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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265화 (265/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265화

43서버 - Lv.567 용사 키우기(1)

눈을 뜬 꼬마는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지 일단 우리를 둘러보았다.

“아, 저기. 구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것 보게. 용사후보생이란 이들은 대부분 이런 친구들이다.

물론 색다른 루트를 위해 개차반도 섞여 있긴 하지만 유배자의 개입 없이 그런 녀석이 용사로 각성하는 일은 드물다.

“우리 기억하니?”

희우를 가져와서 나와 같이 보여준다.

“엇, 그때 그 천사님…….”

천사? 아니, 어떻게 알았지.

희우도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다.

용사에게는 간파 능력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각성 후에나 생긴다.

후보생 단계에선 그런 능력은 없다.

의아해하는 가운데 용사가 입을 막았다.

“앗, 아아 아닙니다.”

어라, 이 녀석 왜 얼굴이 빨개지지.

이거 그거구나. 천사라는 건 흔히 아름다운 여자에게 쓰이는 호칭이다.

용사라는 직종은 대체로 어느 정도 성기사인 만큼 어느 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 자연스레 이어졌으리라.

희우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엄격 진지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행동거지를 점검하고 있다.

이 녀석도 이런 쪽으로는 바보로군.

자연스럽게 앞으로 걸어가 희우를 가리고 선다. 시선이 가로막히자 약간 아쉬운 눈치의 용사에게 말했다.

“그래 몸은 좀 괜찮니?”

“아,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리고 여긴 어디죠?”

주변을 둘러본다.

본래도 황폐했으나 반복된 공방은 랭커급의 PVP치고는 길었으며, 그 덕에 완전 주변 지형은 완전히 작살이 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디 혹성에라도 떨어진 듯한 황무지로 보일 것이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이 뭐였는지 좀 물어봐도 될까?”

“아. 네……. 부대원들과 함께 진군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빛이 번쩍이고, 그 뒤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 핵분열 병기일 거다.”

“방사능의 폐해는 좀 덜하긴 해도 더티 밤이긴 마찬가지인데……. 난쟁이 왕국도 상당히 코너에 몰린 모양이군요.”

“그런 모양이다. 고맙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과도하게 적을 제거해 버릴 경우엔 부작용이 생기는군. 기억해 둬야겠다. 역시 균형을 어느 정도는 유지해야…….”

러셀은 정말로 메모장을 꺼내어 메모하기 시작했다. 얼씨구.

나는 한숨을 내쉰 후 용사를 보고 말했다.

“좋아, 이름이 뭐지?”

“아르바리온입니다.”

거 정말로 용사 같은 이름이네. 막 변신 합체도 할 것 같은 풍의 이름이다.

용사라기보다는 용자일까?

유배자라면 부끄러워서 쓰기 힘든 종류의 어감이다.

“그거 누가 지어준 이름이야?”

“……신관님이.”

아, 이건 본인도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른 척해주자.

“성은 없어?”

“전 귀족이 아니라 이름뿐입니다.”

대충 출신 성분은 알겠다. 정통파 용사로군.

용사후보생도 랜덤 NPC인 만큼 제각각의 속성들이 조합되어 만들어지는데, 금수저 용사는 다루기가 힘든 부분이 있다.

순진하고 성실하고 착하다.

아주 이상적이고도 스트레오 타입인 용사다.

러셀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스탠다드하군. 특출나게 강해지긴 힘들어도 결코 저점도 낮지 않은 좋은 타입이야.”

용사를 유형별로 분류도 하고 계신 모양이군.

나중에 한번 이야기해 볼 필요는 있겠다. 나는 내가 가진 정보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이 되며 자잘하게 디테일이 바뀐 부분은 셀 수도 없이 많고, 그런 디테일이라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이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특히 저런 변태들은 말이다.

용사는 자신을 품평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좋아, 리온 군. 그렇게 부를게. 이제 어떻게 할래? 원대로 복귀할래? 도와줄까?”

“그, 여러분들은 유배자시죠? 그렇게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그리고 황폐한 주변을 보며 무언가 깨달은 모습으로.

