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엔 드러눕자 (4)
8. 오늘 밤엔 드러눕자 Get Down Tonight (4)
비트코프 언덕에서 머스킷과 도리깨에 패해 포로로 잡혔던 십자군 기사들이 풀려난 것은 1411년 벽두의 일이었다.
프라하 시민들과 도시 주변에 천막촌을 세우고 겨울을 견디는 피난민들로부터 원한 가득 담은 시선이 쏟아졌지만, 기사들은 그런 천것들의 시선 따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은은한 노기를 담은 시선 외에 다른 어떤 것, 예컨대 썩은 과일이나 돌, 오물 따위가 날아들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누구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저 기사들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방면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깨닫고 근근이 납득했기에 저리 가만히 서서 노려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론하는 이도 거의 없었다.
그저 집안의 기둥뿌리 뽑지 않고서 풀려났다는 사실, 그리고 저들이 포로로 잡힌 사연을 아주 잘 변명해줄 글을 적게는 수 부에서 많게는 수십 부씩 들고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만 마냥 기뻐할 뿐.
(책의 표제는 『비트코프 언덕과 비셰흐라트 성에서 소위 십자군에 참여하였다가 크나큰 오해가 있었음을 깨닫고 영예로운 길을 선택한 수많은 기사들의 진실된 증언』이었는데, 줄여서 ‘진실pravda’이라 부르곤 했다.)
기사들은 그렇게 싱글벙글하며 저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개중 보헤미아 서부나 그 너머의 오버팔츠, 뉘른베르크 등지에서 찾아왔던 이들은, 저들의 포로생활 동기들이 곧 처하게 될 역경을 먼저 겪게 되었다.
“독일과 보헤미아의 국왕이신 지기스문트 폐하의 이름으로! 거기 가는 그대들, 그 자리에 서시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쪽으로 향하던 기사들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오?”
“그대들이 이단에게 동조하여, 그들이 펴내는 사이한 책을 유통시키고자 한다는 고발이 접수되었소! 즉시 소지한 모든 것을 내놓으시오!”
“사이한 책이라니! 설마 경들도 인쇄된 책에 악마의 저주가 서려 있다는 그 미신 섞인 낭설을 믿는 것이오?”
가장 먼저 풀려난 지기스문트의 측근 피포 스파노는, 저의 몫으로 된 ‘진실’ 한 권을 가져다 이단의 술수에 대한 증거랍시고 지기스문트에게 가져다 바쳤다.
지기스문트는 그 책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떤 기제로 이 책이 보헤미아 평정을 가로막게 될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뒤에 무언가 음험한 의도가 있음은 짐작하였다.
그리하여 즉시 보헤미아와 독일 곳곳에 몰래 사람을 풀어, ‘악마의 술수로 펴낸 책의 위험성’에 대해 마구 낭설을 퍼뜨리게끔 사주하는 한편, 당장 십자군 본대의 힘이 닿는 지역에서는 이렇게 길을 가로막고서 프라하에서 풀려난 기사들을 붙잡고 있던 것이다.
그런 내막까지는 몰라도, 저들이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것이 문제로 불거졌으리라 단정한 기사가 순순히 ‘진실’을 꺼내보이며 말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이 책은 무슨 이단이나 사악한 마법의 산물이 아니오. 우리 같은 신실하고도 정직한 기사들의 증언만 모아서 찍어낸 것이라오. 우리가 프라하에서 일말의 불명예스러운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함인데...”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바가 아니외다! 그대 또한 지기스문트 폐하의 충직한 봉신이라면, 마땅히 우리의 지시에 응해야 할 것이오! 즉시 그 책을 내놓으시오! 한 권도 남김없이 모두!”
지기스문트의 본대에 속해 있던 기사들이 보기에, 이들 선발대 기사들은 이단에게 현혹된 무지한 농노들에게 참패한, 기사의 수치와 같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몇 번 말이 오가기도 전에 금방 언성이 올라갔다.
“아니, 어찌 이런 폭거를 행할 수 있단 말이오! 우리 또한 엄연히 기사요! 기사의 명예를 이렇게 짓밟을 수 있소?”
“싫다면 어찌할 테요?”
항복할 때 호신용 단검이나 곤봉 정도를 제한 무기를 모두 빼앗겼던 선발대 기사들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요구에 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들 본대 기사들이 들을 수 없는 거리까지 오자마자 그 분통을 터뜨렸다.
