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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2화 (42/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2화

5층 - Lv. 200 케찰코아틀(4)

카드를 확보했다면 이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막타를 쳐야 한다.

본디 케찰코아틀 보스전의 2페이즈는 봉인에 묶여 있던 녀석이 드디어 봉인을 깨고 빠져나오면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온몸에 돌더미가 박힌 채로 꾸불텅거리며 날아다닌다는 뜻이다.

작은 뱀들도 전부 리스폰되지만 보스의 위치가 고정이 아니라서 더 이상 피라미드 파편을 이용한 공격은 어렵다.

대신 탑을 중심으로 한 결계는 여전히 남아 있기에 몸을 부딪치며 다섯 개의 탑을 맴돈다.

그걸 처죽여야 한다.

만약, 진짜로 다음 층으로 가고 싶을 뿐이라면 더 쉬운 방법도 있다.

아예 탑 위에서 공략을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어디 숨어 있으면 된다.

그러면 케찰코아틀은 결국 결계를 부수고 달아난다.

아주 안전하게 계단을 내려갈 수 있다.

내가 혼자서 어찌 처리할 능력이 없던 저연차 시절에는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하면 왕국 이후 케찰코아틀 조우율이 올라간다.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장단점이 있는 선택이다.

미래는 그렇다.

현재를 보자면 많은 보상을 날려 먹는 것이기에 단순한 손해다.

그것으로 인해 굴러갈 스노우볼도 생각하면 더 큰 손해일 수도 있다.

나는 방법을 알게 되고, 그것을 실현한 능력을 가진 후엔 한 번도 보스를 놓아준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뱀의 심장은 꽤나 머리에 가까이 있다.

위장과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수평으로 요동치며 날고 있는 녀석의 뱃속은 이제 위산만 조심하면 평지나 다름없다.

꿈틀거리는 내장 속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서는 화살을 마구 쏴댄다.

폭탄 열매가 있다면 좋겠지만 바르바로이에게 다 털어 넣었다.

폭발 화살은 귀중한 원거리 광역기지만 아낄 때가 아니다.

내장부터 파헤쳐지자 뱀이 고통으로 몸을 비튼다.

쏟아지는 위산을 피하며 계속해서 사격.

살점을 헤집고 빠져나가면 심장이 멀지 않다.

내 몸보다 거대한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치고 있다.

죽음을 직감한 뱀은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럴 때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몸속을 파고든 인간이 심장까지 도달해서 슥삭이라니.

대체 얼마나 무서울까.

어우 씨, 내가 당한다고 생각해 보니 상상하기도 싫네.

심장에서 뻗어 나가는 주요 혈관들을 베어낸다.

잘 베이지는 않지만 약간의 마력 운용으로 충분하다.

케찰코아틀은 죽었다.

* * *

다 잘해놓고 뭔가 마지막에 내가 죽을 뻔했다.

거대한 몸에 흐르는 혈액이 콸콸 쏟아지는 가운데 생명을 잃고 추락하는 케찰코아틀의 몸속에 있었으니 압사 혹은 익사 위기였다.

보통은 힐링 포션을 온존하고 들어오다 보니 미처 생각 못 한 부분이다.

소녀와 막내가 팍팍 파헤쳐서 나를 꺼내주었다.

겨우 빠져나와 보니 밖은 이미 비늘을 뜯는다거나 살점을 발라낸다거나, 깃털을 채집하는 등 갈무리가 한창이다.

이 정도 되는 신화적 괴물의 육신은 전부 귀중한 소재다.

그리폰도 그랬다.

그때도 챙길 게 많았는데 도망칠 수밖에 없었으니 아쉽다.

[모루]가 없어 제대로 된 장비로 가공하진 못하더라도 그냥 그 깃털을 대충 덧대 입기만 해도 훌륭한 방호복이었을 건데.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이번에는 여유롭게 챙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블랑쉐는 떠났다고?"

"네, 대가리에 있던 큰 깃털 하나만 떼서 가버리던데요."

"제일 좋은 걸 가져갔군."

당연하게도 부위마다 가진 성능도 다르고 희귀도도 다르다.

이런 급의 괴수에게는 거기에 더하여 상징이라 할 만한 부위가 꼭 하나씩 있는데, 유니크급 이상의 아이템은 대체로 그런 걸로 만들어진다.

"욕심도 많아. 그건 좀 나 주고 가지."

아마 블랑쉐는 종족 카드의 존재는 몰랐을 거다.

17년 차가 알 만한 비밀도 아니고, 무수한 블랑쉐들이 일관성 있게 모르던 사실이었으니.

이걸 알만큼 연차가 되는 녀석이 없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5층 정도에선 내가 이기기 힘든 녀석이 그런 걸 알고 탐내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승리하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뻔하다면 포기하는 게 낫다.

블랑쉐라는 태풍도 무사히 지나갔으니 결과적으로는 아주 평화로운 5층이었다.

사냥꾼이 막내를 데리고 케찰코아틀의 시체를 알아서 수습하기 시작한다.

나는 소녀와 함께 다른 작업을 했다.

내가 날려버린 녀석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미궁의 원한은 길게 가지고 가서 좋을 것이 없다.

