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스타팅 포인트 (1)
환생한 내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웹툰이고 웹소설이고 환생하면 다들 편하게 성공하던데. 전생을 깨닫자마자 뒈졌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소설은 소설이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다시 태어난 내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비로소 두 발로 서고 어마, 맘마, 같은 단어를 지껄일 즈음.
전 세계는 균열에서 튀어나온 괴물로 들끓고 있었다.
아직 망하기 전의 대한민국도 괴물 퇴치를 위해 군대를 총동원했다.
괴물을 죽이고 각성해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된 각성자들이 시시각각 괴물과의 전쟁에 합류했다.
엄청난 숫자의 군인과 각성자, 민간인이 전사했다. 그래도 괴물을 상대로 승기를 잡는 듯해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그 ‘위대한 전진’의 시기를 망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중국이 러시아에 핵을 쐈다. 시베리아의 괴물들이 계속 중국의 국경을 넘어 남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러시아는 참지 않았다.
미국이 참전하고, 뒤이어 유럽도 전쟁에 휘말렸다.
한반도? 당연히 휩쓸렸지.
당시 나는 네 살이었다.
내 세 번째 삶은 이전과 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전생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네 살은 고작 기억만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에는 지나치게 어렸고, 국적 모를 폭격기가 서울의 하늘을 지나간 날에,
나는 세 번째로 죽었다.
그리고 또 다시 태어났다.
그 즈음 2차 블랙데이가 시작되었다.
6년 넘게 잠잠했던 균열이 다시 괴물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블랙데이 내내 균열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각국은 다급하게 휴전을 했다.
하지만 지상의 현대화기는 이미 상당히 소진된 후였다. 공장은 파괴되었으며, 세계의 연결은 끊겼고, 원자재가 파묻힌 지하에는 괴물이 우글거렸다.
각성자.
오직 각성자의 힘에 기대어 괴물과 맞서야 했다.
엄청난 수의 민간인과 각성자가 사망했다.
이번에는 군인은 별로 죽지 않았다. 남아 있는 군대가 많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 2차 블랙데이에 겨우 살아남았다.
그러나 일곱 살을 넘기지 못하고 또! 죽었다. 제기랄….
다시 3차 블랙데이가 터졌고, 몇 년 후 4차 블랙데이가 터졌다.
나는 그 동안 죽고 태어나고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했다.
검황의 기억이 있으면 뭐하냐고.
1갑자 내공은커녕 단전 만들기도 전에 뒈지기 일쑤인데.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지금 내 나이는 어언 열다섯.
검황 시절에 비하면 구울 발톱만큼이지만 밖에서 쉽게 죽지는 않을 수준의 내력이 단전에 쌓여 있다.
12시간 혹독하게 애들 노동력을 착취하는 빌어먹을 보육원에서 이 내력을 쌓기 위해 내가 얼마나 죽을 똥을 쌌는지 말도 못한다.
하지만 이제 그 원장놈과 감독놈들에게 받은 대로 돌려줄 일만 남았지.
오늘 새벽,
나는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희망보육원의 담장을 뛰어넘어 바깥세상으로 향했다.
주홍빛 아침노을로 물든 바깥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쯤 무너진 채 방치된 공장.
중앙분리대가 박살난 국도.
파헤쳐진 땅과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나는 기감의 그물을 넓게 펼쳐 주위를 경계하며 우그러진 도로를 따라 내달렸다.
각성하기 전에 오크 같은 중급 괴물과 마주쳤다가는 그대로 사망이니깐.
‘그따위 경험은 네 번으로도 충분하다고.’
이번에도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 이미 몇 번 죽을 위기가 있었다.
내가 앞으로의 삶에서 이만한 내력을 쌓을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난 세 번의 삶에 비추어 보면 4분의 1.
그러니까 나는 이번 생을 아주 오래오래 누릴 생각이다.
‘일단 각성부터 하고.’
제 힘으로 괴물을 죽이면 각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각성자의 속성은 최초에 죽인 괴물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
가장 흔한 괴물인 구울은 대지속성의 하급 괴물.
기왕 각성을 하는데 대지속성이라니. 안 될 말씀이다.