“우리더러 허황된 소문의 피해자로 남으란 말인가! 이런 불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허황된 소문’이란 게 사실 진상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저들끼리 머리 맞대고 증언을 기록하면서 저들 입맛대로 기억까지 비틀어버린 기사들 머릿속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가만 있을 수는 없소. 이대로라면 정말로 우리의 명예는 진탕에 처박히고야 말 것이오!”
“어디 그뿐인가. 나중에 우리더러 이단과 공모했다고 무고하는 악한이 나올 수도 있지.”
풀려날 때 다시는 프라하의 반란군을 상대로 무기를 들지 않겠노라 맹세한 적도 없었으므로, 그들 중에는 고향에 잠시 들려 무장을 다시 갖춘 뒤 본대에 합류하려던 자들도 꽤 있었다. (전쟁은 그만큼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명예가 짓밟힌 상태라면 그마저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 책을 압수하라는 지시를 내린 이가 지기스문트 본인이라면, 그에게 찾아가 탄원하는 것 역시 바보짓일 공산이 컸다.
이대로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는 없던 기사들은, 궁여지책을 짜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꽤 큰 마을인 크랄로비체Kralovice요. 거기서 기다리며 우리 동료들을 모읍시다. 보아하니 이쪽으로 향한 우리 동료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곤경에 처할 듯하니 말이오.”
“그리고는?”
“내가 듣기로, 보후슬라프 경의 영지인 슈반베르크가 크랄로비체에서 지척이라 하였소. 그분의 지도를 받아, 우리의 명예를 되찾으러 함께 프라하로 향하는 것이오.”
책을 빼앗겼다면야 다시 찍어내면 그만이었다. 보후슬라프 아래에서 몇백 명씩 무리지어 프라하를 왕복한다면, 프라하 반군과의 일전을 앞둔 십자군 본대조차 함부로 적대할 수 없을 터.
선발대 기사들의 마음속에서, 어느새 적과 아군, 정의와 불의 사이의 구분은 흐려지고 있었다.
지기스문트가 이끄는 팔만 대군은, 프라하 북쪽과 남쪽으로 넓게 날개 펼친 새의 형상으로 나뉘어 기동하고 있었다. 병력의 우위를 살려, 프라하를 멀찌감치서 에워싸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저를 지도자로 추대한 기사들과 함께 다시 프라하로 향하던 보후슬라프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올라, 프라하에서 그리 머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 약탈당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독일인과는 말이 다른 보헤미아인들¹. 그들을 약탈하는 재미에 맛이 들릴 법도 하건만, 약탈당하는 마을에서는 죽어가는 사내나 유린당하는 여인의 비명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집을 불태우는 불길과 대조적인 냉혹함으로, 그저 집과 재산 잃은 이들을 프라하로 내모는 모습만 보일 뿐.
곧 멀찌감치서, 말 달리는 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조그만 기병대와, 그들을 따라온 듯한 마차 여러 대로 이루어진 행렬.
보후슬라프가 프라하에 억류되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아마도 그새 새로 만든 듯한 깃발. 흰 바탕에 붉은 물감으로 잔의 형상을 그린² 깃발이 수레 행렬 위에 휘날리고 있었다.
“놈들이다! 이단이 나타났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약탈이 본 목적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듯, 마을을 불태우던 십자군은 빠르게 전열을 갖추고 ‘이단’을 맞이하러 나갔다.
(보후슬라프의 머릿속에서도 어느새 프라하의 ‘이단’은 진짜 이단과는 구분되는 관념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선공을 가해오는 것은 프라하 쪽이었다. 제대로 된 갑옷도, 마갑도 없이 달려오는 경기병대.
그들이 마을에 가까워진 뒤에야, 보후슬라프는 저쪽 기병들이 기병창(랜스) 대신 엉뚱한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원, 하마下馬!”
이제 보니, 그들이 타고 온 것은 전마戰馬로는 쓰기 부적합할 만큼 덩치가 작은 말들이었다.
빠르게 말에서 내린 프라하 군은 그대로 머스킷을 꺼내, 십자군이 ‘어어’ 하는 사이에 재빨리 장전을 마쳤다.
그사이 몇몇은 아마도 돌격하기 전에 미리 챙겨온 듯한 등불을 꺼내 불씨를 나누어주었고, 가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임을 깨달은 십자군 기사들이 돌격하기 직전에 겨우 일제사격을 하는 데 성공했다.
“전원, 후퇴!”
그러고는, 미련 없이 말에 타 달아나는 것이었다. 처음 진격해올 때 느릿느릿하게 움직인 것과 달리, 불씨를 신경쓸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지 시원하게 달려나가는 기병대였다.
