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환생 검황-1화 (1/122)

1화. 프롤로그

점심시간의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가 틀어 놓은 핸드폰에서 유튜버가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구독자 여러분! 제가 지금 어디에 있냐면요, MM타워 싱크홀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세에상에… 지금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서 옆 빌딩에 올라왔는데요. 보이시나요? 싱크홀입니다! 지름이 무려! 무려! 200미터! MM타워가 통째로 붕괴했습니다! 자, 조금 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미친 듯이 쏟아붓는 비와 전 세계 곳곳에 생겨난 싱크홀로 세상은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하룻밤 사이 긴급재난문자가 50통도 넘게 날아왔으니.

이만하면 학교를 쉴 법도 한데 이놈의 학교는 정도를 모른다.

머리 아파 죽겠다는 내 말을 안 믿는 엄마도 정도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진짜 아파 뒈지겠다고, 내가.’

반 애들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무엇인가에 가로막힌 듯 웅웅거리며 울렸다.

“우리 학교 옆에도 하나 생긴 거 봤냐? 밀레니엄 건물이 아예 사라졌던데.”

“하… 나 거기 피시방에 선금 넣었다고… 내 세상이 무너졌어…….”

“인성 봐라. 수십 명이 죽었다는데 니 선금 생각이 나냐?”

“니 돈 아니라 이거지?”

진통제를 여섯 개째 먹었는데도 두통은 전혀 가라앉지 않았다.

누군가가 수천 개, 수만 개의 바늘로 머릿속을 찌르는 것 같다. 정수리에서 뒤통수까지, 어디 한 군데도 빠짐없이 모조리 격렬하게 아팠다.

돌아버릴 것 같다.

아니, 이미 돌았나?

‘…대체 이게 뭐냐고.’

전날 밤부터 시작된 두통과 함께, 머릿속으로 무엇인가가 마구 밀어닥치는 중이었다.

-해동검황이라……. 어차피 우물 안 개구리지. 멀리까지 걸음하였으니 이 빈도가 중원을 대표하여 무당의 검을 보여주겠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싸늘하게 내뱉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돌 맞은 개구락지처럼 나자빠졌다.

-그래봐야 세외사궁에도 들지 못하는 소국의 작은 문파일 뿐.

승복을 입은 대머리가 건방을 떨다가 철푸닥 나자빠지고,

-무림맹의 공적! 소국의 칼잡이 주제에 감히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를 암습하여 영단을 탈취하고 기물을 도적질한 죄를 묻겠노라!

검을 쥐고 도를 쥐고 또…….

휘황찬란한 무기를 든 수십 명의 인간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가 칠푸닥 팔푸닥 나자빠졌다.

-무림맹의 제갈표입니다. 맹주께서는 검황께서 멸마단에 합류해주시기를 간곡히 청하고 계시옵니다. 죄 없는 백성들이 마교의 지배하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검황께서 이들을 저버리지 않으시리라…

-중원에 강자들이 그리도 많은데 꼭 걸음해야 하겠습니까? 사형께서 가신다 한들, 저들이 이 고마움을 기억하겠습니까?

-멸마단에 합류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중원 무림은 검황의 행적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나 귀신 들렸나? 아니면 정신분열, 그런 거?’

누군가가 내 머리를 툭툭 쳤다.

손목뼈부터 시작해 팔등을 뒤덮은 옅은 갈색의 점이 내 게슴츠레한 시야에 들어왔다.

남지호가 스테인리스 컵을 내밀고 있었다. 급식컵 안에 연갈색의 고기가 수북했다.

그래도 친구라고 나 챙기는 건 남지호 너뿐이구나. 뭐, 고맙기는 한데…….

“야. 한지혁. 이거 먹고 싶다며. 처먹고 자라고, 새끼야.”

달달고소 보들보들 돼지갈비.

오늘 급식 메뉴였다. 월요일부터 기대하고 있던 점심이었는데.

…도저히 못 먹겠다.

“됐으니까 치우라고.”