“부대원들은 아마 무사하지 못한 것 같군요. 저는 여러분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지키지 못해서?”

“그럴 힘은 없지만요. 면목이 없지 않습니까.”

이 자식 뭔가 너무 어른인데. 중학생의 발언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할 말은 정해져 있다.

“좋아. 리온. 그러면 내 묻도록 하지.”

“예?”

“힘을 원하는가?”

* * *

용사후보생 아르바리온.

물론 본인은 그런 사정 따위는 모른다.

그저 고아였고, 신전의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이제는 나이트 크로우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다른 모든 종족의 전화에 휩쓸려 있다.

자신의 재능은 자각하고 있었다.

신의 가르침대로 여러 번 겸손을 챙기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여기서 더 겸손했다가는 기만이요, 조롱이다.

그는 강했다.

소년이라고 부르기도 힘들 아이의 나이 때부터 그랬다.

힘은 어른들을 상대로도 지지 않을 정도였으며 검술은 어깨너머로 배우고도 병사들의 감탄을 살 만큼 준수했다.

마법에도 재능이 있었으며 신성술에도 재능이 있다.

전쟁 통에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순수하게 검사로서만 싸우고 있으나 그럼에도 활약은 인정받았다.

패퇴하여 물러나는 가운데 흩어진 대원들을 수습하여 생환시킨 공로로 부대장까지 진급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강해졌다. 스스로도 그런 체감이 들었다.

하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온 세상이 인간을 멸종시키려 들고 있다.

어떤 재해 이후로 그런 분위기가 특히나 팽배해졌다.

인간은 위험하다.

저들은 이 대륙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은 약하다. 타고난 마법적 능력도 없으며, 강인한 육체도, 자연스럽게 다루는 기술도 없다.

많은 유배자들이 이쪽 편을 들지 않았다면 이미 무너졌을 게 분명하다.

실제로 유배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보았던 것은 약 반년 전.

난데없이 앞에 나타났었다.

고아원 앞에서 포대기에 감싸인 채 목에 걸려 있었다는 로켓.

어머니인지 누군지도 모를 사진이 한 장 들어 있는 목걸이를 도둑맞았다.

그럼에도 원망할 줄은 몰랐다.

특출난 동체 시력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얼굴을 똑똑히 인식하게 해주었다.

아름답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빼앗기는 와중에도 멍했다.

물론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저 볼 수만 있었다.

하지만 그 찰나는 계속해서 기억에 남았다.

죽어가고 있던 마지막 순간에도 다시 떠올랐었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 그 천사가 다시 나타났을 때.

죽어서 천국에 온 것인가 생각했다.

“유배자란 다들 저런 걸까.”

아름답고 강하다.

천사의 곁에 있던 남자도 어디서도 보기 힘든 미남자였다.

그가 물었다.

힘을 원하냐고.

리온은 대답했다.

원한다고.

아마도 그 유배자 파티는 전쟁에서 이길 힘을, 혹은 세상을 지킬 힘을 원하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여길 것이다.

“으, 부끄러워.”

사실이 아니다.

그저 그 천사와 또 만나고 싶었을 뿐이다.

“고우셨지.”

한숨을 푹 내쉬고 후드를 눌러쓴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먼저 떠나라고 했다.

다른 쪽에 있던 나이트 크로우 같아 보이는 남자가 이것저것 장비를 챙겨주었다.

알뜰하고도 간소한 짐 속에는 필요한 모든 것이 있었다.

부서지고 갈라져 거의 잔해에 가까웠던 갑옷도 새로 받았다.

어떻게 자신의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심지어 정확하게 나이트 크로우 제식 갑옷이다.

후드 달린 검은 망토에 새겨진 까마귀의 문양까지 완벽했다.

역시 저분은 나이트 크로우의 높으신 분이라도 되는 게 맞나 보다.

대신 유배자들은 징표를 받아 갔다. 그가 쓰던 낡은 검이었다.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다.

유배자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무언가 전해주어야 한다. 강한 인연의 끈이 되어줄 어떤 징표 같은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 만난 순간 목걸이를 가져갔던 것.

