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고강화 (1)
나와 합류하면서, 윌리아와 시에나는 자신들이 속해 있던 파티를 나왔다.
애초에 두 사람은 파티를 만들 때부터 나와 합류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파티를 떠나기로 미리 말을 해 뒀다고 한다.
하지만 얘기가 되어 있었다곤 해도 파티원들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윌리아와 시에나는 각 파티의 리더였던 데다가 대신할 사람이 없는 절대적 실력자였으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몇 시간이나마 함께 싸웠던 동료임에도 가차 없었다.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요? 그래도 같이 싸웠던 동료인데, 힘을 합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죄송하지만, 수준이 맞지 않습니다.”
“네?”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윌리아, 시에나 세 사람이 합친 이상 나머지 사람들은 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냉정한 윌리아의 말에 아르준 자다브란 남성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인도를 대표하는 사냥꾼 중 한 명인 그는 이런 말은 처음 들어봤을 거다.
“차라리 시에나가 속해 있던 궁수 파티 멤버들과 힘을 합치시죠. 그게 가장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마냥 냉정하게 구는 건 미안했는지, 아르준에게 새로운 길을 알려 주는 윌리아.
그러자 아르준과 궁수 파티 서브 리더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들이 힘을 합치면 꽤나 안정적인 조합이 만들어진다.
아르준의 파티는 검수, 창수, 방패수로 근접 전투원의 균형이 좋으나, 원거리 공격원이 부족했으니 말이다.
“혹시 애초에 이걸 염두에 두신 건…….”
심지어 레벨도 비슷하니, 아르준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고생하세요.”
윌리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과 작별을 고하고는 내게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냉정해 보이지만, 나도 윌리아의 행동이 맞다고 생각해.’
애초에 그들과는 단기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함께한 거였고.
윌리아와 시에나의 활약 덕에 파티원들 모두가 최상위 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이후의 활동 방향까지 알려 주었다.
두 사람은 충분히 할 만큼 한 거다.
그러니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야, 이거 다시 묶어 봐!”
솔직히 미안함을 느낄 거면 그들보다 시에나에게 느껴야 한다.
윌리아와 나의 뒤를 따르던 시에나가 불평을 토하자, 난 얼른 그녀의 머리에 씌워진 두건을 더욱 정성스레 묶어 줬다.
“이벤트가 끝나면 원상 복구될 거라 생각합니다.”
“칫, 봐야지 모. 원상 복구 안 되기만 해 봐. 네 머리도 변발로 만들어 줄 테니까.”
“…….”
* * *
“아…….”
미련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으로 윌리아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아르준은 이내 손을 거뒀다.
수준이 맞지 않는다던 윌리아의 말.
그 말이 그를 밀어낸 것이다.
‘분하지만 윌리아 님의 말이 맞다.’
함께 싸워 본 만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강함은 단순히 레벨로 구분 지을 수 없다.
그냥 기본 실력 자체가 압도적이었으며, 아예 격이 달랐다.
“우리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요?”
많은 것을 느낀 듯한 아르준의 대사.
애석하지만 그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은 답을 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강함이 아니었으니까.
저건 재능의 영역이었다.
“그래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따라잡으려는 노력이라도 해 봐야 근처라도 갈 수 있겠죠?”
시에나의 부하였던 궁수대 여성의 말에 아르준은 백번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럼 노력해 보죠. 따라잡진 못하더라도 근처는 갈 수 있게끔.”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르준을 포함한 파티원들은 모두가 의욕 가득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는 절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동기를 부여해 주기도 했다.
* * *
윌라아와 시에나가 합류하니, 전투가 너무 쉬워졌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7시간째가 지난 현재 내 레벨이 38, 윌리아와 시에나가 33임에도 레벨 50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이거지.’
나는 이벤트 서큐버스에게 꼭두각시가 되었던 화를 분출하듯 몬스터를 썰었고, 둘은 그런 나를 뒤에서 서포트해 주었다.
“나이스! 상급 정신력 강화 스킬북 나왔네요!”
그러던 중 우리는 정신 공격을 방어하는 상급 스킬북을 얻었다.
