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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311화 (31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311화

왕국 - 늙은이들

탐욕의 마왕은 우리의 대화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의 호의는 이해가 되었다. 한때 혼돈의 권속으로서 어느 서버에서 태어나 왕국으로 오고,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악마.

그런 그에게 혼돈이라는 신에 대한 신앙은 과거의 추억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혼돈의 권속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잊는 자는 그 과거에 발목 잡히지. 나는 이제 혼돈의 신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신도들에게 어느 정도 호의를 베풀 수는 있지.”

“호의 수준이 아닌데요. 당신의 목숨을 맡기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면 어차피 죽을 목숨. 잠깐 방황하던 삶이 제자리를 찾아갈 뿐이다.”

어쩌다 서버 출신의 악마가 여기에 묶이게 되었을까?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악마는 드물다.

왕국에 최초의 유배자가 발을 디디기도 전부터 지옥의 왕들이 존재하며, 그들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곳이니까.

그러나 탐욕의 마왕조차도 지금의 혼돈이 그때 그 시절의 혼돈임은 알지 못했다.

「어, 음. 그래 오랜만이다.」

“……?”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옛 신도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어찌 이리도 어색할까.

마왕이 오늘 본 것 중 가장 위엄 없는 표정이 되었다.

“왜 아직 살아계십니까?”

「그러게…….」

당황은 길지 않다. 탐욕의 마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이런 일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이 쓰레기통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각이군. 저 위에서 보내던 시절이 떠올라. 그래 뭐 좋다. 탐욕의 왕좌를 어찌하겠다면 어찌하도록 해라. 나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분이니.”

그 말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일단 돌아왔다.

카베가 대장간에서 망치질을 하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우리를 보며 눈으로 인사한다.

“이번에는 소득이 있었나?”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군요.”

“어찌 그러한가?”

“원래 하려던 것보다 일을 좀 더하게 생겼습니다.”

행운이라면 행운이요 시간낭비라면 시간 낭비다.

번외 던전이 보통 공략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챌린지 던전이기 때문이다.

엔딩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단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세계이며, 난이도가 높은 던전일 뿐이다.

게임 시절이라면야 기꺼이 파고들겠으나 현실적인 문제가 산재한 지금에는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사정을 들은 카베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혼돈의 여신님이라. 나는 들어본 적만 있군. 언젠가 사라진 신이라고 알고는 있었다만.”

「영감은 나랑 동시대의 인물인데, 그렇게 말하면 나만 늙은 것 같지 않나.」

“저는 혼돈의 신도였던 적이 없는데 어찌하겠습니까.”

말 나온 김에 물어나 보았다.

여신님은 그때 그 시절을 물으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그것도 반쯤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대화하고 있지만 여신님의 상태가 꼭 정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신좌는 왕좌와 다르게 주인을 미치게 만들지는 않지만 긴 세월 간 성향을 부여한다.

그리고 점차 서서히 신좌에 걸맞은 성격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여신님이 죽기를 결심했던 것은 그런 연유가 있을 터였다.

조용히 절제된 광기.

세월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카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는 왜 우리와 비슷하지? 살아온 세월이라고 해보아야 97년과 25년이라 하지 않았나.”

「저놈은 처음부터 미친놈이었어.」

“에이, 저 같이 파릇파릇한 새싹을 그런 취급하시면 곤란합니다.”

“말라비틀어져 누렇게 뜬 것 같네만.”

「내 말이.」

하, 이거 모함을 하시네. 1만년 단위로 묵으신 분들이.

“밖에서 플레이 타임 3만 5천 시간쯤 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그냥 나누기해도 10년 동안 매일 10시간은 했네요. 그래도 이건 다 간접 체험입니다. 간접 체험.”

“……10동안? 제정신이 아니군.”

“그만큼 갓겜입니다.”

“난 게임이 뭔지 모르지만, 10년동안 그렇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정상으로 보이진 않아.”

“많이 들어본 이야기네요. 후후.”