그건 천사님도 자신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을까?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며 장비를 챙겼다.

방향은 알려줬다.

가는 길은 황폐했다.

저 멀리 보이는 폭심지는 아직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위력인가.

앞으로 저런 것과도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일까.

힘을 내야 한다.

리온은 황무지를 홀로 걸었다.

그가 책임지고 있던 부대원들, 인접한 부대원들, 그리고 친분 있던 부대장들.

모두 이제는 없다.

혼자 살아 돌아가는 것에 면목은 없으나 이 또한 이겨내야 한다.

리온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이미 어렴풋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그가 걸어야 할 가시밭길도 말이다.

* * *

용사를 먼저 떠나보내고, 제니가 기절시킨 이들을 깨웠다.

기본은 탱커인 녀석들이고 제니가 전력을 다해 친 것도 아니다.

다치긴 했으나 유배자에겐 별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로건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는 눈앞에 제니가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음을 보았다.

“어, 그러니까. 아까는 대뜸 쳐서 미안해.”

로건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제니는…… 강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보다는 훨씬, 동시에 이미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레벨 1,000이 넘거나 1,000에 근접한 이들보다도 훨씬 말이다.

혼비백산한 와중의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로건은 이 자리에서 가장 약했다.

그와 함께 오합지졸처럼 쓰러진 이들 중에는 1,000레벨이 넘어가는 탱커도 있었다.

제아무리 방패를 들지 못하고 당했다곤 하나, 그런 속도와 은밀함, 동시에 공격력이 나온다는 것이 이미 이상하다.

제니는 강해졌다.

로건 따위는 발끝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어떤 힘인지 안다.

랭커라고 불리는 자들의 힘이다.

로건은 선택해야 했다.

지금 어떻게 말해야 할까?

제니는 완전히 저 하이랭커 파티의 일원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그가 믿지 못했던 그 모든 것을 딛고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것에 성공한 모양이다.

과거처럼 제니를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

로건은 비굴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미궁의 예의대로 대답했다.

강한 자가 곧 정의다.

강한 자는 그만큼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게 아니었을까? 제니의 표정이 더 나빠졌다.

문득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로건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지금의 이 상황을 그저 외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로건은 그저 자신이 없었다.

제니를 예전처럼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가 아는 랭커들이 대부분 무시무시했던 탓도 있다. 위험한 이들이라는 인식 탓도 있다.

이 제니가 자신이 알던 그 제니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힘은 사람을 변하게 할 것이다.

로건은 그렇게 생각했고, 동시에 그것이 두려웠다.

랭커라고 불릴 힘을 손에 쥔 제니가 뭣 하러 자신을?

여러 가지 자기합리화의 결과 로건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름대로 베테랑이랍시고 하드스록의 리프트에서 재고 다니던 때와는 반대로, 처음 이 미궁에 떨어져 고참들에게 치이며 고생하던 그 시절처럼.

이것은 오랜 유배자로서의 생존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친구라는 건 없다. 유배자는 결국 혼자 살아가는 생물이다.

곧 제니가 대답했다.

“응……. 별거 아니야. 가봐.”

고개를 들었을 때, 고양이귀 요정은 로건을 보고 있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로건은 이제 자신이 친구를 하나 잃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건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힘을 가진 자들은 두려운 존재다.

로건은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제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검은 곰] 길드원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일전에 뵈었던 선배님이 로건의 얼굴을 보고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도 로건에게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기절한 대장들, 슈투카와 랭커스트를 어떻게 수습하고 계단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한때 그의 인생에 평지풍파가 될 뻔했던 선배들의 파티가 멀어져 간다.

로건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이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이 미쳐 버린 미궁에서 그나마 평범하게 살아가는 법.

겁쟁이라 욕먹어도 좋다.

로건은 영웅 같은 게 아니다. 모험가도 아니다.

애초부터 43서버 출신이 필요하다는 말에, 그리고 그 보수에 혹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또 죽을 위기를 넘겼다.

이제 정말로 은퇴할 것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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