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253화
왕국 - Lv.3956 [아케인](3)
미궁의 매 순간은 시험이다.
희우는 이제야 비로소 오빠의 시험이 아닌 자신의 생존이라는 문제로 지금의 상황을 인식했다.
물론 지금까지 정말로 그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새삼스럽게도 다잡았다는 말이다.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여 오빠는 사라졌다.
지금이 그녀가 서브 리더로서 기능해야 할 실제 상황이다.
미아는 빠른 속도로 메모라이즈했다.
하지만 천사의 눈썰미로 판단하건대, 상대보다 느리다.
그렇다면 전면 마법전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미아가 레베카를 상대로 대등했다고는 하나 그보다 훨씬 윗줄의 마법사니 당연한 일.
멈춘 시간 속에서의 시간을 잰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생각해야 한다.
동료가 합류하는 것은 언제일까?
블랑쉐를 살짝 보고 에길도 본다. 제니는…… 좀 힘들지 않을까?
이미 사용해 보았기에 시간의 권능으로서의 시간 정지가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대강 알고 있다.
아무리 길게 유지해도 결코 3분을 넘을 수는 없다.
파티원들은 그사이에 반드시 끼어들어는 온다.
그 합류로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미아에게 묻는다.
"이 탑의 바닥은 엄폐물로 사용될 수 있을까?"
"충분해요. 이걸 마법으로 뚫어낼 정도의 출력이면 마력이 제 100배여도 가성비가 나빠요."
"감수한다면 가능할 수는 있다는 거네."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제게 반격의 여지를 주게 될 테니."
"좋아, 상대가 어떤 마법사인지 조금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
"네."
"보여줄게. 제대로 봐."
지금도 희우는 적으로부터 미아를 가리는 방향으로 서 있다. 천사라면 한 방쯤 맞아도 괜찮을 게 분명하다.
생각대로 대마탑을 마법적으로 파괴하는 일은 대마탑을 만든 이들에게도 어렵다.
이 위치의 미아는 잠깐은 안전하다.
확답을 받았다면 안전한 곳에 미아를 숨겨두고 적을 살핀다.
희우는 급격히 가속하여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마자 보이는 것은 번개의 조짐.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반사적인 출력 상승에 날개가 사정없이 진동한다. 바짝 긴장한 덕에 바로 등 뒤의 핀에서 울리는 소리가 귓가에 천둥처럼 들리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이 실제로 귀에 들릴 리는 없다.
기분이 그랬을 뿐이다.
음속을 넘어 광속에 가까운 번개가 들이닥친다.
[신성한 분노]를 휘감은 검으로 쳐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맨몸에 맞지 않은 것이 어딘가.
그러나 전격은 몸을 타고 흐르며 해소되지 않은 여파를 체내로 전달한다.
이 또한 충분한 손상.
다음 전격이 내리꽂히기 전에 호버링, 그렇게 부르기엔 지나치게 빠르지만 어찌 되었건 그렇게 불려야 할 움직임으로 이행한다.
번개는 사실상 발동하는 순간 탄착한다.
발사 후에 피하는 것은 기천사에게도 불가능하다.
다만 그 전조는 확실하다.
번개가 작렬할 곳에는 언제나 직전에 전하의 움직임이 발생한다. 그것은 스파크라는 형태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시야 내에는 스파크가 튀지 않는 공간이 없었다.
지금도 마력을 분해 중인 마법저항력이 아니었다면 이 스파크만으로도 구워졌으리라.
희우는 일단 병을 삼키고 몸을 웅크렸다.
솔직히 말하자. 이건 생각 못 해봤다.
어떡하지? 단번에 죽을 리는 없다. 천사니까. 그다음 순간을 생각해야 한다.
전격이 내리꽂힌다. 바닥과 천장, 벽과 벽.
길게 늘어나 있는 공간 전체가 사납게 날뛰는 전하로 가득 찬다.
어릴 때 보았던 과학관의 테슬라 코일이 떠오른다.
작은 구체 안에 번개 몇 줄기가 지직거리는 모습은 자못 환상적이었다.
