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06화 (206/273)

206화 일본 지부장 다나카 (3)

길이 없으면 만들면 그만이란 생각과 함께 나는 이 미친 던전의 파괴를 시작했다.

어차피 던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설을 수복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구조를 변경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이 던전은 높은 등급답게 벽체들이 무슨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더럽게 튼튼했지만, 유일 등급 장비 중에서도 최상급 공격력을 가진 데다가 풀 강화까지 된 성검의 공격을 버텨 내지는 못했다.

덕분에 던전의 상단 곳곳에 새로운 길이 개통되고.

-반짝.

어느 한 방향의 통로에서 빛이 반짝이는 것을 포착했다.

필시 그건 스킬의 이펙트였다.

나는 이능의 날개를 펼쳐 그곳으로 날아갔고, 윌리아와 시에나는 보조 날개를, 헬레나는 날개 신발을 이용해 따라왔다.

‘다나카!’

그리고 그곳에서 다나카 팀을 발견한 나는 즉시 속도를 더 내야 했는데,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신경 쓰지도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나카는 가슴과 배, 허벅지에서 수돗물을 켠 듯 콸콸 피를 쏟으며,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을 휘둘렀고.

평소 다나카에게 놀림을 자주 당해도 한결같이 곁을 지키는 아카리가 전신에 화상을 입어 외형이 흉측하게 변한 상태임에도 그를 백업했다.

더불어 나머지 동료들도 구조 대상인 초보 사냥꾼들을 등 뒤에 둔 상태에서 힘겹게 분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당장 1초 뒤의 상황을 알 수 없는 그 파티의 앞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밀려들었는데.

-콰아앙!

나는 바리사다를 제3의 손이 아닌, 모처럼 오른손에 쥔 채 전장에 난입했다.

[절규하는 마리오네트 / 레벨: 150]

[불타는 키메라 / 레벨: 150]

[폭발 키메라 / 레벨: 50]

이어서 내 부하를 건드린 몬스터들을 단번에 일도양단을 내기 시작했다.

바리사다의 투과 스킬이 있으면 다른 전투 스킬 따윈 필요 없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백의 검신이 허공에 하얀색의 선을 그으면 일시에 대여섯 마리의 몬스터가 폭발하듯 죽음을 맞이했다.

이어서 ‘찰나’란 표현이 맞을 만큼 순식간에 세 개의 선이 추가로 그려지니, 어느새 다나카 일행을 압박하던 모든 몬스터가 푸른빛으로 산화했다.

“혀, 협회장님. 나이스 타이밍.”

그리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쓰러지는 다나카를 제3의 손으로 부축하며 다급히 윌리아를 불렀다.

“네!”

긴말할 것 없이 윌리아는 바로 치료 스킬을 사용했다.

극상급 스킬인 절대 회복이 윌리아가 가진 치유의 헤일로의 영향까지 받았다.

덕분에 치유 200%의 효과를 가진 더 뛰어난 스킬이 되어 다나카 일행을 치유했다.

“야, 야! 정신 차려 봐!”

화상 흉터로 뒤덮였던 아카리가 다시금 예쁘장한 원래의 얼굴을 되찾고, 일행들도 죽다 살아났단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다나카는 심력 소모가 워낙 컸는지, 정신적 문제인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일단 그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걱정이 가득한 아카리에게 다나카를 맡겼다.

“바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를 부축해 주세요.”

“네?”

그리고 상황 파악이 아직 안 된 듯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향해 심플하게 말했다.

“던전을 나가야죠.”

이 미친 던전은 타임 어택 시간이 무려 5일이나 달한다.

그 긴 시간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 없는 내게 던전을 벗어나는 방법은 숨겨진 입구를 찾거나 클리어하는 방법뿐.

그렇다면 이어질 내 행동은 무엇이겠는가.

숨겨진 입구를 찾기?

‘아니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바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다.

* * *

다나카는 눈앞에 새겨진 너무도 아름다운 새하얀 선을 멍하니 응시했다.

누가 그은 건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묘하게 눈에 익은 그것은 한 줄기의 검로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무심코 선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어째서인지 몸이 무겁고, 시야는 흐릿했지만.

