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보자꾸나 (3)
23. 그려보자꾸나 Imagine (3)
입조는 핑계요, 회사품 두둑하게 뜯어내고 무역의 이익까지 보장받을 속셈이라는 모함(진실)을 당한 상황.
정면으로 이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찌 된 곡절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조선 사람들은, 만만한 게 저들뿐이냐고 억울해하겠군요.”
스베인이 황희를 바이킹 방식으로 ‘정중히 모셔온’ 것을 본 정화가, 조금은 긴장이 풀렸는지 시시한 농담을 던졌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째 우리가 악당 같지 않나요? 딱히 다치게 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고요.”
정화도 이 황당하면서도 대담한 납치의 공범이었으니, 딱히 할 말이 없긴 했다.
시그리드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충 그 어조는 파악한 황희는, 먹이를 노리는 리프마냥 시그리드를 째려보았다. 두 손이 묶이고 입은 천으로 막혀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눈빛에 어울리는 호통도 곁들여졌으리라.
조선 사신들이 머무는 집은, 회동관 곁을 흐르는 옥하玉河라는 조그만 개울 건너편이었다. 언제고 역모죄로 몰려 가산을 몰수당한 신료네 저택이었는데, 툭하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금상 치세다 보니 본래 그가 누구였는지, 무슨 곡절로 가산과 목숨을 잃었는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런 집 앞에, 시그리드의 과감한 이판사판 계획을 듣고, 그나마 이것이 최선의 방책임을 수긍할 수밖에 없던 정화가 나타나 소리를 지른 것이다.
‘회동관의 오랑캐 사절들은 본관이 감히 금상 폐하의 교화를 별빛이 달을 흉내내듯 털끝만큼 따라하여 데려온 이들이다. 지금 그대들이 사절들을 무함誣陷하니, 이는 왕후 서씨와 양이洋夷들이 아니라 바로 본관을 노린 것이로다!’
정화쯤 되는 고관이 이렇게 친히 조선 사신들 묵는 객관 앞에 나타나는 것은 보기 드문 일.
더구나 그냥 환관도 아니요, 생김새는 황엄 같은 보통 내시보다는 차라리 이징옥李澄玉이를 닮았고 황상의 총애 받기로는 현비 권씨나 여비麗妃 한씨에 비할 법한¹ 정화가, 체통은 내려놓고 직접 찾아와 큰 소리로 꾸짖고 있었으므로, 조선 사신들은 쩔쩔맬 뿐이었다.
스베인이 담장을 넘어 황희를 납치해오는 동안 조선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아놓기 위한 수작에 불과함을 어찌 알았겠는가. 허나 알았다 할지라도 딱히 손 쓸 방도는 없었으리라.
그렇게 한참을 끌다가 마침내 말하기를,
‘당장 그대들의 정사正使 황희를 본관 앞에 데려오라! 너희가 신속히 데려오지 않는다면, 본관은 즉시 입궐하여 황상을 뵐 것이니라!’
하였는데, 정신 차린 서장관 아무개가 급히 달려 들어가니, 황희는 온데간데없었다.
사정 여차한즉, 당분간 조선 사람들은 황희 찾는데 바빠 이웃집 회동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필 겨를이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납치범의 공범 되는 사람이 납치당한 사람 데려오라 호통치는 해괴한 상황을 연출하고서 회동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부득불 권도權道를 택하였으니 삼가 양해를 구할 따름이오.”
미리 준비해둔 종이와 연필로 정화는 이렇게 휘갈겨 썼다. 정화는 조선말을 모르고 황희는 공용어를 모르니, 천하에 하나뿐인 참된 글眞書로 소통함이 마땅하였다.
시그리드가 눈짓하니, 스베인은 황희의 재갈은 그대로 둔 채 손만 풀어주고서, 그 손에 연필을 쥐어주었다.
