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29화 (29/116)

연락두절 (1)

7. 연락두절Communication Breakdown – 레드 제플린 (1969) (1)

이제는 일어나지 않게 될 미래에 바스크 포경업자들이 거점으로 삼았을, 그리고 이제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 래브라도 해안의 레드 베이Red Bay.

그 앞바다에 지금껏 그 어느 원주민도 본 적 없던 거대한 배 한 척이 닿았다. 곧 돛이 접히더니, 작은 배 한 척이 우현에서 수면으로 내려졌다.

마침 유빙도 적고 바람도 잘 부는 여름철을 맞이하여 계획대로 빈란드로의 항해를 시도한 그린란드 회사 소속 노블, ‘아마추Amatxu¹’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무염시태의 성모’ 함은 아이슬란드에서 동녘정착지 오가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이쪽 ‘신대륙’ 해안을 눈에 담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옛날 북방인들이 헬룰란드라 불렀을 듯한 불모지 해안. 거기서 하루쯤 남쪽으로 간 뒤에야 간간이 숲이 보였지만, 거기서부터는 멋모르고 배를 접안했다가는 난파당하기 딱 좋을 법한 거친 해안선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게 또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자, 동남쪽으로 비스듬히 뻗어나갈 줄만 알았던 해안은 어느새 정남쪽으로, 다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슬슬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질 무렵, 마침내 그들은 배를 대기도 좋고 꽤 넓은 숲도 있는 작은 만을 발견했다.

그렇게 탐사의 첫 목적인 항로 개척을 마치고, 두 번째 목적, 즉 동녘정착지 확장과 선박 유지보수에 절실히 필요한 목재의 산지를 확보한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들은 작은 배에 옮겨 타 해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완전히엉망이야. 이거이래서되겠습니까?”

옛날보다는 약간 나아진 북방어로 칼라알릿 사람 이갈리코가 비꼬았다.

“아니, 실수할 수도 있지, 거 사람이 살다 보면.”

역시 옛날보다 아주 약간 나아진 북방어로 기푸즈코아 사람 프란치스코가 항변했다.

“우리칼라알릿사람들 살던곳에서는 그렇게덤벙대다간 얼어죽기십상이었는데, 남쪽사람들은 실수도할수있고 참좋겠습니다그려.”

“자, 자. 진정들 하십시다. 꼭 사람을 만난다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졸지에 가운데 끼게 된 동녘정착지 보안관 디폴트가 한탄을 삼키며 중재하고 나섰다.

디폴트에게 손수 얻어맞은 인연으로 그린란드 회사에서 일하게 된 이갈리코는, 저들에게 파울 주교 겸 사장이 행했던 ‘교류 방식’이 반드시 바다 건너에서도 먹힐 것이라며, 이번 항해에 디폴트가 꼭 따라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이방인들이 배 타고 건너온 것을 본 이 땅 원주민들이 우르르 나타나면, 그때 브라타흘리드에서 했던 것처럼 마구 쥐어패고, 그 다음 화해하자며 선물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디폴트를 빈란드 해안까지 모셔왔건만, 정작 원주민들에게 줄 선물은 흐발세이 항구에 놓고 왔던 것이다. 이곳 해안에 도착해 짐을 뜯어보고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이갈리코는 파도가 해안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지금까지도 계속 툴툴대고 있었다.

“완벽이라는 건 신께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인 이상 실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두 분 다 진정하시지요.”

헌데 그사이, 열심히 노 젓던 다른 바스크 사람들은 저들끼리 또 뭔가 논쟁이 붙은 모양이었다. 이갈리코와 티격태격하던 프란치스코도 그쪽에 끼어들고, 이어서 선장으로 직접 이 역사적 항해에 참여한 미콜라스까지 뛰어들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별것 아닙니다. 미련한 녀석 하나가 우리 나바라 왕국의 깃발을 챙겨왔어야 하지 않았겠느냐 떠들어서.”

이 땅에 발 디디게 해주신 신의 은총에 감사드리기 위해서라도 해안에 십자가는 세워야 할 것이었다. 허나 이 항해는 비록 덴마크 왕의 면허장이 있었다지만 엄연히 그린란드 회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므로, 굳이 어떤 군주의 깃발을 휘날릴 것은 없었다.

