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에서 빈손만큼 (1)
20. 빈손에서 빈손만큼 빼면 Nothing From Nothing (1) - 빌리 프레스턴 (1974)
존 윌슨 중령이 15세기 초 그린란드에 머물던 시절, 담배만큼이나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탄산음료였다.
북극곰은 있는데 ‘코크coke’는 없다는 그 한탄¹을 듣던 시그리드는 당연히 탄산음료가 뭐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나비효과가 돌고 돌아 십여 년 후 신대륙 연합에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때는 막 증기기관 개발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을 무렵, 그 재원을 세금으로 마련하고자 시그리드가 직접 발로 뛰던 시기였다.
그즈음 우애 인근의 독일인 정착지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누가 같은 신성로마제국 출신 아니랄까 봐 독일인들 역시 북쪽의 보헤미아인들과 마찬가지로 개척촌 공사가 마무리되자마자 맥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금 걷기 전 현장 실사를 위해 그런 정착촌에 들린 시그리드는, 양조장이 강가에 세워진 것을 보고 뭔가 기묘한 발상을 떠올렸던 것이다.
맥주가 발효되면 탄산이 나오기 마련이요, 탄산은 물에 용해되기 마련.
시그리드는 테오도로스에게 부탁해, 근처에 새로 지어진 제분소에 수차 지어주는 길에, 이 양조장에도 조그만 수차를 지어달라 하였다.
그러곤 수차의 힘으로 돌아가는 통에 맹물을 담고, 그 통과 맥주통 사이를 작은 대롱으로 잇게끔 하였다. 맥주가 발효되면 자연스럽게 탄산가스가 맹물통 쪽으로 빠져나오고, 물의 힘으로 계속 흔들리는 물은 그대로 탄산을 머금게 될 터였다.
“캬, 톡 쏘는 게 시원하긴 하구만.”
신대륙 최초의 탄산수 공장 – 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빈약했지만 – 에서 나온 탄산수를 들이킨 게미스토스 플레톤의 솔직한 평이었다.
“그러면 시그리드의 미래 지식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 뭐랬더라. 원자론이라 했던가요.”
광천수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맑은 그 맛에 놀라면서도, 플레톤 놀리기를 잊지 않는 후스였다².
“그럴 리가.”
지상의 물질은 네 가지 순수한 원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조합체로, 이는 『티마이오스Timaios』에도 나와 있었다.
시그리드에게 이 탄산수의 원리를 들은 플레톤이 이 명백한 진리를 언급하자, 시그리드는,
‘아, 사원소설이요? 그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거 아니던가요? 아무튼 사원소 그런 건 없답니다.’
이렇게 답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적어도 플레톤의 주장에 따르면 그러하였다.
테오도로스나 후스는 시그리드가 그렇게 무성의한 답변을 하진 않았을 것이요, 기분은 상하였으나 딱히 반박할 길은 없던 플레톤이 제멋대로 윤색하였을 것이라 보았지만.
“흠흠, 아무튼 이것이면 되겠군. 원리가 무엇이건,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할 일이오. 중요한 것은, 이 광천수 유사품으로 저 불청객을 접대하는 것이지.”
제 발 저린 플레톤이 화제를 돌렸다.
“마침 좋은희망에서 보내온 사과술이 있습니다. 거기 타서 내주면 딱 맞겠군요.”
후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은 플레톤 놀리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어느새 해는 바뀌어 1419년. 얀 후스는 금년 가을로 다가온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논의하고자, 보헤미아 대표들 몇몇과 함께 우애에 찾아왔다.
그러나 막 운을 떼려던 차,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아직 남쪽으로 떠난 시그리드와 지슈카가 돌아오지 않은 마당에 갑자기 들이닥친 잉글랜드 특사, 코범 남작 존 올드캐슬John Oldcastle이었다³.
외교에는 문외한인 후스와 플레톤이었지만, 명색이 특사라는 직함을 걸고 온 사람에게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당면한 현실에 집중하느라, 올드캐슬이 그린란드 회사의 배편 대신 보르도에서 건조된 잉글랜드 범선을 타고 곧장 이곳 우애까지 건너왔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
“흐흐, 그놈은 우리 도시가 허술해 보인다고 마냥 우습게 보고 있겠지.”