여전히 사람 두엇 족히 꿰뚫을 법한 눈매²로 쏘아보는 황희는, 낯선 필기구에 감상할 겨를도 없이 필담에 응했다.
“이런 무도한 처사가 어디 있소?”
“그럼 그쪽은 도리를 알아서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들을 염탐하고 모함한 건가요?”
황희의 글이 정화의 말로 옮겨지고, 시그리드의 대꾸는 다시 정화의 글로 옮겨졌다.
허나 황희로서는 억울할 뿐이었다.
사례감태감 황엄의 강요를 거절할 방도도 없었거니와, 설령 그가 강요치 않았더라도 황희로서는 이 오랑캐 사절단을 곱게 볼 수 없었다.
사절단이 공물로 가져온 어마어마한 양의 인삼은, 곧 조선(과 황희)에게는 실로 암울한 앞날을 알리는 것과 같았다.
더듬더듬 이어지는 심문 가운데, 황희의 그런 속마음을 꿰뚫어본 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그런 것이었군. 얼추 그림이 그려지는구만.”
황상의 총애로 권세를 누리며 편히 사는 대신, 그 총애를 밑천삼아 하서양에 나선 정화. 그러나 그는 권세가 노릇을 하지 않은 것일 뿐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황희가 마지못해 조금씩 내놓는 단서만 가지고도 큰 그림을 금방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 것이라뇨?”
“일단 이 일에 예부와 조선국 사신들이 얽힌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부의 문관들이 얽혔다면, 소관의 하서양을 곱게 보지 않는 병부와 호부 쪽도 필시 관여하였을 테지요.
이들에게는 전하와 다른 사절들의 무엄함을 빌미로, 소관을 내치고 하서양이 일으키는 변화를 막고자 할 유인이 있습니다.”
암만 조공무역이 후왕박래厚往薄來, 내조하는 제후국에게 유리한 장사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오고 가는 물건의 액수를 따질 때의 이야기요, 상국의 마음에 따라 제후국을 괴롭히려면 언제든 괴롭힐 수 있었다.
조선을 곱게 보지 않던 태조 홍무제가, 금은처럼 일부러 조선에게 부담이 될 품목으로 조공할 공물을 정한 것이 그 예였다. 조선왕도 가만 당하고 있지는 않아 그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삼으로써 다른 공물들을 대체하고자 대에 걸쳐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작년에 겨우 황상의 어심을 살짝이나마 움직이는 데 성공했건만, 이제 갑자기 다른 데서 인삼이 우르르 들어오게 되었은즉, ‘인삼 조공은 충분하니 너희 조선은 계속 군마와 금은을 바칠지어다’ 하는 답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이곳 정부의 관리들은요?”
“그들은 단지 사리사욕이 아니라, 그들이 옳다고 믿는 바가 따로 있기에 소관의 하서양에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허나 금상께서 위엄으로써 이들을 억누르시고 계시니, 감히 먼저 나서서 이러한 공모를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원의 통치 하에서는 손발이 묶여 있었고, 명이 천명을 이어받은 뒤로는 입이 틀어막혀 있었건만, 그럼에도 주자의 말씀에 따라 정말로 올바르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보겠노라는 사대부들의 뜻은 아직 다 꺾이지 않았다.
남경이 불탈 때 함께 죽어간 올곧은 선비들에 비하면, 지금 북경 조정에 출사한 이들은 학문의 쭉정이만을 겨우 얻어 곡학아세하는 무리라 할 만했으나, 그런 이들마저도 선현께서 일찍이 밝힌 옳은 길로 나라를 몰고 가겠다는 열망을 잃지 않았다.
금상의 대가 지나고, 선비가 한 수천 쯤 더 죽고,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세워질 적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과 그 제자들이 사라져야만 비로소 선비들도 꿈을 버리지 않을까, 정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조선과 우리 조정의 관료들처럼, 우리를 미워할지언정 스스로 먼저 나설 수는 없는 이들을 하나로 엮어낸 자가 따로 있을 것입니다.”
