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30)화 (30/107)

객잔의 독 (3)

객잔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당령은 물론이고 포쾌들도 당황해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괴팍한 당문의 무인이 납득하고 훈훈하게 마무리 될 상황에 저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납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당문의 무인답게 납치라는 단어만 들었음에도 당령의 몸에서는 살기가 피어올랐다. 희번득거리는 눈매에 포쾌들은 그대로 무릎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납치라고?”

“예.”

그러나 이 자리에서 오로지 포두 한 명만이 침착했다. 연우혁은 당황하지 않고 설명했다.

“애초에 수구초심이라고 하실 만큼 고향을 그리워하신 분이 죽을 때가 되셨다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비울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실 거면 애초에 그 곳에 자리를 잡으셨겠죠. 이건 괴팍한 것과 별개입니다.”

“!”

당령은 살기를 피우는 걸 멈추고 포두의 말에 집중했다.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소문을 들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아직 대장장이로 명성이 있으실 정도면 정정하실 텐데, 그런 사람이 사라졌다고 죽을 때가 됐다는 소문이 돌겠습니까.”

“평소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 아닐까요?”

“들어보니 그 강 노인이란 분은 수다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군. 그런 소리를 할 것 같은 사람이었나?”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뻔하지. 누군가 소문을 낸 거다. 그런 소문을 낼 놈들은 일이 귀찮아지는 걸 피하려는 놈들밖에 없지.”

“강, 강 노인을 어째서... 별로 부유하시지도 않은데...”

“재주가 뛰어나잖나.”

말을 마친 연우혁은 영기가 쌓이는 감각에 하나 끝냈다는 성취감을 느꼈다.

사실 어떤 사건의 내막을 해결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방금만 해도 괴팍한 대장장이 노인과 텅 빈 대장간, 그리고 헛소문이란 단서만 듣고서 무슨 내막인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어려운 건 이제 그 내막을 듣는 사람들한테 그럴듯하게 설득하는 일이었다.

너무 세세하게 설명하면 설득력이 떨어졌고, 너무 간단하게 설명하면 신빙성이 떨어졌다. 그 사이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게 진짜 설득이었다.

특히 상대가 분노조절을 하지 못하는 당문의 무림인일 경우에는 그 난이도가 한층 올라갔다.

다행히 이번에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연우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납득한 당령은 다시 한 번 살기를 폭발시켰다. 연우혁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왜 저러는 거지?’

두려움보다는 피곤할 정도였다.

앞으로는 당문과 더더욱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사이 당령이 포쾌들에게 살기 넘치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강 노인이 사라졌을 때 이 구역을 담당했던 놈들이 누구냐?”

“......”

‘아.’

연우혁은 당령이 왜 저러는지 깨달았다.

강 노인이 사라진지 꽤 됐는데 포쾌란 놈들이 찾을 생각은 안 하고 헛소문에 속아서 ‘죽었나봅니다 허허’이런 소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저건 화를 낼 법도 했다.

“흐, 흑. 그. 그게 말입니다.”

연우혁이야 최근에 이 구역에 왔다지만 여기 포쾌들은 예전부터 이 구역을 담당하고 있던 놈들.

책임에서 쉽게 벗어나 수가 없었다.

그걸 아는 만큼 포쾌들의 다리는 더욱 더 떨리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양 포쾌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

“사 포두... 때문입니다...!”

“사 포두?”

“예...!”

“맞습니다. 사 포두 때문입니다...! 놈이 관심을 끄라고 했습니다!”

포쾌들은 하나둘씩 사 포두에게 책임을 덮어씌웠다. 무서워서 울고 떨면서도 해야 할 일은 하는 그 모습에 연우혁은 감탄했다. 괜히 포쾌로 오래 구른 놈들이 아니었다.

당령은 연우혁을 보며 물었다.

“사 포두가 뭐하는 놈이야?”

“아. 제 전 포두였는데, 죄인을 비호하다가 면직됐습니다.”

“쓰레기 같은 놈이군. 그 놈 어디 있지?”

포쾌들은 희망에 차서 손가락을 뻗었다. 사 포두가 끙끙 앓고 있는 안쪽 방이었다.

당령은 바로 암기를 꺼내들더니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 당 소저.”

“...?”

“지금 사 포쾌는 제 부하입니다. 멋대로 죽이지 말아주십시오.”

“......”

포쾌들은 경악해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목숨이 열 개쯤 되시는 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에서 저 말이 어떻게 나온단 말인가?

당령도 경악해서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살기도 바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뭐, 뭐라고?”

“사 포쾌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라도 말해봐라.”

“제가 지금부터 강 노인을 찾아드릴 건데, 부하 포쾌를 죽이시면 다른 자들이 두려워서 어떻게 일을 하겠습니까.”

“...?!!!”

당령은 살기를 가라앉히고 놀라워하며 연우혁을 쳐다보았다.

이런 대도시에서 몇 개월 전에 납치된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당령도 여기 포두나 포쾌들한테 부탁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바로 개방 분타에 찾아가 의뢰를 맡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강 노인을 찾을 수 있다고?”

“예. 강 노인의 대장간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사실 어느 놈들이 데리고 갔는지도 이름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연우혁은 시치미를 뗐다.

여기서 어느 놈들이 데리고 갔는지도 말하면 너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다. 최소한 대장간을 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포두. 네 재주가 정말... 그 정도로 대단하다면 내가 크게 포상하겠다. 가자!”

당령은 먼저 객잔 문을 나섰다. 그제야 남은 포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직도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들의 상관은 겁도 없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명령을 내렸다.

“막 포쾌. 남아서 사 포쾌의 상태를 확인해 놔라.”

