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00화 (100/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00화

10층 - Lv. 335 황제 친위대(5)

주술사 중에는 지금 펼쳐진 이 지옥 같은 환경을 공격에 활용하려고 생각한 이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황제 친위대는 역전의 용사들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최정예다.

충격대대처럼 부대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은 특수부대와는 다르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훈련받는다.

주술은 원래 남의 것을 빌려다 쓰는 힘이다.

그것은 대자연일 수도 있으며 신일 수도 있고, 단지 사방에 들끓는 열기일 수도 있다.

원소란 본디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물질과는 별개로 그 물질이 띠고 있는 성질을 의미한다. 그리고 모든 물질은 그 근원으로 따지면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

불이란 결국 열과 빛.

지금보다 불의 원소가 넘쳐나는 상황도 달리 없다.

주술사는 회심의 일격을 구현했다.

열기가 모여 든다. 불길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열기는 소모하는 마력에 비해 월등한 위력을 낼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든 열기의 빈자리는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간다.

함께 움직이던 선임 대주술사가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주술사의 마음에 자긍심이 차올랐다.

함께하고 있는 고대의 영웅도 잘했다며 치하해 주었다.

그의 이름은 아라크. 제국의 역사에 새겨져 전해오는 전설적인 대검 전사다.

"내가 돌격하며 그걸 저 요정들에게 날리도록 하시지."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함성과 함께 영웅이 모퉁이에서 나와 돌격한다.

그 함성은 이미 스킬이었다.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주술사는 거대한 열기의 덩어리를 발사했다.

아라크는 거의 몸이 흐릿해질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그 몸을 밀어내는 바닥이 으스러진다.

무시무시한 각력은 충격파마저 만들어내는 기분이었다.

뜨거움은 전사를 막지 못한다. 무수한 단련이 영웅의 몸을 다져놓았다.

그것이 사실 엄청나게 스택된 저항 패시브라는 사실을 대륙의 주민인 주술사는 모른다.

그저 맨몸으로 아무런 마법도 없이 살을 태우는 열기에 자유롭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하지만 상대도 영웅이라 불러야 마땅할 요정이었다.

화살이라기보다는 빛이라고 느껴지는 섬광이 번뜩였다.

주술사는 그 무엇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대검이 방패처럼 세워졌고 섬광이 튕겨나갔다.

영웅은 직선으로 돌격하는 것을 멈추었다.

눈에 잔상이 남을 정도로 좌우로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요정 궁수도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너무 빠르게 속사되어 활시위가 튕기는 소리가 길게 늘어져 들린다.

번쩍번쩍하는 빛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이 솟구치고 번개가 번뜩인다.

동시에 마법이 작렬했다. 눈 부신 빛이 광장을 가득 채운다.

열기의 구체는 아직도 비행 중이었다.

다시 시야가 돌아오자 약해진 미로의 천장이 무너져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주술사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폐물이 생긴 셈이다.

먼지와 파편이 튀는 사이로 영웅이 날아올랐다.

기묘할 정도로 꺾인 풀스윙 자세.

한눈에 보기에도 지나치게 역동적인 자세로 대검이 휘둘러진다.

대지가 들고 일어났다.

무너진 잔해가 통째로 일어섰다.

그것은 그대로 암석의 해일이 되었다.

광장은 트롤 서커스단이 곡예를 해도 될 정도로 거대했으나 시야를 전체가 부서진 파편으로 가득 차올랐다.

주술사가 입을 딱 벌리고 있자 선임인 대주술사가 뒤통수를 후려친다.

"영웅이 싸우는 걸 처음 보나? 똑바로 안 해?"

"시정하겠습니다!"

주입당한 군기가 바짝 올라온다.

하지만 영웅의 전투를 처음 보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 막 황제 친위대에 입대하여 고향에서 잔치도 벌였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영웅 아라크가 고함친다.

"지금!"

적절한 위치에 도달한 열기의 구체가 폭발했다.

전방으로 열을 띤 공기가 폭풍이 되어 몰아친다.

압축되어 이동했기에 더욱 열이 올랐다.

요정의 공세가 주춤해졌다.

아라크는 더욱 가속했다.

