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지막 바이킹-34화 (34/116)

오늘 밤엔 드러눕자 (3)

8. 오늘 밤엔 드러눕자 Get Down Tonight (3)

헝가리와 독일, 크로아티아와 (이론상) 보헤미아 국왕인 지기스문트가 지휘하는 십자군 본대는, 보헤미아 국경이 코앞인 오버팔츠를 지날 무렵 프라하로부터의 비보를 접했다.

작센에서 먼저 기세 좋게 출발했던 십자군 선발대가, 비트코프 언덕과 비셰흐라트에서 전멸했다는 참담한 소식.

그러나 슈반베르크의 보후슬라프가 항복하기 전에 보낸 두 편의 보고서를 받아본 지기스문트는, 분노에 미쳐 날뛰지도, 마녀를 저주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저 냉정한 표정으로 한참 생각에 빠져 있었을 뿐.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저들의 군주만을 바라보던 측근들은 마침내 지기스문트가 입을 열자 은근히 안도하였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병력만을 추려 플젠Plzen으로 간다. 내일 밤까지는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그리고 그들보다 더 빨리 주변의 귀족들에게 내 말을 전할 수 있도록, 가장 빠른 말과 유능한 기수들을 따로 추려 한 시간 내로 불러모아라.”

“예, 폐하.”

독일어로 필센이라고도 부르는 플젠은, 보헤미아 서부 최대의 도시였다.

지기스문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왕으로 선출된 뒤, 뉘른베르크에서 십자군 본대를 소집해 보헤미아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어차피 플젠은 거쳐가야만 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허나 설령 플젠이 보헤미아 서부가 아니라 동부에 있었다 한들, 지금 상황에서 지기스문트의 측근들 중 그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진 못했을 것이었다.

수효로 따지면 팔만에 달하는 십자군 대부분은, 그저 저들 코앞인 보헤미아, 그 부유한 이민족의 땅을 약탈하고 겸사겸사 명예도 얻기를 바라며 몰려든 독일인 기사와 용병들이었다¹.

지기스문트의 수하들은 그러한 자들을 쳐내고, 오직 지기스문트의 군사들만을 추려내어, 개중 가장 날랜 기사들과 쿠만족 용병들만을 모아 새로운 선발대를 편성했다.

그리고 지기스문트 본인의 지휘 하에, 그 선발대는 정말로 이튿날 해질녘에 플젠 시에 닿는 데 성공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험악한 기세로 도시에 입성한 지기스문트의 군세를 두고 온 플젠 시가 술렁였다.

잠옷바람으로 급히 시청에 나타난 시장은, 몇몇 장교들과 협상을 시도했다.

“성문을 열어드린 데서 짐작하셨겠지만, 우리는 프라하로 가는 길을 막을 의사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물자도 적절한 값에 공급해드리도록 하지요.”

이미 쿠트나 호라에서 열린 전국의회에서, 보헤미아 도시들은 이번 십자군을 상대하는 방침을 저들끼리 정해놓은 뒤였다.

더구나 이미 십자군 선발대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비트코프 언덕 전투의 생존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플젠의 시장은 저들의 승리를 더욱 확고하게 믿게 되었다.

“그 정도로 이 도시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성의가 부족하군요.”

“그리 말씀하시니 유감스럽군요. 하면 이 도시를 불태우시렵니까? 온 보헤미아의 이목이 이 십자군에 쏠려 있는데, 그런 불명예를 어찌 감당하시려 그러십니까?”

한참 전, 피포 스파노가 이끄는 선발대가 작센에서 프라하로 향하는 길에서 들었던 무엄하리만치 당당한 대답을 거의 똑같이 반복하는 플젠 시장이었다.

그러나 시장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장교들 중 그 누구도 당황하거나, 이 무엄함을 어떻게 손봐주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를 삼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하게, 방과 복도를 잇는 문 쪽을 바라볼 뿐.

곧 문이 열리고, 지기스문트가 나타났다.

