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134화 (134/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134화

13층 - Lv. 775 용암망치 강습사단(5)

위대한 전과를 이룩한 부대는 구성원들이 세월에 스러지더라도 그 이름을 남긴다.

‘용암망치’는 그런 전설적인 이름 중 하나였다.

2차 요정 전쟁이라 명명되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요정을 주축으로 다양한 종족이 연합한 군대와 벌였던 전쟁이었다.

제국은 그것을 영광이 시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서 영광의 시작을 알렸던 용암망치 충격대대를 잊지 않았다.

그 이름은 이제 강습사단의 이름으로 이어졌다.

지상의 상황은 우는 소리가 되어 전해졌다. 한 유배자의 이름과 함께.

우주를 누비지 못하고 한 행성에 묶여 있는 것들의 수준이란 그 정도인 것이다.

오우거인 강습사단장 한때 같은 이름의 부대 앞을 가로막았던 유배자를 알고 있다.

제국의 역사에도, 부대의 역사에도 존재하는 자였다.

과거의 망령에 불과한 적이라면 모를까. 유배자는 언젠가는 다시 나타난다.

당대의 사단장을 역임 중일 때 그자가 나타난 것은 행운이었다.

적어도 사단장은 그리 생각하였다.

그린스킨은 전쟁에 대해서만은 한없이 진심이다.

그들은 결코 역사를 왜곡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천재적으로 부지런한 오우거인 사단장은 학창시절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용암망치의 이름은 옛날 그 유배자에게 농락당했다.

재앙의 다른 이름인 대성녀 메이릴리스의 이름과 함께, 그 성녀를 일깨운 적으로서.

그리고 거대한 적인 연방을 탄생시킨 주범으로서.

화염을 두른 망치의 깃발에 걸고.

이제 그 전설상의 적을 무릎 꿇리리라.

한참 육체적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근육질의 오우거는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전쟁을 싫어하는 그린스킨은 없다.

그는 너무나도 오래 기다려 왔다.

오우거의 애병 격발식 로켓 해머가 그에게 공감하듯 웅웅 울었다.

* * *

정보는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전투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곳이 내가 살던 지구 같은 곳의 미래였다면 강습전이라는 개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곳은 검도 마법도 없다. 몸에 익히는 기술은 무시할 수 없으나 그 편차는 크지 않다.

이런 곳이기에, 강력한 존재를 어느 시점에서 어느 장소에 투하하는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몇몇 강력한 소방수 역할의 부대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들은 내 지시에 따라 낙하하여 전투에 투입될 것이다.

항공지원에 관해서는 서로가 시도는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대부분의 함재기들은 우주 공간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나 대기가 있는 곳에서 사용하려는 목적의 설계도 있다.

내가 빠삭한 것은 중세 판타지 랜드의 여러 기술들이지 고도로 발전한 미래 기술이 아니다.

마도 공학적으로도 대기권 내의 활동과 우주의 활동은 큰 차이를 지니는 모양이다.

거대한 질량을 띄우는 일이라면 더더욱.

쏟아지는 강하 캡슐들 중에서 유달리 거대한 것들이 있다.

색은 연방의 푸른색, 사실 캡슐이라기보단 그저 덧대둔 방호장치일 뿐이다.

공기저항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굉음과 함께 내려온 거대한 푸른 박스가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추더니 그대로 부유한다.

장대한 보호 장비가 갈라져 떨어져 내렸다.

넓적하고 거대한 배가 나타난다.

현재 대기권 밖에서 전투 중인 기함에서 내려보낸 공중 항공모함이다.

모함이 안정을 찾자마자 대기권 전투를 위해 설계된 함재기들이 벌떼처럼 날아오른다.

비슷한 일이 제국 측에서도 진행 중이었다.

양측의 기갑 병력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족보행 병기는 없군요."

"그거 사실 엄청 비효율적이긴 해서, 효율 중시의 역사로 흐르는 서버에선 안 나타나기도 하더군."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좀 많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것 같군요."

대신 우리 측에 팔족보행 병기 따위가 있긴 했으나 무시하도록 하자.

지금 우리가 위치한 스펜서 중령의 대대는 본래부터 선봉을 서기 위한 대대다.

