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12화
왕국 - Lv.5162 [지옥] 3일 차(1)
상대가 협조해 준다면 일은 간단해진다.
탐욕의 마왕은 자신이 마왕으로서 남아 있는 것보다 여신님이 다시 현세에 돌아오는 것이 이득이라 판단했다.
3일 차의 날씨도 관건이었다.
이제 슬슬 모두가 유배자의 출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지옥]은 유배자가 들이닥친 지 너무 긴 세월이 지났기에,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3일이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기엔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다.
이건 게임 시절에도 그랬는데, 별일이 없다면 3일 정도는 모든 악마가 플레이어를 적대하는 일은 없었다.
7일 정도 지나면 이제 더 이상 뭘 하기엔 지나치게 위험해지기에 또 쉬다가 공략을 마저 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든든한 우군도 생겼다.
“신좌 부품의 용도가 그런 것이었나…….”
탐욕의 마왕이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증명한 것이 없다.
지금부터 실현해 보일 뿐이다.
“마왕님은 어디 좀 멀리 산보라도 하고 계시죠. 왕이 인식을 한다면 좌 역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인지할지도 모르니까요.”
저항하면 귀찮아진다.
탐욕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텅 빈 왕좌에서 나와 꼬맹이, 그리고 레베카와 레베카의 시선으로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마법의 신만이 남았다.
신좌와 다르게 왕좌는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아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신좌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마왕은 신좌부품의 존재에 대하여 알게 된다.
하지만 막연하게 다른 신좌부품을 요구하는 왕좌기에 정확히 왜 그것을 원하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마왕들은 자신의 소망이자 목표였으며 지금 힘을 부여해 주고 있는 왕좌를 위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지옥의 끝나지 않는 전쟁의 원인은 결국 그 왕좌들 탓이다.
특히나 탐욕을 특질로서 부여받은 왕좌라면 더하겠지.
미아가 내 작업을 돕다가 생각난 듯 묻는다.
“아빠, 마왕은 저렇게 멀쩡할까요?”
“강한 정신력……. 같은 말을 하고 싶지만. 악마라고해도 결국 인간이 기본이잖아.”
“그런가요?”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인간이 가장 약하고 좋은 특징을 가지지 못한 종족이잖아. 모든 유배자도 인간이고.”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그러니까 반대로 모든 종족의 기본형이 인간이라고 생각해.”
“엄청 인간중심적 사고잖아요.”
“난 인간이니까?”
뭐, 게임을 만드는 놈들이 인간인데 인간 중심적이겠지.
그래도 미아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인간 출신 뱀파이어로서, 그리고 인간 출신 부모를 가진 입장에서.
아이란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고 믿고 싶어 하는 법이다.
“하여간, 그렇게 생각하면 오래된 마왕이 더 이상 왕좌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이유도 뻔해지지.”
“감정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 잘 배웠구나. 감정은 무한히 불타오르는 연료 같은 게 아냐. 언젠간 식어 사라지지.”
“탐욕의 마왕은 도리어 욕심이 없어보였어요. 탐욕인데 말이죠.”
사실일 거다.
그가 내게 반문한, 마왕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냐는 질문.
그것은 대단한 욕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마왕으로 살아왔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였다.
그 이외의 삶의 방식에 대해 떠올리지 못할 정도이지 않을까?
“저도 그랬어요.”
“그래?”
“클랜의 말단이며 쓸모없는 짐 덩어리 뱀파이어. 식구니 먹여 살리기는 하겠지만 시선이 고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아이. 그게 저였죠.”
“오호.”
“그것 이외의 삶의 방식을 알지 못했어요. 그냥 그렇게 평생 지내왔으니까요.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때의 미아는 눈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더욱 그랬으리라.
의지니 노력이니 하는 것들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걸 가질 수 있는 환경인지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저는 행운아에요.”
“그러냐.”
“아빠도 엄마도 너무 좋아요.”
“다행이네.”
미아는 딱 거기까지만 말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겠으나 여기까지.
절제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숫자만 20이지 실제로는 몇 살 되지도 않는 꼬맹이가 하기에는 지나친 절제다.
확 끌어당겨 안아준다.
“이런 거 좋아하지?”
“……좋아요.”
옆에 있던 레베카의 눈이 푸르죽죽해졌다.
“제, 제자야. 나도 나도!”