“명예와 불명예는, 결국 권력 있는 자의 뜻에 따라 정해지는 법이다. 그대의 어리석음은 여기에 있다.”

그 뒤에 함께 나타나는 것은, 플젠과 그 주변에서 가장 유력한 귀족들.

누군가는 의기양양하고, 누군가는 설움과 굴욕을 애써 숨기는 표정.

그것을 본 시장은, 이미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가 어떤 술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이미 귀족들의 마음은 다시 지기스문트에게 붙었다.

굳이 십자군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교회의 뜻에 따라 이단을 정죄한다는 명목으로 귀족들이 알아서 지기스문트에게 도시와 그 주변을 가져다바칠 수도 있게 된 것이었다.

“그대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이 도시가 모두 불타는 것과 절반만 불타는 것, 어느 쪽을 원하는가?”

시장은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꺾여버린 마음에서 나올 수 있는 정답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한편, 프라하 시는 민병대가 세운 경이로운 전공에 축제 분위기에 가득 차 있었다.

“하하! 통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기스문트의 기사들이고 무엇이고,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비트코프 언덕과 비셰흐라트에서 한 것처럼, 플젠에서 오고 있다는 본대도 단번에 쳐서 무너뜨려면 그만 아닐지요?”

시그리드와 얀 후스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시청에 모인 프라하 시의원들은, 저들끼리 이렇게 떠들곤 했다. 식자들이 이처럼 고무되어 있으니, 길거리의 평범한 사람들 생각이 어떠할지는 굳이 궁금해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민병대 대장으로서 자리에 참석한 얀 지슈카는 담담하게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놀라운 승리는 앞으로 딱 한 번만 더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군사와 관련된 일이 나오면 늘 그렇듯, 지슈카의 외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들려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저 십자군은 그저 독일과 헝가리에서 긁어모은 잡다한 무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들이라 한들, 평생 싸움을 업으로 삼아온 치들입니다. 시그리드 리프트라사 양의 놀라운 발상은, 한두 번 싸움이 지나면 그 놀라움을 잃게 되겠지요.”

비셰흐라트 성의 항복을 받을 때 방어군이 내세운 조건, 지기스문트에게 전령을 보내는 것을 허락해줄지를 두고 시그리드와 지슈카는 논쟁을 벌인 바 있었다.

그들이 십자군보다 우월한 점은, 바로 화약무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프라하 근교에서 거둔 엄청난 전과는, 지기스문트와 십자군 지도부가 그 힘에 경각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대처방안을 논의하게끔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터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비트코프 언덕에서도, 비셰흐라트에서도 정공법 대신 기책으로 승리를 거두었기에 아직 이쪽의 머스킷과 야포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뿐. 허나 그마저도 딱 한 번 야전을 겪고 나면 사라질 이점이었다.

“그 다음에도 물론 승리를 거두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조금씩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쌍방의 인명으로든, 우리 자신의 미덕으로든 말입니다.”

지슈카는 시그리드가 그리는 구상이 무엇인지 얼추 이해하고 있었다. 그 구상이 이루어지려면, 비단 이쪽뿐 아니라 지기스문트 측에서도 지나친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었다.

과연 그것이 실현 가능한지는, 지슈카 본인도 확실히 ‘그렇다’라 답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다른 누구도 아닌 시그리드의 말이기에 따를 뿐.

“그건 나중에 더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 급한 문제는 포로들입니다. 그들의 몸값을 정말로 받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언제부턴가 민병대 병참장교를 겸하게 된 재무관 온드레이가 시그리드에게 물었다.

십자군의 선발대를 이루던 칠천 병력 중 거의 육천 남짓이,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포로로 잡혔다. 용병과 정말로 사정이 딱한 몇몇 기사들은 무기만 압수하고서 방면했지만, 그러고도 아직 이천 명이 훌쩍 넘는 기사들이 ‘백송고리 둥지’에 억류되어 있었다.

