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잔의 독 (2)
객잔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워낙 온갖 사건이 다 일어나는 곳인 만큼 단서 한두 개로는 추측도 힘들었다.
당장 기억나는 사건만 해도 무림인들끼리 싸우다가 안의 집기를 다 박살내고 공멸한 사건, 무림인들끼리 싸우다 독을 뿌려 다른 손님들까지 중독되어서 전멸한 사건, 아무 관계 없어보였던 객잔의 세 손님이 사실은 공범이었던 사건, 무림인들끼리 싸우다 불이 나 몰살된 사건...
...이상하게 범인으로 무림인들이 많았다.
하여간 객잔이 파악하기 쉬운 곳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점소이가 속이 보이는 놈이었다.
처음 영안으로 봤을 때부터 알 수 있었다.
포쾌들한테 전혀 겁을 먹지 않았는데 겁먹은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개 점소이치고는 너무 냉정하고 침착한 대응에 연우혁은 바로 점소이가 범인인 사건부터 머릿속에 나열했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점소이, 독으로 쓰러진 주인, 객잔에 머무르는 유일한 손님...
특징을 다 확인한 연우혁은 붙잡기에 앞서 당문의 무인부터 불렀다. 나중에라도 점소이 놈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했다는 걸 깨달으면 꽤 불쾌해할 테니 말이다.
연우혁이 아직 무림 경험이 많지는 않았지만 무림인들에게 책잡힐 여지를 주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아예 엮이지 않도록 깔끔하게 처신해야 후일이 편했다.
“아닙니다!!”
점소이가 한 발 늦게 비명을 질렀다. 겁먹은 시늉을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대체 뭣 때문에 저런 의심을 받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염병,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거지? 분명 완벽했는데!’
사 포두의 식사에 넣은 독이 들켰을 리는 없었다.
효과가 약한 대신 검시하기 힘든 독을 썼고, 그것도 주방 창고의 식재료들 사이에 교묘하게 숨겨놔서 외부인들은 찾는 게 불가능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계획을 세웠던가.
동료 도둑을 배신해 죽인 걸 못 본 척 해줄 테니 노비처럼 일하라던 포두 놈의 밑에서 숨을 죽이고 이빨을 갈아왔었다.
이번에 포두 놈이 지위를 잃어버린 건 하늘이 준 기회였다. 포두 자리도 잃어버리고 다쳐서 드러누운 놈한테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시름시름 앓게 해서 죽인 다음 이 객잔은 보상으로 받아갈 생각이었는데...
‘이 포두 놈은 당문이 무섭지도 않은 건가? 무슨 배짱이야?’
점소이는 겁먹은 척 고개를 푹 숙인 상태에서 이를 악물었다.
새로 온 포두 놈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래봤자 포두 놈이 포두 놈이지’하며 비웃었었다.
한경 인근의 도둑 중에서 포두를 겁내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 운 나쁘게 그 자리에서 붙잡히는 게 아니면 포두는 도둑을 찾아낼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오늘 점소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새로 온 포두를 얕본 게 되었다.
어떤 핑계를 대서든 아예 객잔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포두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쇼! 목숨만 살려주십쇼!!”
점소이의 눈가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보고 있던 포쾌들과 당령까지 현혹시키는 연기였다.
“포두님. 이 놈이 그럴 만한 배짱은 없어보이는데요...”
“사 포두, 아니 사 포쾌가 만만한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이런 겁 많은 놈이 수작을 부리지는 못할 겁니다.”
연우혁은 무시하고 지시를 내렸다.
“창고 안에 들어가서 돼지 염통을 찾아봐라. 그 안에 독을 숨겨놨을 거다.”
팍!
엎드려 있던 점소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을 솟구치게 하더니 바로 달려 나가려고 했다. 포쾌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돌변이었다.
그러나 점소이의 움직임은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 점소이의 오금 쪽 위중혈에는 수전이 박혀있었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 놀라운 암기술이었다.
점소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자 점소이는 공포에 질려서 외쳤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귀신에 홀려서 나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 저 놈이 진짜로...!”
“사 포두한테 독을 먹였단 말인가?!”
포쾌들은 경악해서 점소이를 노려보았다.
저런 놈한테 전부 다 속아 넘어갈 뻔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당 소저. 전말은 이렇습니다.”
연우혁은 발버둥치는 점소이를 내버려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줬다.
도둑 출신이던 놈이 사 포두한테 협박받아서 무급으로 일한 탓에 원한을 깊게 품었고, 사 포두가 몰락한 틈을 타 완전히 죽이려 했다고.
물론 사람이 진짜 죽어나가면 주변 사람이 의심을 받기 마련인 만큼 점소이 놈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때맞게 당문의 무인이 객잔에서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이 점소이를 대담하게 만들었다.
악랄하고 괴팍한 걸로 소문난 당문의 무인이라면 의심받기 딱 좋은 상대 아닌가. 어떤 포두도 당문의 무인을 심문하지는 못할 테니 더더욱 좋았다.
“저런 죽일 놈의 새끼가!”
“우릴 감히 뭘로 보고...!”
속았다는 걸 깨달은 포쾌들이 분노를 터뜨리며 점소이를 짓밟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점소이는 칠공(七孔)에서 피를 내뿜으며 즉사했다. 포쾌들은 기겁해서 뒤로 넘어졌다.
“독, 독, 독...!”
당령은 우아하면서도 단호한 동작으로 손을 흔들었다.
“신세를 졌군. 포두.”
“포두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너희들은 시체를 치워라.”