한줄기 화살이 된 것 같았다. 그의 대검이 곧 배신한 대주술사에 닿을 듯했다.

그때.

드르르르륵!

무언가 충격을 받은 영웅이 튕겨 나왔다.

번갯불을 콩을 볶는 듯한 기이한 굉음이 광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영웅은 더 전진하려고 했으나 다시 마법의 포화와 굉음에 직면하여 전진할 수 없었다.

거칠 것 없이 전진하던 암석의 해일도 벽을 만난 듯 멈칫하더니 제자리로 쏟아져 내렸다.

다시 빛이 번뜩인다. 화살인지 광선이지 모를 것들이 벽에 구멍을 숭숭 내고 있다.

선임 대주술사가 눈먼 한 발을 막아내었다. 지팡이가 위험하게 흔들린다.

영웅은 아주 쉽게 막아내지만 대주술사는 단 한 발로 몸이 휘청였다.

"이것 참, 못 할 짓이군. 그래도 우리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짬은 아닌데."

"그렇습니다."

곧 영웅이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적의 시야 바깥인 미로의 모퉁이다.

주술사는 지금 벽 뒤에 숨은 이 상황이 어차피 엄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벽은 툭 치면 부스러진다.

그런 전장이다.

영웅은 대신 광장 가장자리에 있는 굳어 있는 다른 영웅을 하나 집어 들고 왔다.

"이걸로 엄폐하지. 깨우지 말게. 내 친구니까 이해해 줄 걸세."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동시에 효율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친구라는 건 거짓말이 분명하다. 보는 시선이 고소하다는 감정이 잔뜩 담겨 있다.

물론 주술사 둘은 토를 달지 않았다.

하지만 요정들은 공격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다른 쪽에서도 또 다른 그린스킨의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 * *

"이거 터질 거 같은데 말입니다."

사냥꾼이 기관총을 보며 불안해했다. 굳어 있는 트롤의 다리 사이를 진지 삼아 설치된 거치형 중기관총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정령사가 얼른 얼음의 정령을 독려했다.

다시 냉각되는 모습을 보면서도 사냥꾼은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총기가 효과가 있군요."

덮쳐든 열풍을 방벽으로 흘려낸 막내가 땀을 닦으며 말한다.

암석의 해일은 바람의 상급 정령이 힘껏 내려침으로써 진정되었다.

정령사는 역으로 그 파편들을 소용돌이로 만들어 반대편으로 보냈다.

오우거 하나가 방어막을 두르고 달려온다.

마법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화살에 실린 마법 역시 위력이 반감되는 느낌이다 오우거는 전차처럼 돌진했다.

막내가 재빨리 총신을 돌렸다. 사냥꾼이 불안해하면서도 방아쇠를 당긴다.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과학의 산물인 물리 병기는 마법을 무효화하는 방어막을 신나게 두들긴 끝에 깨뜨렸다.

화살과 정령들이 달려든다. 오우거는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오우거가 달려오던 길은 형체를 알기 힘들 정도로 갈아엎어졌다.

"이런 무시무시한 것들에게 이게 먹히다니."

사냥꾼의 푸념에 정령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잎사귀 요정답게 쾌활하다.

"유배자의 신기한 무기가 아주 효과적인데? 마력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했지? 그래서 먹히는 거 같아!"

저항은 대개 원소와 관련이 있다.

원소는 마법이다.

전사도 마찬가지다. 근력만으로 산을 갈아엎는 것은 영웅이라도 거인 같은 종족이 아니면 무리다.

알게 모르게 모든 것에 마력이 관여하고 있다.

다시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총열도 붉게 달아오른다.

"냉각! 냉각이 더 필요합니다! 이건 뜨거우면 터집니다!"

죽고 싶지 않은 사냥꾼이 애타게 소리쳤다.

정령사는 태평하게 웃으며 총열을 냉각시켰다.

"냉각만 한다고 영원히 쏠 수 있는 무기도 아닙니다. 요정왕께선 언제 깨어나십니까?"

"색이 얼마나 돌아왔는지 보면 되지 않을까요? 시간을 빼앗긴 물건은 색을 잃어버리니까요."

궁수가 슬쩍 눈을 돌리더니 대답한다. 그 와중에도 사격은 멈추지 않는다.

