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05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4)
도핑을 비롯한 여러 소모품은 결국 미궁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이 왜 존재하겠는가?
미궁의 모든 것에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훌륭한 유배자의 태도가.
샘을 발견한다면 무한한 회복과 더불어 무한한 도핑이 가능함에 기뻐하고 그것을 악착같이 활용해야한다.
고위종족의 메리트는 그곳에도 존재한다.
그들 자신의 피가 최상급의 도핑 재료가 되니까.
기천사의 피는 일반적인 생물의 피와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어쨌든 훌륭한 도핑제로 작용했다.
제니는 자신의 몸이 너무 빨라졌다고 느꼈다.
제대로 어떻게 제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구석에 스쳤다.
그녀는 대부분의 경우 파티에서 1인분의 전투원이 되지 못했다.
스펙은 되더라도 기량에서 부족하다. 연습을 하더라도 타고난 살인 병기들을 따라잡는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제니는 왕국의 영웅이었으며 파티 오르골의 일원이자, 당당히 메인 던전에 도전하는 도전자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다.
이유는 모르지만 몸이 마음먹은대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
이전 같았으면 몰랐을 요령들도 어쩐지 자연스럽게 몸에 익는다.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그런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제니는 더 빨라진 속도를 제어해냈다.
‘나 의외로 천사에 재능이 있었을지도?’
서브 리더가 기천사로 몸을 놀리는 것만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이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어긋날 거야.’
실제로 그랬다.
음속의 벽을 돌파한 상황에서는 약간만 반응이 느려도 위치가 휙휙 변한다.
제니는 어둠 정령의 옆을 스쳐지나간 자신이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달았다.
“아이고!”
곧바로 반전하여 되돌아간다.
제로백은 그 어떤 스포츠카보다 우월하다. 순식간에 다시 소리의 벽이 돌파된다.
속도감이 짜릿하다.
아직 [파편의 검] 지속시간이 약간 남아있다.
여기에 신성한 불길을 휘감고 저 괴물을 유인해야한다. 아서와 에길이 이미 기다리고 있으리라.
전투에서 완벽하게 1인분을 해내고 있다.
미아양이 없어도 말이다.
제니의 마음속에 자긍심이 가득 차올랐다.
“잘 제어하는군.”
“저 속도는……. 진짜 제니라면 절대로 제어하지 못하겠죠.”
“음…….”
아서는 침음을 흘리고 에길에게 손짓했다.
짧은 잡담 끝에 포지션이 잡힌다.
어둠의 대정령.
실체화된 짙은 어둠이다. 심연의 틈바구니에서 기어 올라온 기형적인 정령.
제대로 된 정령이라기보다는 제멋대로 폭주하는 원소 덩어리일 뿐이다.
심우주의 깊은 곳에서나 간혹 발견되곤 하는 귀하디귀한 존재지만 메인 던전에선 발에 채인다.
아서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발을 디딘 이곳의 위험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곧바로 서브 리더를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미아는 희우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아서가 보기엔 둘 다 손녀 같았다.
그가 만약 카멜롯에 남아 제대로 멀린과 가정을 꾸렸다면 70이 넘은 지금은 그런 손녀들이 있겠지.
“밝은 아이는 언제나 희망을 주지.”
다짐하듯 자신에게 말한다.
왕도 그러하다. 언제나 남의 앞에서 이끄는 자니까.
그러나 미궁 같은 거대한 절망 앞에서는 아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걸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대단한 일인지.”
꿈을 꾸고 있었다며, 시무룩해하지만 결국 해내는 것을 보면 거짓이 아니다.
도리어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져 밸런스가 잘 맞는다.
만약 리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서는 서브 리더인 희우에게 리더를 맡길 것이다.
그는 너무 늙었고, 너무 현실적이었다.
그런 이는 왕이 될 수 없다.
카멜롯으로 그저 돌아갔다면, 아마 그는 왕으로서 남지 못했을 것이다.