눈앞의 하얀 선이 어찌나 존재감이 강하고 뚜렷한지,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것을 종용했다.

-휙! 휙!

그렇게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멍멍한 정신을 붙들고 얼마나 검을 휘둘렀을까?

그는 비로소 그 선을 따라 온전히 검을 휘두르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다나카는 자신의 검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또 넘겨서일까?

이것을 계기로 다나카는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어어?’

그러던 중 무의식적으로 검만 휘두르던 공간에 균열이 생기고.

“……나카!”

“다나카!”

그의 정신이 그 공간 밖으로 튕겨 나가듯 밀려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허어억!”

“다, 다나카. 정신이 들어?”

거친 숨을 들이켜며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파트너이자 컨셉 동료인 아스나.

아니, 아카리였다.

“여긴?”

“고쿄(일본 왕의 궁성) 본부야.”

다나카는 이게 어찌 된 일이냐며 당혹스러운 얼굴로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를 기억해 냈다.

“마, 맞아. 분명 던전에서.”

“그래. 진짜 골로 갈 뻔했지.”

“그런데 어떻게?”

“협회장님이 구해 주셨어. 기억 안 나?”

아카리의 이야기에 다나카는 이내 깜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협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흐릿하긴 하지만 든든한 협회장님의 등판을 본 것 같기도 하고…….”

“후우, 진짜 위험했어. 협회장님이 한발만 늦었어도 넌 영영 못 일어났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무사해.”

“협회장님은?”

“다른 사냥팀들까지 구조해 주시고 벌써 다른 나라 지원 가셨어.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 난 상황이니까.”

“그래? 그렇구나…….”

그리고 다나카는 아카리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던전을 빠져나왔는지 듣게 되었다.

“협회장님 파티가 우리를 보호하며 그 미친 던전을 단 30분만 돌파하셨어. 그 미친 던전에서 나온 보스의 레벨이 몇이었는 줄 알아? 무려 200이더라. 하하.”

아카리의 말을 듣게 되니, 다나카는 새삼 자신들의 수준이 협회장 일행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건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분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럽기만 할 뿐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 일로 얻은 것이 있기 때문일까?

‘검.’

이 순간 다나카는 검을 휘두르고 싶단 생간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한쪽에 세워져 있는 검을 향해 힘겹게 다가갔다.

분명 부상은 완치되었지만,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건 심리적 요소 때문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휙! 휙!

그리고 다나카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이내 무의식 공간에서 성공해 낸 일격을 펼쳐 냈다.

뜬금없는 다나카의 행동에 아카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녀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검이 무언가 달라졌음을.

‘협회장님?’

마치 사냥꾼 협회의 협회장의 모습이 일순간이나마 다나카와 겹쳐지는 착각이 들었다.

* * *

이번에 전 세계에 등장한 고등 던전은 95%가 레벨 150 이하의 난이도였으며, 약 5%가 레벨 151~200대의 난이도를 갖고 있었다.

레벨 151 이상의 던전은 20개에 1개꼴밖에 안 된다는 뜻이지만, 이것도 전 세계를 기준으로 따지면 무시할 수 없는 양이 되어 버린다.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에서 모름지기 최초 토벌 보상을 따라오는 건 없지!’

더불어 그 151 이상 난이도를 가진 던전 중 일부는 지금의 나라고 해도 마냥 무시 못 할 만큼 위험한 편이었고.

이런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최초 보상 역시도 무시할 수 없었다.

“흐흐흐!”

예를 들면 이런 거 말이지.

[프라가라흐 / 한손검 / 등급: 유일]

-유성의 조각, 미스릴, 드래곤 본 등 다양한 재료가 섞여 만들어진 마법 검.

-주인이 명령을 내리면 알아서 적을 요격하고 쫓는다. 의식을 집중하면 더욱 세밀한 조종이 가능한 자율 공격 무기.

-근접 공격 스킬의 위력이 100% 상승하며, 원격으로 프라가라흐를 통해 근접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

-자가 수복 기능이 있어 손상을 회복한다.