사냥꾼도 얼른 곁눈질을 했다. 영감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력을 쏟는다.

마력의 양이라면 정령사가 가장 높겠지만 봉인 해제가 양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풀어헤치는 시간은 그게 그거다.

이곳의 마법직 중 가장 약한 영감님이 저러고 있는 이유다.

요정왕을 깨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오크 주술사라니. 사냥꾼이 생각해도 우스운 꼴이었다.

그러나 전황은 시시각각 나빠진다. 처음부터 더 많은 것은 그린 스킨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유적이 얼어붙은 시간 속에 잠길 일도 없었으리라.

* * *

소녀는 냉기 마법사 요정을 보며 감탄했다.

아저씨만큼이나 잘생겼다. 아니, 어쩌면 더.

"오, 소녀. 꽃잎 요정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너무 나를 뚫어져라 보지 말게. 반해버리니까."

"저는 임자 있는 몸이에요!"

"그렇군, 그럼 그쪽 아가씨가 조심해야겠어."

"어, 음. 네."

자신을 크라이오젠이라고 소개한 꽃잎 요정은 굉장히 유쾌하고, 바람둥이 같은 요정이었다.

그리고 정말 빛이 나듯 잘생겼다.

아저씨가 한 번씩 말하곤 하던, 꽃잎 요정을 보면 자신이 잘생겼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소녀는 가끔 혼자 먼 곳을 바라볼 때의 그 우수에 찬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얼굴은 중요하지만 분위기는 더 중요하다.

이런 가벼운 느낌의 남자는 취향에서 꽤나 벗어나 있다.

그런 태도와는 별개로 소녀는 크라이오젠의 강함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마인드맵이 있는 유배자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지능 쪽의 냉기 계통만으로 도배되어 있을 것 같다.

스택된 패시브마저 전부 그렇지 않을까?

가만히 서 있기만 하여도 주변의 온도가 내려가는 느낌이다.

수백 도의 공기는 아무런 위험이 되지 못했다.

그의 손짓 한 번에 열기가 모두 달아났다.

달아오른 돌도 차갑게 식었다.

"빠르게 미로를 돌아야겠군. 대마법이니 맨땅에는 못하거든. 하지만 꽃을 찾는 나비들이여, 이렇게 달아오른 걸 갑작스레 식히면……."

"무너지겠죠."

"이런이런, 의도였다니. 그렇다면 문제없지. 이 아름다운 함정을 만들기 위해 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하면……."

"좀 닥쳐줄래요?"

"아름다운 꽃은 가시가 있는 법이지. 좋아. 아주 좋군. 상큼하기도 하여라."

소녀는 벌써 질려가는 기분이었다.

1층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될까 봐 열심히 신변잡기를 늘어놓았을 때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어딘가 피로한 그 표정을 지금 자신이 짓고 있다.

그리고 옆을 보는데.

꼬마 마법사가 어딘가 황홀한 표정으로 크라이오젠을 보고 있다.

소녀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예상외의 녀석이 취향이었어!

생각해 보니 중학생이었지?!

소녀는 본능적으로 둘 사이를 막아서며 걸었다.

더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 마법사는 성능만큼은 확실한 것 같으니까.

* * *

트롤과의 인파이팅은 일반적으로는 추천받지 못하는 행위다.

하지만 내 몸통만큼 굵은 봉으로 후드려 맞을 위기라면 차라리 파고드는 게 낫다.

트롤들은 둔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톱은 이미 날붙이이기 때문이다.

트롤은 능숙하게 자신의 봉을 바닥에 꽂았다.

내 움직임을 차단하는 방향이다.

발톱이 다가온다.

나는 임팩트의 순간에 맞춰 스스로 몸을 갈랐다.

트롤이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된다.

이런 식의 회피는 아무리 재생할 수 있다곤 해도 하지 않는다.

아프니까.

하지만 효율 앞에 아픔은 무의미하다. 직접 맞아 뜯겨나가는 몸보다야 예쁘게 썰렸다가 다시 붙는 편이 낫다.

어이없어하는 트롤도 사실 큰 차이 없는 상태였다.