물론, 서로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서 서로의 목숨을 노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끝에 감정이 남지 않을 수는 없다.

확인사살은 중요하다.

우선 샘으로 돌아가 다시 스폰된 힐링 포션의 병을 찾는다.

버리거나 던져서 깨부숴 보유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온다면 가지지 못한 자의 몫만큼이 다시 나타나 있다.

대신 소지하지 않은 상태의 병은 어디에 있건 즉시 사라진다.

1인 1소유의 원칙에 철저한 아티펙트다.

샘물을 받아 케찰코아틀의 시체에서 나온 피를 섞는다.

혹여 있을 급습이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저번에는 내가 말을 안 해줬는데, 농도를 조절해서 지속시간과 위력도 어느 정도 바뀌어."

"피를 많이 담을수록 더 강하고 짧아지는 건가요?"

"그렇지. 하지만 너무 극단적이면 아무 효과가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평소엔 반쯤 섞으면 된다고 기억해 둬."

자잘한 응용은 천천히 배워야 한다. 일단은 정석.

소녀와 함께 ‘케찰코아틀의 피’를 들이켠다.

이 녀석을 잡아 얻을 수 있는 수많은 이득 중에서는 강력한 도핑제도 있다.

그리폰 따위와는 급이 다른 몬스터인 만큼 도핑의 위력도 차원이 다르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마법을 마음대로 써도 될 정로 스탯이 올라간다.

올스탯 도핑이라 지능만 도핑하는 피에 비해 수치가 낮은데도 그 정도다.

주변의 마나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체내에서 마력으로 변환한다.

현재의 상태에서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모아 탐색의 파문으로 바꾼다.

내가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 꼬마 마법사가 반응했다.

"와아……."

살아남은 유배자 중에서 유일하게 마력에 익숙한 녀석이다. 지금 퍼져나가는 마력의 규모에 감탄한 모양이다.

"와? 오오? 이거 뭐예요?"

의외로 소녀도 느꼈다.

이것이 재능충인가.

"뭔가 몸이 막 찌릿찌릿했어요."

뭐지? 대마법사의 재목인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너 퇴마사랬나 그렇다고 했지? 혹시 물리적 퇴마 말고도 뭐가 있었냐?"

"음, 언니나 어머니가 약간 이상한 걸 하긴 했어요. 그냥 때리는 거 말고 더 이상한 거.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부분적으로 발달한 마법인가. 더 설명 안 해도 될 거 같다."

세계에 따라서는 그런 경우도 있다. 마법이 존재는 했는데 제대로 된 형식과 체계를 갖추지는 못한 경우.

그러니까 원시적인 형태로는 마법이 실존하던 지구인 모양이다.

"너희 한국은 참 힘든 곳이었겠다."

"여기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그거야 그렇겠지.

* * *

내가 케찰코아틀의 몸으로 날아갔을 때, 함께 날아간 녀석들을 찾자.

궁수인 척하던 마법사와 한패가 되었던 암살자는 대경실색하여 파편을 붙잡았다.

당연하지만 악력으로 버틸 충격은 아니었다.

되레 어쭙잖게 붙잡았다 놓치니 포탄처럼 사출되었다.

마법적 탐색으로 그 위치를 알 수 있었기에 빠르게 도달했다.

도핑의 힘으로 날듯이 달려도 지치지 않는다.

바닥에 엎어져 곤죽이 된 시신을 본 소녀가 구역질을 했다.

"이건 또 못 견디니?"

"으, 제가 비위가 좀 약해요."

사람은 잘 썰어 재끼는 데. 분해된 사람은 잘 못 견디다니. 약간 어려운 비위군.

그래도 인간의 감성이란 건 원래 제각각이니까.

시체의 장비가 멀쩡하기엔 너무 고공에서 고속으로 투하되었다.

‘쓸 만한 장비였던 것’만 조금 남아 있다.

원한을 산 상대가 확실하게 다음 회차로 가버린 게 확인되었으니 충분하다.

그 후로도 수색을 하는데 굉장히 의외의 녀석들이 살아 있었다.

이게 힘 몰빵 전사인가. 블랑쉐가 딜 계산을 잘못하게 만들 줄이야.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긴 했는데 일단 힐링 포션을 뿌려서 살려냈다.

이번에는 멍청하게 저항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순순히 따라온다.

되레 순한 양 같다.

유배자들이 모인 곳으로 가자 다들 고기를 굽고 있었다.

뱀 고기는 생각보다 맛있다.

신화적 괴물은 더 맛있다.

기억해 둬야 한다. 미궁의 괴물은 보통 강한 녀석일수록 맛있다.

종류에 따라서는 스탯 보너스도 존재한다. 도핑이 아닌 영구적인 종류로.

케찰코아틀은 용의 근연종답게 올스탯에 약간의 보너스를 준다.

구워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몇 점 주워 먹으면서 잡아 온 네 명을 소개했다.

"자, 지금 파티에 사망자가 발생해서 곤란한 친구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필요한 사람 있나?"

모두 난처한 표정으로 침묵하거나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런.