윌리아가 그 스킬을 익히자 나는 크게 안도했다.
모든 능력치와 스킬, 장비가 초기화된 현재 상태에서 정신 공격만큼 무서운 게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앞선 참사를 반복할 일은 없어졌으니 우린 더욱 마음 편하게 전투를 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벤트 서큐버스 잡고 특별한 보상 같은 거 얻지 않으셨어요?”
신나게 몬스터를 썰어 버리고 취하는 잠깐의 휴식 시간.
나는 특수 이벤트 몬스터가 떨군 보상에 대해 뒤늦게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도 보상을 잊고 있었는지 ‘아!’ 소리를 낸 후 인벤토리를 확인했다.
“강화 관련 아이템 얻었어요!”
“나도!”
두 사람은 내게 스크롤을 건넸다.
[특수 축복의 가루 / 희귀]
-강화 실패 시 장비 파괴되는 페널티를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높은 등급의 장비를 새로 구하거나.
장비를 강화하는 것이다.
유일 등급 장비는 기본 능력치 자체가 좋지만, 역시 강화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매우 컸다.
만약 유일 등급 장비가 5강까지 풀 강화가 된다면…….
그 위용은 엄청날 것이다.
‘일단 강화를 하면 장비의 강도가 상승하고 능력치(근력, 순발력, 마력)가 추가된다. 하지만 강화의 효과를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건, 내장 스킬의 위력 증가라 할 수 있다.’
1강을 하면 내장 스킬의 위력은 1.2배가 되고, 2강은 1.5배, 3강은 2배가 된다.
그리고 그 위의 단계인 4강은 3배, 5강이 되면 5배가 되어 버린다.
같은 등급이라 해도 강화 단계에 따라 전혀 다른 위력의 스킬을 발현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유일 등급 장비는 3강까지 되어 있어.’
더 높은 등급으로 강화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강화 실패 시 장비가 파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빵으로 실패 확률이 낮은 3강에서 멈춘 것이다.
괜히 욕심부리다가 깨지기라도 해 봐라.
분명 눈물이 흐를 거다.
‘하지만 두 사람이 구한 특수 축복의 가루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패 시 장비 파괴의 페널티를 없애 준다면, 더 위 등급으로의 강화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이건…….
무조건 많이 구해야 한다.
“특수 이벤트 몬스터의 위협에 떨고 계신 분들은 하늘 높이 우는살(소리 나는 화살, 효시)을 날리던가 봉화를 피워 신호를 보내 주십시오! 세계 최고의 사냥꾼 파티가 도와드리러 갑니다!”
나는 즉시 개인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그리 외쳤다.
알아서 퍼트리란 뜻이다.
나와 윌리아, 시에나의 시청자 수 합은 무려 5억.
생존자 중 대략 25%가 우리 방송을 보고 있었다.
때문에 내 요청은 머지않아 여러 개인 채널에 퍼지게 될 것이다.
* * *
“이, 이러면 진짜 올까?”
“시야가 닿는 곳에 있으면 오겠지.”
“그럼 확률은 높지 않은 거잖아. 이 드넓은 필드에서 근처에 있어야 한단 이야기니까.”
민첩성이 매우 높은 늑대인간형 특수 이벤트 몬스터를 만나는 바람에 도망도 치지 못하고 발이 묶인 파티는 시청자들이 얼른 봉화를 피우라고 하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킬을 이용해 근처 나무에 불을 질렀다.
“젠장! 방패 뚫리겠어!”
“어떻게든 버텨!”
쉬지 않고 방패를 두들기는 이벤트 늑대인간의 공격에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이들 파티의 방패는 금방이라도 뚫릴 것처럼 쑥쑥 파였다.
그런데 그때.
“쇄애액!”
-푹!
어디선가 들려온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을 머금은 화살 하나가 날아와 이벤트 늑대인간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그에 한껏 화가 난듯한 늑대인간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하고, ‘퍽’ 소리와 함께 마력탄으로 보이는 공격에 눈이 터져 나갔다.
-끼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늑대인간.