트롤은 마법을 다룰 수 없다.

만약 다룬다면 어느 정신 나간 유배자가 자체 하드모드로 트롤 마법사를 플레이한 끝에 도달한 어딘가일 것이다.

그루터기 요정 광전사와 비슷한 난이도 아닐까?

그러니 이 트롤은 순전히 몸으로 때우고 있다.

타들어 가는 피부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며 내부 장기의 손상을 막는다. 치명적인 손실은 없다. 그러면 재생에 드는 칼로리도 많지 않다.

여기서 나가면 살이 쪽 빠져 있겠지만 죽음까지의 시간은 많이도 남았으리라.

그렇게 깊숙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트롤 전사는 화력이 충분하다면 오히려 오크 전사보다 쉬워질 수도 있다.

미궁의 탱킹은 애초에 다치지 않는 튼튼함과 다쳐도 상관없는 재생력으로 나뉜다.

재생하는 것들은 좀처럼 튼튼해지지 못한다.

마인드맵상으로도 그런 스킬에 역보정이 잔뜩 걸린다.

트롤의 탱킹은 아무리 고레벨이 되어도 일단 다치되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는 식이다.

총 HP와 HP 리젠만 높고 방어력은 낮은 물렁살이라는 것이다.

그걸 한 방에 날려버릴 위력이 있다면?

마투사가 그런 것을 위한 클래스다.

트롤은 자신의 위기를 그다지 감지하지 못한 낌새였다.

언제나 맞고 버텨왔다. 경우에 따라선 머리의 반이 날아가도 재생하는 것이 트롤이다.

황제 친위대의 일원일 정도면 무수한 위협을 몸으로 받아내 왔으리라.

지금도 온몸이 타들어 가는 뱀파이어와의 재생 싸움에서 질 거라곤 꿈에도 의심치 않는다.

그런 방심 덕에 쉬이 내 손이 트롤의 몸에 닿았다.

마력이 흐른다.

안으로 파고드는 마력의 흐름에 트롤의 안색이 바뀐다.

나를 움켜쥐어 터뜨리려는 생각을 버리고 황급히 잡아 뜯으려 했다.

폭발이 일어났다.

배가 쩍하고 갈라진다. 장기가 쏟아진다. 그리고 지글거리며 익기 시작한다.

트롤의 두꺼운 가죽과 근육은 실처럼 풀어 헤쳐져 있다.

나는 아예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피가 쏟아진다.

거대한 몸.

피도 많다.

잃은 피만큼 재생도 하고 있다.

섭취할 수 없는 피지만 피는 피다.

나는 트롤의 몸속에서 안개화를 했다.

내 피와 트롤의 피가 뒤섞인다.

트롤이 황급히 제 몸을 헤집으며 나를 찾지만 이미 녹아들었다.

신체가 접촉해 있으니 전쟁의 신이 화내는 것이 들려온다.

「이 멍청한 트롤 녀석! 저건 뱀파이어 마투사다! 거리를 주면 어떡하나!」

닿은 곳이 모두 권능으로 움직인다. 으드드득하며 속에서부터 피의 송곳이 솟구친다.

그리고 무속성의 폭발이 터져 나왔다.

심장도, 뇌도 한순간에 파괴되었다.

트롤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지글지글하고 무언가 익는 소리.

그리고 타는 소리.

레벨업의 오싹한 감촉.

아슬아슬하게 뱀파이어 로드의 격에 도달한 흡혈귀로서의 본능이 쏟아지며 익어가는 피를 삼키라고 한다.

하지만 이종족의 피는 독이다.

내 몸만을 다시 분리해내는 것도 약간은 시간이 걸렸다. 다시 방어막을 치고 한숨을 돌렸다.

꼬맹이가 단독으로 행동 중인 멍청이들이 이제 없다고 알려왔다.

짭짤했지만 합류할 시간이다.

단체전을 벌이는 건 좋지 않다. 레벨링도 적당히.

자연의 신도 우려를 표했다.

「슬슬 무너진다.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 오크가 똑바로 일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가장자리를 돌며 유적의 매몰을 준비하는 소녀를 데리러 빠르게 이동했다.

