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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125화 (12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25화

12층 - 엔젤 임팩트

미궁에서 속성 공격이란 것은 의외로 초반일수록 의미가 없다.

결코 공평한 시작을 보장하지 않는 미궁에의 초반부란 어떤 의미에서는 후반부보다 가혹하다.

냉기 속성의 용인에게 얼치기 인간 마법사가 날리는 [파이어 볼트] 따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미궁의 파워 인플레가 그나마 약간이라도 평준화되는 것은 왕국 이후 구간이다.

그런 시점부터는 공격의 속성이라는 것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 고위 종족이라 불리는 족속들은 대체로 종족 자체가 공격에 속성을 탑재하고 있다.

천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빛이다.

빛 속성은 언데드나 악마 같은 부정한 것에 강하다.

그리고 어둠 속성을 지닌 환경이나 마법을 치워버리는 것에도 유용하다.

또 다르게는 속성이 빛인 만큼 평범하게 불을 밝히는 데도 유용하다.

그리하여 어둠에 잠긴 도시는 빛으로 뒤덮였다.

탄생하는 순간 이외에는 빛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던 도시가 신음한다.

콘크리트들은 자기네들의 잿빛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빛이 낯설었다.

구석구석 곰팡이가 핀 곳이나 갈라진 곳, 무언가 거무스름한 얼룩이 진 것, 충격에 의해 뒤틀려 있는 것.

탄생한 지 일백 년, 제 스스로의 민낯을 오랜만에 마주한 도시는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였는지 진동하기 시작했다.

* * *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임팩트의 위치가 샤크마가 들어 올려 부유섬과 같이 형성된 공중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그곳을 강타한 거대한 충격은 대지라는 매질을 직접적으로 타고 흐르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주저앉지 않은 것은 그 덕이었다.

일어난 일은 모든 전투를 정지시켰다.

모든 이들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물리적 파괴에 앞서 눈부신 마력이 다른 마법의 행사를 막았다.

천사는 마법사보다는 전사에 특화된 종족이나 그렇다고 마력이 부족하진 않다.

소녀의 공격은 막대한 양의 마력을 머금고 있었고 특별히 속성을 변환하지 않은 마력은 모조리 빛이 되어 흘러넘쳤다.

빛 속성의 마력은 일상적인 의미의 빛과는 조금 다르다.

소규모라면 다를 것 없겠으나 막대하다는 수식이 붙을 정도의 빛 속성 마력은 실체를 지닌 무언가다.

물이 흐르듯 눈 부신 빛이 쏟아졌다. 샤크마가 만들어낸 부유섬은 빛의 폭포가 쏟아지는 중심지였다.

실체를 지닌 빛들은 급류가 되어 도시의 복잡한 골목을 가득 메운다. 어둠이 모두 쓸려 내려간다.

잠깐 동안 정지했던 싸움은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반사적으로 한발 물러서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기 위해 탐색을 시도한다.

마력 탐지는 의미가 없었다. 골목골목을 가득 메운 마력은 반향정위를 의미 없게 만들었다.

탈출을 위한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가뜩이나 샤크마의 마력이 흐르고 있던 도시에 천사가 지닌 명확한 속성의 마력이 더해졌다.

마력의 농도가 재능 없는 사냥꾼조차 선명하게 느낄 정도로 농밀해졌다.

주술사조차도 이런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마력을 컨트롤해 낼 수는 없다.

일부 약한 정령들은 그 마력의 급류를 버티지 못하고 정령계로 역소환되었다.

그렇다고 물리적 시야로 무언가를 알아낼 수도 없었다.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가리고 있어도 빛이 뚫어내었다.

눈꺼풀을 말할 것도 없다.

당장 무언가 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나마 청각은 제 역할을 했다.

제각기 살길을 찾던 이들의 귀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파괴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 * *

물리적 충격은 우선 부유해 있던 섬을 갈아버렸다.

거의 자갈로 보일 정도로 산산이 분해되어 쏟아져 내리는 잔해들이 지상을 강타한다.