“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언제고 다 방면할 생각이에요.”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

“이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려면, 결국 무기를 들고 하는 싸움 대신 사람들 마음을 두고 벌이는 싸움에서 이겨야 해요. 포로로 잡힌 기사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도움’을 받을지는, 아직 확실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시그리드였다. 검은 책의 도움을 받아 몇 가지 떠올린 방법은 있었지만.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오래 끌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이천 명의 군입을 먹일 군량은 있지 않나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만에 하나 모종의 이유로 비축된 식량을 풀어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이 주변을 벗어나 멀리 원정을 떠나야 할 수도 있고요. 비축분을 지금부터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의가 열리는 널찍한 방 바깥의 복도가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잠자코 듣던 얀 후스가 조용히 일어나 밖에 나갔다가, 곧 심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잠시 바깥에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십자군의 진로에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이 플젠만큼 운이 좋지는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본보기 삼아 약탈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난민들은 그저 뭔가 살길이 있으리라 믿고서, 걸어서 사나흘 거리인 프라하로 무작정 향해 왔다. 검은 죽음을 무찌른 시그리드라면, 저들의 곤경도 해결해주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품고서.

개중에는 미담도 전해졌다. 믿음 이전에 같은 보헤미아 사람이라면서, 평소 ‘후스 선생님’ 말씀을 입에 항상 올리며 교회 개혁 운운하던 이를 교회로 피신시켜준 신부. 프라하에서 목숨 건진 친척을 생각하며, 이웃집 보헤미아 사람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독일인 이민자.

그러나 그보다는 분노와 억울함이 더욱 강렬하게 전해졌다.

‘저희더러 어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하며 항변하는 마을 사람에게, ‘네놈들이 그리도 좋아하는 이단 수괴 후스에게 가서 물어보라’ 비웃으며 집을 불태우던 지기스문트의 기사.

말조차 통하지 않아, 그저 때려부수고 빼앗기만 하던 쿠만족² 용병들.

프라하의 여론이 들끓어 오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플젠을 불태운 놈들이나, 비트코프에서 항복한 기사놈들이나 다 한통속 아닌가! 그놈들 먹여살리는 식량도 아깝다!”

“서쪽에서 죽은 우리 동포들만큼 기사의 목을 베어서 지기스문트에게 보내줍시다!”

“그럴 것도 없소! 곧 봄이 오니, 누더기를 입히고 쇠고랑을 채워서 쟁기를 끌게 하십시다!”

저들 본인부터가 윗사람들에게 당한 설움을 많이들 품고 있던 민병대 사람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장 제르송이 후스와 시그리드를 체포했을 때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났던 프라하의 하층민들 또한 거기에 합세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사들에게 복수를!”

그렇게 남루한 행색으로 저들이 겪은 고초를 털어놓는 피난민들과, 그에 호응하여 분기탱천한 프라하 시민들이, 시청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적절한 대응’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시그리드가 직접 설득한 끝에, 겨우 분노한 군중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피난민들을 텅 빈 프라하 대학 교정이나 성 바깥의 공터에 수용하는 일거리가 생기는 바람에, 대부분 시청이나 대학 등에서 각각 한 자리씩 하고 있던 시의원들은 모두 저들의 직무를 다하고자 흩어졌다.

그렇게 시그리드와 후스, 지슈카 등 민병대 사람들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지기스문트 그이로서도 보헤미아의 민심을 얻는 게 중요할 텐데.”

“평생 학문에만 열중했던 내가 어찌 군주의 속마음이 이렇다 단언할 수 있겠냐만... 그사이 지슈카 대장과 이야기하다 보니 떠오르는 바가 몇 가지 있었단다.”

이단으로 몰린 이후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더 세속적으로 변한 후스가 숙고한 끝에 답했다.

지기스문트의 교활함은 보헤미아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무능한 벤첼과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수년간 다투었던 시절, 귀족들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며, 자신에게 왕위계승권을 넘기도록 만든 이가 바로 지기스문트였으니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지슈카 그이는 바로 그런 귀족들을 상대로 맞서 싸운 경력이 있단다. 그 속내에 대해서도 나 같은 책상물림보다 훨씬 잘 알고 있지.”

