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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0화 (1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0화

2층 - Lv.25 발굴지 초병(2)

소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윽, 냄새."

"그린스킨들은 대체로 잘 씻지 않지."

"위생상태 괜찮아요?"

"안 괜찮아. 특히 입이 끔찍해. 좀 깨물리기만 해도 감염으로 죽을걸."

한편으론 오크들은 그 악취를 자랑거리로 삼기도 한다.

진정한 전사는 기습 따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다닐 수 있는 자만이 전사라 할 수 있다.

뭐 대충 그딴 논리였는데, 실제로도 냄새나지 않는 그린스킨들은 죄다 다른 종족 출신이다.

"그래서 종족 자체가 질병저항이나 독 저항이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사냥꾼이 물이 솟고 있는 샘에 더러운 천 주머니를 집어넣었다.

그린 스킨 주둔지 옆을 흐르는 강의 수원이다.

"쿠라레 독에는 씨알도 안 먹히지."

고증대로라면 이런 침엽수림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신기하게도 야생고블린 부락을 뒤져보면 언제나 있다.

게임이니 그러려니 한다. 야생 고블린의 초기장비라 생각하면 문제없다.

지난 사흘간 주변을 싹 털며 모아서 같이 찾아낸 아교와 빚었다. 이렇게 해서 물에 넣어두면 독이 천천히 번져나간다.

물론 이러면 독살을 기도할 정도의 농도는 안 나온다. 허나 약간의 마비 증상만 일어나도 전사계통 클래스의 전투력은 급감한다.

만약 얼마 안 되는 주술사들이 마비가 온 오크를 치료한다고 마력까지 사용한다면 더욱 좋고.

사냥꾼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이 독은 그냥 마시면 안 들텐데······."

"오크랑 오우거들 입속 본적 없어? 충치는 거의 쟤네들 종족 특성이야. 독은 그쪽으로 파고들겠지. 점심쯤엔 치아 상태가 특히나 안 좋은 녀석들은 이미 몸을 똑바로 못쓸걸."

그때 덮치면 일이 편해진다. 소수로 다수를 상대할 생각을 한다면 최대한 미리 이겨 둬야하는 법이다.

사냥꾼이 침울하게 물었다.

"요정 마을에도 이렇게 하실 겁니까?"

"수원에 독을 풀 거냐고?"

"예."

나는 멀리 보이는 요정의 나무를 가리키고, 다시 아래로 보이는 계곡의 주둔 지를 가리켰다.

"마을에 요정 나무가 있었잖아. 그거 세계수 묘목이야. 독 같은 부정한 것들은 씨알도 안 먹히니까 아직도 저 녀석들 상대로 버티고 있는 거지."

"묘목이라······. 저는 요정과 오래 함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군요."

"요정에게 7년은 찰나와도 같은 거니까."

"그렇습니까······."

요정의 수명은 인간과 아득한 차이가 있고, 그래서 시간감각도 큰 차이가 있다.

요정의 덫이 ‘덫’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사냥꾼에게 굳이 말할 생각은 없지만, 인간의 수명으로는 평생을 함께 살아도 그들의 인식으로는 단지 잠시 머무르는 손님일 뿐일 것이다.

이 인식의 간극은 크다.

요정과 함께 살아가고자했던 유배자들은 많이 보았다. 끝에 와서 후회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

오래 걸려있지 않고 재시작을 했으니 이 사내는 나름대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 * *

그린스킨이라 불리는 족속들의 사회는 인간에 비하면 단순하다.

그들의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원초적인 논리는 ‘힘’이다.

높은 지위는 곧 큰 힘을 가진 자다.

하지만 단순한 몬스터가 아닌 팩션으로 대접받는 만큼 그들이 말하는 힘이 단순하진 않다.

직접적인 전투력만이 ‘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린 스킨들은 깨달은지 오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주술사들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들이 전사와 생물 대 생물의 투쟁을 벌여 승리할 확률은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무기를 휘두르는 대신 자연과 교감하고, 근력을 기르는 대신 마력을 갈고닦은 탓이다.

