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00화
메인 던전 - Lv.7799 가라앉은 영광(9)
오래되고 낡았으며 심지어 뒤틀리기까지 한 도시 제어 시스템은 당연하게도 정상이 아니다.
비상시에 떨어뜨려 놓고 부상할 요량으로 나눠진 사각형의 구획들은 일부만이 부상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바닥에 남았다.
그 결과로 옛 도시 유적 상공에 펼쳐진 것은 깍두기처럼 반듯하게 썰린 정육각형들의 향연이었다.
미아는 제니의 옆에서 납작해져 있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각 구획은 충분히 거대했으며 정확히 어떤 식으로 공중에 뜨게 되었는지 한눈에 알기란 쉽지 않았다.
천장은 그 과정에서 무너졌다. 더 정확히는 무언가에 의해 뜯겨 나갔다.
공중이 탁 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미아는 마력 탐지를 걸었다.
거대한 마력의 반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제니는 다시 체렌코프광을 내뿜는 마법사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누가 봐도 건강엔 나빠 보인다.
그 반향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미아가 얼른 제니에게 탑승했다.
마력 탐지를 건다는 것은 위치가 노출되는 뜻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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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군에게는 구조신호요, 적들에게는 먹잇감의 신호다.
제니가 얼른 저공비행으로 날아든다.
본디 수로째 들어 올려져야 했을 구획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하공간 위에 있던 장치는 정상이 아니었다.
“제니 일단 위로 날아봐. 육안으로도 파악해야 할 것 같아. 우에에엑.”
다시 멀미가 시작된다.
마력을 보는 눈이 있다 한들 무수한 사물들은 결국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육안으로 보아둘 필요도 있다.
가뜩이나 전투 판단은 제니가하는 와중이다.
그렇다면 제니도 알아둬야만 한다.
“바둑판 같네요.”
“여기저기 이가 잔뜩 빠진 바둑판이네. 그냥 빈 곳이 많은 퍼즐 맞추기 같기도 하다.”
아래에 있을 때의 위치도 제각각이지만 떠오른 높이만은 수평이었다.
그렇게 이 [가라앉은 영광]이라는 필드의 환경이 오롯이 펼쳐져 있다.
바로 아래 블록에서는 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로였던 것의 잔해가 내부에 든 여러 가지들을 쏟아내어 버리는 중이다.
그 주변은 비어서 허공이 펼쳐져 있다.
사방에 높이만 수평을 맞춘 거대 주사위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 주사위들 위에 어디는 숲이 있고 다른 어디는 낡은 폐허가 있다.
조금 더 멀리 보이는 어떤 블록은 바다의 일부였던 모양인지 온통 물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다른 먼 곳은 눈이 내리는 곳도 있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기계신이 이 도시에 구현하려고 하던 자연이 제멋대로 뒤섞인 채로 펼쳐져 있다.
제니는 이 환경이 어딘가 낯익었다.
리더가 말하는 정보 중에 중요한 부분이었다.
미아와 한 세트일 것으로 상정되기에 스스로 외우진 않았으나 이런 인상적인 모습에 대해 분명히 설명을 들었다.
그 기억에 따르면.
“이거 보스전 기믹이잖아요.”
아브라 뭐시기였나 하는 것이 블록들 한가운데에 있는 [도가니]라는 지역에서 솟아나고 그것을 상대로 보스전을 하기 위한 필드다.
기계신의 일부가 폭주하여 주변의 필드가 죄다 오작동을 일으킨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게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이던가? 여기서 보스전을 하는 것은 꽤 후반의 일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미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전의 조건을 만족하지 않았어. 여기서 [아후라 마즈다]와 싸우려면 우선 성배를 채워놓고 와야 해.”
미아는 기억하고 있다.
제니와의 역할분담이기도 하지만 평범하게 기억력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아빠가 했던 말은 하나같이 머릿속에 새기는 편이다.
“지금 이렇게 장치를 가동한다면……. 로스엘이나 아빠일 거야. 그런데 이러면 보스가 나오는데. 히든 보스.”
편린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강력한 보스다.
숏컷을 뚫고 도가니에 갇힌 원본들을 구하기 전에 이렇게 만들 생각은 없었을 텐데.
미아는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었다.
“로스엘이 저질렀네.”
“으엑.”
아서와 에길, 그리고 이쪽의 제니도 상황을 파악했다.
아서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외워두는 편이었으니까.
“보스전 필드인 것 같다. 리더가 하진 않았을 테고. 아니지 리더가 했을 수도 있군. 조작법의 문제니까.”
그 말에 에길도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러면 다 공중에 떠오른 거군요. 지형에 구애받지 않고 블록 단위로만 움직일 테니까 합류하긴 더 쉽겠습니다.”
“다만, 어디에 누가 있는지 이제는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군. 도시 구조 자체가 뒤섞여 재배열되었을 테니.”
“그래도 이렇게 맵 기믹이 작동했다는 것은 누군가 통제실에 들어갔다는 것이니까 괜찮아. 맵 조작만 제대로 해준다면 문제없네.”
에길이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게 로스엘이면 어쩝니까?”
