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보물찾기 (1)
[마지막 생존 기념 이벤트가 실시됩니다.]
[마지막 이벤트는 단 1시간 동안 진행되며…….]
[주제는 보물찾기입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마지막’이란 글자.
시나리오가 진행되면 이벤트 또한 끝을 맞이하는 모양이다.
‘이런 젠장…….’
매달 진행 되는 이벤트는 유일 등급 장비를 정기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자, 귀환 스크롤이나 강화 재료 등 희귀한 소비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창구였다.
물론, 우리 파티가 항상 대량의 점수를 쓸어 담아 이익이 큰 것이기도 했지만…….
이 이벤트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면 타격은 무시할 수 없다.
‘강화 재료와 귀환 스크롤은 이벤트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어. 앞으로는 이걸 얻지 못하게 되는 건가?’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런 메시지에 당황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마지막 이벤트라고?”
“그럼 앞으로 귀환 스크롤 못 사게 되는 거야?”
“귀환 스크롤만이 문제가 아니야. 이벤트 상점에만 파는 희귀 품목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제1구역.
흔히 첫 번째 협회 도시라 불리는 올림픽공원이었다.
덕분에 내 주변에 자리한 고위 사냥꾼들이 하나같이 웅성댔다.
“설마 팔던 걸 아예 안 팔겠어? 어떤 식으로든 신규 획득 루트가 생기겠지.”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 중립 도시에 NPC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등장했잖아. 왠지 거기가 의심스럽네.”
수원팀 김현수의 말에 제주팀 박상만이 일리 있다며 긍정했다.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말대로 다른 방식의 판매 루트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확실하지 않다는 거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나로선 이번엔 유일 등급 장비 욕심보다 판매 루트가 없어지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는 소비 아이템 비축에 열을 올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이벤트가…….’
긴 시간을 뺏기지 않고 단 1시간 만에 끝나는 이벤트라는 건 나쁘지 않은 소식이긴 하나.
‘보물찾기’라니, 실력보단 운빨 요소가 다분해 보이는 주제였다.
대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일까?
[잠시 후, 이벤트 장소로 이동됩니다.]
이어서 내 궁금증을 풀어 주겠다는 듯, 새로운 메시지가 떠오르고.
나는 반사적으로 윌리아와 시에나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 역시 이번 이벤트도 참가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메시지를 보았다고 알려 왔다.
“이동하면 파티가 흩어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네, 백호 님 몸조심하세요.”
내 말에 윌리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지만, 녹색 빛 날개를 펼친 채 허공을 노니는 시에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 말고 경쟁자들을 조심해야지.”
확실히 레벨이 200에 근접한 우리보단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지막으로 헬레나에게 말했다.
“다녀온다.”
“넵, 몬스터들 부려서 압구정 지역이나 철거하고 있을게요.”
이제 완전히 우리의 동료가 된 헬레나.
그에 나는 피식 웃어 보이곤, 이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자 눈앞의 풍경이 바뀌었다.
[이벤트 장소로 이동됩니다.]
‘여긴?’
곧이어 펼쳐진 눈앞의 풍경은 마치 유럽 귀족들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예쁘게 잘 꾸며진 공원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그 공원이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으며, 그런 공원 위로 사람들이 좌우 앞뒤로 5미터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며 서 있다는 것이었다.
아쉽게도 윌리아와 시에나와는 떨어진 듯 주변엔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이내 그들의 시선이 화려한 장비를 걸친 나에게로 향해지자, 하나같이 흠칫 놀랐다.
이젠 너무 유명해져 버렸다.
[필드 곳곳에 숨겨진 쿠폰을 채집하십시오.]
[1시간 후, 이벤트가 종료되면 쿠폰을 점수 및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무기 사용 및 공격 스킬 사용이 금지되며, 상대의 쿠폰을 빼앗거나 양도받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1분 후,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이름이 보물찾기라더니, 진짜 어릴 때 하던 보물찾기 맞네.
무기 및 공격 스킬 사용은 불가능하지만, 아예 공격하지 말란 내용은 없다.
다만 상대에게서 쿠폰을 강탈하거나, 부탁을 강조한 협박으로 양도받을 수도 없으니, 타인과 주먹다짐을 해 봤자 불필요하게 힘만 뺄 뿐이다.
‘어디 보자.’
보아하니 무기와 공격 스킬의 사용 불가를 제외하면 추가 능력치 제한은 없는 것 같다.