「그래도 간접이라기에는 너무 능숙한 것 아니냐? 회차 수로 3천이 좀 안 되었던가 그랬지? 카베 영감은 몇인가?」

노거인이 생각에 잠겼다. 기억의 지층을 더듬는 표정.

“난 참 많이도 죽었지. 만 단위였던 건 확실하네.”

「나도 그래.」

“뭐, 지식의 차이는 아주 크니까요.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적응에는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정말이다.

초회차의 나는 자신만만했다. 이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누구나 거치는 살인에 대한 적응까지 마친 후.

1트 클리어하는 거 아냐?

그런 자신만만함.

물론 곧 현실의 장벽에 부딪혔다.

미궁은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었고, 내가 아는 모든 사실은 미궁식으로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탑뷰 시점의 도트 게임이 현실이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전쟁의 신 에길만이 내 버팀목이었다.

탐욕의 마왕이 혼돈을 추억하듯 지금은 동료인 에길이 내 추억이다.

“그리고 생각했죠. 이미 방법은 아니까. 노력만 하면 되겠네. 죽도록 노력 또 노력.”

“그렇군.”

「그래서 뭘 더했지?」

간단하다.

게임 시절에서도 나름대로 반복 파밍 및 레벨링 포인트는 있었다.

그게 뜰지 마저도 랜덤이어서 그렇지.

그 부분에서는 운이 좋았다.

몇 번 안 죽고도 저층에서 그런 포인트들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었다.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은 충분히 과감해집니다. 두려움은 미지에서 오는 것이죠. 미궁은 별로 제게 미지가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것참 신기하군.”

“어째서죠?”

“게이머라는 족속들은 간간이 보아왔네만 보통은 움츠러들어 무언가 하지 못하는 이들이었지.”

「네가 가끔 말하는 겜창일수록 그렇던데 말이지.」

그건 옳다. 게임이 아니게 된 미궁은 게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온 유배자에게 너무 가혹하니까.

오히려 이미 게임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이들의 차이점이라면, 미궁은 내게 정말로 인생을 갈아 넣을 가치가 있는 우주 대명작 초갓겜이었단 것이지.

이 게임을 누구보다 잘한다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자 전부였다.

“용서할 수 없었죠.”

“무엇을?”

“제가 게임할 때는 말이죠. 챌린지 떼놓고 그냥 클리어만 노리고 스피드 런처럼 달리면 성공률 100%였거든요?”

「호오, 클리어 경험이야 게이머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100%를 장담하는 건 또 놀랍군.」

그래서 그 자존심이라는 게 있었다.

다 아는데 왜 못해?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다.

“치기 어린 저회차 때는 그랬는데……. 하다 보니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팔자에도 없던 심리전에, 몸 쓰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체력적 문제부터 하여서, 몸이 지치면 정신도 지치니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았다.

새롭게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마법은 더 이상 스킬로 뚝딱이 아니었으니까.

무기술 역시 그러했다.

DLC도 이런 DLC가 또 없다.

솔직히 말하면 설레고 두근두근하는 마음도 강했다.

풀 다이브 가상현실 확장팩이잖아…….

“그래도 자존심이 그걸 다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그거거든요.”

「아, 그거 알 것 같은데? 너 게임 못하지?」

“한국인은 그거 들으면 죽어버려요.”

「게이머 중에서도 악착같은 독종들은 좀 국적이 편향되어 있었던 것 같긴 하군. 나야 뭐 애초에 그놈의 꼼퓨타인지가 없던 세계에서 와서 모르지만 말이야.」

“나 또한 그런 환경은 아니었네.”

이런 걸 보면 난 굉장히 축복받은 환경에서 왔구나 싶긴 하다.

의외로 또 보면 험한 곳에서 온 이들이 유배자로서는 성공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뭐, 하여간 밥 먹고 게임만 해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니까 할 만하더라고요.”

비교적 약한 몬스터를 상대로 죽을 때까지 검을 휘두르는 법을 익혔다.

식량이나 다른 생존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죽으면 되니까.

마법 역시 내가 알던 데이터와 대조하며 익혔다.

언데드가 참 좋은 선택이었다. 체력이 무한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독학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신들에게 정보를 팔고 다니며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고…….”

