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인도에서 맞이하는 아포칼립스-242화 (242/273)

242화 황금의 땅 마계 (2)

대한제국은 군림하되, 국가를 직접 운영하진 않는다.

때문에 세계가 대한제국이란 하나의 세력으로 묶여 있긴 해도, 국가는 기존 정부들이 그대로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모두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대한제국은 힘이 있음에도 각국의 정부를 존중하고 체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닌데, 주기적인 감사를 통해 문제가 있는 정부는 갈아 치우겠다고 엄포를 놓아, 부정부패 혹은 독재를 예방했다.

덕분에 전 세계 일반인들 사이에선 차라리 미국이나 중국 등이 패권을 쥐는 것보다 백배 나은 상황 같다며, 대한제국의 ‘군림하되 국가를 직접 운영하진 않는다’라는 풍조를 그리 나쁘게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이 풍조에서 예외인 곳이 전 세계에서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대한제국이 발생한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안보실장님. 영동지방 거점 도시 건설 계획과 관련해 국토부 장관이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일정을 정해 주시면 이곳으로 찾아뵙겠다고 합니다.”

“그래요? 최대한 빨리 일정을 잡으면 어떻게 됩니까?”

“내일 오전 11시쯤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때 정해진 일정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하죠.”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국가의 행정 체계 일부가 대한제국과 섞여 있다.

청와대는 아직도 건재해서 국민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외교 및 국가 안보는 대한제국이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해외에선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가 매우 복잡할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청와대 두 곳의 통합된 행정 부분을 관리하고 있는 덕이었다.

[국가안보실 실장 서인호]

그 인물은 바로 대한민국 국군 중장 출신이자, 황제라고 불리는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였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출세의 출세를 거듭해 대한민국의 핵심 권력이 되었다.

그런데 하필 아들이 커도 너무도 커지는 바람에 청와대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되었고, 결국 서인호가 직접 나서서 아들에게 말했다.

대한제국의 체계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국가를 지배할 거면 확실히 지배를 하고, 그게 아니면 행정을 분리하여 관리를 각국 정부에 맡기라고.

당시의 대한제국은 팽창만 하고, 어떤 식으로 조직을 운영할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한제국은 사냥꾼협회 출신의 젊은 사람들로 이뤄진 조직인지라 행정을 직접 담당하는 건 어려움이 있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현 대한제국의 ‘군림하되 국가를 운영하진 직접 않는다’라는 풍조는 서백호의 아버지 서인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한제국의 체제를 확립한 장본인인 서인호가 변화의 중심에 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절차였다.

-똑똑.

“바쁜가?”

“대통령님.”

“하하,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일해야지. 우리 점심이나 같이하세.”

“네, 알겠습니다. 바로 정리하고 나가겠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은 분명 청와대에 소속된 조직이다.

하지만 이 국가안보실은 대한제국으로부터 행정감사의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것도 대한민국 한정이 아닌, 대한제국 소속 모든 국가에 대한 행정감사를 말이다.

덕분에 표면상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 아래 직급처럼 보여도 실상은 훨씬 많은 권한을 쥔 자리가 되었다.

“자네 같은 인물이 왜 군인이 되었나 모르겠어. 행정이나 정치 쪽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데.”

“잘난 자식 덕에 과분한 자리에 앉은 겁니다. 제 능력이 아닌 거죠.”

“아냐, 그렇지 않아. 자네가 나서 준 덕분에 나도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던 거고, 세계도 이리 평화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거니까.”

대통령조차 눈치를 보며 손을 비빌 수밖에 없는 지위.

그게 지금 서인호의 위치였다.

이어서 두 사람은 청와대 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를 나눴다.

“그런데 요즘 자네 아들이 보이지 않는데, 어디에 있는 건가?”

“어제 통신 아티팩트로 연락했는데, 마계에서 활동하고 있다더군요.”

그때, 대통령이 은근슬쩍 서백호의 이야기를 물었다.

그로선 서백호가 한반도에 없는 편이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당장 대통령의 목을 날려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인물이 서백호인지라 존재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마계? 마족들의 국가가 있다는 그곳 말인가?”

“그렇습니다.”

“듣기로는 무주지의 영주급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곳이라며?”

“네, 어젠 레벨 260의 마족과도 싸웠다더군요.”

“허어? 그게 정말인가?”

“다행히 아무 문제 없었다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걱정될 뿐입니다.”

레벨 260의 마족이라니.

레벨 100조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대통령으로선 쉬이 감이 잡히지 않는 수치였다.

그도 그럴 게 레벨이 50만 되어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괴물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통령은 서인호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서백호의 근황을 알 수가 없으니, 계속해서 물음을 이어 갔다.

“마계에서 마족들과 싸우며 레벨을 올리고 있는 건가?”

“그것도 그렇지만, 따로 목적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 그게 뭔지 물어도 되나?”

“마계에 마족 국가 간의 전쟁이 발생했는데, 거기에 용병으로 참여해 분탕질을 놓을 생각이라더군요. 최대한 전쟁의 규모를 키워서 마계의 전력을 깎아 먹겠다고요.”

“…….”

그리고 서인호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들은 대통령은 말을 잃어야 했다.

“뭔가 혼자 스케일이 다른데?”

“그러게 말입니다.”

헛웃음을 흘리는 대통령의 모습에 서인호도 함께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말년이 되기 전 아들 덕에 이렇게까지 출세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의 아들은 분명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대단한 청년이다.

하지만 자식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나서 걱정이 끊이지 않는 서인호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서인호는 오늘도 아들의 무사함을 빌었다.

* * *

언제나처럼 서인호가 아들 서백호의 무사함을 기도하고 있던 그때.