물론 그보다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충격파가 먼저다.

바로 아래에 있던 몇몇 구조물은 거인이 짓누른 듯 찌그러졌다.

폭심지로부터 빗겨 있어 비스듬하게 충격을 겪은 구조물들은 쓰러졌다.

조금 가벼운 것들은 허공으로 떠올라 저 어디 먼 곳까지 날아가기도 했다.

너무 가까이 있었던 일부 요정들은 대부분 형체를 남기지 못했다.

충격파가 그들의 몸에 닿는 순간 뼈와 살이 물리적으로 분해되었다.

강력한 물리적 에너지는 당연히 열에너지로도 변환된다.

분해되어 잘게 다져진 육신은 그 열에 불타 사라졌다.

조금 거리가 있었고, 뛰어난 기량을 지닌 일부들은 어떻게든 방어막을 형성하여 충격을 견뎌내었다.

제자리에서 견디진 못했다.

멀리 퍼져나가는 충격에 휩쓸려 골프공처럼 날아갔다.

그러고도 대부분은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누군가 구조하지 않으면 곧 죽을 수준의 부상을 입은 채 쓰러질 뿐이거나, 낙하의 충격에 목숨을 잃었다.

1차로 퍼져나간 충격은 처음에 살아 있는 어둠으로 뒤덮었던 구역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 구역은 남아난 구조물이 없어 평탄화되었으며 폭심지 주변은 지하가 무너지면 땅이 주저앉았다.

아주 넓고 깊은 크레이터가 되었다.

그 주변 구역은 옆으로 쓰러진 건물들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만들어낸다.

가연성을 지닌 일부 시설들이 폭발을 일으키고, 탈것도 없다고 생각한 잿빛 도시에 화재를 일으킨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구역은 상당한 진도의 지진을 겪은 것과 유사했다.

땅이 흔들리며 불안정했던 일부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연쇄 붕괴까지는 일어나지 않아 원래의 형체만은 유지했다.

모든 파괴가 지나갔다.

하지만 그러고도 도시 구석구석을 채운 빛은 한동안 남아 있었다.

언제나 밤인 행성의 황량한 도시에 잠깐 동안 낮이 생겨났다.

* * *

샤크마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하였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한 번 죽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그저 리치는 고위 종족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 위의 데미 리치만이 고위 종족이라 여겨진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스펙보다는 불사성이다.

데미 리치는 LFV만 멀쩡하다면 육신이 완전히 증발하더라도 즉시 부활한다.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반적인 리치와는 다르다.

그래서 샤크마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마탑이 있는 중앙 구역은 포위망을 좁혔던 구역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금 흔들리긴 하였으나 특별히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중앙 구역 전체가 그랬다.

하지만 내다본바, 바깥의 광경은 참혹하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구역 하나가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그 주변도 사실상 사라졌다.

그 안에 있는 샘이나 계단은 멀쩡하겠으나 파내는 것도 일이다.

무엇보다 얼마나 많은 요정들이 죽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샤크마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이렇게 그냥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이 아니었다.

처음의 눈부심은 잦아들었지만 실로 오랜만에 겪는 낮이었다.

빛을 어찌 되었건 언데드의 적이다.

방금 다시 형성된 육신의 뼈가 저릿저릿하게 저려 온다.

온 사방이 빛, 빛, 그리고 빛이었다.

포격? 아니지. 이런 형태의 포격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공을 보아도 전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법?

조금 다르다. 도시에 흐르고 있는 빛들은 어떤 마법의 부산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쏟아져 흐르는 것에 가깝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왜? 라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일어난 일이며 무슨 일인지만이 중요하다.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은 곧 몇 가지 후보를 좁혔고, 개중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추려냈다.

"천사? 대체 왜?"

이제야 왜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천사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

* * *

시간을 약간 돌려, 아직 시간이 멈추어 있을 때.

정지된 시간 속에서 소녀는 허공의 섬 위에 착지했다.

사실 착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충격량은 어지간한 운석이 떨어진 것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멈춰 있는 시간 속에서는 먼지조차 일지 않는다.