그대로 야생에 내던져진다면 쉬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린스킨 사회에서 주술사는 크게 대접받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환자가 더 발생하였는가······."

원정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대주술사는 나른하게 말했다.

그의 앞에는 몸에 마비가 찾아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근육질의 전사들이 간청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우거나 트롤은 없다.

그 흉포하고 파괴적인 생물들을 중독 시키기엔 강물에 퍼진 독이 너무나도 옅었다.

고블린 역시 없다.

지위가 낮은 고블린들은 감히 대주술사를 접견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며, 제대로 된 암살자로서 훈련받은 녀석들은 독에 내성이 있다.

대주술사의 눈앞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오크였다.

교활한 늙은 주술사는 비릿하게 웃었다.

"마력은 회복이 아주 더디지."

손가락을 흔들흔들하자 그 끝에 짙은 녹색의 마력이 일렁이며 불꽃을 만든다.

"너희들을 모두 치료했다간 내 여력의 2할은 소모해야할 것이다."

전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2할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이해한 이는 적다.

하지만 그들의 대주술사가 그다지 자선을 베풀 생각은 없다는 것만은 느껴졌으리라.

"자신에게, 내 마력을 사용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아라."

아무리 그래도 이 말은 알아듣는다. 전사들은 각자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삼십 분 후, 대주술사는 전사들에게서 갈취한 간식거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부하 주술사들이 모여 있는 막사로 들어섰다.

다섯 중 넷은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예를 표하지 않은 젊은 오크가 말했다.

"또 전사들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으셨군요. 스승님."

"흐음, 뭐 문제 있겠느냐. 어차피 취미도 특기도 싸움인 녀석들인데."

"하급 전사들을 좀 더 잘 챙기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오크 주술사로서의 의견이냐?"

젊은 오크는 잠깐 침묵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물라. 그린스킨에는 그린스킨의 방식이 있으니."

"······알겠습니다."

"쯧쯔, 아직도 인간물이 안 빠졌군. 너도 후에는 전사들을 소모품으로 굴리게 될 것인데. 어찌 하나하나 잔정을 가지느냐. 대체할 자들은 넘쳐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살려준 대가로 이 정도면 싸지 않느냐."

제자 오크는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의 중독으로 죽을 전사는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대주술사도 그 정도는 알 것이다.

"그나저나 수상하군. 독이라. 요정 녀석들은 그런 짓을 할 줄 모를 텐데."

대주술사는 사흘 전 행방불명된 돌격대장을 떠올렸다.

멍청한 전사들이 이따금씩 실종 되는 일은 흔하지만 대장급이라면 거의 없는 일이다.

"이 조그마한 숲에 요정 말고 무언가가 더 있는가?"

늙은 오크는 끌끌대며 웃었다.

* * *

"저놈들이 여기 왜 있는 거지?"

"요정마을을 우회기습······ 같지는 않군요."

전투를 위한 것이라기 보단 차라리 공사판이라고 하는 편이 더 그럴싸한 주둔 지였다.

소녀가 작게 말했다.

"발굴?"

꼭 그리 보이는 모습이긴 하였다.

"저게 유적이긴 하지."

요정은 수명이 긴 만큼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도 많다.

요정 특유의 다양한 은유로 전해지는 설화의 상당수는 그냥 게임의 잔 설정이고, 무언가를 암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보통은 그 사이에서 쓸모 있는 것을 가려내기를 포기하겠지만 요정의 은유 자체를 모조리 다 외우고 있는 나는 문제없다.

고대 요정 문자까지 공부했었던 과거의 나, 장하도다.

이런 식으로 숨겨진 요소 중 오래된 유적은 가장 흔해빠진 형태이다.

"오크가 저걸 노려서 요정마을을 공격하고 있다는 설정인가? 이상한데."

내가 그런 랜덤 인카운터를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상하다.

뭐,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기야 있지만······.

확률의 문제다. 확률.

게임 클라이언트도 수시로 뜯어보는데 금시초문인 인카운터라.