무속성 폭발은 의외로 직격당하지만 않으면 아주 위험하진 않다. 폭발을 타고 날면 굉장히 빠르다.

이미 미로의 중심 근처는 너덜너덜하다 못해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간신히 소녀의 위치를 찾아 도달했다.

크라이오젠이 반색한다.

소녀도 반겨주었다.

"뱀파이어? 신께서 말하신 유배자로군."

"아저씨! 여긴 완전 시원해요!"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크라이오젠! 한 바퀴 돌았습니까?"

"반 정도네. 이 아가씨들과 이야기 하는게 너무 즐거워……."

꽃잎 요정답게 더럽게 태평하다.

"후발대가 돌입해 왔는데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슬슬 광장이 함락되려 한다니 빨리 왕께 합류합시다."

이 양반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눈을 살짝 위로하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지금 해둔 정도만 발동해도 충분히 무너지긴 하겠군. 어서 이동하지."

당연하지만 그냥 벽을 쳐부수며 달린다.

중간에 공격을 준비하는 다른 무리들이 보인다. 둘 정도는 히어로 유닛인 것 같다.

안쪽에서 깨어난 다른 요정들이 사격하는 것도 보인다.

중앙광장으로 모두 모여들고 있다.

후발대들도 벽을 마구잡이로 부수며 전진하고 있다.

이미 도달한 녀석들도 있다.

요정왕이 다시 현세에 돌아오리라는 떡밥을 전쟁의 신이 아주 잘 물어주었다.

크라이오젠이 손을 떨친다. 허벅지까지 얼어붙은 오크들은 돌아보지도 못했다.

그대로 돌격하여 베려 했다. 단단하다. 암습 판정도 나지 않는다.

기습으로 제거하는 것을 실패.

모두 전력으로 달려서 지나쳤다.

저항해낸 오크 전사 하나가 도끼를 투척했다.

소녀가 뒤돌아서 막아냈다. 쾅하고 중심을 잃을 정도로 묵직하다.

비틀하며 넘어지는 소녀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계속 달린다.

꼬마 마법사는 크라이오젠이 붙잡았다. 얼음길이 서리 끼듯 펼쳐지며 미끄러진다. 지나간 후에는 곧바로 증발해 버리지만.

이미 광장의 온 사방은 포위 상태였다.

공세를 준비하는 소강상태일 뿐이다.

트롤 [히어로 유닛]도 몇몇 보인다.

주술사 [히어로 유닛]도.

요정왕이 있는 중앙은 주변을 둘러싼 봉인된 트롤이나 오우거 따위가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트롤 가랭이 사이로 기관총의 총구가 보인다.

내가 시켰지만 보기 굉장히 괴롭다.

광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함성이 사방을 메운다.

이건 돌격 직전의 의식이다.

충분한 인원이 모였고 이제는 우리의 적들을 격멸하리라.

요정 영웅들도 늘어났으나 원래부터 이 미로에는 그린 스킨들이 더 많았다.

전쟁의 신은 아마 전략 시뮬레이션하듯이 전장을 보고 있으리라.

그의 입장에서 전황이 호전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요정이나 그린스킨들은 지금 요정들이 점거한 한가운데에 있다.

일부 네임드를 제외하고는 해볼 만한 상대들이다.

영감님은 거의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일단 정령사를 찾았다.

"마력 넘치는 사람! 정령왕 가동해 볼 사람!"

잎사귀 요정 둘의 표정이 변한다.

"정령왕?"

"정령왕!"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신나 하는 표정.

"내가 계약자요! 빨리! 지금! 당장!"

"정말로?"

합세하는 두 요정의 손을 꼭 붙잡았다.

"단, 컨트롤은 제가 합니다?"

"너 정령 잘해?"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노려보는 두 요정.

"그래서 당신들은 정령왕이랑 계약해 봤습니까?"

급격하게 처지는 귀. 하필 둘 다 강아지 귀다. 아주 처량해 보인다.

"나중에 소개 좀 해주면 안 될까?"

"뱀파이어가 어떻게 정령왕을?"

그럴 시간 없어. 이 요정들아!

* * *

전쟁의 신은 정령왕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 뱀파이어가 도달하는 순간, 깨어난 주술사들에게 명령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