그 속으로 들어와 있는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몸에 닿는 번개를 종족적 마법저항력이 분해한다.
전격이 점점 그 부하를 뚫어내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이 타고 있다.
장비의 손상도 극심할 것 같다.
그러나 완전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전에 끝났다.
날개에 손상이 있다.
하지만 비행할 수 있다.
그리고 주변에 다시 무수한 스파크가 튄다.
희우는 날았고, 다음 전격을 마주했다.
미리 준비한 게 분명한 최초의 광범위 번개 폭풍과는 다른 것이었다.
비교적 듬성했고, 빠져나갈 틈이 있다.
몸이 회복되어 가고 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손상된다.
이게 끝나면 또 기절하겠는걸.
눈으로 보고 피한다.
날아드는 모든 번개의 전조를 보며 쳐내고, 덜 위험한 부위로 받아내고, 틈새로 빠져나가며 조금씩 적에게 접근했다.
* * *
노인은 거의 견제하는 기분으로 날려대는 번개였다.
상대적으로 회피가 쉽고 기습이 어려운 전격 마법을 다룬다면 다중 캐스팅과 캐스팅 속도에 많은 포인트를 투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마력도.
필연적으로 물량 공세의 마법사가 전격 계통의 마법사다.
마력은 예비까지도 넘쳐 나게 있다.
그는 천사가 다시 돌입한 후 약 30초 정도 연속된 마법 시전을 한 끝에, 상대의 수준을 더 낮춰 생각하기로 했다.
천사인 것만 뺀다면 마법에 대한 대응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기가 막힐 정도로 튼튼하고 잘 버티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확신이 드는 순간 전법을 바꾼다.
그저 일격에 날려 버리면 될 뿐.
처음 들이닥친 순간 뿌려진 번개는 메모라이즈해 둔 대마법 [구형 번개]다.
본디 순간만 유지되는 것으로도 그런 위력을 내는 번개를 몇 초 더 지속시켜 범위 내를 섬멸한다.
지속 시간은 길지 않으나 위력은 파멸적이다.
그것을 버텨낸 천사의 저항력은 놀라우나 그뿐.
이런 일반적인 대마법은 몇 번이고 짜낼 수 있다.
발동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정말 하루 종일이라도 가능하다.
노인은 지팡이를 흔들었다. 메모라이즈된 구슬 모두가 깨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색색의 전류가 되어 층을 가득 메운다.
천사가 그에게 다가오려면 수십㎞를 좁혀야 하지만, 번개는 한순간에 적에게 도달한다.
* * *
미아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평범하게 보는 법에 대해서는 꾸준히 연습하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는 못 하고 있다.
미아의 기본적인 시야는 지금도 마력으로 보는 세상이다.
두꺼운 마력이 휘감긴 기형적인 대마탑의 건물 내에서 건너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인다.
번개의 형태로 변환된 원소가 마구 날뛰고 모골이 송연할 지경의 마력이 격류가 되어 흐른다.
그 속에 있는 것이 천사가 아니었다면 위치를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원소가, 마법이, 닿는 순간 마력으로 분해되어 흩어지며 생기는 공백이 있다.
그것으로 간신히 엄마의 위치를 쫓는다.
그러며 실시간으로 상대의 마법을 분석한다.
전격계열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아주 일반적이다. 스펙이 높을 뿐 기초에 한없이 충실하며 대단한 변칙이 보이지 않는다.
레베카 교수님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마법사 빌드다.
다양성을 무기 삼아 화력보다는 보조에 치중한 레베카는 처음부터 파티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는 느낌.
그러나 저 노인은 본인이 주인공인, 극단적인 딜러의 빌드다.
공격력에 치중한 만큼 잠깐의 시간만 더 준다면, 혹은 미리 전투에 대비를 했다면 천사마저도 구워버릴 정도의 위력이 나오겠으나.
그래. 상대는 파티 플레이란 것을 하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 있더라도 강력한 개인일 뿐이다.