일단 미리 시나리오가 쓰여 있는 종류는 아니다. 난수로 생성된 건가? 그런 거 치고는 스케일이 크고 짜임새 있는데.

좋지 않군. 좋지 않아.

미궁에서 잘 모르는 것과 마주치는 일보다 끔찍한 일은 드물다.

이번 회차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끊임없이 따끔거리는 느낌이다.

"좀 사려야겠는데."

발굴지 주변에 세워진 초소들을 보며 걱정스러워하던 사냥꾼이 반색했다.

"그럼 저긴 포기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몰살을 포기해야겠단 말이야."

어떤 모르는 요소가 이 숲에 숨어있을지 알 수 없다.

정상적인 진행을 따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사냥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죽인 요정이 생각난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는 요정의 편에 서겠습니다."

"흠, 아마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은데. 지금 이상한 건 오크지 요정이 아니니까."

사냥꾼은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으나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거참, 계획대로 되는 게 없군.

하지만 생각대로 되면 애초에 로그라이크가 아니다.

플랜은 절대로 하나여서는 안 된다.

소녀가 사로잡은 요정과 오크를 둘 다 제거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은 우호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게임 후반부엔 어떻게 발각될 수도 있고,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왕국 이전에 들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단 저 발굴지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가자고."

* * *

오크라는 생물은 아주 질긴 초록빛 피부와 통나무처럼 두꺼운 근육을 가지고 태어나는 생물이다.

거기에 아주 사납고 호전적인 성정도 함께한다.

인간이라면 고통만으로도 저지력을 발휘할 화살이 오크에게는 급소가 아닌 이상 생채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머리를 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과는 다르게 석궁은 총보다 나을 뿐 사격음이 상당히 크다.

급습이라면 썩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따라서 사냥꾼은 석궁을 사용하지 않고 내가 활을 들었다.

요정제 활은 손에 감기는 듯한 섬세함이 있다.

죽은 요정의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메긴다.

작은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초소에서 코를 파던 오크의 눈구멍을 꿰뚫었다.

다른 하나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듯 멍한 표정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차이가 생사를 갈랐다.

다음 화살이 마찬가지로 눈구멍에 꽂힌다.

사냥꾼이 신음했다.

"조준 보정이 걸린 마법 활이라고 해도 이건······."

"난 올라운더거든. 소드 마스터도 해본 적이 있지."

"소드 마스터······?"

"아냐, 뭔지 모르면 됐어."

오히려 관심을 가진 건 얌전히 보고만 있던 소녀였다.

"저, 저 그거 뭔지 알아요. 칼에서 빔 나오는 거죠?"

조금 다른 거 같은데.

그나저나 모처럼 활솜씨를 자랑했는데도 반응이 싱겁군.

내 표정이 어떻건 소녀는 환하게 웃으며 조금 거리가 있는 다른 초소를 가리켰다.

"초소를 다 제거하고 돌입하는 거 맞죠?"

"그렇지. 요정들이 공격해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 안하는 거 같지 않아?"

"쉽네요."

경계가 지나치게 느슨하다.

원인을 추측컨대 애초부터 그린 스킨의 목적은 이 유적이다.

이 숲을 공격한 이유 자체가 발굴일 것이다.

요정마을을 정복하는 본대는 덤이며 시선끌기다.

그런 와중 안전할 것이 틀림없는 발굴지의 경계라. 따분하겠지.

임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는 오크가 경계 근무나 서는 말단일 리가 없다.

해이한 분위기는 발굴지 전체에 퍼져있다.

나는 소녀에게 손짓했다.

"다 없애고 와라."

"예썰."

소녀는 과장된 동작으로 경례를 올린 후.

사라졌다.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주력으로 달려 나간다. 허나 그럼에도 발소리조차 없다.

오히려 기척이 더 희미해진 기분이 든다.

들키지는 않으리라.

사냥꾼이 그 비인간적인 광경에 한숨을 내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녀와는 반대편 초소를 떨어트리러 간다.

발굴지의 어느 오크도 아직 이변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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