그들의 임무는 종심 돌파 또는 상대를 저지하는 저지력.

기갑화 보병대대의 지휘 차량에 중령과 합석한 채 전진한다.

뱀파이어 병사의 존재 덕분에 인간의 혈액을 공급받는 것은 문제없었다.

자본의 신이 지배하는 동맹은 대량의 혈액을 연방으로 수출했다.

그렇기에 인간 구성원이 거의 없는 연방은 그 어느 국가보다 많은 인간 혈액을 보유한 나라다.

한계까지 채워진 [피의 샘]을 확인하며 나는 전장을 바꿀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뱀파이어로서의 격은 마인드맵에 출현하는 스킬에도 보정을 준다. 로드급이라면 이미 한계까지 보정을 받고 있다.

거기에 신앙의 추가 보정.

오랜만에 띄운 마인드맵은 여전히 뱀파이어 특유의 생기 없는 잿빛과 은은한 핏빛을 동시에 띠고 있다.

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뱀파이어는 어떤 식으로 성장하더라도 무생물에게 약하고 생물에게 강하다.

그것을 극도로 강화하는 종족 특성들이 피의 지배력과 피를 통한 피조물 창조였다.

이것은 분명 강력한 특성이지만 소모가 너무 큰 데다가 막상 본인은 전혀 강화되지 않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사용자 자체는 튼튼해지지도 빨라지지도 않는데 소모 값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로그라이크에서는 객사하기 딱 좋은 특징이다.

보통은 여유 있는 후반에 고레벨 뱀파이어를 소환사처럼 운영할 경우에나 채택하는 트리다.

그것도 [망각]을 사용해서 세팅하는 왕귀형 종족 스킬.

하지만 내 경우에는 여러 가지 전술적 목표만 수행할 수 있으면 되니 단점도 아니다.

독고다이 하지 않는 플레이의 장점이다.

만능인 캐릭터는 달리 말하면 무능일 수 있다.

특화된 여러 인원의 조합 상호보완이야말로 내가 무수한 솔로 플레이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마투사라는 극강의 화력 위주의 클래스를 채택한 이상 부족한 유틸을 종족 특성에서 채우는 편이 옳다.

현재 내 레벨은 242다. 13층 수준은커녕 왕국 입성 시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수준의 고레벨.

그러나 이미 각층의 난이도도 왕국 중반에 접어든 수준이라 아무 의미조차 가지지 못한다.

레벨링이 아무리 잘 되어도 그 이상의 문제가 등장하니 도리어 레벨링이 부족하단 생각마저 든다.

일단 당장 남은 포인트도 마투사의 트리를 완성하기 위해 상당수 할애되었기에 썩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근거리 마법 발동에 관여하는 패시브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바르바로이의 권능은 이미 그 자체로 피를 다루는 종족 특성과 동등한 루트다.

피의 지배력을 끌어올려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내는 이 빌드는 그 덕에 고레벨이 된 후반에나 빛을 보는 왕귀형 빌드지만.

나는 피의 지배력을 위해 쌓아 올려야 하는 무수한 패시브를 죄다 건너뛰고 핵심만으로 달린다.

사실 바르바로이의 권능이 유배자의 손에 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미궁의 밸런스는 이런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다.

피의 군주가 납신다.

피의 지배력에 관여하는 패시브 따위는 개무시하고 멀리멀리 뻗어 나갔다.

확률이 높은 스킬은 아니다.

하지만 권능을 동원하면 아무 문제 없다.

신앙이라면 수백억 인민의 대전사가 된 시점부터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경우라면 혼돈의 리롤만큼 육성에 큰 도움이 되는 신앙도 없다.

얼마 없는 포인트지만 미친 듯이 리롤에 쏟아붓는다.

결국 핏빛 기운을 띤 황금빛 열매가 나타났다.

마인드맵 중앙에 있는 내 초상화로부터는 아주 멀리 뻗어 나간 가느다란 가지 끝에 매달린 황금사과.

본래라면 뉴비의 실수로 여겨질 수준의 마인드 맵이다.

패시브 스택을 일절 고려하지 않고 상위 스킬을 향해 달리기만 한 어리석은 형태.