미아는 아빠의 의견에 새삼 동의하며 지팡이를 들었다.
일전부터 자신의 것이 되어 들고 다니는 제 키보다도 머리 하나는 커다란 미스릴 스태프다.
최근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미아가 화력을 보조할 일은 없었고, 시전 속도를 보조할 정도로 느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 압도적인 화력에 잠깐이나마 대항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그래도 잠깐이다.
미아는 유배자가 아니며 마인드맵도 없다. 저쪽과 정면 대치한다면 잠깐도 버티기 버겁다.
하지만 미아는 혼자가 아니다.
상대의 메모라이즈가 모두 터져 나오는 순간, 미아는 최선을 다해 그것에 간섭했다.
* * *
노인은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불가능한 일, 어려운 일.
아주 불쾌한 일.
그런 것이 일어났다.
메모라이즈된 마법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강력한 간섭이 들어왔다.
술식을 헤집어놓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방향이 뒤틀릴 정도는 되었다.
본래라면 천사 하나를 노려 증발시켜 버릴 요량이었으나 조준이 크게 엇나갔다.
무수한 전격이 그의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와 내달리지만 천사는 그 사이를 어떻게든 회피 기동하고 있다.
거리는 조금씩 좁혀진다.
노인은 미간을 좁혔다.
마법? 마법사?
그래 그 딸내미. 강사의 딸.
관심이 없어도 소문 정도는 듣는다.
조사를 하지 않아도 레베카의 아래에 있다는 건 안다.
그렇다면 뻔하다.
‘빠르군. 권능에 의한 시간 정지에 이렇게까지 대처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리고 상대의 간섭에는 아주 불편한 느낌이 있다.
너무 노련하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미미한 마력을 가지고도 정확하게 의표를 찔러온다.
지금도 아무렇게나 내질러대는 무수한 [라이트닝]과 [체인 라이트닝], [썬더 스톰] 사이를 파고들어 조금씩 축을 틀어버린다.
역으로 쫓아가 제압하려고 해도 요령 좋게 마력의 실을 거두어들인다.
철저하게 방해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저쪽을 먼저 잡아야겠군.’
천사는 과연 마법사의 적이다. 이렇게 막대한 전격을 쏟아내는데도 아직 포션의 소모를 강요하는 데 그친다.
빠르게 죽이려는 계획을 포기한다.
노인은 전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공간을 열었다.
잠깐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번개에 빈틈이 생기자 천사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치고 든다.
화상으로 얼룩진 얼굴은 아직 회복 중이지만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모습이다.
그 부릅뜬 눈을 보며 노인은 피식 웃었다.
간발의 차이로 공간이동을 따라잡지 못한다.
처음부터 벌어진 거리가 너무 멀었다.
천사가 브레이크를 걸며 멈춰 섰다.
"이런? 마법사부터 노리나?"
미아가 위험해?
방해가 없다면 한순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지팡이에 기대 비틀거리는 미아는 무사했다.
"이쪽이 아니야?"
희우가 마법을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은 한계가 있다. 미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깜짝 놀라 마력 방벽을 만든다.
공간을 전격이 가득 채웠다.
사방팔방으로 번개의 다발이 튀었다가 흩어진다.
"공격?"
"아니, 아니에요. 이건……."
규모는 [썬더 스톰]에 가깝지만 겨우 이게 공격이라기엔 너무 약하다. 희우도 순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전격 마법은 전조가 있다.
규모가 클수록 그 전조는 커진다.
이것은 통째로 전조다.
* * *
"하늘. 하늘은 원래 바람이나 전격 마법사에게 유리한 전장이지."
번개는 하늘로부터 온다. 대마탑의 고층, 구름이 덮인 거대한 탑의 꼭대기는 탑 내부보다 훨씬 원소가 충만하다.
바람을 이루는 바람의 원소, 구름이 되어 존재하는 물의 원소.
그리고 번개는 구름에서 온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구름은 물과 번개 원소의 복합체이기도 하다.
[날씨 제어]
자주 써서 익숙한 마법이다. 전격 마법사에게 적란운보다 편리한 도구도 없다.