미아가 헤헤 웃더니 레베카에게 가서 폭 안긴다.
“교수님도 좋아요!”
“히잉, 맥도 소식이 없고 역시 우리 제자뿐이야.”
그러고 보면 맥은 지속적으로 아무런 단서조차 없다고 한다.
굳게 믿는 것 같던 레베카가 점점 불안해할 정도다.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는 분위기인 게 더 안쓰럽다.
레베카는 그냥 봐도 맥과 친했던 것 같으니까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불러서 헛소리 할 때마다 꼬박꼬박 나가서 들어주는 모양이고.
“쯧, 빅맥 한 번 더 만들어줘야 하는데.”
“맞다, 그거 레시피 좀 줘!”
“왜?”
“……내가 만들어 보려고.”
오호라.
나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님이 냄새를 맡으셨다.
「오오오, 이것은 또 다른 봄의 예감.」
‘주책맞은 할망구 같으십니다.’
「내가 좀 할망구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 깜찍한 할망구는 드물 것이다. 대전사여.」
‘하아.’
점점 나한테 적응하고 계시는군.
그러는 도중 마법이 완성되었다.
주머니에서 신좌 부품을 꺼낸다.
대놓고 인지할 수 있도록 바로 옆에서.
왕좌가 그것이 자신의 옆에 있음을 의식하는 순간, 격렬하게 그 존재감이 크게 부풀었다.
* * *
탐욕의 마왕은 바깥으로 나와 걷다가 또 다른 악마를 보았다.
보기 드문 이블이었다.
위장을 할 이유가 없으니 이곳에서는 있는 그대로 악마의 모습이기에 알아보았다.
저 기묘한 유배자 파티의 일원인 자였다.
“너는…….”
희미한 기억이 문득 되살아났다.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 간혹 왕국에 나타나 평지풍파를 일으키던 어떤 유배자가 생각난다.
“블랑쉐로군.”
상대 악마가 돌아본다. 그리고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다들 날 알아보는 것이냐.”
“큭큭, 그런 일을 겪는 게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군.”
“아주 싫은 기분이다. 묻지는 마라.”
“반대로 내가 한번 물어볼까? 왕좌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느냐?”
“왕좌? 묘하게 신경이 쓰이는 군, 뭔가 가서 보고 싶다는 기분이다. 어디선가 나를 손짓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하지만 찾아가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그러지 않고 있다.”
“왕좌가 새 주인을 찾고 있긴 한 모양이군.”
세월은 그의 감정을 마모시켰다. 그에게 더 이상 탐욕은 남아 있지 않다.
왕좌가 가장 바라는 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정하고 있으니 곧 그를 버리려고 들 수밖에 없다.
그에게 권능을 부여하여 이 영역의 신으로서 군림하게 만들었던 힘이다.
그것이 이제 생명을 좀먹고 있다.
여기까지 오고 나니 그도 깨달았다. 미혹이다. 왕좌에 대한 욕망이나 욕구는 다 덧없는 것이다.
악마기에 힘을 추구 하는가 힘을 추구하기에 악마인가?
모두 아니다. 지옥의 마력이 이토록 이질적으로 뒤틀린 것은 신좌가 되지 못한 부산물이 이곳에 일곱 개나 있기 때문이다.
탐욕의 마왕은 생각했다.
모두 부숴 버리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런 뒤에는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남은 삶을 어찌 살아야 할지 잘 모른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악마는 왜 그 유배자를 따르고 있을까?
“너는 어째서 살아가지?”
“무엇을 묻는 게냐.”
“아까의 얼굴은 실망스럽고 쓸쓸해 보였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
완곡하게 말했으나 알 것이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존재.
고정 유배자 NPC란 것은 그런 거니까.
탐욕 역시 유배자들이 그를 NPC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것과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는 다른 자기 자신에 대한 증거는 좀 다른 이야기다.
블랑쉐는 대답했다.
“나를 이 꼴로 만든 아버지에게 한 방 먹이고 싶어서.”
“음? 그게 무슨 말이지?”
“여동생이 그러더군. 적어도 내가 살아서 미궁의 끝을 본다면, 나는 유일한 블랑쉐가 될 것이라고.”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건 아무래도 좋아. 내가 가짜였다면 나 대신 고통 받을 다른 여동생들도 실존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블랑쉐가 제 총기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진짜였다면. 그리고 내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었다면…….”