-마력+12

-자체 스킬: 유성검

[유성검 / 극상급 스킬 / 액티브]

-화염에 둘러싸인 프라가라흐가 지면에 내리꽂히며, 강력한 충격파가 반경 30미터 이내의 적을 분쇄한다.

-소모 마력: 10

이건 일본에서 손에 넣은 무기다.

다나카를 위험에 빠뜨렸던 그 미친 던전 말이다.

물론, 이렇게 귀한 무기를 품고 있었으니, 그 정도로 괴이하고 위험했던 것도 이해는 되었다.

세상에…… 내 지시에 따라 적을 자동으로 공격하는 무기라니, 이건 누가 봐도 춤추는 검의 상위 호환 무기 아닌가.

‘비록 스킬의 위력은 유일 등급 장비치고 살짝 애매하지만…….’

프라가라흐의 무서운 점은 자율 공격을 하는 무기가 근접 스킬을 난사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스킬의 위력이 애매해도 전혀 아쉽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애매한 스킬 마저 일반 극상급 스킬보단 낫고, 4강 이상의 강화가 되면 극강의 공격력을 자랑하게 될 테니까.’

성검 칼립소와 듀랜달, 바리사다에 잘 사용하지 않는 대검 아스칼론(드래곤 슬레이어)까지.

기존에 내가 가진 유일 등급의 검만 4자루다.

이 이상 유일 등급의 무기를 갖는 건 욕심이라 생각했는데, 프라가라흐와 같은 무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행을 위한 건지, 서양 검임에도 가드가 없는 특이한 형태를 가진 프라가라흐는 푸른빛이 감도는 신비한 색상의 칼날을 가지고 있어서 외형까지 취향에 맞았다.

“저 바보, 또 새 무기 뽑아 들고 좋아하네.”

쉬는 시간마다 프라가라흐를 뽑아 들고 뿌듯해하는 내 모습에 시에나가 한마디 했다.

‘나중에 유일 등급의 검이 추가로 나오면 그때 다나카 줘야겠다.’

일본에서 얻은 검이라 그런지 다나카가 계속 눈에 밟힌다.

나는 추가로 장검을 얻게 되면 그건 다나카를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에 다나카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레벨 150의 몬스터를 상대로도 꿋꿋하게 버텨 내며 시간을 끌었다.

그의 실력이 예전보다 뛰어나 졌다는 게 느껴지니, 앞으로는 더 많이 푸시해 줘도 될 것 같다.

* * *

한국에 이어 일본과 북한, 몽골, 러시아, 미국, 중국 등.

나와 사냥꾼 협회의 주력 사냥팀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나라를 돌며 구조 활동을 벌였다.

처음엔 나와 한국팀만 움직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나카처럼 국내 문제가 해결된 팀들로 합류를 했고, 덕분에 세력은 점점 커져 예상보다 빠르게 구조 활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린 많은 사람을 구하고, 또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이 있으니…….

사냥꾼 협회를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협력하길 바라는 국가와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는 국가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표면상 동맹으로 엮여 있음에도 나는 이들의 등급을 나누게 되었고, 이는 코앞으로 다가온 시나리오 진행 때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시나리오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시나리오를 착실하게 대비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연락망을 만들어 정보 수집을 원활하게 하고, 심지어 마계의 엔탈론이란 무법자의 도시까지 점령하여 다른 세계의 동향도 살폈다.

게다가 최대한 전쟁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맹이란 이름으로 많은 나라와 손을 잡아 두었을 뿐 아니라, 휘하 세력의 무력 수준 역시 크게 키워 놓았으니, 나름대로 대비는 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시나리오 시작 전에 내가 신경 쓸 건 딱 두 개뿐이다.

하나는 시나리오의 영주를 선별하기 위한 ‘검증’ 시험과.

[5개월 생존에 성공하셨습니다.]

[지난 네 달간의 생존 점수를 정산합니다.]

[서백호 님의 생존 점수는 2,132,783점으로 상위 0.000001%인 1등급에 속하며, 전체 순위는…….]

[1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바로 마지막 생존 기념 이벤트였다.

[마지막 생존 기념 이벤트가 실시됩니다.]

[마지막 기념 이벤트는 단 1시간 동안 진행이 되며…….]

[주제는 보물찾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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