“아니길 빌어야지.”
그건 대충 재앙 비슷한 일이라고 이미 들었다.
로스엘은 고장 난 기천사고 그녀에게 정상적인 행동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아서와 에길은 그녀에게 공감할 수 있었고 탓할 생각은 없었다.
“탓하게 될 수는 있겠죠.”
제니가 불안하게 중얼거렸다.
“당장 문제는 일단 그게 아닌 것 같긴 하군.”
“그러게요. 몬스터들의 인식 범위가 미쳐 날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할 필요가 사라졌다.
이미 천지가 뒤엎어지는 도시의 부상에 제각각 자신의 자리만을 지키던 몬스터들이 사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날뛰기 시작했다.
동족들끼리는 싸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동족이 아닌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이 블록은 너무 위험해졌군.”
상층과 가깝다. [도가니]와 가깝다. 그렇다면 이 필드의 몬스터들은 상대적으로 더 고레벨이다.
보스룸의 앞을 지키는 몬스터. 꼭 그런 개념이니까.
그리고 혼란의 와중 서로 무언가를 찾아, 자극의 원인을 찾아 날뛰고 있던 뒤틀린 천사들이 벼룩처럼 온 사방을 뛰어다닌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따로 없다.
저것들 전원과 동시에 싸워서 이기려면 적어도 파티가 온전한 전력을 갖춘 후여야 한다.
아서는 이 시점부터 다른 멤버들과의 합류를 최우선 과제로 판단했다.
“일단 달려야지. 우리의 비행 속도는 저것들과 비슷하니까 쉬지만 않으면 잡혀 죽진 않을걸세.”
에길이 자신의 날개를 불안하게 더듬는다. 아서는 생각했다.
그가 마법에 적응을 못 하고 있듯이 에길은 비행에 적응을 잘 못 하고 있다.
여기서 만약에 뒤처진다면.
“제니, 에길을 부탁하지.”
제니는 무슨 말인지 곧바로 알아들었다.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뒤틀린 천사 중 하나가 이쪽을 보았다.
“전부 일단 블록 가장자리로!”
희우와 블랑쉐, 그리고 제니는 그대로 저 높은 곳까지 치솟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거의 한순간에 일어난 그 일은 지하수로 천장에 모두를 처박히게 했다.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충격 끝에 충격이 진정되었다.
물이 콸콸콸 쏟아져 나가기 시작한다.
희우는 무의식 중에 붙잡은 쥐새끼가 기절해 있었다.
“이 녀석 사실 되게 약할지도?”
블랑쉐가 이마를 문지르며 옆을 가리켰다.
제니가 엎어져 있다.
“음. 우리가 튼튼한가?”
블랑쉐가 뺨을 철썩철썩 때리자 볼이 빨개진 제니가 어질어질한 눈으로 고개를 든다.
“으아아, 어떻게 된 거죠?”
“모르겠는데. 블랑쉐 언니 마력 탐지 한번 때리죠. 상황 파악이 어그로 안 끄는 것보다 중요해 보이는데.”
쓸데없이 멋진 포즈와 손동작으로 손가락이 딱하고 튀겨진다.
이블이라는 종족의 특성인 막대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공중에 떠버렸다.”
“그럼 물이 빠지고 있겠네요. 맵 기믹인가?”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는 게 맞겠군.”
기계신은 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무너져 가는 심연 속에서도 따로 분리하여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지형 자체를 신성이 보호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파괴하고 뚫고 올라가는 것은 거의 무리다.
“그럼 다시 저기 물 나오는 곳으로 가 봐야겠는데.”
어차피 수로 내부는 조각나서 상공에 들려 올라갔다.
바깥으로 나가서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두 천사와 한 악마는 들어왔던 길로 도로 빠져나갔다.
내부에 있던 대량의 물은 아직도 쏟아지는 중이었고 폭포수에서 튕겨져 나오듯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긴 블록 아래쪽인가 보네.”
적당히 찌그러졌지만 정육면체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는 블록의 가장자리였다.
위치는 상당히 아래쪽. 그렇다면 블록 위로 올라가는 편이 맞다.
이렇게 맵 기믹이 작동한 후라면 지하는 제대로 된 필드가 아니다.
저 안쪽에서 쥐들이 우왕좌왕하는 듯한 소리도 들리고 있는 참이다.
좁은 곳에 있으면 환경의 격변에 미쳐 날뛰는 몬스터들의 밥이 되기 좋다.
“상공으로 올라갈게요. 벽에 바짝 붙어서 가야 하는 거 잊지 마시고.”
희우는 기억하고 있다. 만약 여기서 비행이 가능하다고 함부로 자유비행을 하면…….
때마침 날개가 기형인 뒤틀린 기천사 하나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무엇에 튕겨 나갔는지는 모르지만 멀리멀리 날아가고 있다.
정상이 아닌 날개를 펼치고 자세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블록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끼이이이이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훨씬 더 거대한 괴조와도 같은 천사가 지나가면서 뒤틀린 천사를 낚아챘다.
처음 발 들였을 때 상공을 맴돌던 괴물들이다.