악마 암살자가 어딘지 사납게 미소 지었다.
“찾아가서 죽일 거다. 진작 그래야했어.”
탐욕의 마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저마다 사정이 있는 법이다.
그에게는 이제 없었다.
오랫동안 미망으로 그의 정신을 잠식하고 있던 왕좌에 대한 갈망마저도 없다.
그렇기에 왕좌가 그를 버리려는 것이다.
이번에 대량의 재물을 먹어치움으로써 조금 진정되긴 했으나, 계속하여 그러지 않는다면 결국은 그를 괴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스스로 왕좌를 버린다.
왕좌가 그를 버리기 전에 먼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서늘한 기척이 들었다.
“윽……?”
블랑쉐는 엉겁결에 쓰러지는 마왕을 받아들었다.
“크윽, 아니다. 물러나라. 이렇게 되니 조심하란 거였군.”
탐욕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 * *
“꼼수요?”
“천사가 하는 편이 제일 좋아. 신성 계열 인챈트 다 떡칠하고 위에서 덮쳐.”
그래서 희우가 대기하고 있었다.
신좌 부품을 뽑아내는 마법 자체는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왕좌를 꼬여낼 다른 신좌 부품만 있다면 문제없다.
그저 왕좌를 분석할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오래지 않아 만들어낼 것이다.
본래는 그러기 위해 마왕과 충분한 친분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에는 아마도 희우에게 머무는 행운의 도움으로 그 과정이 극적으로 단축되었다.
게임 시절의 지옥 엔딩에 대한 분기는 여러 가지라고 한다.
왕좌가 신좌가 되기 위해서는 6개의 신좌 부품이 더 필요하다.
그렇기에 왕좌들은 서로를 모두 잡아먹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지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가져온 6개의 신좌 부품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왕좌는 새로운 신좌로 거듭난다.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다만 지옥은 더더욱 격렬한 전쟁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미 신이 된 좌가 있다면 다른 여섯 개의 좌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다르게는 지옥의 신좌 부품을 모두 거두어들여 일곱 왕좌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옥은 평화로워진다. 악마들 중 일부는 왕국과 교류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왕국이라는 공간이 조금 더 확장되는 효과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왕좌를 정복한 지옥의 진정한 왕을 만든다.
유일한 왕이자 새로운 신이 탄생한 지옥은 곧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왕국으로의 공격이다.
이건 왕국을 한번 쓸어버리려고 할 때, 귀찮은 NPC들을 평판에 문제없이 지워 버리려고 할 때 쓰는 방식인 모양이다.
그 경우는 [메인 던전]의 침공보다는 약하기에 보통을 잘 진압되는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그 마지막은 가능성이 없다는 듯하다. 여신님이 강력한 억제력이 될뿐더러, 탐욕의 마왕에게 그럴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신좌로 거듭난 이상 충동질하는 욕구도 사라진다. 그 상황에서 탐욕 같은 이가 그런 악수를 둘 이유가 없다.
게임과 현실이 된 미궁의 차이점이다.
“그렇다면 지옥의 군세가 우리를 도울 수도 있겠네요?”
“맞아. 탐욕이 원한다면 말이지.”
동시에 두 번째 엔딩처럼, 지옥이 진정한 의미로 왕국의 일부가 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잘만 풀리면 그렇겠군요.”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여신님을 해방시키는 거니까 거기까지만 하고 그 뒤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자고.”
합리적인 사고였다.
희우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신좌 부품의 존재를 느낀 탐욕의 왕좌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왕좌 자체가 거대하고 뒤틀린 어떤 괴물이 되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희우는 지금 왕좌가 위치한 곳 바로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존재감을 최대한 죽이고 티가 나지 않도록,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괴물로서 일어난 왕좌가 보인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몸이 실체를 이루고, 그 실체는 온통 뒤틀린 근육과 살점의 끔찍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희우는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하지만 네가 이걸 못할 수도 있어. 대충 이렇게 생겼어. 괜찮겠어?”
“으으으윽, 할게요.”
“눈 가리고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연습해 볼래?”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사악한 살점 덩어리 몸이 척척 조립되어간다.
“노리는 건, 마지막 한순간이야. 아주 잠깐 부품이 드러날 거거든? 생긴 건 대충 이래.”