그 말은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 많은 쿠폰을 획득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단 뜻이 된다.
나는 걸음을 옮겨 보았다.
-쿵.
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전진할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폭 2미터 남짓의 투명한 벽.
아무래도 이벤트 시작 전까진 얌전히 대기하란 뜻 같다.
“음?”
그래서 나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살펴야 했다.
지형을 파악하고, 혹시 눈에 띄는 쿠폰이 있을까 싶어 시력 강화 스킬까지 써 가며 구석구석 자세히 살폈다.
‘저기 나무 위에 종이 같은 게 있네. 저게 쿠폰일까?’
‘맞나 보다. 저기 저기에도 보이네.’
다행히 시력 강화 스킬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몇몇 장소에 숨겨진 쿠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이벤트가 시작하기 전, 미리 발견한 쿠폰들을 효율적으로 획득하기 위한 이동 루트를 짰다.
그리고 잠시 후.
[10초 후 이벤트 보물찾기가 진행됩니다.]
[9초 후 이벤트 보물찾기가 진행됩니다.]
.
.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나처럼 미리 주변을 탐색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릴 준비를 했다.
아마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도약 스킬 등을 이용해 튀어 나가겠지.
[1초 후 이벤트 보물찾기가 진행됩니다.]
[보물찾기 시작!]
아니나 다를까.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이동을 가로막던 장막이 걷히고,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최고의 이동 수단을 활용해 미리 정해 놓은 목적지를 향해 튀어 나갔다.
그중엔 심지어 내가 미리 찜해 놓은 표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앗! 콰아아앙!
“엇?”
“뭐, 뭐야!?”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내가 능력치를 풀로 끌어 올려 자리를 박참과 동시에 이능의 날개가 펼쳐지고, 점차적인 가속 없이 즉시 최대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았기 때문이다.
-고고고고!
이능의 날개가 뿌리는 푸른빛이 소닉붐과 함께 주변을 휩쓴다.
나는 사람들이 움찔 놀란 틈에 첫 번째 쿠폰을 손에 넣고, 즉시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연달아 손에 넣었다.
“아니 저건 반칙이지!”
뒤에서 사람들이 뭐라 뭐라 항의하긴 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도 나름의 경쟁 아닌가.
굳이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
어차피 그들은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을 쿠폰 하나를 놓친 것에 불과하니까.
[3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3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50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획득한 3장 쿠폰 중 한 장이 당첨 쿠폰이었다.
다행히 운빨 요소가 가득한 이벤트긴 해도 능력 제한이 없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전투기처럼 수시로 공기를 찢으며 음속으로 날았다.
다만 전투기의 비행보다 훨씬 나은 점이 있다면, 음속으로 비행을 이어 가더라도 즉시 기억 자(ㄱ)로 90도 선회가 가능하단 것이었다.
이능의 날개가 원래 방향 전환 능력이 좋기도 하고, 디딤판 스킬에 도약을 사용하면 빠른 180도 선회마저 가능했다.
심지어 내 비행에는 마력 소모가 없는지라, 중간중간 블링크를 사용해도 부담이 없었다.
“앗!”
“아악!”
“미, 미친!”
이 말은 즉.
내 눈에 쿠폰이 발견되는 순간, 모든 라이벌을 제칠 수 있단 뜻이다.
[3점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특수 축복의 가루 쿠폰을 획득했습니다.]
또다시 획득한 당첨 쿠폰.
그리고 그 쿠폰에서 나온 게 어중간한 점수가 아닌, ‘특수 축복의 가루’란 사실에 나는 눈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특수 축복의 가루는 장비를 강화할 때, 장비 파괴 페널티를 없애 주는 귀중한 소모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이벤트에서 특수 축복의 가루를 대량으로 획득하는 데 성공한 덕분에 성검 칼립소가 5강이 되고, 나머지 주요 장비들도 4강 이상으로 강화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판단한 나는 더욱 쿠폰 수집에 열을 올렸고.
“야아아아!”
“세계 1위면 다냐!”
“이 새끼야!!!”
그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의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아마 윌리아와 시에나의 상황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두 사람 역시 마력 소모 없는 빠른 비행 능력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 둘은 나처럼 원성을 듣진 않을 수도 있으려나?’
생각해 보면 나에겐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도 어째서인지 윌리아와 시에나에겐 너그러운 경우가 많았다.
평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윌리아와 시에나가 나처럼 행동해도 웃어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빌어먹을 외모 지상주의.’