‘전투에 가장 적합한 건 불속성이지.’
다행히 내력이 바닥나기 전에 이 수레를 발견했다.
허리에 장검을 매단 두 명의 각성자가 일행의 선두와 후미에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흩어진 틈을 타 수레 바닥에 매달렸다.
사삭. 사사삭.
어느덧 내 몸이 선두의 수레에 도착했다.
나는 수레 밑에 매달린 채 기감을 돋우며,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각성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열다섯쯤 되겠는데.”
“기다렸다 갈까요?”
“그러자. 고블린 놈들 참을성 없는 거야 유명하니까.”
그들의 말대로 정면의 수풀에서 괴물 특유의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다.
끈적하고 축축한. 어렴풋이 마기(魔氣)를 떠올리게 하는….
쉭쉭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기도 잠시.
“온다. 명칠이 네가 오른쪽을 맡아라.”
“예. 선배님.”
고블린들이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축구공처럼 튀어나온 배. 문어처럼 맨들맨들한 머리통. 녹슨 무기를 든 앙상한 팔뚝.
흙먼지가 뿌옇게 올랐다. 놈들은 네 개의 다리를 적극 활용하여 전속력으로 수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이 얼마간 가까워졌을 때 명칠이가 오른쪽을 향해 돌격했다.
그 순간.
나는 수레 바닥에서 빠져나와 땅을 박찼다.
벼락같은 속도로 공간이 좁아들었다.
선배님이라는 아재의 당황한 얼굴이 곁을 스치고, 고블린이 단번에 가까워졌다.
“쉬익! 쉬이이익!”
귀를 긁는 쇳소리가 순식간에 커졌다.
뒷발로 바닥을 걷어찬 고블린 두 마리가 나란히 단검을 내질렀다. 두 개의 단검이 정직한 직선을 그리며 내 가슴팍을 뻗어 들어왔다.
내가 몸을 옆으로 뒤틀자,
단검 하나가 가슴 앞을, 단검 하나가 등 뒤를 스쳤다.
상체를 거세게 회전하며 재빨리 검을 뽑았다. 발검과 동시에,
촤앗.
검날이 고블린의 어깨를 베어냈다. 찐득한 녹색의 피가 잘려나간 단면으로 흘러내렸다.
오른발을 깊숙이 내딛으며 검을 좌하향으로 내리그었다.
검기로 날카로워진 싸구려 강철검이 고블린의 몸통을 반으로 갈랐다.
“쉐킥! 쉐이크쉣!”
광분한 고블린 놈들이 단검을 마구 휘둘러댔다.
재빨리 허리를 굽혀 어깨를 향해 날아오는 단검을 회피하고, 눈앞의 복부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검끝이 얇은 가죽을 꿰뚫고 뼈를 부수며 몸통의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쿠당!
어깨로 놈을 밀치며 빠르게 검을 뽑아냈다.
바닥에 고블린 시체 두 마리.
내 주위에 살아 있는 고블린 다섯 마리.
그리고 그 가운데에 나.
“저거, 뭐 하는 새끼야?!”
당황해 멈춰섰던 선배님이 뒤늦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길다란 장검에 불꽃이 너울댔다.
하지만.
‘이건 내 몫이거든.’
단검과 장도, 도리깨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고블린이 구울과 더불어 최약체로 꼽히는 하급 괴물이지만, 그래도 괴물은 괴물.
지금의 내 내력으로는 받아내기 힘든 거센 공격이 세 방향에서 쇄도해 들어왔다.
하지만, 전투라는 게 어디 힘으로만 하는 거냐고.
내 전생이 검황이다. 한 번 검을 맞댄 것만으로 그 검로(劍路)를 훤히 파악하는 미친 재능의 소유자가 바로 나라는 소리.
나한권(羅漢拳)이니 태극혜검(太極慧劍)이니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이니 하는 상승 무공들도 나와의 비무 한 번에 파훼되기가 부지기수.
땡중들과 말코도사들은 재능의 차이를 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사문의 비기를 훔친 도둑놈이라며 이를 갈고 달려들었지만….
그렇게 매를 벌었지, 뭐.
주제 파악 못하는 강호인은 후려맞아야 하는 법이니까.
