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09화 (10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09화

11층 - Lv. 765 폭풍울음 기갑여단(5)

꼬마 마법사는 선배님을 따라오겠다고 한 자신의 결정이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엄청나게 후회된다.

9층까지만 해도 좋은 선택으로 보였다. 그녀의 파티는 습격당해 풍비박산 났고 든든한 리더였던 여궁수도 어딘가 지친 표정으로 그곳에 남았다.

바로 그 자리에 함께 남아야 했다.

왕국이 아니면 어떤가.

서든데스도 없고, 강력한 고양이의 비호를 받으며 날씨가 좀 춥긴 해도 살만한 집도 있다.

식량이야 맵 바깥 어디에선가 슬금슬금 흘러들어오는 짐승들이 있다.

여자 둘이서 먹고 살기엔 차고 넘쳤으리라.

왕국이 뭐라고.

지능에 거의 몰빵하여 끌어올린 정신력도 사태를 좀 더 냉정하게 볼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꼬마 마법사의 천성은 겁쟁이였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신력의 보정을 받았으니 오히려 더 냉정한 자기객관화가 가능했다.

그녀는 지금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10층까지만 해도 그녀의 역할은 소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금 고생하는 정도였다.

고대의 영웅이니 뭐니 해도 잘 모른다. 그냥 와 대단한 사람들인가 보다 정도일 뿐.

마법사이니만큼 상대의 역량이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느끼진 못했다.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다.

하지만 11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아무리 아는 게 없어도 도저히 외면할 수 없다.

장갑차, 빔 무기, 함대전, 추락하는 우주 전함. 그 모든 장면들이 지나치게 강렬한 박력을 가진 채 뇌리에 꽂힌다.

소녀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꼬마 마법사를 제일 먼저 발견했다.

"왜 그래?"

"언니……."

소녀는 그래 봬도 바깥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던 쪽이었다.

절망에 잠긴, 그러나 희망을 찾은 눈빛 같은 것은 생소하지 않았다.

지금 귀여운, 커다란 여동생의 눈이 꼭 그랬다.

영문을 알 수 없으나 우선 달래준다.

머리를 쓰다듬기도 불편하다. 머리가 너무 높다.

하지만 소녀는 노력했다.

품에 안아주기도 힘들다. 체격 차이가 난다. 그래도 힘은 더 세다. 거칠게 확 끌어당겨 안아주니 움찔하더니 곧 안겨든다.

길쭉한 애가 그러니 의외로 또 귀엽다.

아저씨가 슬쩍 소녀의 행동을 보았다.

그러더니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소녀는 그것을 잘 달래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다.

"제가 여기까지 오는 게 맞았을까요?"

소녀는 그 말만으로도 꼬마 마법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험난하기도 하지만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충격적이다.

두려움은 어쨌건 죽음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지기 좋은 환경이다.

앗 하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 수도 있다.

저 하늘의 함대전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중간한 비현실감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태양이 떠 있음에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서 서로 미사일을 날려대고 빔을 쏘아댄다.

수십 개의 함대들이.

그리고 터져나가는 장면마저도 아무런 소리가 없다.

순식간에 다가오며 커지기 시작하는 함선들은 무수한 죽음을 싣고 대지 위에 드러눕게 되리라.

그마저도 대공포로 분쇄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소녀로서도 조금 더 일찍 저런 장면을 목도했다면 차라리 영화 같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인 일들을 겪어온 지금에서는 실감 나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저기서 눈먼 빛 하나가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에게 닿는다면…….

그걸로 끝이겠지.

하지만 소녀는 웃었다. 아저씨가 무언가 잔뜩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을 말할 때처럼.

자신만만하고 한 점 구김 없이 웃었다.

"괜찮아. 왕국까지 갈 거야. 그리고 거기서 잘 살아야지."

타인에게 말할 때 작용하는 설득력이란 것은 단어의 선택이나 말의 내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화자의 태도와 표정 그리고 어조.

