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191화 (191/273)

191화 폭주 (2)

이후로도 나는 참 많은 사냥꾼을 처치했다.

내 칼부림에 죽어 간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덕분에 나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로 레벨업을 이어 갈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덤벼드는 사람들의 수준도 오르니 페이스가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청 편했다.

‘자동 사냥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지금 K-모바일 게임들의 주요 기능을 몸소 체험하는 중이었다.

더구나 레벨업을 하면 이벤트 몬스터인 서큐버스가 대신 찍는 건지, 아니면 내 의식의 영향인지, 능력치도 자동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그게 또 내 취향이다.

덕분에 덤벼드는 사람들의 수준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내 공략 난이도 역시 높아지고 있었다.

“헉? 협회장님?”

“협회장님 매혹에 걸렸어! 튀어!”

“으아아아!”

그나마 다행인 건 한국인들과 사냥꾼 협회 해외 지부 영향권 아래에 있는 이들은 내게 달려들지 않고 알아서 도망친다는 거다.

지난달의 이벤트 대전으로 내 얼굴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무력은 그 당시 본 게 전부가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싸우려는 이들은 대부분 어설프게 내 얼굴만 알고 있거나, 멋모르고 세계 1위에게 호승심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젠장! 완전 괴물이잖아!?”

“버, 벌써 여섯이나 당했어! 이대로는 순식간에 전멸할 거야!”

“닥쳐! 불평할 시간에 검이나 휘둘러! 아무리 놈이라 해도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악!”

“컥! 이, 이럴 수가…… 그걸 뚫는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무식하게 들이댔다가 경험치를 토하고 가는 게 아니었다.

개중엔 숨어서 몰래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른 팀이 당하는 것을 본 후 아예 50명 이상의 대규모 연합 토벌단을 끌고 오기도 했고.

“우와아아!”

“쳐!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

“방패수는 공격하지 말고 방어에만 열중해! 창수는 옆구리를 노리고!”

“제, 젠장! 소용없어!”

나를 공략하기 보단 상대적으로 사냥하기 수월해 보이는 이벤트 서큐버스를 노리기도 했다.

“서큐버스만 잡아! 그럼 저 사람 매혹도 풀릴 테니까!”

“빌어먹을! 이 서큐버스 개쎈데?”

“악! 뚫렸어! 랭킹 1위 그쪽으로 간다!”

“뭐!? 이 멍청한 놈들아! 뭐 하는 거야!?”

“네가 막아 봐! 막을 수 있나!”

하지만 무엇하나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나는 그들의 바람대로 포위당한 채 싸우는 경우는 결코 없었고, 나보다 먼저 서큐버스를 치려고 해도 문제가 많았다.

이벤트 서큐버스 자체도 강력한 데다가, 내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걸 무슨 수로 이겨.”

열심히 머리를 굴렸음에도 압도적인 전투력 앞에 패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황당하단 반응을 보이며 죽어 갔다.

‘여러분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한 줌의 경험치가 되어 굳이 내 성장을 도와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뭐,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 실제로 죽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 형 진짜 괴물이 되어 버렸어]

[라스트 보스 포스 쩌네]

[정신 마법이 이렇게 무섭구나]

[그런데 서큐버스는 원래 저렇게 엉겨 붙음? 어휴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겠네.]

[매혹에 걸린 사람은 서큐버스의 꼬봉 노릇하다 죽어 가는 게 일반적인데, 저 형은 좀 강해야지. 서큐버스가 애지중지하는 게 이해된다.]

[개부럽네. 저런 여자의 육탄 공격을 받으면 정신을 못 차릴 듯]

[이미 매혹에 당해서 정신이 없는데 뭐]

[이 형 진짜 매혹당한 거 맞지? 방금 웃은 거 같은데?]

참고로 서큐버스표 자동 사냥으로 열렙 중인 것도 모자라 지금 내 방송 또한 크게 흥하고 있다.

몬스터의 조종을 받는데 뭐가 재밌느냐 할 수 있지만.

이벤트 서큐버스의 미모와 스타일 자체가 지켜보는 이들에겐 재미였다.