내 머릿속에는 실로 수천, 수만 가지의 검법과 보법과 권법이 들어 있다.
그 중 세 방향에서 동시에 들이치는 공격을 회피하고, 공격 밖에 모르는 놈들을 박살내는 데에 가장 적절한 선택은…
‘이거지.’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의 보법을 밟아 날아드는 공세를 파훼하고 연이어 멸절검(滅絶劍)의 초식을 운용했다.
검이 만들어낸 잔영이 거센 소나기처럼 내 주위를 에워쌌다.
스팟. 파아앗.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섯 마리 고블린의 목이 차례로 날아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고블린 사체 뒤로 얼빠진 표정의 두 각성자가 보였다.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를 인간이 갑자기 고블린 일곱 마리를 때려잡았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하지만.
‘내가 더 황당하다고.’
각성을 목표로 죽어라 내력을 쌓았다.
내력? 좋지. 근데 내력 쌓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주 많이.
당장 박살내야 하는 놈들이 있다. 이미 오래 참았다.
8년 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오크 떼가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운 날. 그 꽁무니를 따라온 구울들이 널브러진 시체를 물어뜯은 날.
내 수련용 목검은 구울의 질긴 가죽에 막혀 부러졌고, 나는 울어 젖히는 동생의 입을 막은 채 벽 사이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틈새 너머에서 구울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체를 뜯어먹고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겨우 일 년 남짓 쌓은 내력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폐허가 된 동네에 검을 차고 철퇴를 매고 거도를 든 사내들이 나타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들은 골목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던 구울들을 쉽사리 때려죽이며 우리가 숨은 곳으로 다가왔다.
-살려주세요…!
나는 틈새를 빠져나와 외쳤다.
-애들이 많이 어리네.
얼굴에 긴 칼자국이 난 사내가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이 ‘쓸모가 없다’는 의미임을 쉽게 이해했다.
-제가 힘도 세고, 동생이 못하는 만큼 제가 더 많이 할 수 있어요. 정말로 잘 할 수 있어요.
-그래. 착한 형아네. 우리 형아는 몇 살일까?
-열한 살이요.
나는 얼른 세 살을 올려붙였다. 그들이 어떤 이들이든, 그들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대로 있으면 미래는 두 가지뿐이었다.
구울을 피해 숨어 있다가 굶어 죽든지. 혹은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갔다가 괴물에게 찢겨 죽든지.
-데려가자.
-애새끼는요?
철퇴의 물음에 칼자국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젓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내 뒤통수를 내리쳤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희망보육원의 어두침침한 방구석에서 깨어났을 때 동생은 없었다.
-데려왔는데, 네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죽었어. 애가 병에 걸려 있었더라고.
물어물어 찾아간 철퇴놈은 검지로 제 콧구멍을 쑤시며 대꾸했다.
나는 어떤 말도 되묻지 않고 돌아 나왔다.
되물어 봐야 소용없는 짓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둡고 차가운 방구석에서 고열에 들떠 끙끙 앓으며, 나는 다섯 번째 삶도 이렇게 끝나리라 예감했다.
검황의 환생이라지만 내 몸은 아이의 그것일 뿐.
부모와 동생의 죽음은 아이가 견디기에는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 삶은 끝나지 않았다.
-림아. 정신 차려라. 이거, 먹어라. 옳지…. 잘 하네. 그래, 먹어야 살지.
방장 최지수의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뒤이어, 낡고 얇은 모포가 내 차가운 몸을 덮었다.
이일삼이 식당에서 몰래 고블린 염통구이를 훔쳐오고, 이이삼이 딱딱하고 질긴 고기를 잘게 다지고, 정하영이 쓰러진 내 대신 야간 당번을 자청했다.
그저 자리가 남아 배정받은 32호실.
그 방의 어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나는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 마을에서 나를 데려온 각성자들은 희망보육원의 원장과 감독들이었다.
이름과 달리 희망은 전혀 없는 곳이었다.
감독들은 채찍을 휘두르며 애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다치거나 아픈 애들이 생기면 괴물이 들끓는 담장 바깥에 내다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담장 바깥이 그보다 더한, 괴물이 들끓는 지옥이었기 때문일 뿐.