꼬마 마법사의 표정이 조금 펴지는 것을 보며 소녀는 웃었다.

이번엔 꾸밈없이 밝게.

* * *

여신은 오랜만에 생겨난 자신의 신도들을, 아니, 국가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사실 신이라면 이것이 본디 정상이다.

일개 유배자 파티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한가한 존재가 아니다.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고블레타리아 연방을 살피며 여신이 느낀 바는 짤막했다.

"깔끔하군. 아주 깔끔해."

역사에 관한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를 위한 제단이 연방의 영토 곳곳에 존재했다.

신관들도 곳곳에 있다.

여신은 차마 그들에게 신언을 내릴 수가 없었다.

처음 신언을 내린 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발생한 사망자가 몇인지 셀 수가 없다.

이 충성스러운 고블린들은 아마 변기에 앉아 있다가도 신언이 들리는 즉시 벌떡 일어설 것이다.

유달리 신앙이 깊어 신관이 된 자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리기도 했다.

특별히 고블린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뱀파이어들은 수는 적었으나 비교적 그런 것이고 상당히 많은 수가 연방의 인민으로서 거주하고 있었다.

고블린 뱀파이어들도 많았다. 여신은 인간이 아닌 종족이 베이스인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처음 보았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동안 흘러간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했다.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면 반드시 어떤 뱀파이어가 나타나서 해결했다.

여신은 그 뱀파이어에게 말을 걸었다.

「고생이 많았군. 어찌 지낼 만은 한가?」

"오랜만이십니다."

늙은, 뱀파이어에게 그런 말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긴 하나 어찌 되었건 한눈에도 과거보다 나이 든 분위기의 바르바로이가 대답했다.

이전에도 그랬으나 좀 더 절도 있는 동작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친다.

신도 같은 신도들이 갑작스레 너무 늘어난 탓에 그 모습이 어색하다.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여신님께서, 그리고 마스터께서 다시 돌아오실 날만은 기다렸습니다."

여신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유배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나의 시간과 상대의 시간이 전혀 다르게 흐른 상황.

여신의 입장에서야 며칠 전이지만, 이 충실한 신도는 500년을 그녀를 위해 일해 왔다.

그런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상대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다.

신이라는 자리에 있다면 더욱더.

「오랜 세월 수고해 주었네. 원하는 것이 있나?」

여신은 제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과거에 교단을 굴릴 때는 교단의 요직에 오른 이들이 대부분 친구 같은 위치였다. 그러니 그다지 권위를 내세울 일은 없었다.

새삼 윗사람 행세를 하려니 어찌할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그녀의 성격을 바탕으로 한 행적이 이미 신좌를 통해 주입되어 있으나 용케도 그걸 해냈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바르바로이는 옅은 미소를 띤 채 여신께 대답했다.

"마지막 일을 끝내면 쉬고 싶습니다."

여신은 그 말에 납득해 버렸다.

천오백 년.

바르바로이라는 네임드는 언제나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클랜 마스터다.

이방인을 뜻하는 이름처럼 끊임없이 어디론가 쫓겨 다니는 운명을 타고난 경우.

낙오 클랜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의 정착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으리라.

바르바로이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이제 내려놓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를 보고 싶군요. 여신께서는 잠깐이겠으나, 제게는 너무 길었기에."

연방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뱀파이어는 그리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신이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듯 미소를 지었다.

여신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매 세계마다 만나게 되는 같은 네임드 NPC임에도, 그들의 결말 또한 제각각이다.

트동트도 그리하듯이.

* * *

제도의 성벽을 돌파하는 일은 본래라면 꽤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행성 넓이의 전체를 고루 방어하지는 않겠으나 황제가 거하는 도시만큼은 벽이 높게 세워져 있다.

엄청난 난관이었을 11층의 상황은 단지 여신님의 명령 한마디로 해결되었다.