조선 사신들은, 그저 궁금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뜻밖에 무엄한 소리를 듣고서, 번국의 예의를 다하고자 이를 예부에 알렸을 뿐이라고 둘러댈 것이었다. 그리고 예부로서는 충실한 번국의 사신으로부터 고변이 접수되었으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조선 사신과, 문제를 처리할 수는 있어도 황상이 두려워 감히 먼저 트집을 잡을 수는 없는 조정 관료들.
그들 모두를 움직이면서 양쪽을 중계할 수 있는 자,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 자는 하나뿐이었다.
“황엄. 그자로군.”
관화로 읽으나 조선 국음國音으로 읽으나 별 차이 없는 그 이름이 거론되자, 황희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여간내기 아닌 황희조차 순간 움츠러들 만큼, 정화의 목소리에 시퍼런 날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황상의 뜻도 아니요, 고작 천박한 환관의 부귀영화 욕심 때문에 정화 자신이 반평생 바쳐 추구했던 대업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니,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관들은 소관에게 반대하고 있으나, 소관에게 내려진 과분한 황은을 두려워하여 직접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황엄 그자가, 대신 조선 사신들을 이용하여 꼬투리를 잡자고 제의하니 그제야 동참하고 나섰겠지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게 다행이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듣던 스베인이 물었다.
“네. 지금 태감께서 추리하신 대로라면, 제가 당초 세운 계획이 먹혀들 여지가 있는 거니까요.”
시그리드의 계획이란 별 게 아니었다. ‘네놈들 말마따나 조공은 핑계고 그냥 돈벌이나 하러 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게냐’라 응수하는 것이었다.
보통 외교라는 것은 안보와 경제를 위한 것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명이라는 나라가 그 이전의 다른 중국 왕조들과 마찬가지로 외교에 대해 지극히 독창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그리드가 군대를 몰고 와서 북경을 불태우고 황제를 포로로 잡지 않는 한, 결코 명나라 조정이 시그리드와 신대륙 연합을 작지만 동등한 주권을 지닌 국가로 인정할 리 없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이 모함의 한가운데는, 그냥 제 욕심 차리려는 환관이 있을 뿐이라고 하셨잖아요?”
부귀영화는 항상 사람의 욕심에 비하면 모자란 법. 따라서 황엄을 만족시키면서 이 사태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한 번 정화를 질투하게 된 이상, 정화가 실각하기 전까지는 손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또한 갑자기 바다 너머에서 인삼이 건너오게 된 조선으로서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상 쉽게 이 음모에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설령 황희 한 사람의 입을 막는다 한들, 또 다른 사신이 찾아와 비슷한 일에 가담하리라.
“그렇지만 문관들, 그 선비라는 사람들은 정말로 나라의 앞길이 무역이 아니라 이 대륙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데 있다고 믿기에 우리 발목을 잡으려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충분히 설득의 여지가 있는 거지요.”
“하지만 지금쯤이면 예부에서 형부와 호부로도 연통이 갔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을 설복시키시렵니까?”
형부는 당연히 외국 사신이 황상을 능멸한 죄를 논하고자 할 것이요, 호부는 형벌이고 사신이고 회사품 나갈 일이 줄어들기를 바랄 것이다.
예부 한 곳도 까다로운데, 세 곳의 콧대 높은 상서와 시랑, 그 이하 대소 신료들을 어찌 설득한다는 말인가?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모두 유학자라고 하셨잖아요? 유학자는 유학으로 설득해야지요.”
유학자란, 동방의 대현인 콘퓨셔스Confucius와 멘시우스Mencius(공자와 맹자)가 세운 학파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고 시그리드는 들은 바 있었다.
“유학이라고요? 하지만 소관은 경전을 익힐 겨를이 없어, 고작해야 병서를 조금 읽었을 뿐인데...”