“듣고 보니 의아하긴 하군요. 선장께서 그렇게 마음만 먹으셨다면 깃발을 준비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요.”

그린란드 회사를 위해 일하는 바스크 뱃사람들의 우두머리답게, 미콜라스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저의 입장을 밝혔다.

“만약 제가 프랑스나 잉글랜드 국왕을 섬기는 몸이었다면 고려해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기푸즈코아와 비스카야 바닷가에서 고기잡이하는 뱃사람들입니다. 그린란드 회사도 덴마크 국왕의 면허장을 받았을 뿐, 어느 한 군주의 사유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군주와 귀족의 앞잡이 노릇은 우리에게 맞지 않습니다.”

“군주의 앞잡이라...”

“저 유럽의 뭍에 있는 모든 것은 강한 자들이 바란다면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바다로 떠난 뒤에야 자유를 얻을 수 있지요. 정말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우리보다 강한 이들의 힘을 구해서도, 그들의 환심을 사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게 저와 우리 고향 장로들의 생각입니다. 제 동포들이 제 설득에 응해 기꺼이 이 회사에 몸을 담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겠지요².”

설령 이 항로의 끄트머리에 그토록 황금이 가득 쌓여 있다 한들 – 디폴트, 파울, 미콜라스 등 회사 중진들만 아는 이야기였다 – 어느 군주가 신항로의 주인 자격을 주장할 근거를 남기는 일은 득은 커녕 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 바스크인들의 나라인 나바라 왕국은 결코 강국이 아니었다. 그렇게 화근을 남겨놓았다가는, 언제고 프랑스든 카스타야든 나바라 왕국을 삼킨 뒤, 그린란드 회사 사람들이 기껏 찾은 자유로운 삶의 터전에 대해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을 터였다.

“따지고 보면 이 항해를 위해 뭉친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요. 우리의 신비로운 은발 소녀를 중심으로, 잃을 것 없지만 누구 아래로 허리 굽혀 들어가기는 싫은 고집불통과 괴짜들만 모였으니.”

옛날 같았더라면, 디폴트는 미콜라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허나 그때 이후로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고, 또 디폴트는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던가.

이제는, 조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여전히 이 좁은 배를 가득 메우고 있는, 바스크 말로 격렬히 진행되고 있는 논쟁과는 달리.

“다들 저렇게 수다스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오는 항로라 다들 긴장했던 것이 풀려서 저러는 것이겠지요.”

유빙이 적은 여름이라지만, 무작정 안심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여름에는 여름만의 장애물들이 있었고, 거친 바다는 그 자체로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만약 이들이 최신예 노블 대신 구닥다리 크노르를 타고 왔더라면, 중간에 몇 번쯤은 침몰 위기를 겪었을 것이었다.

그때, 미콜라스의 말을 듣고서 그간 난바다를 헤치고 왔던 것을 회상하던 디폴트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런데 다들 떠들고만 있으면, 앞은 누가 봅니까?”

“그야 프란치스코가... 엇. 잠깐만요... 야, 이놈들아! 앞을 봐라! 앞을!”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그들이 탄 작은 배가 무언가 큼직한 것에 부딪혔다.

“으억!”

배가 한쪽으로 기울자, 뱃전에 앉아있던 디폴트는 그만 균형을 잃고 빠지고야 말았다.

“보안관나리!”

이갈리코가 먼저 뛰어들었다.

디폴트는 본디 물과는 연이 없던 사람이었던 데다가, 하필 갑옷까지 제대로 차려입었던 터라 헤엄을 칠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안 될 거요, 혼자선!”

프란치스코도 질세라 뛰어들었다.

“이놈들아, 뭣 하고 있느냐! 얼른 줄이든 뭐든 꺼내서 던져주어라! 거기 구멍 난 데는 얼른 막고!”