유럽 기준으로는 큰 마을에 불과한 우애의 도시였다. 건축과 공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야, 이곳의 현실에 놀라울 만큼 잘 적응한 로마의 지혜를 알아보고 감탄하겠지만, 그 올드캐슬이라는 자가 그런 사람일 것 같지는 않았다.
“증기선이라도 끌고 오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사이 테오도로스는 기관 부품의 소재를 강철로 바꾸었고, 이제야 겨우 김 새는 문제를 불완전하게나마 해결하였다. 딱 그 정도가 최선이었고, 원양항해는커녕 살살 파도가 밀려오는 강어귀에서 항해하는 것조차 어려운 지경이었지만, 후스는 공학도가 아니었기에 그런 사정을 몰랐다.
“아니, 이 탄산수만으로도 충분할 게요. 근처의 샘에서 얻은 것이 아니요, 우리 장인들의 정밀한 기계로 만들어내었다고 설명을 덧붙이면 되겠지. 그러고도 부족하다면, 뭐, 임기응변으로 때우는 수밖에.”
빈털털이 신세를 감추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은, 슬프게도 지난 일이백 년간 로마인들이 통달하게 된 재주였다.
다행히도 올드캐슬은 탄산수에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그 인상이 흐릿해지고, 플레톤이 이렇게 된 이상 헬라스의 철학 이야기로 시선을 끌어볼까 생각할 무렵, 다행히도 시그리드가 근처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게 올드캐슬과 플레톤 중 어느 쪽에 더 다행스러운 소식인지는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아나왁 기준으로도 꽤 소규모 접전이었던 투슈판 전투였지만, 그 전후처리는 결코 소규모가 아니었다.
팔켄부르크의 요한 때문에 어영부영 투슈판 점령에 휘말리게 된 다른 선교사들, 그리고 도시에 남은 원주민들을 이끌던 올라카틀의 노력으로 재산 피해가 최소화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투슈판은 꽤 타격을 입었다.
항복한 용병들에게 뜯어낸 금속 무기와 갑옷을 처분해 그 피해를 벌충하고, 막 남쪽으로 향하려던 차에 투슈판이 함락되면서 발목 잡혀 있던 티롤 광부들 –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보내온 – 과 함께 정화의 수하들을 왁샤칵 땅으로 보내고, 이런저런 신경쓸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 시그리드와 얀 지슈카는 한동안 투슈판에 머물러야 했는데, 이는 신대륙 연합 호국경 명의로 된 항의 서한이 대양을 건너 런던에 도착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잉글랜드 국왕 헨리와 제노아 은행가들의 후원을 받은 위트레흐트의 지몬이 신대륙에서 벌인 악행에 대해 해명하고, 그 책임 소재를 밝히라는 서한.
그러나 헨리 5세, 그리고 한 발 늦게 소문을 전해들은 유럽 군주들에게 그 서한의 속뜻은 이렇게 읽혔다.
“하, 그린란드의 마녀도 제법 군주다워졌군그래.”
서한에서 시그리드 리프트라사는 정의, 그것도 이교도 야만인들을 위한 정의를 말하고 있었다.
당장 유럽인들 사이에서조차 정의라는 것은 신앙만큼이나 제멋대로 쓰이는 잣대였고, 그 잣대를 움직이는 것은 황금과 강철이었다. 어디 시그리드라고 다르겠는가.
“우리가 신대륙의 황금을 노리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은 인정한다. 다만 우리가 먼저 그 이교도들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니, 그 권리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달라. 그런 뜻이로군.”