“포, 포두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지?”

“사 포두, 아니 사 포쾌를 왜 감싸신 겁니까?”

‘죽으면 내 평판이 깎이니까 그렇지...’

지부나 판관에게 잘 보여서 더 높이 올라갈 욕심이 있는 연우혁에게는 이런 사소한 평판도 중요했다.

뇌물을 바치지도 못하는 형편인 만큼 이런 부분에서라도 점수를 따놔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연우혁은 돌려서 말했다.

“지금은 내 부하잖나.”

“...!!!”

포쾌들은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전율하며 움직이지 못했다. 밖에서 당령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당장 튀어나오지 않으면 돌아가서 사 포두란 놈을 죽여버리겠다!”

“예. 지금 가겠습니다!”

연우혁은 그렇게 외치고 나갔다. 포쾌들은 상관의 뒷모습을 충성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   *

당령은 팔짱을 끼고 대장간 기둥에 기댄 채 연우혁이 하는 짓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지금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 포두가 보여준 신통한 재주 때문에 반쯤이라도 믿는 거지 아니었다면 아까 입을 놀렸을 때 혀를 암기로 꿰뚫어버렸을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사라진 노인을 대장간 좀 뒤지는 것만으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신통력이 있어도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개방의 장로도 그런 재주는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개방의 거지들이 왜 고생을 하겠는가.

젊은 포두는 대장간 안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유심히 관찰했다. 어떨 때는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당령은 포두가 뭘 보고 흥미로워하는지 궁금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

그냥 먼지 낀 선반이었다.

‘뭐야?’

지금 혹시 조롱당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 됐습니다.”

연우혁이 걸어 나오자 당령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알겠나?”

“예.”

“...?!!!!!”

당령이 경악해하는 사이 연우혁은 포쾌들에게 물었다.

“인근의 흑도 무리 중에 철갈방(鐵蝎幫)이 있지?”

“예? 예.”

한경의 흑도 세력 중 하나로 나름 세력이 있는 놈들이었다.

한경 내에서 크게 소란을 피우기보다는 한경 내를 거점으로 인근을 오가며 밀수와 약탈을 일삼는 놈들로, 끈질기고 교활한 놈들이었다.

애초에 한경에서 오래 버티는 흑도 문파들은 대체로 끈질기고 교활할 수밖에 없었다.

벼슬아치에게 뇌물을 바치는 건 물론이고 다른 정파 문파들에게 공격당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교묘한 처신을 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이 그렇다고 해서 난폭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관대작이나 명문정파의 고수 앞에서나 조심하는 거지 포쾌들 앞에서는 얼마든지 난폭성을 드러내는 흑도의 무림인이었다.

그걸 아는 만큼 포쾌들도 철갈방이란 이름이 나오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놈들이...?”

“그래. 안내해라.”

“예, 옛. 알겠습니다.”

포쾌들은 겁이 났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연우혁이 보여준 모습이 있는데 부하들로서 체면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음도 있었다.

이 포두라면 분명 무슨 계책이 있을 거라고!

당령은 연우혁을 따라가면서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어떻게 철갈방 놈들이 강 노인을 납치해간 걸 알았지?”

연우혁은 표정을 관리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건의 범인까지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먼지 낀 선반을 보셨습니까?”

“그래.”

“그것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

당령은 대체 이게 뭔 소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사천당문의 복잡한 독과 암기도 막힘없이 다룰 줄 아는 자신이 이것 하나 이해하지 못하다니.

“선반... 선반이라...”

“당 소저. 무공의 고수들은 무공이 남긴 흔적만 보고서도 어떤 무공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 겁니다.”

“??????”

연우혁은 대충 의미 있게 던졌다 싶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역시 당령은 알아서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자기가 나름대로 논리를 맞춰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반... 철갈방의 무공... 포두. 궁금한 게 있는데.”

“당 소저. 철갈방에 도착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우혁은 화제를 돌렸다.

당령은 고개를 들었다. 제법 으리으리한 철갈방의 가옥이었다. 안을 보지 못하게 높게 세운 담벼락 안쪽에는 여러 채의 방(房)과 그 지붕 끄트머리가 보였다. 시끄럽게 들리는 소리를 보니 이십 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21명이군.’

“다른 무인을 부르시겠습니까?”

사파나 흑도의 문파는 의외로 무공을 익히지 못한 놈들이 많았다. 무공이란 건 생각보다 깊은 끈기와 인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십 명이 넘는 인원수는 꽤나 귀찮은 적이었다. 게다가 이 안쪽은 상대에게 익숙한 지형 아닌가. 잘못 싸우면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

“그럴 필요 없다. 기다려.”

당령은 말을 남기고 가볍게 경공을 펼쳐 방(幫)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정문 앞에 서더니 가만히 기다렸다.

“?”

“...?”

포쾌들은 이 당문의 무인이 뭘 하는지 몰라서 당황했다. 그 순간 정문이 열리더니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는 철갈방 무인이 튀어나왔다.

“커헉... 컥... 독...!”

당령은 즉시 암기를 쏘아서 상대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제야 뒤늦게 당문의 미친 무인이 이 인근에 독을 뿌렸다는 걸 깨달은 포쾌들은 기겁해서 물러났다.

그러나 연우혁은 가만히 있었다. 영안으로 이미 독이 가옥 안쪽에만 퍼졌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안 피해?”

“대(大) 당문의 무인께서 하독하시는데 실수가 있을 리 없지요.”

당령의 눈매가 누그러졌다. 당령은 기특하다는 듯이 포두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그럼 하북팽가와 사천당문 중 어느 세가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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