허나 이미 그들은 뭍에 바짝 다가왔던 관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미콜라스가 닦달한 것이 무색하게 디폴트와 이갈리코, 프란치스코 세 사람은 바닷물 한 사발씩 들이킨 채 해변으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410년 6월. 그렇게 아주 형편없는 모습을 한 세 사람이 ‘신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전직 튜튼 기사단원, 그린란드로 건너온지 고작 서너 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도로 신대륙을 밟게 된 칼라알릿 부족 사람, 그리고 엉뚱한 바스크 뱃사람까지.

그 어떤 군주의 이름도, 신의 영광도 거론치 않으며, 새로운 세상의 모래와 물을 입에 머금으면서.

순 엉터리였지만, 앞으로도 일말의 미화 없이 유쾌한 웃음거리로 기억될 상륙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우리네 사람들이 빈란드 해안에 닿았을 게요.”

백송고리 용병단의 – 딱히 지명받은 적도 없으나 누구도 의심치 않는 – 부관인 라그나르의 아들 스베인은 입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먹거리와 목재가 풍부하고, 여름은 따뜻하고, 이래라저래라할 윗사람은 전혀 없는 그런 땅이라지.”

“맨 마지막 하나를 빼면 이곳 보헤미아와 별반 다를 것도 없구려.”

스베인과 백송고리 용병단 사람들과는 달리, 제법 진지하게 그들이 세운 진지 입구를 지키던 얀 지슈카가 대꾸했다.

“그렇소. 그래서 더 궁금한 게요.”

역병에 맞서기 위한 본부로 쓰던 프라하 시 근교의 창고. 그 주변에 백송고리 용병단과 새로 조직하고 있는 민병대들이 머물 진지를 세운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코펜하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찾아오는 신병들이 뭔가 저들에게 시비를 걸기만 기다리던 – 신병은 쥐어팰수록 강해진다는 것이 용병단 내의 지론이었다 - 용병단 사람들은 지금껏 허탕만 치고 있었다.

사람이 안 모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리어 흑사병에 맞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을 필두로 프라하의 잃을 것 없는 이들이 하도 몰려오는 게 문제였다.

예상치 못한 일은, 그렇게 모이는 이들이, 지슈카는 물론이요 후스조차 놀랄 만큼 이 ‘제국과 교회에 한 방 먹여주고 신대륙으로 도망치기’ 계획에 열렬히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출신으로 따지면 코펜하겐에서 모인 용병단보다 더 질이 나쁠 텐데도, 다들 한없이 진지하게 뭐든 시켜주십사 하고 임하고 있으니, 기껏 몽둥이 준비한 용병단원들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용병단 소속도 아닌 민병대원들을 제멋대로 몽둥이찜질하려던 계획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것은, 시그리드와 헤니히 등 그나마 점잖은 이들이 부재중이었으므로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다.)

“이 동네 보헤미아는 우리가 거쳐온 여느 땅보다도 더 살기가 좋고 부유한 것 같소. 그런데도 이렇게 바글바글 모여드니 의아한 일 아니오? 물론 우리 시그리드가 고운 마음씨로 사람들을 한데 모은 덕도 있겠지만.”

질문에 대한 답이야 지슈카의 머릿속에 금방 떠올랐다. 그 옛날 도적들과 함께 숲을 누비면서, 난공불락일 것만 같던 귀족들의 성을 척척 함락시킬 때부터 지슈카의 머릿속에 항상 있던 질문도 그것이었으니까.

밑바닥의 삶은 어려웠다. 당장 굶어죽냐 마냐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 어디를 가든 착취와 궁핌은 일상이었다. 왜 그토록 쥐어짜느냐 묻는다면, 이쪽에는 그럴 만한 힘이 있고 저쪽에는 그럴 만한 재산이 아직도 남아 있으니 그럴 뿐이라는 성의없는 답만 돌아올 터였다.

그들의 영혼에만이라도 위안을 줄 교회조차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저들의 영혼을 구해주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하는 일이라곤 돈 많은 죄인에게 면벌부를 내어주고 조금 더 돈 많은 죄인에게는 성직을 파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교회에 십일조를 내야 했다.

유럽 어디를 가든 이단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주변의 가난한 농민들이 몰려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테다.