각성을 하면.
각성만 하면.
이 벌판에 들끓는 괴물들을 싸그리 때려잡아 순식간에 마력을 쌓은 뒤 당장 그놈들을 박살낼 예정이었는데.
‘나… 망한 건가?’
나는 들끓는 기혈을 가라앉히며 두 각성자를 향해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다 덮은 마스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애써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물었다.
“각성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나도 숱하게 들어서 안다.
모든 보육원 애들의 단 하나의 꿈은 각성자가 되는 것.
각성이라는 단어는 하루 오백 번쯤 들을 수 있다.
물론 그 누구도 경험하지는 못했으니 그저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였으나.
…아무 느낌이 없다. 전혀, 낫띵, 네버 느낌이 없다.
표정을 수습한 선배님이 대꾸했다.
“우리는 계룡의 청응파다. 신분을 먼저 밝혀라.”
“각성에 환장한 행인입니다. 이것만 대답해주세요. 각성하면 어떤 느낌이죠?”
선배놈이 얼굴을 찌푸리며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이래서 조용히 숨어 있다가 고블린만 잡고 얼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다행히 명칠이가 제 이마를 벅벅 긁으며 끼어들었다.
“어… 지금 싸우시는 거 보니까 몸놀림이 어떻게 봐도 각성자이신데요.”
“아닙니다.”
“진짜 아니면 말이 안 되는데.”
“아니고요. 질문에 대한 대답 좀 해주시죠. 제발 부탁입니다.”
“음… 몸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해야 되나? 풍선에 바람 불어넣고 손으로 누르면 바람이 한쪽으로 몰리잖아요? 그런 느낌?”
설명은 엉망진창이지만 하나는 알겠다.
‘…나 각성 못했네.’
“미친놈이잖아. 뭘 대꾸해주고 앉았어.”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요.”
“대체 어디가.”
“눈이 맑잖아요.”
멍하니 선 내 귀로 선배놈과 명칠이의 의미 없는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다가온 명칠이가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청응파라는 이름 아래 계룡시 어쩌구 하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저희는 깡패, 조폭, 그런 데 아니구요. 청응파, 아시죠? 그래도 우리가 계룡에서는 잘 나가는 편인데. 그쪽 같은 인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보니까 소속 없으신 거 같은데 생각 있으시면 언제 한 번…”
하하.
하하하.
나는 경공을 펼쳐 자리를 벗어났다.
***
일반인이 괴물을 잡아 각성할 가능성은 1% 미만.
하지만 내가 누구냐고.
환생한 검황이다.
해동검황(海東劍皇)이라 나를 칭하던 중원의 무림인들도 결국 그 별호에서 ‘해동’이라는 글자를 떼어내지 않았던가.
무(武)의 정점에 선 존재.
그 대머리 땡중놈들과 말코도사들이 혀를 내두르던 천하의 무재(武才)…
가 바로 나인데!
고로 나는 내가 각성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내 힘으로 괴물을 베어내기만 한다면. 그 정도 내력을 쌓을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근데 이게 안 되네?
하하. 하하핳핳하. 핳하…….
선배놈과 명칠이의 의뢰를 도와준 뒤로도 나는 망가진 6차선 도로와 도로에 연결된 샛길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수레를 습격하는 고블린을 때려잡았다.
가을이라 대전성으로 들어가는 곡식 수레가 많기도 많았다. 따라서 고블린도 미친 듯 날뛰었다.
오전 내내 때려잡은 고블린이 거의 백 마리. 혹시 불속성이나랑 안 맞나 싶어 나중에는 구울이고 세이렌이고 가리지 않고 보이는 족족 때려잡았다.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혹시나 싶은 것도 다 했다.
하지만 끝까지 각성은 하지 못했다.
각성을 하면 몸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했는데 나는 머리가 끓을 지경이다.
절로 깊은 한숨이 샜다.
첫 번째 단계부터 계획이 어긋났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나는 이번 삶을 아주 오래오래 누려야만 한다.
다시 죽는 일도, 다시 태어나는 일도, 정말로 사양이니까.
‘안 된다 이거지. 이렇게 된 이상, …월악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