그런 귀족들이 지금껏 봉기에 중립을 지키거나 심지어 동참하기까지 했던 것은, 바로 이 기회에 편승해 지기스문트에게 뭔가를 얻어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비트코프에서 벌어진 전투의 충격적인 결과를 전해들은 뒤로, 귀족들의 마음은 예전같기가 어려워졌을 것이었다.

지슈카의 민병대는, 태반이 몰락한 하급귀족과 그냥 농민들, 도시의 하층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이들이 기사들을 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고, 그 힘을 실제로 발휘하여 놀라운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전처럼 고분고분하게 저들 귀족들을 귀족으로 대해줄 것인가? 한 번 배운 것은 쉽게 잊히지 않고, 기억이 희미해진 뒤에도 한 번 익힌 기술은 그대로 손에 익은 채로 남기 마련이었다.

“지기스문트는 보나마나 그런 논리로, 이미 흔들린 귀족들의 마음을 끌어왔을 것이다. 패전의 비보 속에서 우리 전국의회 쪽을 분열시킬 기회를 엿본 게지.”

그런 귀족들의 손으로, 후스를 지지하는 평민들을 핍박하게끔 만든다. 그렇게 핍박받는 동포들에게 자극받은 프라하 민병대와 시민들은 더더욱 분노를 불태우고, 그렇게 분노가 불탈수록 점잖고 잃을 것 많은 부유한 상인들의 마음은 멀어져 간다.

시그리드와 지슈카가 놀라운 전공을 이룩하면 이룩할수록, 귀족들은 평민들을 더욱 의심하게 되고, 갈등은 더 큰 갈등을 낳는다.

지기스문트와 온 보헤미아의 전쟁은, 그렇게 지기스문트와 몇몇 이단 사이의 전쟁으로 바뀌고, 후스를 따르지 않는 보헤미아인들은 후스와 시그리드의 지지자에서 조금씩 수동적인 방관자로, 나중에는 지기스문트의 암묵적인 우군으로 변해간다.

“지기스문트가 어디까지 노리고서 그런 짓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우리 프라하에 분열의 씨앗을 심은 것은 확실하단다.”

듣기만 해도 살짝 어지러워지는 권모술수.

당장 프라하 사람들은 억류된 기사들에게 보복할 것을 부르짖고 있었다. 아마 지기스문트는 그들 기사들에게 수모가 가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말 못된 심보네요.”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대개 그러하니, 어찌 지기스문트 한 사람만 탓할 수 있을까. 깊게 파고들면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이요, 또 교회가 그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탓이겠지.”

후스가 말하면서도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는 시청 직원들을 바라보며 장의자에 앉아 있던 시그리드가 물었다.

“저기, 선생님. 실은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몇 가지 떠올린 게 있었는데요.”

“그래, 언제고 마음을 정하면 우리에게도 알려주겠노라 얘기했었지.”

“네. 그것 때문에 그러는데... 만약에 어떤 악한 사람이 자기 딴에는 선이라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기 위해 계교를 고안해냈다면, 그 계교를 우리가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잘못이 될까요?”

“계교라? 흠... 그게 그 자체로 악에 해당하느냐? 예컨대 그 과정에서 어떤 죄를 스스로 범하게끔 만든다던가.”

“그건 아니에요.”

검은 책 끄트머리, 욘이 가장 꺼려하던 주제인 ‘현대사’ 대목에서 발췌한 지식 한 토막을 꺼내는 시그리드였다.

그리고 그 ‘현대’에 이념을 두고 어떤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상상할 수 없던 얀 후스가 듣기에는, 시그리드가 소개한 발상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더구나 그 계책대로라면, 포로들이 분노한 시민들에게 지나친 모욕을 당한다던가, 그 목숨을 잃게 되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네가 언급한 선악의 문제는, 사실 여력이 된다면 많은 학자들을 한데 모아 오래도록 논쟁을 벌일 수도 있는 그런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럴 여력은 없고, 당장 대응해야 할 심각한 사태도 있으니... 내 이 자리에서 판단하기로는, 그대로 진행해도 좋을 듯하구나.”

