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378화
메인 던전 - Lv.7516 [빛과 어둠의 경계]
희우는 당연히 우리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낯선 것도 아니다.
언제나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아이가 차분하게 걸어 다니게 된 정도의 감상에 불과하다.
물론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파티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뭐라고 말을 꺼내는 사람도 없다.
아서와 에길은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으며, 제니는 눈을 열심히 굴리다가 입 다무는 것을 택했다.
사소한 문제라면 블랑쉐였다.
처음의 블랑쉐는 큰 의문을 가지는 듯해 보였다.
“저 녀석 왜 저러나?”
단도직입 그 자체인 블랑쉐의 행동 양식에서 본인에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칭찬받을 일이었다.
“그게 사실은…….”
그게 사실을, 정말로 누군가의 비밀에 대하여 말할 때 자주 활용되는 서두다.
블랑쉐는 얌전히 경청하더니 말했다.
“이 파티에는 멀쩡한 사람이 없군.”
“아니, 왜? 나는 멀쩡하잖아.”
블랑쉐는 그대로 경멸하는 눈빛으로 날 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니다. 다들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 유배자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불안한 이들이 많군.”
“더 심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많지.”
“맞아. 헨리만 하더라도 그렇지.”
사실이다. 유배자들 중 미친 사람이 많은 것은 이미 그럴 만한 환경에서 온 경우가 많아서다.
유배자가 되는 것에 법칙성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기구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비율이 아주 높다는 것은 확실하다.
당장 우리 파티원들 사이에서도 내가 가장 평범할 정도다.
나는 그냥 게임하다가 눈을 떠보니 여기였단 말이다.
“하지만 각자에겐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고민이지만 그래도 납득은 할 수 있군.”
“오…….”
블랑쉐가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발언을 했기에 나는 눈만 끔벅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블랑쉐가 피식 웃었다.
“내 아비는 죽어 사라졌다. 나에겐 책임질 부하이자 여동생들이 생겼지. 살아남은 시티즌의 흔적은 더 많았다. 안 그런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군.”
“네게는 감사하고 있다.”
블랑쉐가 고개를 끄덕인다.
“리더.”
그녀는 그러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 보면 이번 회차에서 블랑쉐에게 그렇게 리더라 불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반년은 긴 시간이다.
사람이 바뀐다면 그럴 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라고 각자에게 자리를 주었다.
음, 뭐. 알아서 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의도했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다. 내 코가 석 자니까.
어쨌건 모두가 그렇게 된 것이며 희우도 그렇게 된 것이리라.
* * *
노골적으로 말해서 이전의 희우가 취하던, 그리고 연기하던 행동양식에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침없이 일을 저지른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선을 자주 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 파티, 그리고 희우에게는 그렇게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미연에 차단할 수단이 있었다.
힘이 있다면 대체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곳이 미궁이다.
희우에게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정말요?! 진짜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요?”
“나는 아니야. 하지만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희우는 무너져 내렸다.
뭐 마음이 무너졌다는 둥의 거창한 것보다는 자신의 과거를, 그것도 바로 며칠 전까지 라이브였던 꿈속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물리적으로 엎어졌다.
발에 차인 이불이 하늘 높이 치솟는다.
“죽고 싶어…….”
희우는 조심스럽게 다시 일상을 시작했다.
그 일상이라 함은 그저 지내는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제외한 파티원들은 정기적으로 파티 플레이를 했다.
추가적인 레벨링의 이유도 있으나 감각을 무디지 않게 하려는 것이 제일 크다.
희우는 그곳에서 리더다.
“죽고 싶어…….”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일상에 계속해서 절망한 것도 희우 본인이다.
하루가 지나자 눈가에 눈물방울을 매달고 달려왔다.
“저 왜 그랬을까요?”
“하지만 그 덕에 다들 위안을 얻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그러면 전 정말로 죽어버릴 거예요. 아아아, 광대였잖아.”
이어서 비명 같은 신음을 흘린다.
과장 없이 온몸으로 절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부끄러운 과거 같은 식으로 취급되고 있는 모양이다.