디딘 바닥이 갈라져 있는 것은 리치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지며 생겨난 것일 뿐이다.

마법적인 시간 정지냐 시간의 신의 권능이냐와 관계없이 시간 정지는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멈춘 시간 속에서는 상대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이 상태에서 시도한 공격은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해야 대미지가 되어 들어간다.

이제 갓 천사가 된 소녀는 비행하는 법만, 그리고 전속력을 내는 법만 배워왔을 뿐이다.

[슈퍼 히어로 랜딩] 또한 처음이다. 지금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파괴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아직 시간이 멈추어 있을 때 해야 할일이 있다.

제일 먼저 아저씨를 찾는다. 착지한 곳 조금 옆에 리치가 있다. 그 손아귀에 붙잡힌 박쥐도 있다.

열심히 둘러보아도 허공에 튀고 있는 핏물이나 박살이 난 박쥐 등이 보일 뿐이다.

멀쩡한 것은 해골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저것 하나뿐이다.

들었으나 그럼에도 참담하다. 이쪽 시간대에서도 아슬아슬했다고 한다.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길을 잃는다는 역사는 반복되었으나 간신히 시간을 맞춘다는 역사 또한 반복되었다.

어찌나 다행인지.

하지만 천사가 된 상태에서 쇠약해진 뱀파이어를 직접 집어 들 수는 없다.

그건 아저씨를 마무리하는 꼴이다.

소녀는 한 명 더 있을 다른 파티원을 찾았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엎어져 있는 오크 노인이 보인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숨이 끊어진 것 같지는 않다.

포션을 꺼내 입안에 흘려주었다.

소녀가 닿아 있지 않으면 포션의 시간 역시 멈춰버리므로 그저 병을 기울이는 것으론 부족하다.

꾹꾹 밀어 넣어주었다.

이러면 영감님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영감님을 집어 들고 아저씨에게로 갔다.

리치의 팔을 벌리고 영감님의 손으로 박쥐를 잡게 한다.

직접 닿을 수 없으니 이렇게 옮겨야 한다.

발밑을 흘깃 보았다.

금빛 시계의 형체가 발밑에 나타나 있다. 시곗바늘이 회전하며 남은 시간을 알려준다.

이제 시간 정지의 남은 시간이 3분의 1 정도 소모되었다.

멈춘 시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논하는 것은 우스우나 주관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소녀는 얼른 날개를 펼치고 영감님과 아저씨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겼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기천사는 천사들 중 가장 빠른 천사다.

마찬가지로 아래로 내려가 꼬맹이를 찾고, 뱀파이어 소드 마스터를 찾았다.

꼬맹이는 이미 쓰러져 기절한 상태였기에 직접 닿을 수가 없었다.

프로보이는 건강해 보였기에 그냥 직접 들어 옮기기로 했다.

프로보이를 공주님 안기 하고 그 위에 꼬맹이를 얹는다.

이제 시간이 아슬아슬하다. 소녀는 열심히 날아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까지 도착했다.

흐르지는 않지만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뿌듯해한다.

해야 할 일을 모두 완수했다. 이제 리치를 마저 족치러 가면 된다.

안타깝게도 역사가 반복된다면 여기서 리치를 놓치게 된다.

그러나 미궁의 시간여행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이곳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

소녀는 일단 자신이 일으킨 파괴를 구경하기로 했다.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낮이 찾아오고, 도시가 무너져 내렸다.

그 장엄한 광경에 소녀는 입을 떡 벌리곤 다물지 못했다. 너무 놀라서 비행을 유지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그러고도 눈만 깜빡인 채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사실 꼭 놀라서만은 아니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해 저 막대한 충격은 동시에 소녀의 몸에도 작용했다.

천사의 초월적인 육체 강도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다시는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

그에 걸맞은 고통도 엄습해 온다.

물론 힐링 포션은 천사에게도 만능이다. 소녀는 아파서 신음을 흘리면서 병을 들이켰다.

"으으, 엄청 아파. 이거 다시는 안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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