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 속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법 (35)화 (35/107)

맹판관요괴저택 (1)

포쾌들은 뜻밖의 이야기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자 맹 판관이 신경질을 부리며 외쳤다.

“이 구더기들아! 내 말을 듣지 못한 것이냐! 애초에 내가 언제 잡아오라고 했느냐! 작업을 확인하라고 했지!”

“...?!!!”

‘뭐야?’

‘귀, 귀신에 홀리신 건가?’

포쾌들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긴 했다.

그 꼬장꼬장하고 성질 더러운 판관이 자기 체면도 상관하지 않고 말을 뒤집다니.

저 젊은 포두가 귀신을 부린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설마 정말로...

허둥대며 움직이는 포쾌들을 보며, 맹 판관은 아직 옆에 서있던 연우혁에게 속삭였다.

“방금 한 말이 정녕 사실이렷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제 목을 걸겠습니다.”

“흥. 네 목이 그만한 가치가 있겠나. 하지만 잘했다. 제법 쓸모가 있구나.”

맹 판관은 일단 연우혁이 한 말을 믿기로 했다.

-판관 어르신. 저 강 노인이란 분은 젊었을 적 사천당문에서 일하신 것으로 친분이 아주 깊습니다! 당문의 사람들이 한경에 몇 와있는 걸로 아는데, 그 무뢰배들의 체면도 생각해주셔야...

확실히 저 대장장이의 뛰어난 기술을 보면 당문과 관계가 있었다는 말도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한경에 당문 무인들이 여럿 와있었는데, 이들의 건방지고 무례한 행동을 생각해봤을 때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놈은 확실해. 제법 기특하군.’

다른 포쾌나 포두들이 하라는 것도 제대로 못할 때 그걸 미리 알아차려서 자신한테 고해바치다니.

제법 기특한 놈이었다. 맹 판관은 연우혁이 뇌물을 바치지 않은 걸 이만 잊어주기로 했다.

쾅!

그 순간 형관의 두꺼운 문짝이 날아가더니 비교적 젊은 중년의 무림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눈빛과 손톱에서는 섬뜩한 목청(木靑)색 빛이 번뜩였고 오른쪽 팔은 왼쪽 팔에 비해 유난히 길고 굵었다. 연우혁은 상대가 자기보다 훨씬 고수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뭐, 뭐, 뭐하는 놈이냐?!”

문 옆에 있던 포쾌가 기겁해서 외쳤다.

여기 형관은 판관이 머무르는 곳이자 근처에는 관청의 다른 관리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심지어 이 한경을 상징하는 지부 어르신이 공무를 보는 정당(正堂)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마디로 행패를 부렸다가는 목숨 부지하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문짝을 부수고 들어오는 자가 있다니. 포쾌들은 그런 놈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네놈이 지금 여기가 어딘지 알고...!”

포쾌들이 옆에서 뭐라고 지껄이던 간에 중년의 무림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길가의 돌멩이마냥 무시하고는 발을 박차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 무림인은 판관 앞에 서있었다. 무림인은 맹 판관을 노려보며 물었다.

“네놈이 여기서 판관 노릇한다는 맹가 놈이냐?”

“그... 감... 누구시오?”

‘감히 누구냐’라고 외치려던 맹 판관은 상대의 눈빛에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을 느껴 말을 바꿨다.

“오해가 있는 것 같...”

철썩!

무림인은 판관의 넓적한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맹 판관은 옆으로 날아갔다.

“어억!”

“야, 이 맹가의 오라질 놈아! 네놈이 뭔데 강 어르신을 끌고 가! 네놈이 이 당등의 체면을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사천당문!!’

연우혁은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나이가 있는 걸 보니 당령보다 배분이 높은 사천당문의 무인이 분명했다.

정말 놀랍게도 당령의 말은 사실이었다.

당문의 다른 무인들은 당령보다 더욱 성질이 사납고 난폭했던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잡혀가도 그렇지 대낮에 형관의 문짝을 부수고 들어오다니?

당등은 넘어진 판관을 일으켜 세우더니 뺨을 한 방 더 올려붙였다. 판관은 어이쿠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내공을 담아서 때리지는 않았지만 단련하지 않은 판관 입장에서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한 형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어? 당장 불러와라! 이 아우의 체면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지 내가 직접 물어보겠다!”

“한, 한 형이라면 설마 지부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아픈 와중에도 판관은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이 미친 당문의 무인은 그냥 일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이 정도는 해도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한 것이었다.

지부 어르신과 호형호제 할 만큼 친하다면 판관의 뺨 정도는 수십 방 올려붙여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 새끼야!”

당등은 이야기하다가 화가 더 치밀어 올랐는지 욕설을 내뱉으며 이마로 판관의 코를 박아버렸다. 판관은 아까 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한 형께서 나한테 이럴 수는 없다! 불러와라. 불러오란 말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대협!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감히 몰라 뵙고...”

“용서해주십시오. 대협! 오해가 있었습니다!”

“?”

당등은 갑자기 끼어드는 포두를 보고 분노를 터뜨리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혹시 네놈이 연우혁이냐?”

“맞습니다.”

“아! 네 이야기를 들었다. 강 어르신을 찾아냈다고?”

연우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령이 다행히 이 미친 무인에게 말을 해준 모양이었다.