“대체 무슨 속셈일까요?”
보후슬라프를 따라온 기사들 몇몇이 물었다. (그들을 그토록 쉽게 짓밟은 프라하의 반군이 이곳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의 명예는 더욱 실추될 것이라, 대부분의 선발대 출신 기사들은 몰래 반군을 응원하고 있었다.)
“도발이 목적이었던 듯하오. 내 저 머스킷이라는 무기는 잘 알지 못하지만, 딱 보아도 ‘아군’에게 어떤 엄청난 피해를 줄 심산은 아니었던 듯하군.”
그 추측이 옳다고 맞장구라도 쳐 주는 것처럼, 경기병대는 열심히 십자군 기사들을 유인하고 있었다. 저들과 함께 온 마차 행렬이 있는 곳을 향해서.
어느새 원형으로 뭉쳐서 작은 성채 모양을 갖춘 수레들. 수레를 끌던 말들은 그 안쪽에 모아놓은 듯했다.
그 수레들 틈으로 경기병대가 먼저 쏙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 뒤를 바짝 추격하던 기사들이 수레에 닿기 전.
“사격 준비!”
수레에서 일제히 구령이 울리며, 머스킷과 도리깨, 창으로 무장한 반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트코프 언덕의 악몽이 떠오른 몇몇은 멀찍이서 구경만 하는데도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는,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 익숙한 일이 벌어졌다.
수레 앞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연기와 울려오는 폭음. 도처에서 쓰러지는 군마. 운 좋게 수레 앞까지 갔다가 도리깨에 얻어맞고 쓰러지는 기사들³.
“후퇴! 후퇴하라!”
그러나 십자군 지휘관은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는지,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여 재차 돌격을 명하는 대신 미련 없이 후퇴를 명했다.
멋모르고 계속 언덕 위로 무작정 달려가다가 모조리 포로로 잡혔던 비트코프 언덕 출신자들로서는, 왠지 모르게 열이 뻗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웠고 또 저의 지위 때문에라도 자유로워야 했던 보후슬라프는, 저 의외의 질서정연함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앞서 마을을 약탈할 때도 그렇고, 모험과 재물을 바라며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오합지졸 십자군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만큼 비트코프와 비셰흐라트의 패배가 강력한 경종을 울린 것이리라.
부족한 군사적 재능을 권모술수로 메워 온 지기스문트라면, 아마 그 두 패배의 소식을 한없이 과장함으로써 십자군 기사들의 단단한 머릿속에 한 가지를 단단히 박아넣었을 것이다.
패배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하얀 마녀의 술수에 농락당하는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장의 욕심은 제쳐놓고 오직 자신의 지휘에만 따라야 한다는 것.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해가 바뀌고 봄을 앞두게 된 지금까지는 그 교훈이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마을을 불태운다는 목표를 달성한 십자군은, 전투마차 대열을 뒤로 하고 그대로 물러났다.
기사들을 막아낼 수는 있어도, 먼저 공격해 무너뜨릴 수는 없던 반군 역시, 그대로 불타는 마을을 뒤로 하고 프라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후슬라프가 이끄는 선발대 출신 기사들은 피난민 대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함께 프라하로 향했다.
그들이 풀려났을 때만 해도 그저 성문 밖 이곳저곳에 엉성한 천막이 세워져 있는 게 전부였던 피난민촌은, 이제는 거의 작은 도시 하나를 이룬 듯 커져 있었다.
고향 생각에 통곡하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후스를 따르는 성직자들은 나무 궤짝 같은 것들로 급조한 연단에 서서 설교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은 반드시 지나갈 시련에 불과합니다. 불탄 집은 다시금 지어질 것이며, 망가진 농토는 다시 비옥해질 것입니다. 믿음을 굳게 지키고,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여러분 중 이 땅에서 떠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비옥한 새 땅에서 정착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떠나지 않은 이들은 떠난 이웃의 땅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역시 급조된 무대에서는, 지기스문트를 조롱하며 자유로운 삶을 노래하는 광대들의 희극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관중들의 옷차림으로 보아하니, 구경하러 시내에서 나온 프라하 시민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자신이 시인이라 착각하던 도시 사람 몇몇은, 인쇄기가 한가한 틈을 타 자비로 출판한 저들의 책을 공짜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무질서함 어딘가에서 보후슬라프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의 성향 어딘가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싹을 틔운 것이리라⁴.