시청의 썩 편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한 후스 교수의 답이었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정리된 시그리드는, 시내의 몇 군데에 들린 다음 ‘백송고리 둥지’로 향했다.

미리 지슈카 편으로 연락을 보내둔지라, 건물 이곳저곳에 나뉘어 수용되어 있던 포로들은 이미 한군데 모여 시그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들을 이대로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큼직한 창고에 급조된 단상 위에 올라가자마자 시그리드는 이렇게 운을 떼었다.

“마침내!”

“그런데 정말로 몸값은 받지 않으려 하시오?³”

몇몇 점잖지 못한 이들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약속은 지켜야지요.”

시그리드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은 은근히, 혹은 드러내놓고 기뻐했다. 그 뒤에 불길한 첨언 한 대목이 뒤따르기 전까지는.

“하지만 말이에요. 정말 이대로 몸값 없이 풀려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이래 봬도 이단 취급을 받고 있잖아요. 기껏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이단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들으면 억울하지 않겠어요?”

생각도 해보지 않은 문제에 – 애시당초 몸값을 받아낼 수 있는 상대를 그냥 풀어주는 것부터가 드문 일이었다 – 잠깐 활짝 피었던 기사들의 표정이 도로 어두워졌다.

“그래서 준비한 소소한 계책이 있답니다. 다들 귀를 기울여 주시겠어요?”

시그리드가 급조한 단상 위에 올라가, 책 한 권을 꺼냈다. 비트코프 언덕 전투의 원인을 제공한 책자였다.

이곳 프라하에서 ‘출판’된 책으로 인해 교황 알렉산데르 5세가 급사했다는 낭설을 나름 진지하게 믿는 이가 포로들 중에도 꽤 있었는지, 질겁하며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이미 이 ‘마녀’가 이단이라는 무서운 말을 마치 사람들 사이의 농지거리인 양 다루면서, 프라하의 교회들을 점잖게 약탈하던 것을 보았던 피포 스파노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단상 위를 바라보았다.

“아시다시피 이곳 프라하에는 책을 말 그대로 찍어낼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답니다. 이걸 저희는 인쇄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기사 여러분들께서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포로로 붙잡혔고, 어떤 잘못도 범하지 않은 채로 풀려났다는 증언을 모아서 작은 책자 하나를 인쇄하려고 한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풀려나실 때, 그 책자를 여러분께 나눠드릴 거에요. 다른 기사분들의 증언까지 한데 묶어서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고향에 돌아가서도 의심을 피할 수 있겠지요.”

한 사람의 증언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다른 기사들의 증언까지 한데 수록한 책이라면, 그만큼 강력한 보증이 되어주기는 할 것이었다.

“우리가 싫다고 한다면?”

피포 스파노가 의심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저희들 관점에서 비트코프 언덕에서 벌어진 일의 진상을 밝혀야지요. 가뜩이나 사람들이 저더러 하얀 마녀니 뭐니 하는데, 만약 제가 가만 있는다면 또 무슨 악마의 사술로 무고한 기사들을 짓밟았니 어쩌니 하는 중상모략이 나돌지 않겠어요?”

그 얘기가 나오자, 잠시 피포 스파노에게 동조하여 저들은 마녀의 계략에 놀아나지 않겠노라 말하려던 이들은 도로 시무룩해졌다.

“그 진상을 밝히는 책자에는 이런 그림까지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시그리드가 해맑게 웃으며, 미리 준비해온 그림 몇 장을 돌렸다.

종이 위에 목판화로 인쇄된 그림을 본 이들은 모두 사색이 되었다.

야트막한 나무 방벽 하나를 못 넘고, 농민들의 도리깨에 얻어맞으며 혼비백산한 채 언덕 비탈길에 자빠지는 기사들의 그림이었다.

이 시대에 아직 남아있던 점잖음과는 사뭇 대비되는, 20세기 만평풍의 그림. 그 적나라함에 기사들은 말을 한동안 잃었다.