함대 사령관은 아예 세 대밖에 없는 기함급 전함 중 하나의 선수를 지상으로 돌렸다.

대공포의 유효 사거리 직전에서 멈춰선 전함의 선수에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빛날 무렵 주포가 지상을 향해 발사되었다.

강렬하고도 파괴적인 빛기둥은 지상을 불태우려고 했다.

대기권에 있는 위성들이 가장 먼저 방어막이 되었다.

제국 특유의 어딘가 나사 빠진 기묘한 기술력은 무인기를 거의 운용할 수 없게 만든다.

위성에 탄 오우거들이 안간힘을 쓰며 탑재된 마력로를 가동했다.

뻗어 나온 마력이 전함의 주포를 조금이나마 약화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유리창처럼 산산이 박살 나 사라진다.

그다음은 대기권 내의 방어설비였다.

제도 상공에 떠 있는 기동 요새들이 움직였다.

방어막에 모든 에너지를 돌리며 육탄으로 빛을 막아선다. 빛이 산란하며 사방에 파괴를 흩뿌렸다.

장식적인 성벽이 군데군데 내려앉기 시작한다.

내부의 주민들이 지르는 비명일지 함성일지 모를 것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요새 한 척이 동력을 잃고 불시착하는 선에서 위기는 끝났다. 주포라고 한들 단 한 발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전함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대공포가 불을 뿜는다.

기함급의 거대 전함은 그 정도로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 않았다.

황궁의 귀퉁이가 열리며 보다 거대한 포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연방의 전함 또한 주포를 다시 재충전했다.

맹렬한 빛이 제도의 상공에서 부딪힌다.

막대한 마력이 충돌하며 작은 태양이 하늘에 생겨났다.

열기와 마력광, 여러 가지 해로운 환경요소들이 발생한다.

방사능도 결국 마력의 일종이다.

뱀파이어가 아닌 파티원들은 모두 마력 방벽을 펼쳐야 했다.

"그래도 그렇지 육탄돌격이라니."

"저 조금 부담스러워졌어요."

여신님께 대체 뭐라고 말한 것이냐고 물었다.

「음, 나는 그냥 계단이 저기에 있으니 어떻게 해보라고만 했는데.」

"그게 문제네! 저 녀석들한테 신이 그렇게 말하면 무슨 수를 쓰건 해결해라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같은 소리랑 별 차이가 없잖아!"

「그, 그런가?」

"구체적으로 지시하십쇼."

그러니까 지금 저 녀석들은 말 한마디에 기함급 전함을 질량 병기로 투하하려고 하고 있다.

서로의 포격을 상쇄하며 점점 전함이 커졌다.

제도 전체만큼이나 거대하다. 몇 명이나 타고 있을까? 허둥지둥 반대편에서 제국의 제멋대로 생겨 먹은 함선들이 따라붙는다.

연방 전함은 뒤편에서의 공격은 고스란히 무시하고 받아들였다.

치명적인 손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막대한 질량은 그대로다. 저 질량을 어찌하지 않는 이상 제도의 상공을 덮칠 파멸은 확정적이다.

"이거 잠깐만, 우리까지 죽는 거 아냐?"

"너무 막 나가는 것 같은데요?"

이젠 시야 가득히 전함이 눈에 들어온다. 불타오르며 불시착하고 있음에도 기세를 잃지 않는다.

사용자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받는 제국의 전함도 아닐 진데 기백이 느껴지려 한다.

전함에 탑재된 함재기들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다가 사출된다.

구명정들도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아직 기능하는 대공포들이 열심히 요격에 나섰으나 한계가 있다.

실질적인 중요성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존재하는 황궁은 이런 무식한 공격을 상정해 두지 않은 듯했다.

서로의 포격이 힘을 잃었다.

반투명하고도 거대한 방어벽, 최후의 방어벽이 황궁 위로 펼쳐진다.