하지만 놈의 비명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백광이 번쩍이며 비명을 끊었기 때문이다.
“구조해 드렸으니 이만 갑니다! 수고하세요!”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
위기에 빠져 있던 파티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벙찐 표정을 지었다.
-툭.
하지만 곧이어 그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늑대인간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푸른빛으로 산화하기 시작했다.
그 무시무시하던 특수 이벤트 몬스터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너무도 간단하게.
정황상 그들의 앞을 스쳐 지나가는 남성 1명, 여성 2명으로 이뤄진 3인 파티가 늑대인간을 잡은 것 같긴 한데…….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이게 말이 돼?”
화살에 마력탄, 목을 벤 공격까지, 겨우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너무도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뒤늦게 그 3인조 파티의 정체를 알아챈 이들은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저 사람들인 거지? 세계 최고의 파티.”
“아무래도 그런 듯.”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해 보니, 그들은 아예 급이 달랐다.
이벤트 늑대인간에게 고전하고 있던 이들이 바보 같아 보일 만큼 말이다.
“이제 보니, 난 아무것도 아니었네.”
“그러게.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 * *
[현 시간부로 생존 4개월 차 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후우, 후우…….”
나와 윌리아, 시에나는 끝없이 펼쳐진 수풀 속을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능력치가 초기화된 상태에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사냥을 거듭했더니, 너무 지쳐서 더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커다란 나무를 등받이 삼아 주저앉은 나와 그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윌리아, 바닥에 대자로 뻗은 시에나가 이번 이벤트의 감상을 차례로 내뱉었다.
“엿 같은 이벤트였어.”
“그래도 보상이 좋아 다행이에요.”
“이런 빌어먹을 이벤트는 다신 안 했으면 좋겠어.”
그래도 덕분에 50마리가 넘는 특수 이벤트 몬스터를 처치할 수 있었고, 특수 축복의 가루를 대량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아이템을 이용해서 우린 주력 장비의 4강 이상의 강화를 시도할 예정이다.
‘4강 여러 개를 만들지, 5강까지 달려 볼지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우리 파티기에 가능한 나름 즐거운 고민이 아닐까 싶다.
[성장 순위를 발표합니다.]
1위. 대한민국 서** / 레벨: 48
2위. 대한민국 윌** / 레벨: 45
3위. 대한민국 시** / 레벨: 45
4위. 미국 ***주 / 레벨: 43
5위. 대한민국 윤** / 레벨: 42
6위. 미국 ***제임스 / 레벨: 42
7위. 중국 진*** / 레벨: 41
8위. 독일 ***마이어 / 레벨: 40
9위. 러시아 ***이바노프 / 레벨: 39
10위. 대한민국 김** / 레벨: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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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위. 대한민국 최** / 레벨: 38
이어서 떠오르는 결과 발표.
아마 우리가 이벤트 몬스터를 쫓아다니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더욱 컸을 거다.
‘그래도 1위~3위까지 사수했으니까 됐지.’
4위는 클로에, 5위는 윤시아, 6위는 제임스, 7위는 진후에이.
8위와 9위는 누군지 모르겠고, 10위에 내 제자로 유명한 가의도팀의 김민희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14위에 김씨 아저씨의 아들이 속한 기대주들로 이뤄진 파티의 리더 최공찬이 이름을 올렸으며, 18위와 19위는 무당파의 직계 제자인 장밍메이, 장쥔이.
20~30위권에 김현수, 최도겸, 박성만이 일본 지부장 다나카가 자리했다.
100위 이내에만 대한민국 소속의 인물은 20명인데, 국적이 아닌 소속으로 따지면 사냥꾼 협회 멤버가 무려 26명에 달했다.
‘심지어 10위 이내에만 사냥꾼 협회 소속이 무려 6명이다.’
새삼 대한민국의 사냥꾼 협회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해졌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성장 1위를 기록하셨습니다.]
[15,000점을 획득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점수를 획득했다.
하지만 지난번의 획득량을 생각하면 뭔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으니, 이번 이벤트의 과제는 성장과 개인 방송이란 것.
아직 개인 방송에 대한 보상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