에길도 사실 그런 내 스승 중 하나였다.

살인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놀랍도록 빠르게 사라졌다.

나부터가 쉴 틈 없이 죽어대는데 그런 걸 고려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아마 1000번은 처음 몇 년 동안 죽은 것 같군요.”

계획적으로 죽었다. 단계별로 도전하고 실력 향상을 꾀했다. 운에 기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로그라이크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다르게 실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다.

내 경우에는 게임 시절 길러둔 뇌지컬적인 실력은 이미 확실했으니…….

현실이 되며 새로 생긴 요소인 피지컬만 기르면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인생 게임 속으로 들어가다니 나름대로 행운 아닙니까. 밖에서도 밥 먹고 회사 다니는 시간이랑 영상 편집하는 시간 떼면 이 게임만 했으니까요.”

「확실히 그 정도로 독하게 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버리는 시간도 많았지만, 결국 이겨냈고. 반대로 멘탈의 문제만 아니면 언젠가는 반드시 클리어한다는 확신이 되었습니다.”

항상 긍정적일 수는 없지만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확인할 수 없는 의문 하나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원동력부터해서 노력의 의미까지 모두 부정당할 수 있었을 테니까?」

“…… 뭐, 제가 좋아하는 게임의 NPC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카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게임으로서의 미궁을 잘 알면 그럴 수 있지. 내 경우엔 몰랐기에 그런 걱정은 아주 나중에나 했던 것 같군.”

“하하. 다들 그렇겠죠.”

아이고, 어르신들 앞에서 재롱부리려니 부끄럽네.

이제 할 일을 하러 가야겠다.

탐욕의 마왕과는 이야기를 이미 끝마쳤다.

그는 내일,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 * *

여신님은 제니를 불렀다.

고양이 귀 요정은 2일차 지옥에서 한 일이 없다.

전투다운 전투가 있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고 귀환했기 때문이다.

치고받고 싸운 다른 전사들이나, 녹초가 되어서 골골대는 마법사들과는 다르게 제니는 한가했다.

미아가 뻗어 있기에 호위대상과의 의논도 할 수 없는 탓이다.

갑작스럽게 내려온 신언에 제니가 꼬리를 부풀린다.

“네넵? 어쩐 일이십니까?”

「카베에게 가도록. 대화를 더 하고 싶은데 우리 대전사가 바쁘다니 말이야.」

그리하여 제니는 종종걸음으로 카베에게 찾아가 그의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어찌 생각하나 저놈?」

카베는 여신이 묻는 뜻을 이해했다.

그랬기에 제니를 한번 보았다.

여신님 역시 카베의 시선을 이해했다.

「성실한 아이야. 어디 가서 입을 함부로 놀리진 않겠지.」

“그렇다면야.”

카베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솔직히 고정 유배자 NPC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소이다.”

「하지만 저런 존재를 들어본 적은 없지?」

“오르골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녀석이라면 하나 있지만, 고정 NPC로서는 전혀 모르겠군.”

「그러고 보면 그 가짜 오르골 같은 녀석은 뭔가? 아닌가? 혹시 그쪽이 진짜일 수도 있나.」

카베는 생각해 보았다.

[더 시티즌]에서도 비교적 나중에 들어온 축에 속하는 멤버였다.

얼굴을 본 적도 없다.

이야기로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드스록]의 리더로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그의 귀에 굳이 알 필요 없는 소식들도 들려온다.

칩거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에게마저 그렇게 들려온 것만으로도 그 능력은 증명된다.

현재 실질적인 리더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했던가.

경영자 파티라고는 해도 일부를 제외한다면 끊임없이 세대교체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유배자는 없다.

[더 시티즌]의 리더는 그 악룡이기에 무력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능력으로 실질적인 리더가 결정된다.

그 악룡의 신임을 받고 있다면 필시 멀쩡한 녀석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 말이다.

「거기에 말이다. 저 천사. 서브리더인 천사를 혹시 아는가?」

“전혀 모르겠소. 그냥 평범한 유배자는 아닌 듯 하오만.”