“프라하의 봄은 보헤미아 그 어디보다도 더 찬란하군요.”
프라하 대학 교수들을 모조리 임시 관료로 삼아 피난민촌을 운영하고 있던 얀 후스를 만난 보후슬라프가 말했다.
“그 봄이 도로 겨울이 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요.”
“여름을 지나 수확의 가을까지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피곤함과 보람을 동시에 만면으로 드러내는 후스가 겸허히 답했다.
“‘진실’ 책자가 더 필요해서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쇄소 쪽에 전달했으니 며칠 내로 작업이 끝날 겁니다.
그보다, 찾아오시는 길에 보았다는 지기스문트 군세의 움직임은 여러모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군요. 시그리드 양과 지슈카 대장을 불러 함께 논의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곧 후스의 호출을 받은 시그리드와 지슈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후슬라프는 포로 시절에도 다른 기사들처럼 민폐를 끼치기는커녕 도리어 항상 정중하게 그들을 대했으므로, 두 사람 역시 보후슬라프의 모습에 미간을 좁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그리드는 반갑게 보후슬라프를 맞이해, 그로 하여금 이 여인을 알게 된 모든 이들이 결코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까닭을 내심 이해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보후슬라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적으로 서로 만났던 사이인 제가 이렇게 찾아와 십자군의 동향을 알리는 것을 의심하실 수도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십자군의 편을 들었던 것은, 그것이야말로 보헤미아인들의 피를 가능한 한 적게 흘리고 이 다툼을 끝낼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기스문트 폐하께 그런 목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더군요.”
결코 가볍게 나오는 언사는 아니었으므로, 시그리드와 지슈카 또한 진중하게 들었다.
“지기스문트 폐하의 봉신인 저로서는 이곳 사람들을 위해 무기를 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싸움이 보헤미아를 더 불태우기 전에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도울 수 있는 한에서 힘껏 돕겠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시그리드가 물었다.
“그러면 여쭙겠습니다. 대체 지기스문트 그이는 왜 프라하 주변을 그렇게 약탈하고 있는 걸까요?
길을 막고 책자를 빼앗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가 아예 상종도 못할 이단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선량한’ 이단이고 또 뜻을 이루면 보헤미아를 떠날 것임이 주변에 알려지게 되면, 지기스문트 그이가 플젠 주변을 약탈하면서, 보헤미아 귀족들과 우리들 사이를 이간질하려던 건 무위에 그치게 될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오는 길에 듣자하니, 동쪽이나 북쪽으로 향했던 기사들이 그 책자를 주변에 나눠주자 그런 반응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무렵의 소문이란, 대개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마구 퍼나르는 소문과, 신분이 확실한 사람끼리만 주고받는, 참이거나 적어도 그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받는 소문.
튀르크의 술탄을 새장에 가두었다는 무시무시한 타타르 군주 타메를란(티무르) 이야기나 그룬발트에서 망자를 일으켜 세운 하얀 마녀 얘기가 전자에 속하는 반면, 책으로 적혀 나오기까지 한 믿음직한 기사들의 증언은 당연히 후자에 속했다.
“그런데 이미 그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 명백해졌는데도 왜 약탈을 계속하고 있는 걸까요? 보헤미아 사람들은 엄연히 지기스문트 그이의 신민들인데요.”
지슈카의 민병대는 여전히 그 수가 십자군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피난민들 중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을 받아들여 지금도 열심히 훈련을 시키고 있었지만, 그래본들 일만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다.
프라하 시민들까지 징집한다면 그 이상까지 머릿수를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들 모두를 무장시킬 여력은 되지 않았으므로 별 의미는 없었다.
그 정도 병력으로는, 보후슬라프가 오면서 보았던 것처럼 프라하 주변을 빙 돌면서 근교를 약탈하는 십자군을 몇 번 패퇴시킬 수는 있어도 아예 그 진로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 역시 팔만 병력으로 프라하 주변을 다 에워쌀 수는 없었다. 당장 보후슬라프와 그의 기사들이 별 제지를 받지 않고 이곳 프라하까지 온 것부터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런 짓을 벌인다는 말인가? 시그리드로서는 지기스문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후슬라프는 담담한 말투로 시그리드의 오류를 짚어주었다.
“시그리드 양께서 잘못 알고 계시는 게 있습니다.
물론 지기스문트 폐하와 룩셈부르크 가문에 보헤미아는 중요합니다. 이 풍요로운 땅에서 나오는 막대한 소출은 제국의 다른 제후들 위에 서는 데 필수불가결하지만요.