막대한 질량이 보호막 위로 때려 박혔다.

"좋아, 당장 개박살이 날 것 같지는 않으니 빨리 들어가자고."

아무리 상징적인 군주라곤 하지만 제국의 상징을 지키는 방어막은 무시무시한 출력을 자랑했다.

날아다니는 도시나 다름없는 규모의 전함이 물리적으로 충돌을 시도하는데 그것을 버텨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은 버티고 있었다.

전함의 선수가 굉장한 소리를 내며 우그러진다. 기우뚱하며 균형을 잃고 기울기 시작했다. 쓰러지는 방향을 우리의 반대편이다.

쓰러진 방향의 시가지는 완전히 사라지리라.

무너지고 조각난 성벽의 틈으로 들어간다. 내부의 그린스킨들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도 인간 한 무리가 자신들의 도시에 침입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지금 제정신인 놈들이 없다.

영감님이 혀를 찼다.

"이런 건 원래 우리 그린스킨들이 하는 짓인데."

"고블린도 그린스킨입니다. 영감님."

"……그렇군."

영감님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허허롭게 말했다.

"그래, 저들 또한 용맹한 전사이거늘. 과거의 우리는 어째서 몸집이 작고 힘이 약하다고 저들을 업신여겼는지."

평생을 고블린을 아래로 보고 살아온 노련한 주술사의 가치관마저 단 한 방에 뒤엎어졌다.

놀랍다 고블린. 놀랍다 혼돈의 교단.

계단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특정할 수 있다.

전쟁의 신의 신전 앞이다.

달려가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렇게 대놓고 전쟁의 신을 엿 먹이는 위치에 계단이 열려 있는데 그걸 모를 수는 없다.

전쟁의 신이 가만히 보고 있기만 할 수도 없고.

지금 이 미래는 분명 나에게 말 같지도 않을 정도로 유리하지만, 한편으로는 허상과도 같다.

내가 여기서 죽는다면 사라질 신기루처럼 덧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깥에서 보았던 눈에 힘이 없는 녀석들이 아닌 바짝 힘준 오크와 트롤들이 계단을 지키고 있었다.

총기만 믿는 얼치기들이 아니다.

장비부터가 통일되어 있다.

용암망치 충격 대대가 그러했듯, 통일된 그린스킨이란 것은 정예 중의 정예병이란 뜻이다.

"강행 돌파한다! 우리는 저 계단에 함께 골인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물론 기관총 진지가 있어 몹시 곤란하긴 하다 어떤 마법을 어찌 조합해야 저곳을 돌파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발각되었다.

트롤 하나가 등에 멘 막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그러쥔다.

지이잉 하면서 솟구치는 빛의 기둥.

마도공학이 구현해낸 오러 블레이드. 거의 3미터는 될 듯한 광선 대검이 빛을 발한다.

"젠장, 일단 빠진다. 추격해 오진 못할 거야."

이길 수 있건 없건 광선 대검을 든 트롤 전사와 싸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몽둥이는 흘려 내거나 피할 수라도 있지 거의 무게는 없으면서 스치기만 해도 즉사하는 광선대검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정말 저 꼴을 보기가 싫었는데.

사격이 시작된다. 엄폐하지만 장비가 좋은지 저놈들의 의지가 충만한지 엄폐한다고 숨은 신전 외벽에 퍽퍽 터져나간다.

"일단 투명화……."

굉음이 들려왔다.

나조차도 깜짝 놀라 고개를 내밀었다.

내 고민은 모두 없던 것이 되었다.

기관총 진지에 함재기 하나가 때려 박혀 있었다.

하늘을 보니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며 기도하고 있는 고블린이 보인다.

"세상에."

그때, 우리의 위치가 알려지며 다른 쪽에서도 병력들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오크들이 무차별로 사격을 가하며 몰려온다.

하늘에서 또 무언가 쏟아졌다.