허나 얀 지슈카는 그러한 모든 일을 한두 문장으로 함축하고 답까지 낼 수 있는, 얀 후스와 같은 박식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한참을 끙끙대다가,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

“나도 잘은 모르겠소.”

“그런데도 우리 따라서 신대륙까지 가겠다고 한 게요?”

그것에 대해서는 지슈카도 확실히 답을 할 수 있었다.

프라하 시 전체가 이단과 결탁한 혐의를 받게 되고, 교회뿐 아니라 곧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될 지기스문트에게까지 반기를 들게 된 상황.

창문 투척의 광기에 가까운 열기가 가시고, 저들이 한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며 두려움에 빠진 도시 사람들에게 시그리드는 며칠 전 선택지를 제시했다.

첫째, 온 프라하가 하나 되어 지기스문트와 교회에 야무지게 본때를 보여주고, 저쪽이 정신 차리기 전에 신대륙으로 달아난다.

둘째, 후스와 시그리드에게 찬동하는 이들끼리 프라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지기스문트에게 저항하고, 프라하 시는 곧 닥쳐올 지기스문트의 군세에 그대로 문을 열어준다.

아직도 프라하 시청에서는 두 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재력의 싸움이요, 재력을 지닌 자들은 그만큼 잃을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먼저 뜻을 정한 이들도 있었는데, 얀 지슈카, 그리고 이곳에 새로 모이고 있는 민병대가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그렇소. 사람들 마음속 궁리를 알 길은 없지만, 내가 사람들을 어찌 대할지, 그것만은 오로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법이지 않겠소?

나는 그 신대륙이 어디 있는지, 정말로 그렇게 복락 넘치는 땅인지, 그런 건 알지 못하겠소. 배움이 그리 깊지 않아서, 알고 있는 지리라곤 내 발로 누벼본 땅밖에 없으니까.

다만, 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기를 바라고 있고, 그들을 지켜주고 이끌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소. 나로서는 그 신의를 도저히 배신할 수 없소.”

사랑하던 이들은, 가족도, 전처도, 후처도 먼저 보냈다. 남은 것은 도적 시절부터 그를 따라왔던 이들, 그리고 흑사병에 맞서면서 언제부턴가 저들의 대장을 믿고 따르게 된 프라하 사람들뿐.

저를 바라보는 대신 진지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향하는 그 외눈의 눈빛을 본 스베인은, 참 대단한 사내라 생각하면서도 주변 용병단 사람들한테 몽둥이 치우라고 손짓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지슈카라면, 저를 믿고 진지 찾아온 이들이 얻어맞는 것을 묵과할 리 없을 테니까.

“엥? 저기 오는 사람, 후스 선생님 아니신가?”

그때 스베인의 눈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시청이나 프라하 대학에 있어야 할 사람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썩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번민에 가득해 보이는 축 쳐진 어깨가 후스의 심정을 겉으로 훤히 보여주고 있었다.

“교수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시청에서 열심히 멍청한 사람들 머리통, 아차, 머릿속에 올바른 생각을 밀어넣어주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흑사병이 닥쳐왔을 때 후스가 프라하 대학 교수들을 설득해 시그리드와 함께 일하게끔 해주었기에, 스베인은 후스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붙여주었다.

헌데 (딴에는) 공손하면서도 친근하게 건넨 인사가, 어째 한층 고심 깊어진 듯한 표정으로 돌아오니 스베인으로서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여전히 여론이 양분되어 있나 보군요.”

“그렇소이다.”

프라하 시민 중 후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후스의 말 한 마디에 신성로마제국과 한 판 붙어볼 만한 각오를 다질 만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프라하를 벗어나면 아직 후스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이 아는 바의 전부인 보헤미아인들도 허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라하 시민들, 특히 지식으로든 재산으로든 남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그리드와 후스를 따라 신대륙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선뜻 동조하기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사람마저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괴롭구려. 그대들을 보는 것도, 우리를 따라 저렇게 모인 프라하 사람들을 보는 것도...”