* * *
이벤트가 시작되고 약 30분 정도가 흘렀다.
보물찾기는 정말이지 지겨울 만큼 일관된 이벤트였고, 나는 여기저기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쿠폰들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닫게 된 노하우가 있으니, 그건 바로…….
“나이스 겟! 어? 어디 갔지?”
누군가가 쿠폰을 발견하고 전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발견하면 한발 먼저 날아가 가로채는 것이다.
양심?
마지막 이벤트에서 조금이라도 많은 점수를 벌기 위해 그딴 거 버렸다.
어차피 규칙을 어긴 건 아니지 않는가?
그나마 한 사람에게 두 번 이상은 빼앗지 않는 게 내가 지키는 최소한의 양심이었다.
그리고 이런 내 행동을 딱히 문제로 삼기 힘든 게…….
“에잉, 내가 가져갈 수 있었는데.”
“웃기지 마. 이건 내 거야.”
“그런 게 어딨어? 먼저 손에 넣는 사람이 임자지.”
솔직히 이런 빌런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한 놈들은 쌔고 쌨다.
‘그나마 한 사람에게 두 번 이상은 뺏지 않는 게 양심적인 편 아닐까?’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쿠폰 수집에 열을 올린 덕분에 현재 내 보물찾기 성과는 이러했다.
-점수: 11,420
-특수 축복의 가루 21개
-희귀~유일 아이템 뽑기권 9개
-희귀~유일 장비 뽑기권 4개
-최상급~극상급 스킬 뽑기권 3개
아주 만족스럽지 않은가.
이래서 내가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내 이익만 챙긴 탓일까?
-휙!
“어?”
나는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공격을 받고 말았다.
시야 가득 채워지는 그물망.
금속으로 만든 듯 보이는 그 그물망이 음속으로 비행을 이어 가던 내 눈앞에 예고 없이 튀어나왔다.
작정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
-촤륵!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건 내게 통하지 않는다.
이능의 날개엔 범위 10미터 이내에서 마력 소모 없이 염력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염력 사용이 익숙해진 내게 저런 금속 그물망 따윈 장난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염력으로 금속 그물을 뭉치고 뭉쳐 둥그렇게 말았고, 그걸 발로 찼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염력으로 날려도 되겠지만, 지금은 공격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때문에 염력을 방어에 쓸 뿐, 공격에 사용하지 않고 발로 찬 것이다.
그러자 뭉쳐진 금속 그물은 축구공이라도 되는 듯 훨훨 날아가 두꺼운 아름드리나무에 깊숙이 처박혔다.
-저벅저벅.
이런 내 행동에 그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을 필두로 하나같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이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음…….”
나는 그런 이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혹시 제가 여러분의 쿠폰을 가로채서 화가 나신 거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추후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쿠폰을 빼앗겨 화가 난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위협적으로 포위하듯 거리를 좁혀 왔으니 말이다.
‘하긴 시스템이 무기와 공격 스킬의 사용만 막았을 뿐, 공격 자체를 막은 건 아니지.’
이런 상황을 기회로 생각하고 딴 생각을 품은 사람이 나올 법도 했다.
나는 같은 편이 많은 만큼 적도 많았으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하나의 키워드를 던져 봤다.
“알라를 위해 움직이시는 분들입니까?”
뜬금없는 것 같지만, 이런 키워드를 던진 이유가 있다.
시나리오 시작을 대비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 했던 대동맹.
그걸 거절한 대표 세력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었는데, 이들이 우리의 제안을 거절한 게 그들의 종교와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슬람이라고 다 같지 않고, 분파에 따라, 혹은 나라에 따라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흠칫.
하지만 내 물음에 움찔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 종교 속에서 과격한 역할을 자처하는 세력인 모양이다.
“나를 치려면 지금이 기회로 여겨질 만하겠네요. 무기도 사용할 수 없고, 공격 스킬도 사용할 수 없는 데다가 죽으면 부활시켜 주는 옵션도 없는 이벤트니까.”
그들은 세상에 닥친 재앙을 인간의 탓이라 말한다.
솔직히 이해가 되진 않지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미친 세상에서 홀로 득을 보고 있어서인지, 그들에게 나는 거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 오늘 행동만 보면 영락없는 악당이긴 하지.
“하지만 레벨과 능력치는 그대로인데, 덤비는 건 자살행위 아닐까요?”
언젠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라곤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