시그리드가 정말로 진지한 의도를 가지고서 팔켄부르크의 요한과 위트레흐트의 지몬을 징치하려 한다는 가능성은 단 한 번도 헨리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 무렵의 유럽에서 공정한 재판이라는 것은, 원고와 피고 양쪽이 재판관에게 ‘성의’를 보일 기회를 공정하게 갖는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 국제 사법재판을 열고자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그 주최자를 매수할 생각부터 한 헨리가 유별나게 냉소적이거나 세상에 찌들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영명하다는 유럽의 군주라면 대개 비슷한 결론을 내렸을 테니까.
“폐하, 하오나 재정이...”
‘보상’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 잉글랜드의 자금 사정을 잘 아는 신하들은 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
어디 잉글랜드뿐이던가.
그린란드의 마녀에 이어 프라하 민병대와 덴마크 보병대까지, 앞으로의 전쟁은 누가 더 많은 화약을 쓸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쳤다.
그러므로 유럽의 제정신 박힌 군주들은 어떻게든 화약과 총을 마련하고자 발버둥을 쳤다. 아직 남아있던 기사들에게는, 이제부터는 종군하는 대신 세금을 바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도시와 마을에는 누구와 전쟁을 벌일지도 정해지지 않았건만 전쟁에 대비한 세금이 신설되었음을 알리는 공고가 연일 붙었다.
다행히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이후로 교회가 백성들을 덜 쥐어짜게 되었기에, 군주들은 그만큼 세금을 늘릴 수 있었다.
총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국가들은 장인들을 그러모으고, 반발하는 수공업자 길드는 모조리 반역죄로 숙청했다. 그럴 여력이 없는 국가들은 총과 화약을 마련해줄 동맹을 찾아 유럽을 누볐다.
“경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가? 지금처럼 세금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소. 답은 신대륙의 황금뿐이란 말이오. 그러지 않는다면, 반드시 시골에 숨은 간악한 이단자들과 불한당들 중 제2의 와트 타일러, 두 번째 존 볼이 나오고야 말 것이오.”
마음 같아서야 한줌에 불과한 신대륙의 이단자들도 쓸어 없애고 싶었지만, 헨리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전쟁에서 승리한 덕에 제 손에 들어온 프랑스 왕실 재정이 있었기에 겨우 기옌에 조선소를 짓고 맨오브워 함대를 건조할 수 있었을 뿐. 당장 이번에 파견한 대규모 원정대도, 카타이의 타이간이라는 물주가 없었더라면 마련할 길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바빌로니아의 마녀가 얄밉더라도 잠시 자존심을 접어두고, 약간의 보상으로써 신대륙에서의 교역권을 받아내는 쪽이 더 수지가 맞았다.
당장 저들에게 억류된 용병들(사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과 맨오브워 선단(이쪽이 훨씬 중요했다)을 돌려받는 문제도 얽혀 있었고.
“존 올드캐슬을 특사로 파견하겠소. 그자라면 신대륙과도 연이 없지 않고, 또 이번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잘 알고 있겠지.”
헨리가 아직 왕자였을 적부터의 지우이자, 롤라드파 이단자로서 가택연금에 처해져 있던 올드캐슬이 다시금 세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곡절은 이러하였다.
‘이단 수괴’ 존 위클리프의 사상을 추종하는 롤라드파는, 특히 다양한 세상 소식을 접하기 쉽고 교회가 뜯어갈 것도 많던 도시 근처에서 흥성하곤 했다.
만약 보헤미아에서 또 다른 이단 수괴 얀 후스가 나타나, 그린란드의 하얀 마녀와 결탁하여 온 유럽을 뒤엎는 일만 없었더라면, 롤라드파는 그대로 계속 세를 불리다가 한 번쯤 나라를 뒤엎어볼 음모를 꾸몄을지도 모른다.
허나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기 마련.
하필 롤라드파의 세가 가장 강성한 브리스톨은 그린란드 회사와 밀접한 연이 있던 항구도시이기도 했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땅 빈란드의 소식은 빠르게 롤라드파 공동체 사이에 퍼졌다.
롤라드파 중 적잖은 수는 이 땅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 승산 적은 싸움을 벌이느니 그냥 새 세상으로 떠나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으니, 꾸며지던 음모는 폐기되고, 작당하던 무리는 해산하였다.