수십 배속으로 재생한 비디오처럼 구름이 모여든다.
본래도 꿉꿉했던 날씨는 시간을 아끼는 데 도움을 준다.
구름이 모여든다. 시커멓고 험악한 적란운이 층층이 쌓여간다.
"태풍을 만들 시간은 부족하지만 슈퍼셀 정도는 만들어지겠군."
여유를 되찾는다. 기습과 노련함에 조금 당황했으나, 애송이들이다.
"소꿉놀이는 즐겁겠지만, 결국 미궁에서 필요한 것은 내 손에 쥐고 있는 힘이란다. 아이야."
꽤 파손될 탑의 꼭대기를 수리하는 게 좀 귀찮을 것 같다.
파티 리더인 소년이 [소우주] 속에서 나와 이 참상을 본다면 한 소리 하겠지.
무수한 구름이 일종의 증폭 마법진으로써 기능하는 동시에 막대한 원소를 제공한다.
제 몸의 마력과 합쳐 조금 아래쪽을 겨냥하여 마법을 준비한다.
유배자의 빌드는 대부분 필살기를 여럿 탑재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전격 계열의 최종 티어 마법은 대체로 상층 대기 번개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구름 위에서 우주를 향해, 혹은 우주에서 구름을 향해 치는 번개.
지상으로 내려치는 번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력한 위력을 가진다.
우주가 없는 왕국의 성층권에서도 그런 번개는 존재한다.
[블루 제트(Blue Jet)]
조준 위치는 습격자들이 있는 층보다 10층 정도 아래.
거대한 규모의, 이미 [썬더 스톰]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전조가 아래서부터 위로 훑는다.
약한 것들은 전조만으로도 불타 재가 되리라.
번개라기보다는 이름 그대로 푸른 기둥과도 같은 것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월드컵 경기장만큼이나 거대한 대마탑의 지름을 완전히 삼키는 규모의 전격이었다.
대마탑을 구성하는 마법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보인다.
마탑을 이루던 마법이 죽어간다. 술식은 압도적인 힘 앞에 붕괴하고 사그라진다.
때맞추어 성물에 의한 시간 정지가 다했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 술식이 붕괴한 마탑의 상부가 무너져 내린다.
아득한 상공에서 대마탑을 구성하던 석재들이 터져 나간다. 그리고 흩어진다.
도시가 좀 파괴되겠군.
귀찮은 일이다.
끔찍하도록 대기도 충분히 뜨겁다. 쏟아질 잔해를 치워야 하는데 이런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지는 않다.
마법이 실현되고, 다시 세상이 잿빛으로 물든다.
열기도 파괴되는 소리도 멈춘다.
그대로 추락했다면 인명 피해를 만들었을 탑의 잔해도 허공에서 잿빛이 되어 정지한다.
노인은 그 잔해들 중 하나에 올라섰다.
"후, 이걸 언제 다 치우나."
그래도 혹여 몰라 탑이 있던 공간을 본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은 없다.
"해치웠나?"
노인이 껄껄 웃었다.
그러며 고개를 돌리는데.
탄환이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마력 방벽을 펼쳤다.
급소를 보호하고 치명상을 입더라도 포션으로 수복할 틈이 나는 위치만을 내어준다.
마법 방벽을 그런 식으로 전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마법사의 습관이다.
하지만 탄환은 가장 단단한 곳을 노리지 않았다.
지팡이 끝이었다.
시간의 성물이 달려 있던 지팡이 끝이 탄에 맞으며 부러졌다. 그 충격에 노인의 팔목도 부러졌다. 박살 난 지팡이가 날아간다.
마법으로 다시 회수하려고 했으나 다시 한 발이 더 날아왔다.
이번에도 노인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떨어지는 지팡이에 맞아 저 멀리로 날려 버린다.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서 추가적인 사격이 날아들었다. 기습이 아니라 제대로 펼쳐진 마력 방벽을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팡이가 없다. 이제 권능에 의한 시간 정지는 없다.
그리고 천사가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