제르송의 군사들에게 체포당해 성 비투스 대성당으로 끌려간 자리에서, 후스는 그가 이단 혐의를 벗을 길이 없다는 것을 깨우쳤다.

이제 남은 것은 교회의 개혁을 위해 떳떳하지 못한 수를 쓰거나, 아니면 떳떳하게 이단자로서 죽거나, 둘 중 하나.

그렇기에, 국왕이 도망쳐 텅 빈 비셰흐라트 성에서 시그리드의 신대륙 이야기를 들었을 때 후스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땅의 교회를 탈 없이 고치는 것이 불가하다면, 새로운 땅에서 깨끗한 새 출발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허나 그때의 흥분이 가시고, 프라하 대학의 동료와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앞날을 논의하면서, 한때 불어닥쳤던 그 충동은 점차 식어갔다.

교회의 개혁이라는 큰 꿈, 그가 지난 수년간 꾸어왔고, 베들레헴 성당의 강론으로 수많은 이들에게 설파했던 그 꿈을 이토록 쉽게 저버려도 되는 것일까?

프라하 시의회의 여론 또한 후스의 마음처럼 둘로 갈려 있었다³.

한쪽에서는, 이렇게 된 이상 한 번쯤 지기스문트에게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대륙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뒤의 일. 중요한 것은, 제국의 심장부인 보헤미아를 이토록 업신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이대로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그룬발트에서 그토록 엄청난 활약을 했다는 얀 지슈카와 시그리드 리프트라사가 있지 않던가?

다른 한편에서는 뒤탈을 말했다. 프라하는 제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보헤미아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지만, 결국 도시 하나에 불과했다. 아무리 어떤 이적으로써 지기스문트를 무릎 꿇린다 한들, 지기스문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와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독일의 왕이라는 사실을 변경시킬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기스문트와 맺는 그 어떤 협약도 제대로 이행된다는 보장이 없는 셈이었다. 이처럼 피의 보복을 당할 게 명백한데, 이제라도 다른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내 흔들리는 마음과 다른 점이라면, 적어도 이쪽은 조금씩이나마 확실히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이라오.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기우는 건 아니지만.”

즉 후스를 따르는 사람들을 먼저 프라하에서 내보내고 지기스문트와 따로 협상하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들어도 나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에라이. 사람들이 이리도 깡다구가 없어서야.”

왕이 마음에 안 들면 – 일단 그 이마에 도끼날을 박아넣을 수 있는지 헤아려본 다음 - 바다 너머로 떠나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였던 스베인으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고민이었지만.

“시민들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 않소. 아무리 우리 프라하 시가 그 무서운 검은 죽음도 물리쳐 보았다지만, 검은 죽음이 몇 번이나 할퀴어도 끝내 쓰러뜨리지 못한 룩셈부르크 가문은 그보다도 더 강력한 상대요.”

지슈카가 후스의 고민 해결에 딱히 보탬이 되지는 않는 해설을 곁들였다.

“후스 선생님의 명성이 그리도 높고, 또 프라하 바깥에도 나름대로 선생님을 따르는 이들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치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까요?”

“우리를 하나로 묶는 건 결국 후스 선생님을 따르냐 마느냐가 아니라, 흑사병을 함께 이겨냈다는 그 기억이오. 여기에 함께하지 않는 이들로서는, 대체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무엇때문에 제국과 교회에 맞서려 하는지 선뜻 알기 어렵지.”

“그러면 가서 알려주면 그만이지.”

“그게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잖소. 그린란드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보헤미아는 땅도 넓고 사람은 더 많다오.”

“거, 어렵구만, 어려워. 시그리드라면 뭔가 답을 알 것도 같은데... 엥, 그런데 후스 선생님, 시그리드랑 함께 시청에 계시던 것 아니셨습니까?”

머리 긁적이던 스베인이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시그리드라면, 시청에서 격론 오가는 사이 잠시 자리를 비웠네. 뭐 만들어볼 게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멀찌감치에서 익숙한 맹금 우짖는 소리가 났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지난 몇 달 사이 부쩍 성숙해진 시그리드는, 틈틈이 지슈카의 부관 마테이에게 말 타는 법을 배웠다. 그 솜씨 자랑하듯 다그닥다그닥 달려온 시그리드가, 턱 하니 세 사람 앞에 내려서는 자랑스레 외쳤다.