만약 롤라드파가 반란을 일으켰다면 국왕의 측근이라는 점 때문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지도자로 추대되는 명운을 벗어나지 못했을 존 올드캐슬이 아직껏 살아있는 것은 그 덕분이었다.
“그러나 저는 돌아갈 수 없는 몸입니다. 잉글랜드인들의 왕이시며 또한 프랑스의 섭정이신 헨리 폐하께서 제게 각별한 은총을 내리시어 이토록 각하를 찾아뵐 수 있게 되었지만, 그뿐이지요.”
올드캐슬은 시그리드를 만나자마자 자신이 파견된 내력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러므로 제가 헨리 폐하의 제안을 한 점의 사심도 없이 곧이곧대로 전했다는 점을 각하께서도 족히 믿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게는 거짓을 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헤러포드셔의 보안관이자 코범 남작이요, 국왕에 대한 충성과 교회에 대한 불신 모두를 견지하고 있는 존 올드캐슬에게 이제 귀족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헨리의 뜻에 부응하여 신대륙에 잉글랜드의 교두보를 마련하고 그 교두보의 영주가 되는 것뿐이었다.
“비록 항해에 미숙함이 있어, 항로를 남쪽으로 한참 벗어나 목적지인 좋은희망 대신 이곳으로 오기는 했지만, 제가 그린란드 회사를 거치지 않고 이곳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헨리 폐하의 의지가 절반쯤은 전해졌으리라 믿습니다.”
투슈판에서 한 번 실패했다 한들, 신대륙을 향한 잉글랜드 – 나아가 나머지 유럽 전체 – 의 손길을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
우애 앞바다에 떠 있는 맨오브워는 이 점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수한 원주민들을 학살한 데 대한 죗값은 될 수 없어요.”
올드캐슬이 바리바리 싸들고 온 프랑franc 은화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번 출정의 전비를 모조리 충당하고, 소규모로나마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거금이었다.
“물론 위트레흐트의 지몬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헨리 폐하는 그자의 범행을 허락한 적도, 지시한 적도 없었고, 이 모든 것은 지몬의 탐욕과 그를 부추긴 자들의 잘못이라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지만요.
그렇기에 이 보석금을 각하께 바치는 것입니다. 지몬과 요한 두 사람을 석방해 주시면, 반드시 그들을 유럽으로 돌려보내 마땅한 죗값을 치르도록 만들겠습니다.”
물론 시그리드뿐 아니라 올드캐슬도, 지몬과 요한 두 사람이 유럽에서 딱히 처벌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교도를 공격하고 노예로 잡는 행위 자체가 처벌받아 마땅한 범행이라면, 유럽의 군주와 기사들 중 자기 자신을 범죄자로서 체포해야 할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바로 그것을 위해 잉글랜드 쪽에서도 재판관을 보내라고 요구했던 거예요.
제가 보낸 친서를 마치 이권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처럼 오해하신 듯한데, 저는 결코 그런 뜻으로 정의를 운운한 게 아니랍니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현지인들을 부당하게 착취하거나 약탈하지 않는다면, 우리 신대륙 연합은 잉글랜드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나라들이 자유롭게 와스테카와 그 너머 사람들과 교역하는 것을 막을 의도도, 명분도 없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그곳 사람들이 허락한다는 전제 하에서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존엄하다는 것. 그것을 시그리드에게 가르친 존 윌슨 중령조차 사실 이 듣기 좋은 이상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그가 공군사관학교에 사관생도로 입학할 무렵만 하더라도, 사석에서 ‘깜둥이 소위⁴’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탄하는 교관들이 있을 지경이었으니.
반면 정말로 이교도와 기독교도가 공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던 그린란드 태생이자, 그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고픈 일념으로 유럽을 불태우다시피 했던 시그리드는 욘보다도 더 진심으로 이를 믿고 있었다.
하물며 그 이상이 실리와도 일치하는 지금, 고작 약간의 금은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힐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일이만 프랑이 아니라 수백만 프랑을 가져오신다 한들, 팔켄부르크의 요한과 위트레흐트의 지몬 두 사람을 그대로 방면할 수는 없어요.”