「나는 튜토리얼에서부터 저 녀석들을 지켜보아 왔지. 우리 대전사는 저 천사를 어떤 테이블 내에서 생성되는 랜덤 NPC로 여기는 것 같던데.」

카베는 계속 하고 있던 단조를 멈추었다.

망치질이 멈추자 갑작스레 대장간에 적막이 찾아든다.

“흐음. 랜덤?”

「보기 드문 초인이다. 미궁에 유배되기 전부터 원래 그러한 가문이었던 모양이야.」

그 역시 오랜 기간을 보낸 유배자다. 겪은 경우의 수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드물게 초인적인 설정을 가진 NPC는 있다.

하지만 카베는 그 모든 NPC를 알지 못한다.

「국적이 지구라는 곳의 한국이며, 성은 정이라는 점과 어떤 식으로건 초인이라는 점. 이게 고정적인 요소인 모양이다.」

“음……. 초인인 한국인? 간혹 보긴 하는 거라 더욱 모르겠군.”

친해진다면 국적 정도는 알게 된다. 그러나 본명까지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명은 매번의 삶을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유배자는 같은 이름을 다시 쓰는 경우도 잘 없다.

그저 그렇게 살다보면 그리 되는 일이다.

다른 회차에서 만난 이를 또다시 만날 수 없다고 전설처럼 떠도는 제일 큰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다르게 쓸 테니까.

고로 정씨라는 점은 이 경우 정보가 되지 못한다.

「나는 그런 의심을 하고 있다. 어쩌면 저들 자체가 미궁을 언젠가 해방하기 위해 준비된 그런 존재가 아닌가. NPC인 게 더 그럴듯한 녀석들 아닌가.」

“지금껏 본 적 없이 이상적이긴 하지. 동기부터 능력까지. 그야말로 저자가 해내지 못한다면 누가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야. 작위적이군.”

「그렇지. 뭐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만.」

“우선 여신님을 다시 신좌에서 꺼내주려고 하고 있지 않나.”

「……꿈을 꾸는 것 같군. 이 신좌를 벗어나지 못해 죽으려고 했건만.」

“역시 그런 이유였군.”

「영감은 그래도 수명이란 게 있지 않나. 신에게는 수명이 없어. 신좌를 찾아오는 인물도 거의 없는 마당에.」

마지막 도전자가 벌써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그때 그냥 져주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도전자일 줄 몰랐다.

신좌를 찾아 헤매는 자는 아주 드물다. 경영자가 출현하고 나면 더욱 더 그렇다.

이 오래된 왕국에선 신들도 고착화된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왕국에 돌아오고 난 후,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신들도 몇몇 발견했다.

그러나 혼돈과 다르게 자연소멸을 기다리지도 못할 것이다.

서버가 열릴 때마다 신도가 새로 생성 되는 신좌가 많으니까.

“어쨌든 좋은 변화라고 생각이 들어.”

「나도 꿈을 꾸기 시작했네. 클리어라는 꿈을.」

“꾸어본 적 없었나?”

「이번 회차에선 그럴 여유가 없었지. 누구 하나라도 빨리 신좌에 오르지 않는 이상 왕국이 성립도 못할 지경이었으니.」

“개척 초기는 어쩔 수 없겠군.”

카베는 이미 여신이 신좌에 오른 후에 왕국에 찾아왔다.

그래서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의 시기도 충분히 힘들었다.

왕국이 최초에 자리 잡는 시기라는 것은 그러하다.

그래서 카베는 기억한다. 단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던 최초의 왕국을.

가장 오래된 신인 혼돈을.

그리고 그녀가 돌아올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신이자 가장 강력한 전사가.

뿐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의 유배자들이 여럿 돌아올 것이다.

죄수들이 풀려난다. 신들이 귀환한다.

그러므로 이 왕국은 그 어느 때보다 클리어에 가까워지리라.

카베는 더 이상 침공을 막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과거는 그런 시절이었다.

“…….”

제니는 그 모든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혼자만 알고 있자.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강제로 듣게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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