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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1화 (4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1화

5층 - Lv. 98 블랑쉐(3)

소녀는 상대가 단검을 든 시점에서 어느 정도 봐주고 있음을 눈치챘다.

‘어째서?’라고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수트에 내장된, 혹은 몸 곳곳에 숨겨진 그 어떤 무장도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한 단검술, 혹은 체술일 뿐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미궁에 들어온 이후 가장 큰 위협을 느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아저씨와 맞상대를 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 것 같다.

전신의 감각이 곤두선다.

단순히 죽냐 사냐의 문제가 아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은 상대의 움직임에서 고도로 훈련된 기술을 읽어낸다.

이것은 이른바, 달인들의 싸움이다.

날의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다.

한없이 직선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

소녀가 알고 있는 가문의 기술과는 약간 결이 달랐다.

블랑쉐의 베기는 한눈에도 강한 위력보다는 확실히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사람만을 죽이기 위한 동작이다.

소녀는 다르다.

그녀가 배운 것은 인간이 아닌 것들이 대상이었다.

대형 맹수만 되어도 그저 푹 찌르는 정도로는 아쉽다.

몸의 회전까지 실어 전력으로 때려 넣는 일격의 위력에 충실한 동작이다.

그 차이는 컸다.

소녀는 단 세 합만에 자신이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상대는 괴물이 아니다. 그저 인간일 뿐이다.

오크만 되었어도 그 거대한 떡대에 충분한 타격을 입히기엔 소녀의 방법이 더 나았으리라.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 소녀의 동작은 극히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지금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고 해서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소녀가 떠올린 것은 늘 주의 깊게 지켜봐 왔던 아저씨의 동작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따로 연습까지 했다.

그 아름답고도 효율적인 공격의 동선은 배워 마땅한 것이다.

다시 몇 합이 지나고.

블랑쉐의 눈썹이 꿈틀한다.

소녀의 움직임이 약간 달라졌음을.

그리고 좀 더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크게 베고 찌르던 동작이 점점 간결해진다.

구체적으로는 블랑쉐와 닮아간다.

같은 목표를 지니고 고도로 단련된 기술들은 서로 닮게 되어 있다.

출발점이 달라도 추구하는 바가 같다면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

어느 정도 거울을 보는 것마냥 서로의 동작이 겹쳐진다.

블랑쉐는 소녀의 동작에서 자신의 흔적을 읽었다.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그리 생각한 것은 아니다.

딱 거기에서 블랑쉐의 사고는 멈췄다.

오르골.

이 개자식.

번개가 튄다.

장갑에 설치된 충전식 전기 충격기가 전압을 올린다.

쇼크웨이브라고 불리고, 강렬한 명칭만큼이나 충분한 살상력을 자랑하지만 지금은 최소 출력으로.

정확히 기절만 시키기 위해.

소녀 역시 그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다.

전격이라면 2층에서 호되게 당했다.

그때 심어진 충격이 약간이나마 반응 속도를 올려줬을지도 모른다.

아주 잠깐이지만 순수하게 기술만을 겨루는 분위기였기에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을 해금했다.

[대시]

[궤적 재생]

스킬에 의한 강제적 이동으로 베고 지나간다.

처음은 맞지 않았다.

1초가 채 되지 않는 미세한 시간이 흐른 직후, 흐릿하게 소녀의 형체가 다시 한번 베고 지나간다.

이것은 피하지 못했다.

전격을 충전하던 블랑쉐는 옆구리에 화끈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자상의 고통이다.

피식하고 미소가 나왔다.

잘 키우고는 있군.

단검이 날아온다. 아주 능숙하고 은밀한 투척이다.

블랑쉐는 마주 던져 격추시켰다.

소녀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모습이다.

그리고 블랑쉐가 사라졌다.

아까 보았던 푸르스름한 공간이동이 아니다. 지연 시간 없이 즉시 사라졌다.

은신? 광학미채?

아니지.

소녀의 사고가 간신히 [점멸 단검]의 존재에 도달했을 때, 이미 팔을 붙잡혔다.

탈출하려고 힘을 넣었으나 여의치 않다.

완력은 상대가 더 강하다.

그대로 꺾여 비틀리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원래부터 초인이며 미궁으로 오고 나서 더욱 강인해진 신체이건만 바닥이 진동한 정도여서는…….