하지만, 보헤미아가 중요한 것이지 보헤미아 사람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주민들이 사라져 텅 빈 마을에는, 그저 독일인 이민자를 채워 넣으면 그만입니다. 사람이 사라져도 비옥한 토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시민들을 도륙한다 한들, 그 자리를 채우길 바라는 독일인 상인들이 한가득 있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지요. 실레지아와 독일, 헝가리와 폴란드 사이에 위치한 축복받은 입지는 변하지 않으니까요.”
각각 학자와 용병대장으로서 나름의 식견이 있던 후스와 지슈카였지만, 직접 지기스문트를 접하고 이 왕국과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왕후王侯들의 아귀다툼을 어깨너머로나마 접해본 보후슬라프만큼 지기스문트를 잘 알지는 못했다.
그리고 시그리드와 두 명의 얀 중,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얻게 되는 고질병, 저의 희망을 담아 세상을 바라보는 버릇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었다.
“프라하 주변을 불태우고 피난민들을 이 도시로 몰아넣게 되면, 결국 어떤 시점에서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군과의 일전에 나서거나, 아니면 우리들 포로를 대할 때 절묘한 방법으로 피했던 그 갈등, 이 반군 대부분을 이루는 평민들과 이 반란의 보이지 않는 지지자인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 사이의 갈등이 고조된 끝에 터지는 것을 감수하거나.
지기스문트 왕이 노리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겠지요. 지금까지 시그리드 양과 후스 선생님이 해 왔던 것처럼, 놀라운 지혜로 이리저리 어려운 상황을 피해 여기까지 왔던 것을 알고, 빠져나갈 여지를 줄여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트코프 언덕에서 벌어진 일을 듣고도 우리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는 말입니까?”
자신이 단언한 대로, 딱 한 번쯤은 십자군 본대를 상대로 크게 이길 자신이 있던 지슈카가 물었다.
“승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십자군을 일으켜 프라하로 쳐들어오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지기스문트 그이는, 십자군을 이끄는 입장이잖아요. 이단들에게 패배한다면 그만큼 위신이 실추되니까, 결국에는 우리와 협상하려 하지 않겠어요?”
시그리드가 충격으로 멍해지던 마음을 수습하며, 일말의 희망을 담아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기스문트 폐하를 협상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고작 한두 번 망신으로는 충분치 않을 겁니다.
계속 싸워서 이기고 또 이긴 끝에, 쑥대밭이 된 보헤미아 땅 밑에 독일 기사들이 숱하게 묻힌 뒤에야 지기스문트 왕에게 타협을 강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기스문트는 결코 뛰어난 장군이 아니었다. 군사 외의 영역만 놓고 봐도 아버지 카를만큼의 군주는 되지 못했다 (그 이복형 벤첼보다야 훨씬 뛰어났지만.). 허나 그에게는 독보적인 장점, 끈기가 있었다.
그는 크로아티아와 헝가리 귀족들과의 다툼에서 몇 번이나 패배했고, 비참한 몰골로 도망치거나 붙잡히는 일도 숱하게 겪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하는 쪽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기를 그치지 않는 지기스문트였다.
지슈카와 후스 모두,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더 나아가지 못했다.
후스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지슈카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이 싸움을 쉽게 저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어떠한가? 당장 프라하에 남은 독일인들과, 전국의회에서 프라하의 대의에 공감해준 많은 이들은, 후스의 주장에 따른다기보다는 시그리드의 계획, 지기스문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망신을 주어 보헤미아인들의 온갖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그 계획을 따르는 것이었다.
한 편의 희곡 같은 전쟁이 되리라 믿으면서.
그러나 전쟁은 연극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전투라 한들, 피 흘리며 죽은 자는 살아날 수 없었다.
그 현실을 이야기하고, 또 지기스문트야말로 그러한 현실을 아주 잘 알고 이용하는 자임을 말하는 보후슬라프 앞에서, 세 사람은 모두 고심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시그리드는 빠르게 고민을 마쳤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우리가 바라는 것과 지기스문트 그이가 바라는 것 사이에는 분명 겹치는 부분이 있을 거에요. 되는 데까지는 노력해 봐야지요.”
그리고 그 ‘되는 데까지’가 정확히 어디까지인지를 논한다면, 시그리드만큼 상상의 나래를 넓게 펼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터였다.
마침내 프라하가 눈앞에 다가왔다.
오늘 아침에 보낸 척후는 프라하 성과 그 곁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첨탑을 눈에 담고 돌아왔다.