더불어 계속해서 인간끼리의 전투가 벌어지니, 어찌 흥미롭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세계 1위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그러게 템빨, 렙빨, 스킬빨이 없어도 이렇게나 강하다니]

[대체 차이가 뭐임?]

[뭐긴, 일반인과 프로 격투 선수의 차이지]

[덤벼드는 사람들도 각국의 고렙 사냥꾼들일 거 아냐?]

[그만큼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있다는 거지. 애초에 저렇게 강한 사람이 템빨, 렙빨, 스킬빨까지 갖췄으니까 독주하는 거 아니겠어?]

이번 사태로 인해 사람들은 나의 강함을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여자 친구분은 이쪽 상황 알고 있음?]

[ㅇㅇ 이미 애들이 가서 일렀지]

[ㄹㅇ?]

[겉으로 내색은 안 하는데 표정 굳어지는 게 ㅈㄴ 살벌함ㅋㅋ 예쁜 여자가 무표정으로 변하면 더 무서워지지]

[그런데 이 필드 자체가 실존 구역이 아니라서 서로의 위치 파악이 안 되니,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지]

[만약 여자 친구분이 우리 형 위치를 알게 되면……]

[재밌겠다]

하지만 시청자가 많은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는데, 그만큼 박쥐가 많아 윌리아에게 내 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는 놈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후환이 두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 * *

1위. 대한민국 서** / 레벨: 34

2위. 대한민국 시** / 레벨: 28

3위. 대한민국 윌** / 레벨: 28

4위. 미국 ***주 / 레벨: 26

5위. 인도 ***자다브 / 레벨: 25

6위. 대한민국 윤** / 레벨: 25

이번 생존 이벤트에서 돌풍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

인도의 아르준 자다브는 이벤트 5시간째가 되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1위와의 차이가 좁혀지긴커녕 점점 벌어지고 있잖아?’

아르준 자다브는 슬쩍 시선을 돌려 자신의 파티에 속한 어느 여성을 바라보았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듯 잘 정돈된 짙은 흑발의 긴 생머리, 그와 대비되는 백옥만큼 새하얀 피부, 더불어 동양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신비한 미녀.

바로 윌리아였다.

‘분명 저분도 괴물이지만, 1위를 달리고 있는 서백호란 남자는 더하군.’

아르준 자다브가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걸 수 있던 이유는 윌리아가 만든 사냥팀에서 메인 딜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인구 대국 인도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었다.

아르준 자다브가 이렇게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활약할 수 있던 건 전적으로 윌리아 덕분이었다.

‘하긴, 저분이 속한 파티인데 오죽하겠어?’

윌리아는 그가 어느 타이밍에 달려들고, 어떤 공격을 어디에 해야 할지 매우 상세하게 지시했다.

처음만 해도 그녀의 지휘에 의심과 불만이 가득했던 아르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그녀의 말에 따르는 게 편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제 와선 완전히 윌리아의 꼭두각시가 된 그였다.

단순하게 뒤에서 지휘를 하는 것만으로 파티의 전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니, 놀라운 능력이 아닌가.

“으득.”

그런데 지금 그의 파티는 한 가지 문제로 인해 삐걱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아르준이 속한 파티의 리더인 윌리아의 기분이 몹시 저기압인지라, 모두가 그녀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NPC라고 해서 인간과 다를 게 없구나. 질투하는 거 보소.’

적어도 그는 NPC 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 세상엔 NPC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유는 그들이 대재앙 이후, 시스템에 의해 등장한 존재들이라 그렇다.

그래서 NPC를 몬스터와 동일시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그건 그들이 가진 사무적이면서 기계적인 이미지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윌리아는 다르다.

그녀는 여느 인간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그 연인이 서큐버스 형태를 한 이벤트 몬스터에게 붙들려 있단 소식을 듣자.

‘혹시 서큐버스가 제 남친에게 많이 엉겨 붙던가요?’라는 질문을 제일 먼저 날렸을 만큼 강한 소유욕과 질투심을 대놓고 보였으니 말이다.

“파티장님! 서큐버스 사냥터 발견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전부 쓸어버리죠.”

그리고 때마침 서큐버스 사냥터를 발견했단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보인 그녀의 서늘한 미소는, 아름다운 여성이 저렇게 무섭게 보일 수도 있단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윌리아와 아르준 자다브가 속한 파티의 인원은 총 15명.