연우혁은 포쾌들에게 점소이의 시체를 치우라고 명령했다. 포쾌들은 아찔해져서 눈을 감고 점소이에게 다가갔다.
시체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시체에 묻은 독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시체에는 더 이상 독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치워라.”
연우혁의 말에 당령의 눈매가 다시 가늘어졌다.
“독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천하에 독공으로 명성 높은 대(大) 당문의 무인께서 독을 쓰셨는데 그리 허술하게 쓰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객잔의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독을 회수하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방금 영안으로 독이 있나 없나 확인해놓고 연우혁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포쾌들은 속으로 절규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문 무인의 선량함을 믿고 중독된 시체를 만지게 했단 말인가?
“흐음.”
‘아부가 통했군.’
연우혁은 영안으로 당령의 감정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올 때만 해도 사람 몇 명은 죽일 듯이 차갑게 분노하고 있었지만, 점소이의 수작을 설명하고 당문에 대한 아부까지 찔러 넣자 제법 만족한 기분으로 변했다.
이제 깔끔하게 인사한 다음 사 포쾌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면...
“앉아.”
“...?”
“귀 멀었나? 앉으라고.”
당령의 감정에서 분노가 다시 피어올랐다. 연우혁은 혹시 당문의 무인들은 전부 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나 의심이 되었다.
‘독이 골수에 스며들면 분노조절이 불가능해지나?’
예상 못한 상황이었지만 연우혁은 침착하게 앉았다.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의 무공 수위는 연우혁과 같은 이류였지만 상대는 일류의 경지를 넘보고 있는 이류 말입. 게다가 당문의 독과 암기는 무공 수준을 뛰어넘는 살상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가 삼류라 하더라도 당문의 이름을 업고 있는 한 앉으라면 앉아야 했다.
연우혁은 갑자기 팽가 남매가 매우 그리워졌다.
‘평소에 불평해서 미안합니다. 두 분.’
시체를 밖에 치우고 돌아온 포쾌들은 연우혁이 당문 무인 앞에 앉아있자 극도로 긴장했다. 당문 무인이 무슨 시비를 걸 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불러야 하지 않겠나?’
‘문 가까이 서있게. 일이 터지면 바로 소리를 질러야 해.’
“내가 이 허름한 객잔에 왜 머무르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허름한 객잔은 아니었다.
호화로운 곳은 아니어도 이 정도면 깔끔하고 괜찮은 곳이었다. 사 포두가 피땀 흘려서 갈취한 은자가 들어간 만큼 당연했다. 포쾌들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야공(冶工, 대장장이)이 하나 있었지. 세가의 야공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야공이었어.”
“!”
오대세가에서 야금술이나 제련술이 가장 뛰어난 가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당문을 꼽을 것이다. 독특하고 기묘한 암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저런 기술들에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당문의 대장장이들을 가까이서 봐온 당령이 뛰어나다고 하다니. 정말로 괜찮은 대장장이가 분명했다.
“그런 대장장이라면 왜 대(大) 당문에서 일하지 않았습니까?”
“방랑벽이 있었지.”
당령은 추억에 젖은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보면 우수에 찬 모습이었지만, 방금 사람을 하나 죽인 다음에 저런 모습을 보여줘 봤자 소름끼칠 뿐이었다.
실제로 포쾌들은 경악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당령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샐 뻔했다. 이 야공과는 꽤 친분이 있었지. 종종 방문하곤 했는데, 어느 날 야장(冶場, 대장간)을 팔더니 이러더군. 나이가 들어서 고향인 한경에 돌아가려고 한다고 말이야.”
연우혁은 물론이고 포쾌들도 슬슬 집중해서 당령의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던 것이다.
“수구초심이라는데 어쩌겠어. 가라고 했지. 그래도 작년까지는 서신이 왔는데, 올해는 안 오더군. 한경에 온 김에 찾아왔는데 집은 비어 있고...”
“혹, 혹시 그 분이 강 노인이십니까?”
양 포쾌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포쾌들은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당령은 양 포쾌를 죽이지 않았다.
“맞다. 아는 사이더냐?”
“예, 예! 솜씨가 뛰어나셔서 인기가 좋으셨습니다. 일을 많이 맡지는 않으셨습니다만... 헉. 설마 이 객잔을 빌리신 것도...”
“하. 눈치가 좋아. 상관 때문인진 몰라도... 맞다.”
당령은 순순히 이유를 밝혔다.
이 객잔의 뒤쪽에는 강 노인의 집이 있었다. 당령이 빌린 방에서는 강 노인의 집으로 누가 나오고 들어가는지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만약 강 노인이 변덕스러운 방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 객잔을 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게 말입니다.”
양 포쾌는 이걸 말해도 되나 싶어서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당령이 그런 포쾌의 반응을 놓칠 정도로 무른 무림인은 아니었다.
“말해라. 죽기 싫으면.”
“죄, 죄송합니다. 그, 주변에서 소문을 들었습니다. 강 노인이 몸이 많이 편찮아져서, 그... 죽, 죽을 때가 되어서...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난 거라고... 워낙 괴팍하셨던 분이라...”
충격적인 말에도 당령은 화를 내거나 놀라지 않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그랬던 거였어.”
당령의 반응에 포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당문 무인의 분노가 그들에게 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재주 있는 분이셨는데.”
“제 막칼도 고쳐주셨습니다.”
“좋은 사람이었지. 그래... 그랬나.”
당령은 추억을 떠올리며 강 노인의 빈 집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망치 소리가 들려올 것 같았다.
연우혁도 바라본 다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당 소저.”
“왜 부르는 거지?”
“그 강 노인이란 분은 납치되신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