배움이 짧지는 않으나, 중화 사대부의 기준으로는 거의 무학에 가까웠던 정화가 말꼬리를 흐렸다.
“괜찮아요. 여기 대신 가르쳐줄 사람이 있잖아요?”
스베인과 정화가 시그리드가 손짓하는 쪽을 쳐다보니, 지목된 것은 바로 당황하는 기색 역력한 황희였다.
“조선도 유학자들이 관료로 봉직하는 나라지요? 거기서 좌참찬이라는 자리까지 올라가신 분이라면 당연히 유학에도 박식하시겠지요.”
시그리드가 빙그레 웃으면서 황희를 응시했다.
곧, 사서삼경을 오늘 밤중으로 모조리 가르쳐달라는, 무리함을 넘어 기상천외함에 가까운 요구가 전달되었다.
그러나 실각할 때 실각하더라도 조선 하나쯤은 확실하게 물을 먹이고 가겠노라 겁박하는 정화와, 태연자약하게 ‘조공길이 막히면 밀무역으로 인삼을 싸게 풀어버리죠, 뭐’ 같은 소리를 내뱉는 시그리드, 그리고 조용히 도끼날 가는 스베인 사이에 낀 황희로서는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위대한 가르침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극한 선에 이르러 그친다³’부터 시작하여 꼭 필요한 경의經義만 취해 가르치는 수밖에 없었다.
미시未時(13~15시)에 시작한 기묘한 강의는 밤을 샐 것도 없이 자시子時(23~01시)께 끝났다. 사서삼경을 네 시진 삼 각刻만에 가르쳤으니, 이 또한 황희 인생 가운데 손꼽을 만한 업적이었다.
‘거 보시오. 역시 경은 시키면 다 잘 한다니까.’
기진맥진한 채 숙소에 돌아가 쓰러진 황희의 귓가에, 어째 충녕대군, 아니, 주상 전하의 상냥하면서도 살벌한 옥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존 ‘떠벌이’ 윌슨 중령이 전수한 미래 지식 가운데는, ‘잠재적 적국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귀빈 대접을 받고 나오는 방법’도 있었다.
보통 이것을 정상외교라고 부르곤 했는데, 니키타 흐루쇼프가 가전제품 박람회에 와서 닉슨 부통령 가슴팍을 푹푹 찌른다던가, 그 닉슨이 대통령이 된 다음 북경에 찾아가서 탁구 경기를 구경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 예였다⁴.
시그리드가 세운 계획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국력의 격차를 생각하면, 닉슨의 북경 방문보다는, 가진 게 이름뿐이던 시절의 미합중국이 프랑스에 벤저민 프랭클린을 파견한 것에 빗대는 쪽이 그나마 맞겠지만.
“계세요?”
다음날 아침, 왕후 서씨와 그 오랑캐 무리의 무도함을 고발하는 상소문을 마지막으로 검토하던 예부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관원 하나가 나와 문을 열어보매, 서 있는 이는 여인이라. 호호백발 노파건만 얼굴은 처녀와 같고, 그 몸가짐과 풍채는 가히 옥골선풍玉骨仙風.
반도蟠桃 대신 인삼을 가져오고, 곤륜산 대신 봉래산 있다는 동쪽 바다에서 오긴 했지만, 어쨌든 서왕모가 틀림없었다.
“누구... 앗? 아니, 서, 서왕모?”
“아뇨, 시그리드인데요.”
통역을 맡은 정화와 함께 비집고 들어와서는, 곧장 예부상서 여진을 찾는 시그리드였다.
나라의 정사가 황상 한 사람의 뜻에 좌지우지되고, 그러고 남은 약간은 황상의 위엄에 기댄 환관들이 전횡하며, 성현의 말씀 익힌 신료들은 고작 서리의 일을 하는 게 전부인 지금의 정국.