유니크 스킬 [피의 군주]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무수한 하위 스킬들이 내 마인드맵에 떠오른다.

유배자가 전장에 관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던가?

수준에 맞는 전장이라면 그러하다.

지금의 나는 다 대 다 생물끼리의 전투를 위한 최고의 퍼포먼스를 탑재했다.

말하자면 영웅 유닛.

다시 눈을 뜨자 서로를 향해 질주하는 양편의 병력들이 보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전면적인 부딪힘.

물론 연방의 병력은 그런 척만 하고 거리 유지를 하며 기동전을 수행하리라.

포병대가 없는 그린스킨들을 고통에 빠뜨리며.

여러모로 신을 했던 시기가 생각난다.

전략 시뮬레이션은 싫어하지 않는 장르였다.

깊이 파지는 않았기에 캠페인만 조금 즐기는 정도로 말았으나, 미궁의 전략 시뮬레이션은 그 자체로 캠페인이다.

즐거운 일 아닌가.

게임은 즐기는 것이다.

포화가 하늘을 수놓고, 무수한 강하 캡슐들이 유성처럼 쏟아진다.

함재기들이 날아오르고 포격에는 폭격이 더해진다.

오크들이 짊어진 대공포들이 불을 뿜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측의 대공사격도 하늘의 한 폭을 장식한다.

제국의 거대한 비행선이 마력 장벽을 두르고 대공 포격을 이겨내며 전진한다.

정말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전장의 한가운데였다.

지휘 차량은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바람이 상쾌하다.

* * *

하늘에서 떨어지는 강하 병력들은 아무렇게나 떨어지지 않는다. 정확한 위치에 대열을 갖추고 낙하한다.

트롤과 오우거들이 진영을 갖추고 오크들이 그 사이를 채운다.

안정적인 진영 구성을 위해 적진 위에 투하되지 않고 후방에 자리한다.

트롤들은 투사 무기를 선호하지 않지만 오크와 오우거들은 다르다.

놀라운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포병대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대신 타고 달리는 장갑차나 전차를 대규모로 운용했다.

멀리서 깔짝이는 포병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다. 그린스킨들은 언제나 적진으로 달리길 원한다.

트롤보다야 작다곤 하지만 오우거도 3미터에 가까운 덩치다.

그런 오우거가 탑승할 정도의 전차나 장갑차는 거대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반면 고블린들은 그들의 작은 체구를 살렸다.

기계들끼리의 싸움에서 덩치는 중요하지 않다.

화력만이 극도로 발달한 시대.

백병전이 아니라면 작은 것은 단점이 아니다.

고블린들의 전차와 장갑차들은 훨씬 작고 날렵했으며 속력도 더 빨랐다.

사실 그린스킨의 전차들은 그다지 기동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로지 더 두꺼운 장갑, 더 크고 아름다운 포, 무수히 많이 달려 있는 총안구.

총안구는 농담이 아니다. 저 녀석들은 사격까지는 받아들였으되 그마저도 직접 하기를 원했다.

전체적으로 연방의 군대가 세련되고 정돈되어 있다면 제국은 투박하고 크며, 강력했다.

정면에서 상대할 이유는 없다. 우월한 기동력, 그리고 아마도 더 우월한 사정거리로 농락하면 된다.

그랬기에 스펜서 중령은 지휘 차량에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대전사님! 우리의 전술적 이점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처음에는 그랬다.

연방은 제국에 반기를 들고 갈라져 나온 이들의 국가인 만큼 광기와 야만보다는 이성과 합리를 중시했다.

위대한 대전사께서 적진 한가운데로 돌격한다니.

고블린들은 전설과는 별개로 현실을 보았다.

[혼돈의 여신이 믿음을 증명하라 말합니다.]

하지만 여신님의 보증 한마디에 누구보다 열정적이게 되었다.

"참수 작전이다! 여신께서 신탁으로 이 승리를 말하셨다! 그럼에도 두려워하는 이가 있는가!"

여신께서 행하라 하셨으며 대전사께서 확신하신다.

그 순간 고블린 수뇌부들의 군사적 지식은 모두 무의미해졌다.