그리고 블타바 강 동쪽을 가득 메운, 피난민들의 천막촌과,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무질서의 향연도.
그 보고를 들은 지기스문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내심 자부하게 되었다.
저 후스 추종자들과 반란자들의 군세가 정말로 이단인지, 그 시그리드라는 여인이 정녕 마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것, 더 나아가 이 보헤미아와 신성로마제국의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이야말로 문제였다.
교회와 제국의 권위를 한 번 부정한 자들이, 두 번, 세 번이라고 부정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므로 어떻게든 저들에게는 파멸이 내려져야만 했다.
지기스문트는 자신이 그 시그리드라는 여인의 미숙함, 전쟁을 일으켰으면서 정작 진짜 전쟁을 벌이기는 원하지 않는 그 속셈을 꿰뚫어 보았다고 자부했다.
프라하 주변이 모두 불타고, 저 도시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피난민이 몰려들고, 지난 가을에 수확해 모아들인 식량이 동나게 되면, 그때는 비로소 저들도 일전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 전투에서 패배한다 한들, 자신은 그것을 더욱 큰 십자군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삼을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팔만 군세가 패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였으니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는 상상은 아닌 듯했지만.
군막에 홀로 앉아, 포도주 한 잔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던 지기스문트의 귀에 인기척이 들려왔다.
“폐하, 반란자들이 폐하를 찾아왔습니다.”
지난날 포로 생활 이후로 많이 겸허해진 피포 스파노가 – 그는 딴마음을 품기에는 지기스문트 자신에게 너무나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 – 들어와 고했다.
“하, 이제야 주제를 알게 되었는가. 사절을 그대로 돌려보내라. 아직 멀었으니.”
“그, 송구하오나... 프라하의 반란자 수괴인 얀 후스의 사절이 아니라, 마녀 시그리드의 동료라 자처하는 이들입니다..”
“마녀 시그리드의 동료라?”
“그렇습니다. 그들 중 우두머리, 스스로 그린란드 사람 스베인이라 밝힌 자가 말하기를, 시그리드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프라하 성문을 열어줄 수 있노라 하였습니다.”
“좋다. 그들을 만나겠다.”
마녀 시그리드야 그리 중하지 않다 여기는 지기스문트였으나, 프라하 성문이라는 말에는 끝내 넘어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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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에 지나가듯 언급한 것처럼, 14세기 카를 4세 통치 시기를 거치면서 보헤미아에는 일종의 원시적인 민족주의가 배태됩니다. 보헤미아는 룩셈부르크 가문이 나머지 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지만,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대부분을 이루는 독일인과는 언어적으로 매우 이질적인 보헤미아인들의 땅이었지요. 17세기에 후스파를 완전히 진압하고 보헤미아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한 합스부르크 통치자들이, 후스파 탄압과 체코어 탄압을 동시에 진행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던 셈입니다.
2. 후스파들이 공유하던 양형영성체 교리는, 영성체를 행할 때 빵(성체)만을 일반 신도들에게 허락하던 당대 서방 기독교의 관습을 부정하고 포도주(성혈)까지 함께 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후스파들은 영성체에 쓰이는 포도주 잔(성작chalice)을 저들의 상징으로 삼곤 했지요. (또는 얀 후스를 뜻하는 거위husa를 상징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4번 항목에서 후술하겠습니다.)
3. 몇 번이고 타보르파에게 패배한 십자군이 도리깨와 화약무기로 무장한 후스파 군대에 무작정 돌격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자, 얀 지슈카는 경기병대로 십자군을 도발한 다음 그들을 전투마차 대열 앞까지 유인하는 새로운 전법을 도입합니다. 그뿐 아니라 1421년 겨울의 쿠트나 호라 전투에서는 마차로 전속력으로 달리면서 좌우로 화약무기를 난사하는, 전투마차라기보다는 전차에 가까운 전술까지도 선보이지요. 얀 지슈카가 무패의 명장으로 남을 수 있던 비결 중 하나는, 이처럼 거의 미래인이라 해도 믿을 법한 놀라운 임기응변 능력에 있었습니다.
4. 지난화 주석에서 설명한 것처럼, 슈반베르크의 보후슬라프는 원 역사에서도 지슈카에게 항복한 뒤 타보르파 지휘관으로 전향해 활약하게 됩니다. 기묘한 우연으로 그의 집안 문장에는 고니가 들어가 있었는데, 이것이 후스를 상징하는 거위로 오인되면서 거위 역시 후스파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