“하하! 해냈어요! 이거면 될 거에요!”

“신기한 물건을 또 어디선가 들고 온 게로구나.”

후스나 지슈카보다 먼저 반응하는 스베인이었다.

그리고 반응이 빠른 만큼, 뭔가 이상하다는 것도 먼저 깨달았다.

“그런데 뭘 들고 왔단 말이냐?”

“아, 그야... 엇?”

그제야 시그리드도 저의 허리춤을 몇 번이나 휘적거렸다.

“어디 갔지? 그, 조그만 가죽 주머니인데요...”

“저기, 리프가 잡고 있는 저 주머니 얘기냐?”

“아!”

저의 주인이 성문 지날 때 떨어뜨린 주머니를 잡아채고서 이곳까지 가지고 온 리프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주인 곁에 내려와 쓰다듬어 달라는 양 고개를 들이밀었다.

“잘했다, 리프야!”

시그리드는 하얀 매의 기대에 부응해주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가죽 주머니를 들어보였다.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어요!”

스베인이 주머니를 열고, 그 내용물을 저의 큼직한 손바닥에 늘어놓았다.

정체를 모를 네모난 쇳조각 여럿이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1. 아마추(‘엄마’)는 비스카야 일대 바스크 뱃사람들이 수호성인으로 여겼던 성모 마리아의 애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16세기 초 빌바오 인근의 베고냐 마을에서 일어난 성모 발현이 그 시작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14세기 초부터 성모 마리아의 가호를 비는 관습이 널리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실제로 북미 동해안에서 활동했던 바스크인 어부와 포경업자들은 행정적으로 필요한 경우(유언장, 계약서 등)를 제외하면 자체적인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아메리카까지 진출했다는 기록도, 16세기 말 프랑스령 나바르의 바스크인들이 자신들이 뉴펀들랜드를 다녀왔다는 것을 같은 프랑스인 학자들에게 알리면서 남게 되었지요.

3. 원 역사의 후스 전쟁은 훨씬 더 오랫동안 갈등이 묵은 끝에 창문투척 사건을 계기로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 시점에서 온 보헤미아는 후스파와 가톨릭파로 갈려 있었고, 곧 전쟁은 보헤미아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지요. 그렇지만 보헤미아 내 도시의 부유한 시민 계층은 격렬한 종교전쟁을 바라지 않았고, 후스 전쟁 초기의 전개는 양측이 종종 교전은 벌이지만 동시에 타협도 주고받는 양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새로 왕위에 오른 지기스문트는 강경한 진압으로 일관했고, 결국 후스파 전쟁은 온 보헤미아를 수십 년간 전화에 밀어넣는 쪽으로 격화되게 됩니다.

후스 전쟁 발발 시점부터 이미 후스파 세력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부유한 도시민들은 온건한 쪽에 속했고, 반면 14세기 말부터 늘어난 몰락 하급귀족(제만)들과 농민들은 보다 강경한 성향을 띄었습니다. 얀 지슈카를 우두머리로 추대한 급진파는 프라하를 떠나 타보르Tabor 숲속에 성채를 세우고 세력을 키워나가게 되고, 반면 프라하 대학의 지식인들과 부유한 시민들을 중심으로 모인 온건파는 양형영성체파ultraquist로 떨어져 나갑니다.

보헤미아의 부유한 도시들과 갈라선 채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가 이끄는 십자군을 맞이하게 된 타보르파는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진압당해야 했겠지만, 이들을 이끄는 것은 바로 얀 지슈카였습니다. 얀 지슈카는 후대인이 보기에는 이걸 어떻게 이겼나 싶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십자군을 족족 패퇴시켰고, 결국 전쟁 발발 십여 년 뒤 얀 지슈카가 사망하고, 후스파 교리를 용인하는 조건으로 양형영성체파의 협력까지 이끌어낸 뒤에야 지기스문트는 겨우 타보르파를 무너뜨릴 수 있었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