“…너 진짜 아프냐?”

“새끼야. 지금까지 뭐 들었냐고.”

“또 게임하다가 밤샜나보다 했지.”

그런 날이 많기는 했지. 그래도,

“오늘은 진짜거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시 얼굴을 책상에 묻으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의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뭐… 뭐야?”

“지진이야?!”

“아싸, 조퇴 각이다!”

“이 미친자야! 지금 조퇴가 문제… 으아악!!”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땅 전체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납치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마교가 사술을 부리는 듯합니다. 기운이 심상치 않습니다.

-저곳이네. 저곳에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이런 강력한 마기는 들어본 적도 없네. 검황 자네도 느껴지는가?

귀를 통과하지 않고, 머릿속을 바로 울리는 듯한 목소리들.

눈을 통과하지 않고,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듯한 모습들.

검을 든 이.

도를 든 이.

철퇴를 든 이.

내 곁에 선 이들이 풍기는 날 선 살기가 피부를 찌를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선두에 선 내가, 입술 끝을 비스듬히 끌어 올렸다.

-그럼. 느껴지고말고. 대체 무슨 짓거리를 꾸미는 건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내가, 검을 치켜들었다.

검이 그려낸 하얀 빛무리에 흑의인의 목이 잘려나갔다.

매끄러운 단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붉고 찐득한 피가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앞을 뚫을 테니 잘 따라붙으라고. 뒤쳐지면 다 뒈진다?

-존명!

-뒤를 따르겠습니다!

발이 바닥을 박차고, 내 몸이 동굴의 정면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나는 끊임없이 날아드는 흑의인들을 향해 권을 지르고 검기를 흩뿌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흑의인이 내지르는 비명이 귀를 찔렀다.

남지호의 비명이 귀를 찔렀..

‘남지호의……?’

가물한 시선에 넙대대한 남지호의 얼굴이 들어왔다.

몇 번 눈을 껌벅이자,

기묘하게 흐릿하던 현실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흡뜬 눈.

벌어진 입.

공포에 휩싸인 얼굴.

어디선가 짭쪼름한 오줌 냄새가 났다.

“괴, 괴물이다…….”

누군가가 더듬더듬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바싹 마른 내 귓바퀴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남지호와, 반 애들의 경악한 시선들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통째로 박살난 교실 벽.

뻥 뚫린 구멍 앞에 네 발을 가진 무엇인가가 서 있었다.

머리 한 개에 얼굴이 양쪽으로 붙어 있고, 꼬리가 세 개, 기둥만큼 두꺼운 다리, 교탁의 다섯 배는 되어 보이는…

‘…여우?’

뾰족한 세 갈래 혀가 얼굴 양쪽의 긴 주둥이를 빠져나왔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갔다.

먹이를 앞에 둔 맹수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 같다.

팔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주 불길한 기운.

분명, 언젠가 느낀 적이 있는-.

우지끈!

책상이 단번에 박살났다.

동시에, 내가 남지호의 손목을 잡아챘다.

“지, 혁아… 이게… 뭐야. 이거 현실이냐……?”

“닥치고 뛰라고!”

계단은 아수라장이었다. 내 머릿속 역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얼이 빠진 남지호를 잡아끌며 구르듯 계단을 뛰어내렸다.

“괴물이다!”

“살… 살려줘! 내 다리! 으아악!”

벽이 박살나고,

조각난 시멘트가 튀어 오르고,

도약한 괴물이 누군가의 무엇을 우적우적 씹었다.

집채만한 거미가 넘어진 옆 반 반장의 다리를 산 채로 물어뜯고 있었다.

인간의 하체에 물고기의 얼굴을 붙인 괴물이 창을 들고 담임의 가슴을 꿰뚫었고,

거대한 녹색 괴물이 포효하면서 등에서 튀어나온 집게다리 같은 무엇인가를 마구 휘둘러대고 있었고,

구름으로 꽉 막힌 어두운 하늘, 운동장의 한가운데에 무엇인가가 떠 있었다. 날개, 다리, 네 개의 긴 모가지…….