그러니 정화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예부상서 여진과 예부시랑 후정 이하 모든 관원들이 시그리드를 맞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부상서 오중吳中, 호부상서 하원길夏元吉은 덤이었다.
탄핵하려던 사람 본인이 직접 관아에 나타나는 해괴한 모습. 그러나 정화라면 모를까 왕후 서씨는 딱히 노여움을 품지 않은 듯하였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다고 들어서, 직접 그것을 풀어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왔답니다. 듣자하니 우리 신대륙 연합과 원주민 사절단이 입조하러 찾아왔음에도 공손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고변이 있었다던데요.”
“그렇소만.”
당장 시그리드를 내치지 않고, 무슨 말을 하러 왔는가 귀를 기울인 시점부터 이미 계획은 절반쯤 성사된 셈이었다.
“제가 생각하기로,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를 똑같이 태어나고, 똑같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뭉쳐서 나라를 세운다면, 나라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게 모든 나라가 귀한 것이지요. 사람 사이에 본디 귀천이 없다면, 그 똑같은 사람들이 뭉친 모임 사이에도 우열이 없을 테니까요.
우리 신대륙 연합은 그렇게 탄생했고,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긴집사람들은 위대한 평화의 법을 세워서 다섯 부족의 연합을 알렸고, 테노치티틀란의 메시카 사람들도 네 구역 장로들의 모임으로 도시의 토대를 세웠지요.”
신대륙 연합이 비록 나라는 작지만 그럭저럭 존중받을 만하다는 점을 역설하며 서두를 떼고, 그러니 소소한 오해는 묻어두고 넘어가자고 말하는 것이 본론이었다.
예의 좀 모르고 또 살짝 괘씸한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너른 바다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으니 대국 사람들 마음에 거슬릴 일은 없다.
지금 살짝 눈을 감고 몸에 좋은 인삼을 많이 들여오면, 온 백성이 그 이로움을 누릴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백성 아끼는 유학자로서 마땅히 힘써야 할 바 아니겠느냐.
그런 논지를 준비해 왔건만, 어째 주변의 눈빛이 묘하였다.
신대륙 연합의 기초가 되는, 일종의 사회계약에 대해 막 언급을 마쳤는데, 바로 호부상서 하원길이 정화를 통해 묻는 것이었다.
“지금 뭐라 말씀하셨소? 아니, 뭐라고 이르셨습니까?”
“네? 그러니까... 국왕을 선거로 뽑고, 오로지 법도에 따라 다스린다는 얘기까지 했는데요.”
“그러면 전하께서도 선왕의 독녀獨女로 나신 게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초대 호국경이니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호국경은 선출직이지 세습직이 아니니까요. 그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면, 사연이 긴데요...”
저들도 모르는 새 시그리드의 후천적 떠벌이 기질을 자극하는 신료들이었다.
어느새 소문이 퍼졌는지, 이웃 아문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암만 봐도 벼슬아치는 아닌 듯한 서생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서, 서왕모?’
‘아뇨, 시그리드라니까요.’
이런 대화도 몇 번 반복되고, 시그리드와 정화가 대화와 통역에 바쁜 사이, 모여든 선비들 사이에서는 그 ‘선거의 법도’를 비롯해 시그리드가 신대륙에 처음으로 세운 법도들 이야기가 연신 오르내렸다.
그 무렵, 자금성 한편에서 사례감태감 황엄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흐흐흐, 일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렷다?”
정화와 달리 황엄은 수염도 나기 전 환관이 된지라, 체격부터 목소리까지 온전히 내시다웠다.
곧, 예부에 모인 관료들이 오랑캐 사신들의 무도함에 대한 조선 사신의 제보를 검토하고, 마침내 황상께 연명으로 상소하여 왕후 서씨와 그들을 오도한 정화를 벌할 것을 청하게끔 할 것이었다.