평균 레벨은 23으로 대부분이 100위 이내의 강자들로 이뤄져 있다.

‘정확하겐 윌리아 님이 파티원들을 강자로 만든 거지만…….’

때문에 그들은 서큐버스 사냥터에 들어서자 매우 빠른 속도로 주변을 청소하며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사냥이 진행되길 20여 분.

‘애석하게도 여긴 윌리아 님의 애인분이 안 계신 모양인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서백호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에 아르준이 슬쩍 시선을 돌려 윌리아를 바라보았더니.

“ㅆ…….”

그녀의 입술이 작게 들썩이는 게 눈에 띄었다.

뭐라고 한지는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지만, 눈치가 있다면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욕도 하시는구나.’

저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다니, 그 모습이 묘하게 귀여워서 서백호가 부럽다 느낀 아르준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

자신의 시선이 불편했을까?

갑자기 윌리아가 눈을 크게 뜨며, 아르준을 향해 마력탄을 연발로 날려 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르준은 가만히 눈만 깜빡여야 했다.

지금 그가 가진 능력치로는 갑자기 쏘아진 마력탄에 긴급 대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팅!

하지만 아르준은 마력탄이 자신을 그대로 지나치고, 이내 목덜미에서 금속 공명음이 울려 퍼지자 뒷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몸을 날렸다.

-팅! 티팅! 팅!

급히 자리를 피하며 고개를 돌리니, 윌리아가 연사로 날린 마력들을 평범한 검으로 모조리 쳐 내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레벨에선 감히 따라 할 수가 없는 묘기였다.

“드디어 찾았네요. 우리 자기님.”

그리고 검을 늘어놓으며 태연히 고개를 치켜드는 남성에게 윌리아는 더없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고, 아르준과 그의 파티원들은 오한을 느꼈다.

“어, 어떡하죠.”

“눈으로 보고 대응하지 말고 제가 지시한 대로 움직이세요. 어차피 여러분의 실력으론 직접 보고 대응 못 합니다.”

윌리아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서백호의 기습에 그대로 아웃 되고 말았을 것이다.

때문에 윌리아의 냉정한 말에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포메 C.”

5시간 동안 함께하며 이들은 3가지 포메이션을 정해 놓았다.

포메이션 A가 공격적인 포지션, 포메이션 B가 방어적인 포지션이라면 포메이션 C는 오로지 윌리아의 지시에만 따르며 그 외의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다소 위험해 보이지만, 지금까지 손해를 본 적은 없으니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그녀의 말에 따랐다.

“1좌3격.”

전투 중에 긴말로 지시할 수는 없으니, 윌리아는 철저히 명령어를 사용했고, 짧은 시간 동안 새로운 명령 체계에 익숙해진 다국적 사냥꾼들이 착실히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1좌3격이랬지!?’

맨 앞줄의 숫자 1은 개개인에게 이름 대신 붙여진 번호로 아르준을 의미하며.

좌3격은 왼쪽 3시 방향을 향해 검을 휘두르란 지시였다.

-콰앙!

아르준은 지체 없이 그녀의 명령을 이행했고.

곧 강렬한 충격이 그의 검을 타고 밀려오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나게 만들었다.

윌리아의 지시대로 움직이다 보면 소름 돋는 기분을 수차례 느끼게 되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거, 검이 안 보여.’

상대의 공격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D좌5방.”

맨앞이 숫자가 아닌 알파벳이 나왔는데, 이는 여러 사람을 유형별로 묶은 조를 의미했다.

D좌5방은 D조에게 5시 방향으로 방패를 내밀란 지시였다.

-콰아앙!

놀랍게도 이번 역시 섬전과 같은 공격이 귀신처럼 D조의 방패를 때렸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분명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는 것.

비로소 윌리아가 자신들의 실력으론 상대의 공격을 직접 보고 대응하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상대의 능력치는 허용 범위 이내일 텐데, 어떻게 이런 전투가 가능한 건지.

또 이런 전투에 어떻게 대응이 가능한 건지도 의문일 뿐이었다.

‘이런 괴물 새끼들!’

아르준은 살 떨리는 상황에 속으로 비명처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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