허나 지금의 교회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믿는 것 하나를 제외하면, 당대에 출세한 하급귀족으로서 주변의 상식과 통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던 존 올드캐슬로서는 이해하기 버거운 관점이었다.
시그리드가 뭔가 다른 뜻을 품고서 이토록 완고하게 거절의 뜻을 밝히고 있다고 단정지을 뿐.
그리고 존 올드캐슬은 포기를 모르는 고집쟁이였다. 자신의 주군 헨리가 롤라드파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롤라드파 내에서도 헨리 왕자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있을 만큼.
“아니, 잉글랜드 특사께서 내게 무슨 용무가 있으시단 말이오?”
다음날, 신대륙 연합군 본대가 탄 선단이 우애에 입항하자마자, 얀 지슈카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저는 신대륙에서 우리 국왕 폐하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헌데 시그리드 각하께서는 교섭에 응할 뜻이 없는 듯하더군요.
지슈카 경께서는 한때 시그리드 각하의 전우셨지만, 지금은 정적이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정적?”
“예. 당장 올해 국왕, 아니, 호국경 선거에서도 시그리드 각하와 대립하는 입장 아니십니까.”
지슈카가 생각해보니 대선에 출마할 뜻을 발표한 이상, 자신은 시그리드의 정적이 맞기는 했다. 어쨌든 각각 신대륙 연합의 앞날에 대해 다른 이상을 품고 있었고, 당장 올해 선거에서도 대립하는 입장이었으니까.
허나 선거로 군주를 선출하는 국가라면, 당연히 후보끼리 서로 비방도 하고, 암살 시도도 하고, 기타 각종 중상모략이 횡행하기 마련이었다. 당장 신성로마제국만 하더라도. 독일왕 자리를 두고 지기스문트와 그 사촌 욥스트가 – 허무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 내전 비슷한 것도 한 번 벌이지 않았던가.
베네치아 또한 그러했으며, 제노아는 정도가 더 심해 도제로 선출된 이들이 취임식도 하기 전에 쫓겨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야말로 로마나 아테네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쪽에 가까웠다.)
반면 시그리드와 지슈카는 그런 사이까지는 아니었고, 오히려 당장 몇 달 전만 해도 서로 목숨을 맡기며 전장을 누빈 바 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정적이라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 않았던 것도 이상치 않은 일이었다.
“시그리드 각하께서는 제가 준비해온 보석금이 불충분하다 여기시는지, 아니면 애초에 우리 잉글랜드와 교섭할 의향이 없던 것이었는지, 제가 전한 헨리 폐하의 제의를 한사코 거절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헨리 폐하의 충직한 신하로서,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대안이 이 사람이라는 말씀이시구려.”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경께서 이끄시는 가재당은 보헤미아 사람들과 다른 평범한 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 대의에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신대륙 연합 소속 정착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그 대외교역을 전담하는 그린란드 회사와 거래하는 유럽 도시들도 꾸준히 늘어났기에, 그만큼 신대륙 연합 안팎에서 유럽 군주들의 이목 노릇을 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물론 가장 결정적이었던 계기는, 테소소목의 황금이 함부르크를 통해 유럽에 풀린 것이었다. 유럽 군주들은 신대륙에 관한 정보라면 신대륙 항로부터 리프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까지 모든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헛발질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예컨대 ‘하늘을 걷는 루카스 성인’ 이야기도 그렇게 입수되어, 무슨 엄청난 암호를 담은 것처럼 열띤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허나 헛발질 열 번 하다 보면 한 번쯤은 제대로 얻어걸리기도 하기 마련. 매수된 바스크 뱃사람에게 신대륙 직항로 항해일지를 얻어낸 것도, 그리고 가재당과 백송고리당의 대립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런 사례에 속했다.
“그린란드 회사가 신대륙 교역을 독점한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 모두의 이익이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앞으로도 우리 잉글랜드를 비롯해 수많은 유럽 군주들이 계속 신대륙으로 손을 뻗쳐올 텐데, 그때마다 매번 그 손을 쳐낼 수도 없을 테고요.