“하하하! 뱉을 건 뱉고 뒈져!”

서백호는 미친 듯한 광인의 미소를 띠며, 마족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자리한 곳은 얼마 전까지 같은 진영에 속해 있던 로렌시아와 왕국의 왕성.

“배, 배신이다!”

서백호는 은밀히 보고할 내용이 있다며 입성을 원했고, 그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고 있는 로렌시아 왕국으로선 별 의심 없이 허락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서백호와 그 동료들의 예고 없는 공격 난사였으며, 덕분에 왕성은 바로 아수라장이 되고 기사들과 많은 귀족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서백호의 1차 목표는 왕성을 둘러싼 결계를 내부에서 제거하는 것.

이를 제거하면 로열나이츠가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오고 그들과 함께 로렌시아 왕성을 점령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다.

-콰쾅!

-고고고!

“성공이야!”

왕성 전체를 둘러싸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결계는 내부 첨탑을 파괴하면 해제가 된다.

외부에선 이를 파괴하는 게 무척 힘든 일이지만, 내부에선 식은 죽 먹기였다.

듀랜달의 천벌 스킬에 의해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연거푸 떨어졌고, 그것이 결계를 치고 있는 첨탑들을 순차적으로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결계가 해제되고, 서백호 일행의 방문을 환영하며 마중을 나와 있던 몇몇 로렌시아의 귀족들이 악을 쓰며 그에게 삿대질을 했다.

“이런 비겁한!”

“네놈에겐 도리와 의리 따윈 없는 거냐!?”

그들에게 서백호는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최악의 배신자.

하지만 도리와 의리를 따지는 그들의 물음에 서백호는 친절하게 가운뎃손가락을 펼쳐 보여 주었다.

“그딴 게 어딨어?”

그의 목표는 최대한 마계를 흔들어 전력을 깎아내리는 것.

마계 전체가 지구의 잠재적 적인 만큼 놈들에게 의리와 도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한 짓이었다.

차라리 전쟁의 규모를 키워 하나라도 더 많은 마족을 죽이는 게 낫지.

“수고했네!”

잠시 후, 결계가 파괴되자, 팬드래건 제국의 로열나이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백호 파티에 로열나이츠까지 합세하니, 로렌시아 왕국의 왕성을 수호하는 전력이 순식간에 갈려 나가고.

머지않아 왕성 내부에까지 입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건 바로 마족은 신분이 높을수록 레벨이 높고, 강하다는 사실을.

왕성에서 서백호 일행과 팬드래건 제국의 로열나이츠를 기다리고 있는 건.

[로렌시아 마왕 트웰브 / 레벨: 290]

[로렌시아 대장군 공작 제레미 / 레벨: 270]

[로렌시아 대장군 공작 투엔티원 / 레벨: 270]

마왕과 그의 양팔인 대장군들이었다.

* * *

쪽수는 이쪽이 훨씬 많다.

하지만 상대는 드래곤급인 레벨 290의 마왕과 그에 준하는 레벨 270의 대장군들.

심지어 놈들은 하나같이 유일 등급 장비로 전신을 떡칠하고 있는 데다가.

어쩌면 마왕은 내 보물 창고에 잠들어 있는 엑스칼리버처럼 신화급의 장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이 상황이 마냥 유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쪽에도 비장의 무기가 있으니.

“마왕은 내가 맡도록 하지. 대장군들은 맡기겠네.”

[팬드래건 대공 제로투 / 레벨: 290]

왠지 엉덩이춤을 춰야 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마왕급의 인물이 로열나이츠 틈에서 걸어 나오며 여유를 부렸다.

팬드리건이 괜히 마계 유일의 제국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존재였다.

황제를 제외하고도 마왕급의 인물이 또 있다니.

‘간지 작살이네.’

그 역시 전신을 유일 등급의 장비로 휘감고 있을 뿐 아니라, 손에는 엑스칼리버 못지않은 범상치 않은 포스를 가진 검을 쥐고 있었다.

“폐하!”

“폐하를 지켜라!”

곧이어 형평성을 위함인지, 로렌시아 왕국 측에 병력이 추가되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로열나이츠의 대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내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곤 무기를 고쳐 쥐었다.

“와라!”

곧이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로렌시아의 마왕 트웰브가 허공 위로 몸을 띄우며 그리 말했고.

동시에 팬드래건의 대공 제로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며 트웰브 앞에 등장했다.

-콰아아아앙!

드래곤급 두 존재의 충돌.

-콰콰콰쾅!

그 단 한 번의 충돌에 견고하게 지어진 왕성의 천장이 단번에 증발해 버렸다.

이어서 두 사람은 눈에 쉬이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점차 하늘 위로 떠 올랐고, 그 밑에 남아 있던 병력들도 전투를 시작했다.

“이, 찢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내가 달려든 적은 레벨 270의 대장군 투엔티원 공작.

용병으로 로렌시아 측에 참전했을 때 나를 맞이해 주었던 사령관이다.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강해 보였는데, 내 레벨이 그사이 230대에서 240대가 되어서일까?

할 만하지 않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니, 내가 강해져서도 있지만, 지금은 뒤를 받쳐 주는 전력이 너무 막강해서 더 만만하게 여겨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와 우리 파티가 투엔티원 공작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로열나이츠가 남는 대장군과 로렌시아 왕국의 근위대를 상대했는데, 절대 질 것 같지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내 선택이 맞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때문에 나는 마음 편히 눈앞의 투엔티원 공작을 향해 말했다.

“사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 있거든.”

“뭐라?”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이 모두 내 취향이더라고. 그래서 그것들 꼭 가져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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