 소환주인 내게 맞춰지지만, 기본적으로 로드급 엘더 몬스터 수준의 힘을 갖고 있으니, 일반 몬스터가 상대라면 레벨 200짜리도 짓밟을 수 있다.

-고오오오오오!

기간테스는 소환됨과 동시에 포효를 내질렀고, 그 포효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우리끼리 사냥할 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맹어그로였으나, 기간테스가 소환되어 있는 동안엔 괜찮다.

기간테스가 브레이크 댄스 비슷한 몸부림을 추기 시작하자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짓이겨지거나 스턴에 걸렸으니까.

[헬 마리오넷을 토벌했습니다.]

[올더 데몬을 토벌했습니다.]

[카오스 타우러스를 토벌했습니다.]

.

.

.

우린 그런 기간테스를 끼고 손쉽게 몰려드는 몬스터를 처치했다.

덕분에 내 눈앞엔 거의 초 단위로 몬스터 토벌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연히 그에 따른 보상도 함께.

“하하! 이래서 여길 못 뜬다니까?”

해외에서 죽음의 요정이라 불리는 시에나는 괜히 살벌한 이명이 붙은 게 아님을 증명하듯,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신궁으로 빛의 화살을 난사하면서 이번에 새로 얻은 유도 화살 ‘브라흐마스트라’를 컨트롤해 몬스터들을 척살했다.

“디스펠!”

그리고 윌리아는 파괴적인 극상급 스킬을 난사하면서 중간중간 마법형 몬스터가 우리에게 스킬을 사용하려고 하면 새 유일 등급의 반지 ‘비비안 링’으로 공격을 취소시켰다.

-쉐에엑! 수에에엑!

“성장을 위한 양분이 돼라!”

또한 헬레나는 제3의 손이 쥔 뇌전의 검과 극한의 예리함을 지닌 대낫 크리샤오르(유일)를 마구 휘두르고, 수시로 그림자 포식을 이용해 몬스터를 잡아먹었다.

덕분에 헬레나는 내게서 경험치를 가져가지 않고도 알아서 잘 성장했다.

-콰아앙!

-크아악!

그뿐 아니라 다켈프와 멍멍이를 포함한 펫들도 지능적으로 기간테스의 움직임을 이용하며 잘 싸웠고.

-서걱! 쉑! 서걱!

나는 뭐…….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손에는 성검 칼립소를, 제3의 손은 바리사다를 쥐고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썰어 버렸으니까.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기간테스가 소환된 피버 타임 동안 미친 듯이 고레벨의 몬스터를 처치하다 보니, 기간테스가 역소환될 즘엔 레벨도 오르고, 엄청난 양의 보상들이 우릴 반겨 주었다.

마경의 뒤틀림이 위험한 장소임을 알지만, 이 성장 속도는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아마 이 페이스대로라면 3일 뒤에 있을 생존 이벤트 전까지 레벨 180은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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