정화에 대한 황상의 총애는 아직도 깊고 두터우나, 황엄이 끌어들인 다른 환관들, 조선 사신, 그리고 이 기회가 아니라면 점점 중화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고 있는 대명을 바로잡기 난망하다 여기고 있을 문관들까지 힘을 모은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으리라.
“궁금하여 견디기가 어렵구나. 거기 너, 예부와 연통 주고받는 것이 네 녀석 소관 아니더냐?”
사례감에 속한 젊은 내관으로, 황엄의 수족 노릇을 하는 이가 그 앞에 쪼르르 달려와 고개를 조아렸다.
“예, 공공(환관의 존칭)께서 이르신 대로입니다.”
“가서 예부 안쪽을 살피고 오거라. 사례감태감이 보냈노라 하면 그 누구도 네 앞을 막지 못할 테니, 무도한 오랑캐와 그 향도嚮導 정화를 징치하는 큰일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하나도 남김없이 살피고 돌아와 내게 고하도록 하거라.”
내관은 공손히 다시 한 번 고개 조아리곤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헌데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황망한 얼굴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공공, 큰일입니다! 큰일이 하나도 아니요, 둘이나 났습니다!”
“큰일이 둘이라? 아니, 그것이 무슨 말이냐? 차근차근 말해보거라.”
“먼저 하나는, 소관에게 탐문하라 명하신 예부 관아 안쪽의 일입니다.”
잠깐 숨 돌린 내관이 말을 이었다.
“예부와 호부, 형부 세 곳의 상서 대인들뿐 아니라, 다른 아문의 고관대작들, 그리고 그들의 문객들까지 찾아와 왕후 서씨의 이야기를 듣는데, 분개하는 이는 없고 오직 정담 나누려는 자들만 있었습니다.”
“뭐라고? 아니, 그 오랑캐 계집과 무슨 정담을 나눈다는 말이야? 이놈들, 저들은 멀쩡한 사내다 이 말이지? 어떻게 잘 보여서 하룻밤 운우지정을 나눌 작정인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소관이 겨우 예부시랑 후 아무개를 만나, 탄핵의 건은 어찌 되었느냐 물었더니, 되려 노여워하면서,
‘본관이 가만 듣고 헤아린즉, 왕후 서씨는 비록 오랑캐 여인일지언정, 스스로 터득하여 옛 성왕聖王들의 발자취를 밟고자 하는 귀인이로다! 어찌 소국의 고발하는 말과 소인의 모계謀計에 이끌려 그런 이에게 허물을 씌우랴!’
하며 호통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더욱 예상 밖이었다. 황엄은 애먼 내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어라? 아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 정녕 서왕모가 도술로 사람 마음을 움직이기라도 했단 말이냐?”
도술이라기보다는, 유학자들 마음 속에 아직 남아 있던 꿈을 시그리드가 의도치 않게 건드린 덕이 더 컸다.
문자도, 제대로 된 연장도 없이 저들끼리 나라를 세우고 살아가던 태초의 순박한 사람들, 치도治道가 무너진 땅에서 배 타고 훌쩍 떠나, 원주민 오랑캐들을 이끌면서도 동시에 더불어 살아가고자 나라를 세운 왕후 서씨.
그 순후한 덕은 요임금과 같고, 제 임금이 정사의 덕을 잃자 새외塞外로 나가 오랑캐를 교화한 것은 기자와 같았으며, 뗏목 타고 오랑캐 땅으로 나아가고자 한 것은 공자와 같았다.
오랑캐 여인에게 어찌 그런 찬사를 함부로 보내겠냐만, 이미 황상 폐하의 무겁디 무거운 권세에 억눌려, 나오려는 목소리를 스스로 목조르던 이들에게는, 시그리드 이야기가 너무나 기꺼웠다.