“잘했다. 잘했어! 내 살면서 포두 노릇을 하는 놈은 본 적이 없었는데. 너 같은 포두 놈들만 있다면 얼마나...”

“대협. 판관 어르신께서는 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풀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게 정말이냐?”

당등은 기특한 포두를 만난 김에 분노를 멈출까, 아니면 그냥 분노를 더 터뜨릴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이 자리에는 연우혁보다 더 입김이 강한 사람도 있었다.

판관이 몇 대 맞는 건 그냥 지켜봤던 강 노인이었지만 연우혁의 일이 되자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

“맞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대협.”

“아니, 어르신! 이러지 마십시오!”

강 노인까지 나서자 당등은 재빨리 판관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맹 판관은 허겁지겁 연우혁 뒤로 기어 도망쳤다.

“그만 때리겠습니다. 저깟 놈, 충분히 교훈을 얻었을 겁니다. 그러니 어르신도 그러지 마십시오. 아저씨께서 제게 해주신 은혜가...”

맹 판관이 연우혁에게 속삭였다.

“저, 저 미친 놈을 아느냐??”

“모릅니다. 강 노인을 구출한 이야기가 귀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보다 조심하십시오! 무림인들의 청력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지 않습니까.”

“그... 그렇구나. 어디 가지 말고 내 앞에 있어라! 꼭 날 지켜줘야 한다. 내, 오늘 이 보답은 반드시 하마.”

맹 판관은 어린아이처럼 연우혁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속삭였다. 어지간히 당등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거 미안하게 됐소.”

강 노인과 이야기를 끝낸 당등은 대충 사과했다.

그 사과에 맹 판관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 것이지 저딴 식으로 하니 더더욱 굴욕적이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들어보니 어르신에게 뭘 자꾸 만들라고 부탁했다던데. 맞소?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왜 자꾸 그런 걸 만들라고 한 거요? 뭐 수탈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

굴욕을 씹어 삼키며 맹 판관은 연우혁 뒤에서 천천히 설명했다.

“...집에 자꾸 요괴가 출몰해서 그렇습니다.”

“뭐? 요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보다 못한 강 노인이 나서서 말렸다. 아까 판관이 맞는 건 내버려뒀던 사람이 이러는 걸 보니 정말 불쌍한 모양이었다.

맹 판관의 말은 이랬다.

언제부턴가 한경에 있던 맹 판관의 저택에 한밤이 되면 웬 요괴가 나타나 기괴한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탐관오리 맹가 놈아, 네놈이 집어삼킨 재물들을 백성에게 돌려줘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을 이 어르신이 집어삼켜주마!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요괴의 모습에 기겁한 하인들이 달려가면 이 요괴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온 집에 불을 밝혀두고 버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다시 요괴가 나타나서 저택에 기괴한 소리를 내뱉고 사라졌다.

비싼 돈을 주고 호위를 고용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호위들이 농락만 당했다.

“쉽군.”

듣자마자 당등은 알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에 연우혁은 물론이고 다른 포쾌들도 깜짝 놀라서 당등을 쳐다보았다.

과연 당문의 경험 많은 무인답게 이게 무슨 요괴의 짓인지 알아차린 것일까?

“집어삼킨 재물을 백성들한테 돌려주면 될 것 아닌가.”

“......”

“......”

맹 판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안 그래도 엉망인 얼굴이 더 엉망이 됐다. 연우혁은 판관에게 속삭였다.

“참으셔야 합니다.”

“알... 알고 있네.”

까득!

맹 판관은 이를 갈며 인내했다.

“요괴 놈의 헛소리를 들으시면 안 됩니다. 저는 재물을 몰래 긁어모은 적이 없습니다.”

“하!”

당등은 대놓고 비웃었다. 포쾌들 중 몇몇은 그 모습에 통쾌하단 표정을 지었다. 무림인들이 대부분 법도를 신경 쓰지 않는 야인이라지만 가끔은 그래서 좋을 때가 있었다.

저 욕심 많은 판관이 망신을 당할 일이 또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요괴 놈하고 어르신한테 맡긴 일이 무슨 상관이오?”

“요괴는 양기(陽氣)에 약하니 폭죽을 쏘아대는 장치를 만들어서 저택에 배치하려고 했습니다.”

‘효과적인 방법이 맞나?’

연우혁은 의아해했지만 다른 포쾌나 당등까지도 제법 그럴듯한 방법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만하겠군.”

“판관 어르신. 일이 늦어져서 정말로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만 철갈방의 무리들이 이 늙은이를 납치한 탓에 몸이 둔해지고 약해진 것이니, 제발 선처를...”

“어이쿠, 아닙니다. 아닙니다!”

당등이 눈을 부릅뜨자 맹 판관은 다급히 대답했다.

“물건은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해주셔도 됩니다. 그깟 요괴 놈, 사실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우혁은 판관의 상태가 꽤 잠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영안으로 보니 온갖 피곤이 가득했던 것이다.

‘하긴 몇 개월은 더 난리를 쳤을 테니...’

“아저씨. 혹시 모르니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대충 일이 마무리되자 당등은 강 노인을 모시고 갈 준비를 했다.

연우혁과 맹 판관은 빨리 당문 무인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포두 너도 따라와라.”

“......”

연우혁은 당문 무인과 엮이고 싶지 않아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옆의 맹 판관이 보내는 필사적인 눈빛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하하. 참 영특한 포두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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