시야가 흐려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블랑쉐의 아련한 눈빛.

대체 왜 그런 눈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의식이 꺼졌다.

‘죽나?’라고 생각하는 가운데에도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아저씨 미안해…….

* * *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든다.

딱히 거대한 뱀의 뱃속이어서만은 아니다.

물론 그 덕에 습하고 후덥지근하긴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위화감은 ‘던전’ 판정이 나는 곳까지 진입해서다.

케찰코아틀의 뱃속은 일종의 히든 던전이다.

덩치가 하도 크다 보니 몸속의 위장에는 작은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입구인 입을 생략하고 중간에 난입하여 굉장히 시간을 단축했다.

덤벼드는 살점 덩어리들을 제압하는 데는 날붙이보다는 둔기다.

두들겨 패주자 비틀거리며 물러난다.

아직은 케찰코아틀이 서 있기에 아래로 내려가는 게 편하다.

위산이 고여 있는 곳만 조심한다면 큰 문제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이 히든 던전 자체는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입장하는 것부터가 대난관이다 보니 그렇다.

보스층 특유의 기믹 없이 힘으로 때려잡는다고 친다면 케찰코아틀은 왕국 이후에나 등장해야 할 괴물이다.

실제로 등장하기도 하고.

힐링 포션을 다 마셔버린 게 이제 와서 아쉽다.

내장은 상처를 내기 쉽다.

그 피를 받아 ‘케찰코아틀의 피’를 만든다면 그리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내는 도핑제가 될 것이다.

용종의 피는 언제나 올스탯을 튀겨주기에 범용성이 가장 높은 도핑이다.

그래도 큰 불만은 없다. 홀수 층은 언제나 플랜 B선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차력쇼, 똥꼬쇼까지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온건하다.

행복하군. 미리 생각해 둔 작전이 이거밖에 틀어지지 않는다니.

블랑쉐의 존재가 찝찝하긴 하지만 어차피 그건 천재지변 같은 거다.

잘 숨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 된다.

생각 이상으로 협조적인 태도에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두자.

모든 위협을 다 생각할 수는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 어느 정도 경우의 수를 배제하는 플레이도 필요한 법이다.

쾅!

뱀의 육신 전체에 충격이 타고 흐른다.

단검을 양손으로 뽑아 들고 박아 넣고 버텼다.

몸 어딘가가 또다시 단단한 암석 덩어리에 짓눌린 보스가 온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한다.

바깥에선 잘하고 있는 모양이다.

곳곳에 고여 있던 소화액이 넘쳐 흔들린다.

몬스터는 별 볼 일 없는 던전이지만 저기에 닿으면 즉사다. 지금은 힐링 포션도 없다.

2페이즈가 빨리 시작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뱀이 온몸을 격렬히 진동시켰다.

2페이즈가 시작된다. 좋다. 이제 빠르게 챙길 걸 챙기고 이 보스전을 끝내자.

기여도 순으로 경험치가 배분되기에 제법 폭렙이 가능할 것 같다.

이제 내 비루한 스탯으로도 슬슬 중위 스킬의 영역까지 마인드맵이 뻗어 나간다.

마스터리를 비롯하여 소소하게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닌 본격적으로 스킬 의존도가 올라가는 구간이다.

뱀의 몸이 수평으로 뉘어질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몸을 더 단단히 고정한다.

그때, 여신의 다급한 신언이 들려왔다.

「블랑쉐랑 꼬마가 싸운다! 꼬마가 질 거야!」

여신이 말하는 꼬마라면 우리 파티의 소녀밖에 없다.

잠깐만, 왜?

‘혼돈이시여, 그런 일이 없도록 지켜봐 주시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아니, 이게 저쪽이 갑자기 투시경 쓰더니 블링크 시스템으로 날아왔다고.」

‘그걸 썼다고요? 충전 오래 걸려서 아낄 건데.’

어느 세계의 블랑쉐든 쉽게 바깥의 장비를 사용하진 않았다.

17년 차의 기억을 가지고 나오는 이상 내구도 개념은 확실히 알고 있다.

고성능 장비들은 아껴야 한다.

하지만 이젠 AI가 아닌 사람의 마음이다. 어떤 변덕이 과감한 소모를 결정시켰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신이여, 두 번째입니다. 주사위 굴리겠습니다.’