왕후 서씨는 반도 복숭아를 들고 온 서왕모는 아니었으나, 스스로 무릉도원을 만들어내었으니 어찌 더욱 기이하고도 멋지지 않겠는가?⁶
또한 패자霸者 하나 없이 어지럽게 병립하던 오랑캐 소국들을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하나로 묶고, 글자를 같게 하고 똑같은 수레를 쓰게 만들었는데, 이를 오로지 인덕으로 사귐으로써 이루었으니, 성현의 왕도가 아닌 진시황의 패도로 말미암아 만주晩周 난세가 종결되었던 중원보다 오히려 나은 면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오해였다.
수레의 궤도를 같게 한 것이야, 시그리드네 사람들이 수레를 만들고 수출하기 전까지는 신대륙에 수레가 없었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문자가 같다는 것도, 공용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하지 아즈텍 문자로 표기할 수는 없는 법이니 그 사연을 깊게 파고들면 허무하리만큼 시시하게 여길 만했다.
그러나 한 번 쓰인 콩깍지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 먹물쟁이 백면서생들이 사체를 모르고서 대사를 그르치는구나! 좋다. 정 그렇다면 본관이라도 움직이는 수밖에.”
정화는 비록 크나큰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다른 환관들의 힘을 모조리 합친다면 대적할 길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더구나 정화는 황상 곁을 툭하면 비우곤 했으니, 환관 사이의 권력다툼 솜씨는 녹슬었을 터...
간교한 궁리에 주력하던 황엄이 뭔가 깜빡 잊었음을 자각한 것은 그때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큰일이 두 가지라고 하였지. 하나야 예부가 그 꼴이 난 것이라 치고, 다른 하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내관이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그것이... 동창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간 듯합니다.”
“뭐? 동창? 그 애송이들이 왜 여기서 나오는가?”
고작 작년에 생겼을 뿐, 뭔가 막중한 권한을 맡았다곤 하였으나 지금껏 딱히 드러나는 일 없이 가만 있었기에, 비단 황엄뿐 아니라 다른 고위 환관과 대신들도 동창이 그냥 황상의 총애 받는 젊은 내관들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곤 넘어간 바 있었다.
“그 ‘애송이’들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예부가 온통 시끄럽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마치 미리 언질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여 주변 정황을 탐문하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곧 공공께도 동창의 손이 닿을 듯합니다.”
“제기랄...”
제 고향 말로 욕지거리를 삼킨 황엄은, 내관의 말이 뭔가 사리에 맞지 않음을 느꼈다.
“잠깐, 그런데 그것을 자네가 어찌 아는가?”
그제야 고개 들어 내관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황엄조차 그 나이에 갖지 못했던, 권력에 대한 탐욕과 황상에 대한 충성이 두 마리 뱀처럼 배배 꼬인 표정.
“그야, 본관 또한 동창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지금껏 황엄이 내관에게서 보았던 비굴한 미소는 눈 녹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냉혹한 무표정만 남았다.
“따라오십시오. 이 모든 일은 황상께서 처결하실 것입니다.”
그 무렵 예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비단 상서들뿐 아니라 시그리드와 정화마저도 연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황엄의 기분도 조금은 누그러졌을 것이었다.
허나 자금성 성벽은 천둥벼락이 내려쳐 전각이 불타건 말건 변함없이 굳고 높아, 바깥의 일을 조금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으니, 그저 온 세상 잃은 심정으로 끌려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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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족 정권이지만 동시에 몽골이 세운 원의 후신으로서의 측면도 있었던 명나라 초기에는, 여러모로 ‘중화답지’ 못한 관습 여럿이 남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고려/조선으로 하여금 환관(화자)과 공녀를 바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색을 밝힌 영락제는 특히 조선 여인을 아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가장 사랑했다 알려진 현비 권씨, 권씨 사후에 정을 붙인 여비 한씨(영락제보다 훨씬 어렸던 탓에, 끝내 영락제와 함께 순장당합니다)는 모두 이렇게 바쳐진 공녀 출신이었지요. 여비 한씨의 동생 한확은 이 연줄 덕에 조선에서도 승승장구하였습니다.