“이... 어찌 우리의 명예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는가!”

“아니, 그러니까 그 명예를 지켜드린다고요.”

저런 적나라한 그림이 들어간 책자로 저들의 명예가 짓밟히는 것과, 뭔가 수상쩍은 제안이지만 어쨌든 언뜻 판단하기로는 손해볼 것 없는 제안.

둘 사이에서 무엇을 택해야 할지는 뻔했다.

“독일과 보헤미아, 두 나라 말로 글을 쓸 거에요. 번역은 저희 쪽에서 도와드릴 것이고, 혹 저희가 뭔가 농간을 부릴까 의심하시는 분들을 위해 인쇄에 들어가기 전 꼭 확인을 받을게요.”

“... 알겠소.”

“우선은 따르도록 하지.”

한때는 기사가 글을 모르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이 무렵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낮에는 삶이 단순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떠드는 기사들도, 밤에는 몰래 부르고뉴 궁정의 연애시 따위를 읽으며 키득거리거나 눈물짓곤 했다.)

더구나 만약 저들은 문재가 없으니 대필을 해달라 청한다면, 마녀가 가운데서 또 무슨 농간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므로 다들 그날부터, 어찌하면 저들의 명예를 지키면서 비트코프 언덕과 비셰흐라트에서 벌어진 일들을 잘 포장할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장부터 그러한 고심은 벽에 부딪혔다.

“‘용감하게 항복했다’라고 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전장의 명예를 운운하던 기사들로서는, 도저히 비트코프 언덕에서 그들이 벌였던 추태를 포장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엄청난 수의 적이 언덕 양옆에서 나타났기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득이하게 항복하게 되었다.

그것이 그나마 그들이 보였던 추태를 감추면서 - 도리깨에 얻어맞고 머스킷에 낙마하였던 것 – 그 저주받을 언덕에서 벌어진 일을 에둘러 표현하는 길이었다.

“상대는 이단들이었단 말이지... 차라리 그 자리에서 끝까지 싸웠다면 모를까, 중과부적이라서 그냥 무기를 내려놓았다고 한다면, 그 글이 그대로 쓰여서 세상에 퍼진다면 앞으로 누구도 우리를 기사라 인정하지 않을 걸세.”

“더구나, 아까 그 조롱하는 그림 보지 않았는가? 만약 우리가, 그, 필요에 따라서라지만 지나친 과장을 섞게 된다면, 이 괘씸한 이단들에게 트집을 잡히게 될지도 모르네.”

‘차라리 우리집 아낙네가 댁들보다는 더 용감할 게요.’라면서 비웃는 저들 영지의 농노들 모습이 몇몇 상상력 풍부한 기사들 눈앞에 어른거렸다. 라틴어라면 모를까, 독일어로 된 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 있는 이는 종종 있었던 것이다.

“사악한 이단들이 아녀자들을 언덕 위에 세워놓았기에, 기사로서 어쩔 수 없이 창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는 어떻겠는가.”

“자네 로망스(기사문학)를 너무 많이 읽었군! 세상의 어느 정신 박힌 사람이 그런 소리를 믿겠나?”

“에라이, 되었네! 되었어! 나는 거짓은 도저히 못 쓰겠네!”

“이봐, 자네 혼자 빠지려고?”

“우리는 그냥 ‘살짝 다른 진실’을 쓰려는 것 뿐일세!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기사들의 증언을 한데 모아 편집하여 책을 낸다 하였으니, 만약 한 사람이라도 엉뚱한 소리를 해서 그것이 책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때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이단 중에도 대화가 통하는 이단이 있더라’ 하고 쓰고 있는데, ‘그런 것 없고 우리 모두 농노들보다 싸움을 못해서 몽땅 포로로 잡혔다’라고 눈치 없이 증언하는 대목이 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리고 무익한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항복한 것도 맞지 않소? 슈반베르크의 보후슬라프 경은 기사로서나 사람으로서나 실로 존경할 만한 분이오. 나는 그분의 판단을 존중하오.”

