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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1화 (241/273)

241화 황금의 땅 마계 (1)

마족 병사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공간.

그 중심에 선 화려한 의복 차림의 마족이 이를 갈며 위태롭게 검을 치켜들었다.

“이, 이 미개한 인간족 주제에!”

이어진 마족의 비명과 같은 외침.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자율 공격 무기인 프라가라흐를 날렸다.

-챙!

놈의 레벨이 220인지라 직선으로 날아드는 프라가라흐를 어렵지 않게 쳐 냈으나, 뒤이어 푸른 날개를 펼치며 날아든 내 검을 막아 내지 못하고 목이 베였다.

“엑스트라다운 대사 좋네. 잘 가.”

투과 스킬이 해제된 바리사다를 수습한 나는 허공을 떠올랐던 마족 지휘관의 머리를 낚아채 헬레나에게 던졌다.

그러자 헬레나의 그림자가 내가 던진 마족 지휘관의 머리와 함께 주변에 널브러진 모든 시체를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넓은 초원엔 반짝이는 코인과 아이템들만 남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귀족 나리들의 경험치도 참 짭짤하단 말이야.”

나는 레벨업 메시지와 함께 바닥에 깔린 보상들을 챙기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후속 병력이 오기 전에 빨리 챙겨서 물러나죠.”

“오케이.”

현재 우린 마계의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한 상태다.

마계의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전쟁과 전혀 다른 풍경을 자아냈는데.

기본적으로 모든 병사가 지구를 기준으론 높은 레벨과 뛰어난 신체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성이나 요새 등의 공성전 중심이 아닌, 적의 병력을 밀어내는 라인전이 전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계에선 전선을 유지하고 병력에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는 최전방 지휘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최전방 지휘관이란 존재는 흔히 AOS 게임에서 오더를 내리는 역할과 비슷하다 표현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때문에 마계에선 최전방 지휘관의 질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인식이 강한데…….

나는 전방의 지휘관이 아무리 뛰어나고 똑똑해도 후방에서 이를 받쳐 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최전방 지휘관만큼이나 중요한 게 후방 지휘관이지.’

마계는 지위, 직업에 따라 레벨 한계가 정해져 있다.

즉, 병사의 레벨은 엇비슷할 수밖에 없고, 만약 비슷한 숫자의 적과 충돌이 벌어지게 되면 소모전이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발 빠른 지원으로 우위를 가져오는 후방 지휘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마계에선 후방 지휘관이 전방 지휘관의 지원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질 뿐이지만.

그 요청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후방 지휘관이 무능하면 어찌 될까?

‘참사가 발생하는 거지.’

내가 파고든 게 바로 이 점이다.

기습 및 교란을 통하여 후방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겸사겸사 귀족인 후방 지휘관을 털어먹기도 하고.

덕분에 지금까지 내 손에 죽은 후방 지휘관의 수가 열다섯에 달한다.

심지어 이 중에 후방 최고 지휘관인 후작위의 귀족도 포함되어 있어서 아주 쏠쏠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백호야! 아까 그놈 유일 등급 장비 토했어!”

“오, 그래요!?”

마계의 귀족이라 하면 지배계층을 뜻한다.

당연히 레벨도 높고, 보유한 코인도 많으며, 아이템은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같은 레벨의 특수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경험치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나는 열다섯의 마계 귀족을 잡는 것으로 무려 4번의 레벨업을 했고, 획득한 유일 등급 장비도 12개에 달했다.

유일 등급 장비는 백작위의 귀족이라면 무조건 1개는 나오고, 남작과 자작급은 50% 확률로 나왔다.

후작급 귀족을 잡았을 땐 한 번에 3개를 획득했으니, 뇌가 탐욕에 절여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하, 귀한 유일 등급 장비가 이렇게 잘 나오다니.”

이게 모두 당당하게 마계 귀족을 사냥할 수 있는 전쟁이란 특수성 덕이다.

만약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 마계의 귀족을 죽였다면 우리는 바로 수배되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그야말로 지금의 마계는 내게 있어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만했으면 됐습니다. 복귀하죠.”

“오케이.”

아이템 수습이 끝이 나고, 우린 빠르게 귀환 스크롤을 찢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며, 설치형 웨이포인트가 자리한 마계 내 은밀한 지하 공간에 다다랐다.

이곳은 전쟁에서 용병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리의 비밀 거점이다.

현재 우리 용병단이 소속된 로렌시아 왕국조차 모르는 곳인지라 마음 편하게 획득한 아이템을 정리했다.

“음료수 뭐 드실래요?”