시야를 의도적으로 좁힌다. 역류하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최대한 죽이려고 한다.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블랑쉐가 할 수도 있으니까.”
“천사가 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면서요?”
“전투 없이 깔끔하게 제압할 수 있지.”
“그럼 할게요.”
일단 스킬을 가동한다.
[신성한 진노]
쌍검을 드는 순간 암습 보정은 하락한다.
단지 단검 하나에 가장 강력한 신성계열 인챈트를 켜고.
그 신성한 힘에 의해 왕좌가 이쪽을 눈치채기 직전의 찰나.
몸을 떨어뜨린다.
으깨진 살점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시선은 한곳으로만 고정한다.
본래 왕좌의 몸체였던 부분이 점점 괴물의 몸 위로 올라가고 머리로서 형성되기 직전.
단 한순간.
왕좌의 내부가 열리며 신좌 부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스킬은 쓰지 않았다. 암습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러 내구도를 한계까지 소모시킨 아다만타이드 단검을 가져왔다.
소리 없는 기합성.
작렬하는 신성한 불꽃.
신좌가 되지 못한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일그러진 살점이 몸에 달라붙는다.
희우는 찌른 그대로 비틀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기가 산산조각 나 흩어진다. 완벽한 암습 판정에 더해 무기 파손 크리티컬까지 더해진다.
신성한 불꽃이 터져 나가며 닫히려던 왕좌의 내부를 더 크게 벌렸다.
손을 뻗는다.
검은 톱니를 잡고.
잡아 뜯었다.
우드드득.
살점과 근육과 뼈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단검을 꺼내 벤다. 베고 또 벤다.
괴물이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자 중심이 흐트러진다.
이번엔 반대로 왕좌가 열리려고 했다. 희우는 촉수 같은 것이 뻗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지금!”
아래에서 날카로운 명령과 함께 마법이 뻗어왔다.
빛의 사슬이 뻗어 나와 괴물의 마지막 저항을 봉쇄했다.
희우는 마지막으로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날개마저 펴고 뒤편으로 가속한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 힘줄이 끊어졌다.
희우는 그대로 그것을 집어 던졌다.
그러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몸에 힘이 빠져서다.
미아가 얼른 달려와서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희우는 숨을 몰아쉬었다. 몇 가지 플래시백 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던 학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수련이 필요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가문도 당연하게 여기고, 세상도 당연하게 여기던 어떤 소녀의 어린 시절.
그리고 누군가가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괜찮아?”
“으으응, 좋아요. 헤헤.”
“다행이네.”
* * *
희우는 그대로 기절했다.
이게 성격이 태그로 달렸을 정도의 NPC라는 것은 진단명이 나오는 수준의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블랑쉐가 하는 편이 더 좋아보였지만 본인이 극복 의사를 보이니 맡겨보았다만.
아무래도 이러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대체할 인력이 있는데 고생할 필요는 없다.
“다음부턴 안 시켜야겠다.”
“맞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요.”
미아도 강하게 동의했다.
레베카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방금 그 괴물 이렇게 한 방에 처리 안 하면 얼마나 강해?”
“6천렙 정도.”
“으윽. 세상에.”
이길 만은 한 정도의 레벨이지만 쉽지는 않았을 거다.
대기하고 있던 전사들이 뛰어 들어온다.
“오! 성공했나 보군!”
아서가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엑스칼리버다. 그 정도는 있어야 이길 만했을 테니까.
“그럼, 이제 탐욕의 마왕이 어떤 상태인지 보고 빠르게 여신님을 다시 이 세상으로 불러오도록 하죠.”
다들 기대하는 눈치였다. 특히 전사들이 그랬다.
전쟁의 신조차도 인정하는 이 왕국 최강의 전사란 어떤 모습일 것인가.
아서마저 기대로 부풀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에길은 거의 산타클로스를 믿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가장 기대하고 있어야 할 여신님이 조용하다.
“저기요? 여신님?”
한참 지나고 나서야 기어들어 갈 것 같은 신언이 내려왔다.
「학, 힉. 헥. 어떡해. 나 너무 긴장되는 거 같아. 거울 좀 보고 올게.」
미치겠네.
앗, 아닙니다.
그래. 신좌는 사람을 강제로 히키코모리로 만드는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