참수 작전은 그 자체로 이미 로망이기도 했다. 적의 수뇌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압한다.

그 후 남은 잡졸들을 섬멸한다.

그야말로 성전에 걸맞은 특공!

상식을 내다 버리자, 고블린들은 단숨에 그 사실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여신님게서 지켜보시는바, 자신의 용맹을 증명하고자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스펜서 중령의 대대는 모두 군인이 아닌 열성적인 광신도로 변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병사는 없다. 열성적인 광신자(Zealot)들만이 이곳에 있다.

어떤 우주 전쟁 게임의 유닛들처럼 질주한다.

이미 모든 차량은 광란에 휩싸여 있었다.

장갑차의 기관총 사수는 기관총을 기타 치듯이 치고 있다.

스펜서 중령은 입술을 씹으며 자신의 검을 갈고 있었다.

왜 하필 검일까?

하지만 전투 개시 후에도 그런 광란을 유지하지는 않았다.

운전병은 침착하게 소임을 다했다.

스펜서 대대는 가장 앞에서 달려나갔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표적이 된다.

크고 아름다운 비행선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가득 메운다.

위험을 대비해 차량들이 사방으로 산개했다.

중령이 미간을 찌푸린다.

우주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제국의 자랑이던 거대한 비행선이다.

아래쪽에 선인장의 가시처럼 잔뜩 돋은 포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무선을 통해 대기권 밖에 있는 행성 강습선에 명했다.

"강하 지원 요청, 비행선을 무력화할 수 있는 병종으로 투입 바람."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좌표 송신 바랍니다.]

통신병은 자신의 의무를 잊지 않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어투에 떨림이 엿보인다.

역할을 잘 수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군그래.

내가 옆으로 눈짓하자 통신병이 재빨리 적 비행선의 관측 정보를 올려보냈다.

[좌표 확인했습니다. 고블린 기사대가 강하합니다. 혼돈에 영광을!]

그건 상당히 고급 병과인데.

저 높은 곳에 비행선보다도 작게 보이는 우주 함선 하나에서 불똥이 튄다.

그 불똥들은 시시각각 커지며 다가온다.

유성처럼 낙하하는 강하 캡슐과 그 속의 병력들이 도착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력장벽을 뚫기 위해 첨단이 뾰족하게 만들어진 특수 캡슐들이 거대한 표적 위로 박혀 든다.

거대한 비행선의 기낭은 이런 시대에까지 가스 따위를 담고 있지는 않다.

저것은 이제 그저 중력을 무효화하는 술식을 유지하기 위한 마력의 저장고다.

거기에 기술적으로 가공된 마력은 가스처럼 쉽게 타오르지 않는다.

구멍 뚫린 틈으로 마력이 새고 있으나 워낙에 거대한 비행선은 그럼에도 추락하지 않고 전진했다.

내부의 고블린 병력들은 가능한 오래 포격을 방해한 후 탈출하리라.

그리고 또 다른 요란한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거대한 비행선의 그림자 아래로 제국의 요란한 장갑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혀 통일되지 않은 규격의 제멋대로의 전차 집단.

하지만 그 질량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다.

나는 지휘 차량 뒤편에 실려 있던 운송 가능한 사이즈의 핵융합 마력로에 손을 짚었다.

이미 개인이 추출하여 쓸 수 있는 형태로 가공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모든 부대들에게 의무적으로 지급되었다는 모양이다.

언제 어느 곳에 내가 출현할지 모르니까.

대부분의 경우 개인의 마력은 한계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외장 노심이다.

나는 새로 생긴 딸내미를 부를 준비를 했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마력이 흘러들어온다.

그나마 술자의 의지로 생성된 생물적 마력이 아니기에 통제는 쉽다.

출력을 보아 이 전장을 모두 정리할 수준의 마력은 나오지 않는다.

핵융합인 만큼 수백 년간 계속하여 마력을 생산하겠지만 순간 출력이 높지는 않다.

정령왕을 온전히 가동하기에는 턱도 없다.

하지만, 길을 뚫는 정도라면 문제없다.

"실피드."

은빛의 용이 지휘 차량 위에 나타났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영웅 유닛이란 건 본래 일당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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