“난 콜라.”

“전 오렌지 주스요.”

[콜라 부탁드립니다.]

[전 하이볼이요!]

마치 한국의 아파트처럼 잘 꾸며진 지하 공간엔 각종 편의 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파티 멤버들은 소파를 두고 바닥에 아이템을 깔아 놓고 정리를 시작했으며, 나는 주방에서 유리컵을 꺼내 늘여 놓은 뒤 냉장고로 다가갔다.

그리고 냉동실을 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이건 정령석으로 작동하는 냉장고.

정령석은 자체적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부가 기능이 있는데, 이 냉장고는 그 정령석 전용으로 개조된 것이다.

-쪼르르르.

나는 각 유리잔에 얼음을 담은 후, 이어서 멤버들이 요청한 음료를 담았다.

비록 헬레나가 ‘하이볼’이란 손이 많이 가는 거슬리는 메뉴를 주문했으나, 기분이 좋은 만큼 큰 불만 없이 요청에 따라 줬다.

“크흐! 시원하다!”

그렇게 우린 휴식을 겸해 아이템 정리를 끝마쳤다.

-끼이이익!

[보물 창고가 개방됩니다.]

나는 그 아이템들을 얼마 전에 획득한 보물 창고에 보관했는데, 보물 창고는 최초의 모습과 달리 약간의 개조가 된 상태다.

[소재]

[소모품]

[스킬북]

[무기]

[방어구]

창고 내부를 이런 식으로 분류해 놨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물 창고의 문을 열었을 때 썼던 황금 열쇠를 다시 사용하자, 아파트 한구석에 생겼던 커다란 입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생각보다 팬드래건 제국의 저력이 별로인데?”

그리고 우린 그동안의 전투에 대한 감상을 내뱉었다.

마계 유일의 제국이라는 팬드래건.

놈들이 100년 만에 일으킨 통일 전쟁에 많은 나라가 긴장했고, 심지어 세계가 다른 나까지 놀라야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팬드래건 제국의 파괴력은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

물론, 나란 이레귤러가 후방을 훼방 놓는 게 큰 몫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팬드래건은 뭔 자신감으로 전쟁을 벌인 거지?”

“그러게 말이야.”

사실 전쟁으로 드러난 팬드래건 제국의 저력을 보면 지구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당장 지금을 기준으로 한 거지, 시간이 지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

어쨌든 지금의 팬드래건 제국의 지지부진한 모습은 우리에게 자신감도 채워 주고 실제 보물 창고도 채워 주는 일거양득의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 * *

지구 최고의 사냥팀이란 자신감 때문일까?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자만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팬드래건 제국의 지지부진한 활약에 비웃음을 흘렸던 게 바로 어제 일이다.

그런데 겨우 하루가 지나, 다시금 팬드래건 제국의 후방을 흔들던 우리 파티에게 닥친 상황은 이제까지의 평가를 뒤엎고도 남았다.

[일대가 공간이동 방해 구역으로 설정됩니다.]

[전체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회복 스킬과 아이템의 효율이 50% 하락합니다.]

[장비 내장 스킬의 위력이 50% 하락합니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몸이 석화되기 시작합니다.]

[포박 스킬에 의해 몸이 구속됩니다.]

“뭣!?”

“이게 무슨?”

갑자기 눈앞에 위와 같은 메시지들이 주르륵 무섭게 떠오르더니, 사방에서 엄청난 수의 공격 스킬이 집중포화처럼 날아들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두 극상급 스킬이었다.

심지어 그중엔 강화된 것으로 보이는 유일 등급 무기의 내장 스킬도 많았다.

당연히 우린 당황했고.

공간이동 방해에 온갖 디버프까지 받게 되니, 날아드는 수많은 스킬을 피하지 못한 채, 가만히 바라만 봐야 했다.

* * *

“저 공격 속에서 감히 살아남을 존재는 없겠지.”

팬드리건 제국의 최정예 부대인 로열나이츠.

이 로열나이츠는 30명을 한 조로 총 10개 조가 존재한다.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5개 조 150명이, 고작 5명+펫으로 이뤄진 소규모 용병단을 토벌하기 위해 움직였다.

지나치게 과한 전력에 로열나이츠의 제1대장인 레벨 260의 카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콰콰콰콰쾅!

최저 레벨이 230인 로열나이츠 단원 150명이 일제히 공격을 날린 덕에 마치 세상이 뒤집힌 듯 무시무시한 지진과 함께 충격파가 일대를 잠식했다.

자신들의 공격에 의해 초토화된 일대를 보고 있으면 도리어 오금이 저릴 정도.