치욕스럽게 패배한 비트코프 언덕의 포로들과 달리, 나름대로 버텨보다가 항복한 비셰흐라트 성의 포로들은 또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들이 비트코프에서 보여준 졸전과, 몸값을 내지 않고 풀려나게 된 이 상황에 대해 기사로서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고 변명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뿐이었다.

프라하의 이단들이 사실 그렇게까지 마구 때려죽여야만 하는 이단은 아니었다는 것.

그런 ‘그렇게까지 사악하지만은 않은’ 이단들이었기에, 기사로서 차마 모두 도륙하지 못하고 대화와 타협 끝에 조용히 투항하게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단 중에도 선량한 이단이 따로 있었다고 쓰자는 말인가?”

“아예 틀린 것도 아니잖은가? 저 하얀 마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언덕 비탈에 쓰러져 있을 때 비천한 놈들 손에 몰매를 맞았을지도 모르네.”

“에휴, 모르겠다. 그놈의 몸값이 뭔지...”

그렇게 조금씩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지고, 기사들 본인의 말 혹은 글로 된 증언이 차곡차곡 모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공산주의를 찬양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쓰도록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졸지에 이단으로 몰린 프라하 사람들을 은근히 옹호하는 글을 쓰도록 만든 정도라면, 그렇게까지 못된 짓까지도 아니지 않을까. 약간 찔리는 양심을 그렇게 스스로 변호하며 시그리드는 이 모든 과정을 몰래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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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 역사의 제1차 후스파 십자군은, 후스파 측의 과장된 기록에 따르면 그 수가 이십만에 달할 만큼 엄청난 대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군은, 1420년 3월 교황 마르티노 5세의 칙령으로 선포된 지 3개월 만인 6월 말에 그 본대가 프라하 코앞까지 당도할 정도로, 그 규모가 무색할 만큼 빠르게 소집되어 보헤미아에 들이닥쳤습니다. 이처럼 졸속으로 꾸려진 십자군이었으니, 얀 지슈카가 이끄는 타보르파 민병대에게 그토록 처참하게 패배하기만 했던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물론 당대 기사의 상식으로는, 고작 보헤미아의 도시민과 농민들이 무장한 게 전부인 군대가 기사들을 상대로 제대로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겠지만요.)

2. 본디 지금의 우크라이나 동부부터 카자흐스탄 서부까지 광활한 영토에서 거주하던 튀르크계 민족인 쿠만족은, 앙숙이던 루스계 공국들보다 한발 앞서 몽골에게 유린당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발칸 반도와 헝가리까지 도망쳤는데, 워낙 이질적인 집단이었기에 작중 시점인 15세기 초반은 물론이고 한참 뒤인 17세기까지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이전에 언급된 리투아니아 대공 비타우타스의 타타르인 경기병처럼,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 역시 이들 쿠만족을 용병으로 기용해 쏠쏠한 전과를 올리곤 했습니다.

3. 그룬발트 전투 이후의 튜튼 기사단원 몸값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술한 것처럼, 당시 기준으로 포로의 몸값을 받는 것은 전쟁에서 가장 쏠쏠한 수익사업이었습니다. 그룬발트에서 포로로 잡힌 기사단원들의 몸값으로 튜튼 기사단은 잉글랜드 국가재정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갚아야 했고, 두 세대 전의 일이지만 백년전쟁에서 흑태자 에드워드에게 포로로 잡힌 프랑스 왕 장 2세는 300만 크라운이라는 거금의 몸값을 약속하기도 했지요. 이러한 관행은 비단 기사들뿐 아니라 용병들에게까지 종종 적용되었는데, 일례로 그룬발트에서 포로로 잡힌 고위급 용병 하나는 은 30kg에 해당하는 그로셴 은화를 몸값으로 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몸값 시세가 높기 때문에, 작중의 기사들 또한 몸값 면제 얘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원 역사에서 타보르파가 포로로 잡힌 기사들을 모조리 학살했던 것에 비하면 고작 몸값이나 명예를 걱정하는 것만으로도 양반이라 해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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