저 위트레흐트의 지몬과 팔켄부르크의 요한 같은 몇몇 악한들 때문에, 신대륙 연합과 유럽 국가들 사이가 악화되고, 매번 피땀과 귀한 세금을 흩뿌려가며 다투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즉, 이왕 신대륙 연합 내에서 자급자족하자고 주장을 한 김에 고립주의까지 주장하고, 그 일환으로 이미 국제적 문제로 비화하게 된 요한과 지몬 두 사람의 재판을 없던 일로 돌려달라는 말이었다.
“우리 모두의 공존과 공영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성의를 보여야 하겠지요. 제가 바라는 것은 딱 그것뿐입니다.”
한참 머리를 긁적이던 얀 지슈카는, 그 외눈으로 올드캐슬과 그가 짐꾼들의 힘을 빌려 옮겨온 궤짝을 몇 번 번갈아 바라보더니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흠... 알겠소. 일단 받아는 놓겠소이다.”
보통 뇌물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주고받는 것이었다. 주는 쪽에서는 ‘선물’이니 ‘성의’니 포장을 하고, 받는 쪽에서는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 맡아만 놓겠다’는 둥, ‘성의를 모른체할 수 없으니, 일단 받고서 꼭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둥 핑계를 서로 내세우기 마련.
그러나 올드캐슬과 달리 얀 지슈카는 신대륙으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딱히 뇌물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본 사람이 아니었고, 뇌물을 바칠 만큼 부유해진 적도 없었다.
따라서 지슈카가 ‘일단 받아놓겠다’하는 것은 정말로 일단 받아놓겠다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없었다.
허나 잉글랜드의 첩보망은 거기까지 닿지는 않았고, 결국 올드캐슬은 크나큰 오해를 하고서 만면에 미소 띄운 채 지슈카의 숙소를 나서고야 말았다.
신대륙 최초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뇌물을 받은 당사자가 그 길로 제 정적에게 찾아가, 곧이곧대로 자백하고서 대책을 논의하는 결말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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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카-콜라™의 북극곰 광고는 의외로 역사가 깊어, 1922년부터 등장했다고 합니다.
2. 잘 알려진 것처럼, 서유럽~중유럽 일대는 석회암 지대인지라 수질이 썩 좋지 않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탄산이 함유되어 지하수의 씁쓸한 맛을 가려주는 광천수는 일찍부터 약수로 간주되었습니다. 다만 탄산수를 포장할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이전에 상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이었지요.
작중 등장한 시그리드의 탄산수 제조 공정은, 원 역사에서는 1767년 영국의 과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에 의해 개발됩니다. 그는 리즈의 맥주 양조장을 관찰한 결과, 맥주가 양조되며 나오는 기체가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체 왜 이 이산화탄소 – 그가 ‘고정된 공기fixed air라 부른’ - 가 쥐를 질식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다음, 이 가스를 물에 용해시켜 마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요. 어쨌든 그렇게 맥주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법이 개발되었고, 프리스틀리는 자신의 모든 발명 중 이 탄산수 제조법이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평했습니다.
3. 존 올드캐슬은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접경지대인 헤러포드셔의 유지 집안 출신으로, 훗날 헨리 5세가 되는 헨리 왕자를 따라 프랑스와의 전쟁에 종군하면서 헨리와 교분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무렵부터 롤라드파 교리에 심취한 상태였지요. 국왕으로 즉위한 헨리 5세는 롤라드파를 탄압하면서도 올드캐슬만은 사면해주려 노력했지만, 결국 이런 노력도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신앙과 충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올드캐슬은 결국 신앙을 택했고, 롤라드파 봉기를 준비하던 중 발각되어 1417년 화형당하고야 맙니다.
4.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는 미 공군사관학교에서 최초의 흑인 생도 찰스 버논 부시가 임관한 것은 1963년의 일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갓 사관생도였을 윌슨 중령 역시 완전히 시대의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