이제는 이미 이 지형의 고도가 너무 높다. 벗어나면 저것들에게 잡아먹힌다.
싸워서 못 이기냐면 그건 아니겠지만.
끼이이이이
끼에에에
괴이한 소리와 함께 갑작스레 떠오른 지형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들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와, 진짜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네.”
오빠에게 듣기로는 개개의 레벨이 5천 이상이라고 했다. 거대 괴수 보정도 있을 테니 스펙은 레벨보다 더 높으리라.
“기계신은 뭘 유지하고 싶었던 걸까요.”
제니가 중얼거린다.
그 블랑쉐가 그 말을 받았다.
“그 쥐새끼도 기계신의 일부인 성배지만, 그래도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나. 아마 이 세계를 유지하려는 것 자체가 목적이겠지. 자기가 기억하던 모습대로 말이야.”
“본래는 신좌였던 것이라고 하니……. 뭔가 납득이 되기도 하고.”
제니의 생각에도 왕국의 신들은 어쨌건 왕국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것이 꼭 유배자 출신인 신들의 의지는 아닐 것이다.
신좌마다 배정된 성격에 휘둘리는 신들도 많은 것을 보면 신좌 자체가, 나아가 미궁이 유지를 원하는 것이리라.
희우가 정리했다.
“이 테마는 다들 이 끝장난 세상을 어떤 식으로건 바꾸려고 하다가 큰일 나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블록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섵불리 초음속을 내기에는 바로 근방을 날고 있는 괴조들을 자극할 것 같기에 속도를 늦춘 탓도 있다.
하지만 이 자체가 너무 거대하다. 지하수로는 원래 도시의 설계보다 더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었고, 도시 중심부는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있다.
세상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희우는 문득 아래를 보았다.
대지들이 제멋대로 떠올라 구멍이 숭숭난 아래는 더 이상 처음 들어왔을 때의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다.
얼핏이라도 아름답던 것들이 이리저리 뒤틀려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저기도 파밍할 거 엄청 많았을 건데.”
이 맵 기믹은 작동시키면 돌이킬 수 없다.
괴조를 다 정리하면 내려가서 쓸어담을 수 있을까?
희우는 바깥에서 게임을 하면 맵을 싹싹 핥고 다니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파밍하여 쌓아두는 것 자체가 즐거운 타입으로 마지막까지 엘릭서는 인벤토리 한구석에 들어 있는 게 보통.
“으으, 이건 게임이 아니야. 정신 차려.”
제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서브 리더 요즘 점점 리더 닮아가는 거 알아요?”
“응? 칭찬이야? 고마워.”
“칭찬 아닌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얼른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수로 입구의 위였던 만큼 시가지로서는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위치다.
당연히 공중에 떠오른 수많은 블록들 중에서도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있었다.
“오, 뭐야. 이쪽에 있었나? 한참 찾아다니고 있었네.”
“앗!”
“오, 리더.”
조금 전에 날아갔던 뒤틀린 천사는 오빠의 짓이었나 보다.
근처에 뒤틀린 천사가 둘 더 쓰러져 있다.
희우는 팔을 벌리고 달려가다가 멈칫했고, 그대로 달려가서 끌어안았다.
레바테인이 없었다.
아티팩트는 복제되지 않는다.
‘큰일인걸.’
그래도 가짜 오빠는 진짜처럼 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나쁘지 않아서 더 큰일인걸.’
오빠가 여럿인 건 좋은 일이 아닐까?
“어, 그러니까 이쪽에 아서와 에길, 제니C가 쫓기고 있구요.”
“이쪽은 희우가 내 복제랑 접촉했는데? 위치는 특정했어.”
“미아 양은 제니A랑 같이 있어요. 저쪽은 마법사인 미아 양이 있어서 안전할 것 같아요. 복제가 저보다 세다면서요?”
“음, 스펙에 맞게 기술이 책정되니까. 그렇게 되지.”
“그럼 혹시 리더는 약해지나요?”
“맞아. 그럴걸? 공감각이나 연계 꼼수 같은 건 기계신이 모르는 거니까.”
“다행인가?”
다행스럽게도 날아오른 구획들의 위치를 조절하는 기능은 어렵게 꾸며져 있지 않았다.
지정하고 방향키를 누르면 움직인다.
단지 그 정도의 단순한 문제였다.
“맵 기믹이 발동하면 날아서는 구획 사이를 넘나들 수 없어. 우리가 옮겨줘야 해. 로스엘이 이 기능을 찾아내기 전에 파티원들을 다 만나게 해야 한다.”
직관적이기에 제니도 도울 수 있다.
내가 방향키를 조작하자 아서와 에길이 있는 상층부의 조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아는 내버려 둬도 될 것 같다.
우선 저쪽이 가장 위험하니 제일 전력이 강한 희우네 그룹과 만나게 해줘야 한다.
“왜 메인 던전 4개를 다 깬 파티가 미궁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지랄 났지?”
“네.”
로스엘은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블록 몇 개가 움직이고 있다.
계속 지켜보았다.
“혹시 나도 움직일 수 있나?”
인터페이스가 아주 직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