그것이 입을 벌릴 때마다 번개 줄기가 뻗어 나가 교문을 빠져나가려는 선생과 친구들을 내리쳤다.

급식실로 내려가는 계단과 운동장, 교문과 그 바깥의 4차선 도로 모두가 죽음으로 가득했다.

친구들의 비명소리가 귀를 때리고, 피 묻은 아디다스 슬리퍼가 허공을 한 바퀴 돌아 피 웅덩이 위로 떨어졌다.

‘피 냄새, 비명소리…….’

익숙하다.

대한민국의 19세 고등학생에게 죽음이 익숙할 리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이게 진짜로 ‘나’의 기억이라고……?’

머릿속을 가득 메운 환영과 환청은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었다.

혈향(血香)이 자욱한 어두운 동굴.

그 속을 내달리며, 기억 속 내가 연신 검을 휘둘렀다.

가장 앞에 서서 가로막는 이들을 베고, 찌르고, 옆에서 덮쳐드는 흑의인의 허벅지를 동강내며 어둠을 향해 쇄도했다.

긴 통로의 끝, 내실을 가린 두터운 철문.

검을 휘둘러 그것을 베어내자,

짙은 마기(魔氣)가 피부를 찔렀다.

열세 개의 횃불처럼 어둠이 일렁였다.

마교의 본산에서도 가장 깊은 곳.

내전의 중앙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짙은 어둠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둠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소용돌이치며 한 점을 향해 모여드는 중이었다.

교주와 열두 명의 친위대가 어둠과 나의 사이를 가로막듯 섰다.

-이 정도의 마기라니. 대체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인지…

권왕(拳王)이 침음을 흘렸고,

-멸마단이라. 이름 한 번 거창하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곧 새로운 하늘이 열릴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그 눈으로…

마교의 교주가 광오하게 웃었으며,

-혓바닥이 기네. 요즘 마교 교주는 혓바닥 길이로 뽑냐?

내가, 놈의 말을 덥석 잘랐다.

-…무지한 인간이 검황이라는 허명에 휩쓸려 죽을 자리를 찾아 나섰군. 그 좁은 땅에 박혀있었더라면 목숨은 보존했을…

스파앗.

내 검에서 발출된 흰 빛줄기가 놈의 말을 한 번 더 잘라냈다.

어두운 동굴, 그 안에 들어찬 짙은 마기를 절반으로 가르며 날아간 빛줄기는 놈의 명치에 격중했다.

뒤이어.

카캉!

-자기소개 하냐?

교주라는 이름답게 내 한 수가 허공에 흩어지고.

뒤이어 놈의 검과 내 검이 거세게 충돌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피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다시 휘둘렀다.

놈들이 쓰러지는 만큼 내 뒤에 섰던 이들도 스러졌다.

마침내,

내 검이 마지막으로 남은 교주의 심장을 꿰뚫었다.

검을 뽑아낸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하늘이… 새로운… 하늘…….

교주와 친위대가 모두 죽었으나 어둠은 여전했다.

소용돌이치며 모여들던 어둠은 이제 하나의 형체를 이루려고 하고 있었다.

‘새로운 하늘이라.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저 마기가 마음에 걸리는군.’

아주 불길하고, 아주 짙은 마기.

격렬한 전투의 끝에 남은 내력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기운을 끌어올렸다.

기맥을 타고 오른 진기가 검날을 타고 솟아올랐다.

검이 눈부시게 빛났다.

내 발이 바닥을 걷어차고, 허공으로 몸이 솟구쳤다.

한껏 젖혔던 어깨를 거세게 접으며,

내가, 검을 휘둘렀…

빠각!

어디선가,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터진 둑으로 쏟아지는 물처럼 기억이 넘실거렸다.

마치 지금처럼, 축축하고 찐득거리던 공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용돌이치던 어둠.

죽는 순간까지 개소리를 지껄여대던 마교…의 교…주……?