로열나이츠 제1대장 카로스의 반응에 5명의 부대장이 공감한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휘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주변을 덮은 먼지가 날아가자, 카로스를 포함한 로열나이츠의 멤버 모두가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야 했다.

“무시무시하네. 이런 전력들이 있으니 자신 있게 전쟁을 일으킨 거였구만.”

놀랍게도 최소 레벨 230인 로열나이츠 150명의 일제 공격 속에서도 상대는 그을림 하나 없이 멀쩡했다.

상식 밖의 상황.

이 모든 게 윌리아가 지닌 절대 방어 스킬 덕분임을 모르는 로열나이츠로선 두 눈이 찢어지듯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온갖 디버프를 걸었건만 간단히 풀어 버린 그들이 반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서백호와 윌리아, 시에나로부터 커다란 빛이 쏘아졌는데, 그 빛 하나하나에 깃든 기운과 범위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막으려 말고 피해!”

특히 시에나의 공격으로부터 사특함을 느낀 대장 카로스가 그리 외치며 포위망을 풀었다.

-쇄애애애액!

-고고고고고!

다행히 로열나이츠 모두가 레벨 230이 넘는 강자들이었기에 카로스의 지시는 충실히 지켜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다른 공격은 몰라도 시에나의 공격에 스친 이들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모두 시에나가 투과 스킬을 사용한 까닭이었다.

“어딜 한눈팔아.”

“이런 미친.”

-콰아아앙!

더불어 원거리 공격 틈에서 푸른빛의 날개를 가진 서백호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카로스의 목을 노려 왔다.

설마 150:5의 상황에서 자신의 진영을 홀로 빠져나와 접근 공격을 가해 올 줄이야.

비록 서백호의 검을 막아 내긴 했지만, 이내 전신을 짓누르는 충격에 카로스의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렸다.

“뭐, 뭐냐. 네 놈.”

242의 레벨을 가진 인간족 남성.

하지만 그 인간, 서백호와 검을 맞댄 순간 카로스는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뭐긴, 로렌시아 왕국에 고용된 용병이지!”

카로스는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쉬이 밀리지 않을뿐더러.

되레 제3의 손이 쥔 바리사다의 투과 스킬에 의해 한쪽 팔이 날아가고 말았다.

“대장님!”

“대장님!”

부대장들은 그런 카로스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날려 왔지만, 하늘을 나는 자율 공격 무기인 서백호의 프라가라흐와 시에나의 브라흐마스트라가 방해하여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에 카로스는 크게 위기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는 팬드리건 제국의 주축 전력.

이렇게 쉽게 당해 줄 인물이 아니었다.

“어딜!”

-콰콰콰콰쾅!

서백호는 연이어 공격을 퍼부어 대장인 카로스를 빠르게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카로스의 눈이 새파랗게 물들더니, 이내 그의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뇌전이 비산했다.

그 뇌전은 서백호조차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뇌력검을 휘둘러 뇌전을 튕겨 내는 묘기를 보여 준 서백호였지만, 찰나의 틈은 카로스가 자리를 피할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아쉽구만.”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했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서백호를 보며 카로스는 마른침을 삼켰다.

금세 그의 부하들이 서백호의 주위를 둘러쌌지만, 자신들의 대장이 순식간에 팔을 잃고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목격한 덕분에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졌음에도 초반 기세에서 밀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왜, 너 같은 강자가 보잘것없는 로렌시아에 붙어 있는 거지?”

위협적인 서백호의 모습에 의외의 감명을 받은 걸까?

카로스는 공격 명령 대신 서백호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에 서백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돈 많이 주니까?”

용병다운 대답.

하지만 카로스는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상대의 답이 그것이니,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로렌시아 놈들이 너희에게 주는 것보다 3배 더 많은 보상을 주도록 하지. 그럼 이쪽에 오겠나?”

바로 매수였다.

그러나 어느 이야기를 보던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상대가 거절하기 마련이다.

보통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로스는 서백호도 분명 거절할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어? 진짜? 그럼 그럴까?”

서백호는 카로스의 제안에 흥미를 보였다.

아니, 흥미를 보이는 정도를 넘었다.

“보상만 충분하면 로렌시아 왕국 뒤통수 크게 쳐 줄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런 역제안을 해 왔을 정도로.

“그게 무슨?”

매수를 시도한 건 카로스 본인이었으나,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게 아니었던지라 그는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로선 알 리가 없었다.

마계의 전쟁이 확장되는 편이 차라리 서백호에게 좋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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