뭐, 통제하지 못할 변수를 파티에 넣고 싶은 이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사망자가 생겨 조각이 빠진 채로 다음 층에 진입하는 것 또한 위험일 수 있다.

각자의 선택이긴 하다.

나는 블랑쉐로부터 살아남은 드문 사례들을 보았다.

"그렇다는데?"

"……."

도끼 전사와 그 동료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보아하니 고정 네임드를 보는 것도, 제대로 된 고참을 보는 것도, 심지어는 5층 보스전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저런 거대한 괴물을 처음 보게 된다면 압도되기 마련이다.

이건 CG도 게임도 아니다.

직접 보는 입장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실감 나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보통은 기가 질린다. 그런 식으로 3층의 난민으로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 미궁에선 단지 도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라 자부해도 좋다.

이전의 방약무인할 정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도끼 전사가 조용히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희는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몇 안 되는 전원 생존 파티긴 했다.

지금은 의기소침하지만 갈라놓지 않으면 다시 무슨 행패를 부리려 할지 모른다.

나는 막내를 불렀다.

불한당이라는 점에서 막내와 공통분모가 있는 친구들이다.

막내는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앞으로 나와 짐짓 위엄 있는 표정으로 도끼 전사와 친구들을 노려보았다.

막내가 초회차임을 모르는 녀석들은 그 험악한 인상에 움츠러들었다.

내가 눈짓했다.

막내는 알아듣지 못했다.

사냥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막내를 잠깐 어디론가 데려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막내가 다시 도끼 전사와 친구들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가 돌아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사냥꾼이 동행했다.

잘 챙겨 주는구먼.

막내가 내게 다가와 작게 말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곤조곤하다.

"두목님, 제가 저런 녀석들을 많이 봐 와서 아는데 근성부터 썩은 놈들입니다."

"너는 안 그렇고?"

막내가 쑥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어유 징그러.

"저는 그래도 언제나 주님께 기도하며 지냈죠. 사실 누가 사람을 좋아서 해치겠습니까."

"저놈들은 안 그렇다?"

"넵, 피래미지만 구역질 나는 사악함이 느껴지는 녀석들입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뭔지 배우지 못한 놈들이죠."

나는 약간 고민한 후 말했다.

"가르치긴 힘들겠고?"

"아주 어렵죠."

마지막으로 물었다.

"너는 정말로 안 그렇다?"

막내는 답지 않게 슬픈 얼굴로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 약육강식이 되어버리고 마는 곳도 있습니다. 저도 잘못했다는 건 압니다. 그저 제가 더 강했을 뿐이겠죠."

여신이 거들었다.

「자꾸 나를 보고 주님이니 뭐니 하던데? 드디어 직접 뵙고 죄를 뉘우칠 수 있다며 어찌나 울먹이는지. 나와 다른 어떤 신앙을 동일시하는 모양이야.」

내 잣대를 모든 곳에 들이대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같은 지구계열이라도 다른 세계는 다른 세계다.

나와 사냥꾼의 지구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소녀와 막내의 지구는 그렇지 못했다.

"저는 미궁 정도면 아주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치 않으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말이 나올 정도의 지구도 존재하는 것이다.

"제 죄는 주님께서도 다 알고 계십니다. 죗값을 치르고 싶습니다. 부디 편한 대로 저를 써주십시오. 두목."

사정이 없는 삶은 없다.

막내가 고분고분한 것에는 그런 배경 또한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반드시 교정해야만 하는 착각 또한 없다.

그의 주님이 여신님과 같을 리는 없으나 그렇게 믿어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다.

사실 살인에 그 자체에 관해서라면 미궁의 어느 누구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초회차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상이리라.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는 꼭 왕국이 아니더라도 살 만한 곳에 정착시켜주자.

내 손이 닿는 곳에 그 정도 행운은 임해도 되지 않을까.

막내의 의견이 곧 내 의견이 되었다.

이 층의 생존자 모두에게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이 높은 도끼 전사와 친구들은 다음 회차로 보내졌다.

남은 이들은 자신들끼리 다시 파티를 재편성했다.

3층 이후에는 홀수 층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유배자끼리의 전투를 요구하는 경우도 제법 존재한다.

이렇게 평화롭게 협력하는 분위기도 이제 마지막일지 모른다.

여궁수와 꼬마 마법사는 전위로 노인을 받아들였다.

노인 역시 파티원 전부가 죽고 혼자 남았기에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비교적 고참 파티인 셈이다.

"셋으로 되겠어?"

"테마에 따라서는 사람이 적은 것도 유리하지 않습니까."

이젠 테마가 바뀐다. 식량을 구하기 힘든 테마라면 소규모 인원이 확실한 이득이다.

"그래, 7층에선 서로 잘해보자고."

전투를 대비해 미리 편을 만든다. 중요한 전략이다.

계단을 내려가며 꼬마 마법사가 계속 나를 흘끔거렸다.

소녀가 그 모습에 약간 짜증을 냈다.

다른 모든 유배자들을 배웅해 주고 나는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테마마저 바뀌는 6층이 어떤 지옥일지 아직 모르니 5층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가자.

소녀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갑자기 우주 테마가 나와도 그럴 법한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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