‘내가 검황이라고? 멸마단에 합류해 십만대산을 공격해? 웹툰을 너무 봤나? 중2병은 진작 나았는데? 이거 꿈? 근데 꿈이라기에는….’

너무 아프다. 너무너무너무 졸라리 아프다.

코로나 걸렸을 때보다 서른다섯 배는 더 아프다.

딱 죽기 직전처럼, 가슴팍이, 팔이, 다리가, 발가락이, 진짜 엄청 심각하게,

“아으악악!”

엄청난 격통이 단번에 현실감을 끌어올렸다.

온몸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나는 유리문이 박살난 급식실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옆에도, 뒤에도, 앞에도, 모두 시체 투성이였다. 내 앞자리의 애, 옆반 애, 옆반 담임쌤, 학생부장쌤, 국어쌤…….

모두 죽어 있거나, 죽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여우괴물의 앞발이 내 가슴팍을 짓이기듯 내리누르고 있었다.

거대한 앞발 아래 부러진 갈비뼈가 피부를 뚫고 빠져나왔다.

가죽에 뚫린 구멍에서 새어나온 피 때문에 교복이 온통 붉게 젖었다.

내 머리통을 향해, 괴물이 크게 아가리를 벌렸다.

세 줄기 혀.

살점이 묻어 있는 이빨.

어금니 사이에 낀 피 묻은 천조각.

벌어진 아가리가 슬로우모션 처리한 영화의 화면처럼 느릿느릿 다가왔다.

‘죽어? 이렇게 죽는다고? 나 검황이라며어어!!!!’

.

.

.

3학년 3반 28번 한지혁.

검황이었던 전생을 깨우치자마자,

죽다.

***

1차 블랙데이.

갑작스럽게 전 세계 곳곳에 나타난 싱크홀에서 괴물이 튀어나온 날.

나는 그날 죽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그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제는 균열이라 불리는 그것이 대체 왜 생겨났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 뒤에 이어진 난리통에 적응하느라 그런 걸 탐구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날 세상은 뒤집혔다.

대학은 사라졌고, 뒤이어 기업도 사라졌으며, 결국 대한민국도 망했다.

이제 모든 이들의 꿈은,

마력을 가진 각성자가 되어, 힘을 얻고, 강해지고, 강해지고, 강해지는 것.

말하자면 내 전문 영역이다.

‘진짜로 환생한 검황이더라고, 내가.’

나는 한지혁의 생각과 달리 미치지도 않았고, 정신분열도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검황 시절의 기억대로 운기조식을 하자,

아주 작은 단전이 생겨났으므로.

.

.

.

1차 블랙데이로부터 30년 후.

석유도 파낼 수 없고 전기도 만들 수 없어 고철덩어리가 된 자동차 대신, 길들인 은빛갈기늑대가 끄는 수레가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수레 아래 거꾸로 매달린 채 기감을 끌어 올렸다.

‘이제 각성을 해서, 내력과 마력을 한 몸에 지니면…….’

덜컹.

덜컹.

수레바퀴가 패인 아스팔트 위를 지날 때마다 몸 전체가 덜컹거렸다.

승차감이 아주 좆… 좋지 않았으나 참을 만했다.

기다리던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바람을 타고, 수레를 호위하는 각성자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정지. 정지하세요.”

“…뭡니까?”

“앞에 고블린이 매복하고 있답니다.”

고블린.

불속성의 하급 괴물이다.

그리고 곧 내 각성의 제물이 될 놈들.

‘각성만 하면 그 새끼들부터 박살내야지.’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던가?

전직 검황인 나에게 10년은 너무 늦다. 감히 날 후두려 패고 또 패? 거기에 호적에 이름도 없는 불쌍한 애들을 착취했겠다?

100번 때려도 분이 풀리지 않는 그놈들은 내가 각성만 하면 이제 뒈졌다고 봐야 한다.

곧 내 팔과 다리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미처럼 수레 아래 매달린 내 몸이 선두의 수레를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다 뒈졌어.’

환생한 검황의 위대한 첫 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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