“진짜로 그냥 왠지 그렇게 하니까 다들 좋아하고, 좋다 그래서…….”
“그러다 보니 기세에 몸을 맡긴 채, 그걸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부끄러워서 죽을 거예요. 진짜로 죽을 거야!”
자기 암시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다.
하니까 주변에서 좋아하고, 그러니까 그대로 유지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진짜 자신이 남지 않았다고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꿈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오빠한테 그런 말 하는 게 아니었어…….”
“했던 말 그대로 돌려받는구나.”
“죽여줘…….”
이상적인 자신을 꿈에 그리는 것 자체야 뭐, 꿈에서는 자주 하는 일이지.
그런데 현실에서는 보통은 안 한다.
“그치만, 학교 가기 싫어서 우울하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차라리 어디 이세계 전이라도 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했는데!”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억울해요!”
희우는 천진난만한 아이다. 어찌 되었건 그건 변하지 않는다.
“자자, 할 수 있어. 지금까지 했던 거라고.”
“그건 맨 정신이 아니었어요! 약에 취해 있었어! 심신미약 상태야!”
“되돌릴 기회는 많았잖아?”
“하지만! 다들 그런 저를 좋아하는 거였으면 어떡하죠?”
“지금의 너도 좋아할 거야.”
“그렇겠죠?”
희우의 울상과는 별개로 사실 그렇게 많이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는 자신도 모르게 오는 것이다.
뭘 어떻게 생각하건 변화는 이미 왔다.
진짜가 되기 위해 노력한 가짜는 결국 진짜가 되는 것이다.
당장 내 앞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좀 더 부끄러움을 많이 타게 되었다는 점만 뺀다면 이전과 대단히 다를 것은 없다.
희우는 원래 이런 성격이다.
내향적인 것과 소심한 것은 다르다.
희우는 외향적이지만 소심한 것이다.
아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평범하게 자랐다면 달랐겠지.
“그래서 지금까지의 시간들이 싫었어?”
“좋았어요…….”
“그럼 노력해야지.”
“으으, 노력할게요…….”
물론 그게 아주 잘 되기만 하지는 않았다.
서브 리더는 지휘를 맡아야 하는 자리다.
당연히 어딘가 삐걱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블랑쉐가 돕는다.
위치상 후방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블랑쉐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
아서도 동참했다.
원래부터 파티의 중심을 잡는 포지션이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엉망이 되진 않았다.
희우는 자주 실패에 낙담했고, 잘하던 것을 잘하지 못하게 되었음에 분해했다.
하지만 난 이게 더 좋다고 본다.
파티 플레이에서의 오더는 일원화하되, 그럴 능력 자체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편이 더 좋다.
어찌 되었건 약간 달라진 구조의 파티 플레이도 점점 안정화되었고, 희우도 점점 울먹임이 줄어갔다.
* * *
[빛과 어둠의 경계]
이름만 들으면 거창하지만 사실 그냥 천사와 악마가 주축인 테마다.
본디라면 언제나 고정인 [심연]으로 먼저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번만큼은 이쪽을 먼저 향하기로 했다.
“천사 장비들은 심연 같은 곳에서 아주 고성능이니까요.”
“그렇군. 공략 순서도 되게 중요해지는 것인가.”
“아서는 메인 던전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보상은 아무것도 못 건져왔나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입구에서 좀 더 나아갔다가 돌아섰지. 너무 위험했으니까.”
아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어도 이 회차에서 보상이 나올 정도의 공략, 그러니까 중간보스까지 도달한 케이스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악룡이 철저하게 막아섰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네.”
“그건 또 왜 그렇지?”
“메인 던전부터는 내부의 사망자들이 망령으로 출현하기도 하거든요. 위험하죠.”
하나의 던전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수한 리셋이 반복된 가운데 저 내부에서 사망한 유배자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생전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진 망령으로서 등장한다.
유배자를 많이 삼킨 테마일수록 더 힘들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물리친다면 그들이 사망 당시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장비나 식량 등을 보급받을 수도 있다.
“보급이 제한적인가?”
“약간의 랜덤성을 가진 선형적 구조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왕국으로 귀환이 자유자재가 아니에요.”