「지금 제압당했어.」

‘오, 맙소사.’

이번 회차가 쫑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인드맵을 띄워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 1,205일 1시간 27분]

시간을 많이 쓰진 않았으니 다행인가?

그리고 이상한 단어, 블랑쉐에게 쓰기엔 너무나도 위화감 넘치는 단어를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데 잠깐만요? 제압이요?’

「그렇군. 아직 죽이진 않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 * *

소녀가 다시 의식을 차릴 때까지 들었던 시간은 주관적으로는 억겁과도 같았다.

아저씨한테 배운 대로라면 이제 어둠뿐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어야 했다.

묘하게 포근하고 이상하게 나가기 싫은 그런 공간.

문짝 하나 덜렁 있고 남은 시간이 강제로 떠올라 지울 수 없는 곳.

열고 들어간다면 다시 그때의 그 1층이다.

한번 보았던 유배자를 다른 세계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미궁에 떠도는 도시 전설에 불과하다.

실제 그런 사례를 본 적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럼 이제 영영 이별이다.

꼬리나 귀가 있는 종족이었다면 축 늘어졌으리라.

꼭 그런 기분으로 눈을 떴다.

블랑쉐가 앉아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

"왜 그렇게 쳐다보나?"

"나 살아 있네?"

무표정한 얼굴이 그 모습 그대로 한숨을 내쉰다.

"이상하군. 나에 대한 소문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야. 본 녀석은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놀라지 않을까요?"

소녀는 이제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죽일 거면 처음부터 죽였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살려둔 걸 보니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불쌍한 여동생아. 오르골이 또 무엇을 만들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너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구나."

소녀는 오히려 자신이 하려던 아무 말을 상대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누가 나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 같은데.」

여신의 신언은 지금껏 들어본 것 중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혼돈의 신이 혼돈에 빠졌도다.

* * *

「그렇다는데?」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뱀의 뱃속을 돌파해간다.

던전이라곤 하나 위장 속일 뿐이다. 그렇게 길진 않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꼬리 쪽 방향이다.

그보다는 지금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다.

‘그게 뭔 소립니까?’

이전 회차의 블랑쉐가 내게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오르골이라는 이름에 반응하는 정도가 너무 강했기에 깊은 인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추측건대, 블랑쉐를 양성한 장본인이 아닐까?

관리자로서 끊임없이 간섭하고 챙겨주고 했던 사이라는 정도다.

나도 그 이상은 모른다.

그냥 종종 언급하곤 했다는 정도지. 말투는 그래서 알게 되었다.

연기를 할 만큼의 정보도 그 사이에서 파악해냈을 뿐이다.

이 게임의 외부 세계관 자체도 어느 정도 정형화된 감이 있어 완전히 오리지널이라는 느낌은 크게 없다.

대충 우주 스파이. 그런 느낌으로 클리셰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블랑쉐를 처음 보러 갈 때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했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내 추측이 다 맞을지는 모르니까.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여신이 끊임없이 블랑쉐가 소녀에게 하고 있는 말을 전해온다.

그 내용은 애틋하기까지 하다.

대신 나에게는 증오가 향하고 있다.

이런 젠장. 난 이런 말은 못 들었다.

이전 회차의 블랑쉐 녀석!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속내를 좀 더 털어놓았어야지!

이 못된 녀석!

* * *

신언을 통해 지시가 내려온다.

소녀는 아저씨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러니까, 진짜로 ‘오르골’의 마수에 걸려든 불쌍한 소녀인 척하기로 했다.

사실 실제의 그녀와 통하는 면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병기로 길러진 여자아이.

시대도 다르고 자세한 내용도 다르지만, 그녀가 원래 세계에서 느끼던 불행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야기.

블랑쉐는 들어온 소문대로라면 전혀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빨리 오르골이라는 녀석을 죽여 버리고 자유를 찾게 해주고 싶다며 말해왔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끄덕끄덕하고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를 죽여버리겠다는 대목에서는 흠칫하며 멈췄다.

"앗, 아니. 그건 안돼요! 그, 그 그러니까."

"언니라고 부르렴."

"넵, 언니. 아무튼 그건 안 돼요."

블랑쉐가 가볍게 한숨을 흘린다.

"너도 혈육의 정에 얽매여 있구나."

"네?"