2. 당대 기준으로 경이로울 만큼 장수하며,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공무원 근속기록을 남긴 황희는 그만큼 많은 일화와 야사를 남겼습니다. 그중 유독 많이 전하는 것 중 하나가 그의 강렬한 눈빛에 대한 이야기지요. 말년까지 그가 독특한 안구건강 비법으로 젊은이 같은 시력을 유지했다거나, 어지간한 짐승들은 그의 시선을 피하곤 했는데 말년에 삽살개와 눈싸움에서 패배하자 비로소 죽음을 직감했다는 민담 등이 전합니다.
3. 『대학』의 첫 구절에 해당하는 이 문구는 유학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원문은 ‘’인데, 주희는 여기서 ‘친민親民’이 사실 ‘신민新民’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지요. 이후 억압적 정치환경 속에서 교조화되는 주자학에 반대하고 나선 왕양명은 이를 다시 ‘친민’ 그대로 해석해, ‘백성과 가까워진다’라는 뜻이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깊게 들어가면 성리학과 양명학의 근본적인 차이와도 맞닿는 해석이 되겠습니다.
4. 닉슨과 흐루쇼프의 ‘부엌 논쟁Kitchen Debate’은 1959년의 일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산업전람회에 대표단장으로 참석한 닉슨이 흐루쇼프와 함께 전람회장을 돌아보던 중 벌어진 언쟁으로, 흐루쇼프가 닉슨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면서 언쟁을 벌였는데, 이것이 그대로 미국에 생중계되면서 한동안 화제에 올랐던 사건이었지요.
닉슨의 방중은 핑퐁외교가 절정에 달한 1972년의 일이었습니다. 헨리 키신저, 그리고 미국 탁구 국가대표단과 함께 북경으로 향한 닉슨은 마오쩌둥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미-중 상하이 공동선언을 통해 미-중 데탕트를 공식화했지요. (그리고 그렇게 소련과 중국 사이에 완벽하게 쐐기를 박고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게 됩니다.)
5. 호부상서로 카메오 출연한 하원길은 작중에 언급된 상서들 중 가장 거물급 인사로, 정화의 대원정, 북경 천도, 자금성 축조, 대운하 정비 등 영락 연가의 굵직한 국가사업들을 충실히 뒷받침한 재정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421년 말, 이미 정화의 대항해와 자금성 공사 등으로 국가재정이 연년 적자인 상황에서 영락제가 다시 한 번 막북 친정의 의사를 밝히자 이를 적극 반대하였고, 그만 영락제의 역린을 건드리고야 말았지요.
그 결과 하원길은 형부상서 오중과 함께 투옥되었고, 4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영락제가 사망하자마자 후임 홍희제에 의해 석방됩니다. ‘그’ 영락제가 자신의 심기를 거슬렀음에도 죽이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영락제 사후에 바로 석방되었다는 점은 하원길의 재능이 어떠했는지 방증하는 근거라 하겠습니다.
6. 미국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 같은 유럽의 자유주의자들뿐 아니라 위원, 서계여 같은 19세기 중반 청나라 지식인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특히 서계여가 자신의 저서 『영환지략』에 남긴 조지 워싱턴 찬양(‘서양의 고금 인물 중 워싱턴이 어찌 제일이 아니랴!’)은 지금도 워싱턴 D.C.의 워싱턴 기념탑에 새겨져 있지요.
물론 이것을 단순히 미국을 지상낙원으로 바라본, 순진한 백면서생들의 착각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명대에 완성된 황제 전제권력이 더욱 강력하게 지식인층을 옥죄고, 거기에 더불어 만주족에 의한 한족 차별까지 덧붙여진, 즉 지식인들에게는 ‘매운맛 명나라’였던 청대 사회현실에 대한 개혁 요구가 분출된 측면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