나는 이게 무엇인지 안다. 고블린은 체구가 작기에 강하캡슐을 사용하기가 용이하다.

투지에 불타는 고블린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뱀파이어도 몇몇 있었다.

절도있게 달려 나온 강하병들이 지휘관인 듯한 고블린 앞으로 모여들었다.

주변에 아직 존재하는 적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칼 같은 제식이다.

완벽하게 오와 열을 맞춘 고블린들이 우리 앞에 도열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광선검을 뽑아 든 고블린 하나가…… 아니, 잠깐, 이건 오러 블레이드가 맞군.

어쨌든 그가 날듯이 달려와 앞에 섰다.

* * *

오로지 이 순간만을 위해 살아온 것 같았다. 고된 강하병 훈련을 견디고 장교가 되어 승진하고, 그럼에도 여신께선 돌아오시지 않았다.

조금은 실망했던 적도 있다. 사실은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훈련을 통해 바로잡았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1만번을 휘둘러야만 잠에 들었다.

사격 훈련은 불경한 마음을 쫓아낼 만큼 격렬하지 않다.

강하병이 배우는 근접 백병전의 광선검술 훈련은 땀을 빼는 것에 최적이었다. 땀과 함께 불충한 생각도 빠져나간다.

그는 언제나 당에 충성하며 여신께 몸 바칠 준비가 된 병사였다.

훈련이 끝나면 언제나 기도를 바쳤다.

날이 갈수록 검을 1만 번 휘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더 검을 휘두르는 시간보다 더 길어졌다.

신앙을 나날이 깊어만 갔다.

어느 날 그의 검 끝에, 마도공학의 산물로 만들어진 열기의 플라즈마가 아닌 다른 것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강하부대의 뱀파이어 마법사가 그의 훈련을 목격하고 경악하여 상부에 전했다.

그는 인민의 영웅이 되었다.

그 먼 옛날 극히 일부의 검사만이 손에 넣었다는 힘. 오러 블레이드.

체구가 작아 얕잡아 보이곤 하던 종족적 콤플렉스는 아직도 은연중에 고블린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같은 식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을 지금 위대한 혼돈의 대전사께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

눈물이 절로 흐를 것 같으나, 영웅은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소드마스터가 된 고블린은 눈에 부릅 힘을 주고는 선창했다.

"위대한 혼돈의 영도자께 경례!"

자그마한 고블린들은 지금 하나의 집단으로서 여신의 첨병이 되었다.

고된 훈련의 결실을 느끼는 것은 이 고블린 소드마스터만이 아니었다.

우렁찬 함성이 뒤를 따른다.

"이 목숨을 여신께! 나의 죽음 곁에 혼돈을! 온 은하에 붉은 혼돈을!"

적들의 사격이 시작된다.

후열의 누군가가 푹 꼬꾸라졌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도 위로 뻗은 오른손의 주먹과 심장에 얹은 왼손의 손바닥을 흩트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절도 있는 자세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혼돈에 귀의했으리라.

위대한 혼돈의 대전사이자 대신관께서는 엄숙히 선언했다.

"뒤로 돌아 우리의 적을 격멸하라!"

그 말은 이루어졌다.

* * *

"이게 대체 뭐야."

내버려 두면 계속 사열 받듯이 그러고 있을 것 같았기에 재빨리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당황스럽군 정말.

그러나 좋은 전황은 아니었다.

우리를 엄호하는 고블린들은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린스킨의 병력들이 더 많다.

이들은 여기서 최후를 맞이할까?

「크흡. 그럴 수는 없지.」

짧게 들린 신언은 어쩐지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여신님이 병사들을 위해 성역을 선포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파티는 계단 속으로 뛰어드는 데 성공했다.

몸이 녹아드는 듯한 감각, 그리고 부유감.

[TIP : 당신이 만든 미래를 둘러보십시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꿀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유배자의 간섭 또한 주의하세요. 미래를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유배자는 당신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