“공간이동계 마법이나 스킬이 대부분 먹통이 되는 것은 확인했다만.”
“엄밀히 말하면 메인 던전은 다른 회차라서 그렇습니다.”
시공을 넘나들더라도 그것은 같은 세계 내에서의 이야기다.
듣고 있던 희우가 조심스럽게 끼어든다.
“그럼, 제한이 커지는 게 문제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날로 먹는 걸 방지하는 정도의 차원이지.”
레벨 디자인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렇다.
그리고 애초에 [메인 던전]이라는 단계에서부터는 조금씩 가진 것을 버려가야 한다.
클리어의 순간에는 인간이어야 하는 점 역시 그렇다.
미궁에서 얻은 것을 다시 하나씩 내려놓는다.
연방의 무한한 지원도 의미 없다.
[메인 던전]에 그 무한한 지원을 모두 들고 갈 수는 없으니까.
우리가 입장하고 나면 다른 이들의 입장은 제한적으로 해금되는 식이다.
그마저도 만능은 아니다.
왕국에서 얻은 많은 것들을 메인 던전에서는 활용할 수 없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그리고 동료.
“우선 들어갑시다. 첫 번째 귀환까지는 무사히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공략에 의해 침공이 시작되는 것은 메인 던전 중반을 넘어서야 한다. 초반을 진행하는 것은 문제없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밤, 우리 파티는 제단에 제물을 바치고 리프트를 통과했다.
늘 그렇듯 몸이 부유하는 감각이 든다. 준비는 충분히 철저했다.
첫 번째 [리프트]를 찍고 돌아오는 것까지는 넉넉하다.
그리고 이제 슬슬 지겨워진 로딩 메시지에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검은 바탕 흰 글씨의 화면이 떠오르는 게 아니다.
피처럼 붉은 글씨로 경고하듯이 위압적인 문구가 떠오른다.
[당신은 미궁을 넘어서지 못한 무수한 과거의 잔해들에 진입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할 수 있으며, 당신들 또한 잔해가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십시오. 이곳에서는 어떤 곳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대신격들이 당신의 파티를 주시합니다.]
그리고 테마의 시작을 정하게 된다.
아직 누구도 발 들이지 않은 이번 테마의 시작이 어떻게 될지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
마치 회차를 새로 시작할 때 들어서게 되는 허무한 공간에 흑백의 동전 하나가 떠올랐다.
[시작을 정하십시오.]
코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튕겨 올렸다.
내가 디딘 바닥으로 동전이 떨어져 회전하기 시작한다.
뇌리에 짜릿함이 스쳐 지나간다.
언제나,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미궁에서 새로운 회차를 시작하고.
쉴 틈 없이 달리고.
왕국을 장악하거나 방치한 채로.
달리고 또 달려서.
이 로딩 메시지를 보아왔다.
이번 회차는 정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러니 그 어느 때보다도 가능성 높은 미래가 기다린다.
전원 고정 NPC급으로 구성된 이런 화려한 구성에 개개인에게도 내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왔다.
신들이라고 할지라도, 신으로 이루어진 파티라고 할지라도 지금 이 파티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미궁이여. 내가 돌아왔다.
네놈이 준비한 마지막 시련에.
메인 던전에.
구르던 코인이 멈춰 섰다.
회전하다가 한쪽 방향으로 쓰러졌다.
하얀색 면이 위다.
[천사의 장]
새하얀 불꽃이 코인에서 번져 나왔다.
불길이 공간에 옮겨 붙는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타들어간다.
그 너머로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거대한 백색 성채였다.
암운이 낀 어두운 하늘에서 그 성채만은 이상하게 빛을 받고 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거대한 도시는 먹구름 낀 주변과 다르게 홀로 맑았다.
내리쬐는 태양빛은 도시를 수호하듯 그곳에만 은총을 내린다.
그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절벽 위에 파티원들이 내려섰다.
현재 위치한 필드의 이름이 처음의 찬란한 연출과는 다른 담담한 글씨체로 떠오른다.
[천상의 도시 - 이름 없는 교회]
뒤로 돌아서자, 낡은 교회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