"오르골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놀랐지. 또 모습을 바꾸었나 하고. 거짓말이라기엔 태도도 너무 흡사하고, 아는 것도 일치했다. 그러니 믿어야지."

"네, 네……?"

블랑쉐는 빠르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바깥세상 마지막 임무는 여동생들의 해방을 걸고 오르골이 내건 것이었다.

그 여동생이란, 그리고 블랑쉐 자신이란.

가장 강력한 인간이었던 오르골이 자신의 유전자로 찍어낸 자식들이라고.

오르골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정말 빌어먹을 아버지라고 지칭했다.

소녀는 딸꾹질을 했다.

"기억하렴.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그 말을 끝으로 블랑쉐는 소녀의 손을 놓았다.

당장 눈앞에서 아비라 믿고 따른 자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겠다는 태도였다.

대신, 진실은 알려주었으므로.

소녀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했을 따름이다.

그 상황은 또한 여신을 통해 아저씨에게 전해진다.

* * *

"난 착각물을, 끙챠! 찍을 생각이 으랏챠! 전혀 없었는데!"

절규에 가까운 메아리가 뱀의 위장 속을 덧없이 부딪치다 사라진다.

일이 엄청나게 꼬였다.

상황이 절묘했다.

내가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사실, 그리고 이전 회차의 블랑쉐가 미처 말하지 않은 자신의 설정.

아니, 일개 네임드에게 저렇게 디테일한 설정이 있었다고?

스토리 작가놈의 망상벽은 대체.

아니지 그게 아닌가.

현실화되며 저절로 짜 맞춰진 것일지도 모른다.

오르골로부터 시작된 오해가 멀리도 퍼져나간다.

일단 지금의 결과만으로는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저 녀석이 왕국까지 못 갈 리는 없으므로.

대신 내가 앞으로 블랑쉐의 증오와 위협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그 덕에 소녀는 엄청 무서운 언니의 무한한 호의를 손에 넣었다.

나만 빼면 모두가 행복해진 걸지도 모른다.

「어이, 신도여.」

‘왜 그러십니까.’

「내 미궁 생활을 통틀어 이보다 꿀잼인 꼬라지는 처음이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남의 일이라고 너무 즐기시는 거 아닙니까? 그보다 꿀잼은 또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이거 가르쳐 준 놈은 규율과 금전의 신으로 갈아탔다. 이제 내 거 아니다.」

‘서로 아픈 곳은 건들지 말도록 하지요.’

「후우.」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지금 이게 다 착각이란 걸 들키는 일이다.

어떻게든 현 상태를 유지하자.

블랑쉐를 제압할 능력을 갖추거나, 혹은 다른 상황을 틈타 없앨 수 있는 상황을 만들거나.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잘 이용해서 아예 영입할 각을 보거나.

마지막은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동시에 구미도 당긴다.

일단은 먼저 이번 층의 카드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 보자.

위장의 끝까지 도달했다.

2페이즈가 시작되어 케찰코아틀이 봉인에서 풀려나 날아올랐기에 길이 평탄해져 있다.

반짝이며 허공에 떠 있는 카드가 보인다.

이런 부분을 보면 또 이 세상은 게임이 맞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늘 내게 이 세상이 게임임을 상기시켜 준다.

카드에 손을 갖다 대자, 빛이 사라진다.

그러며 드러나는 형상은.

팔이 두 개 다리가 두 개.

머리가 하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균적인 인간형 종족.

아니 그냥 인간.

"이건……."

블랑쉐의 일은 잊자.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최대한 생각한다.

‘인간’ 카드. 당장은 아쉬워도 조금만 내다보면 결코 나쁘지 않다.

미궁을 클리어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종족들로 진행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에는 인간이어야 한다.

괴물을 쓰러뜨리는 것은 언제나 인간인 법.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게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종족 메인스트림], [배신당한 인간의 성녀].

그녀가 오크가 된 것 역시 미궁의 카드 때문이다.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인간의 [히어로 유닛] 대성녀 메이릴이 다시 인류의 진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건 여러모로 짝수 층의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수단이다.

다만, 이건 트동트와 상담을 해봐야 하는데.

내가 이미 저지른 짓이 좀 걸린다.

2층에서 쿨하게 오크 편을 들고 요정을 밀어버려야 했다.

내가 잘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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