이 파티에 감사하며, 이 미궁에 감사한다.
그는 돌아가서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제니! 잘했다!”
날아든 고양이 천사가 제 속도를 주체 못하고 아서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며 제 검을 하나 떨어트리고 간다.
떨어뜨린다곤 해도 엄청난 속도라 날아드는 공격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풍압 속에 눈을 부릅뜨며 아서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었다.
판정에 대한 실험.
물론 이미 리더가 다 알던 것이지만, 실전 투입을 위해 연습하며 다시 한 번 검증된 사항들이다.
어째서 제니가 그렇게 좋은 스킬들을 다 몰아서 가지게 되었는가?
그냥 아서나 에길, 블랑쉐나 서브 리더가 가지는게 더 좋지 않은가?
밸런스가 중요하다곤 하더라도 제니에게 그런 역할을 꼭 줘야하는가?
억지가 아닌가?
침공 당시 내색은 않았으나 이것은 아서도 에길도 가져본 의문이었다.
그 이유는 왕국을 지킨 후에 알게 되었었다.
이 연계는 마스터리의 판전 범위에서부터 시작한다.
대검은 무엇인가?
커다란 검이다.
단검은 무엇인가?
작은 검이다.
미궁은 예외적으로 대검과 단검에 마스터리를 따로 두고 있다.
쌍검조차도 그저 검 마스터리임에도 그러하다.
이것은 검 종류 무기에 고정 아티팩트가 많이 포진해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검 자체의 범용성 때문이기도 하다.
게임 적으로 말하자면 밸런스를 위해서.
하지만 결국 검과 대검과 단검은 같은 무기다.
그럼에도 밸런스를 위해 나뉘었다는 것은 작위적인 구분이다.
애초에 애매한 것이니까.
이 말인즉, 미궁의 판정에도 애매모호함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서는 제니의 검을 들었다.
[파편의 무기]는 지속형 버프 스킬이다.
그 매개는 무기이며 사용자 본인이 아니다.
그래서 걸린 무기를 남에게 잠깐 넘기더라도 그 효과는 남아있다.
물론 붙어있던 [신성한 분노]는 꺼졌다.
현재 데빌인 아서가 신성한 무기를 쓰는 것이 더 우습긴 하다.
[파편의 무기]가 사라져간다.
기나긴 대검.
그렇다.
이것은 아주 잠깐 사라지기 직전까지 검인 동시에 대검이다.
두 마스터리를 모두 적용받는다.
제니의 무기는 이런 연계만을 위해 그립이 길게 만들어져있다.
아서가 양손검으로서 활용할 수 있도록.
거대한 검신을 쥐고.
[파편의 무기]가 부여하고 있는 대검 판정이 남아있는 찰나에.
유니크 액티브 [팬드래건 : 엑스칼리버]
악마임에도 빛의 성검의 기운이 제니의 검에 둘러진다.
스킬에 의해 대검이 되어있는 거대한 부위 끝까지 모두 둘러진다.
검과 방패가 PVP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째서 대다수의 전사들은 체급이 있는 무기를 선호하는가?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대형 병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편의 검]은 아주 좋은 스킬이다.
무기를 더 거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자세를 낮추고.
대지를 딛고.
아직도 들어와 있는 공감각의 속에서 최선의 리듬감으로.
유니크 액티브 [무명 : 올려치기]
유니크 액티브 [무명 : 종베기]
유니크 액티브 [무명 : 찌르기]
직전에 사용하여 아직 쿨다운 중인 횡베기만을 제외한 모든 [무형검]의 액티브가 연계 작동한다.
사고의 속도만큼이나 한순간이다.
동작이 나옴과 동시에 캔슬하며 다른 동작으로 이어간다.
초고속 카메라로 돌리더라도 칼이 미동하는 정도로만 보일 것이다.
공감각이 없다면 캐치할 수 없는 찰나의 기예.
강제적으로 동작이 이어지며 모든 힘이 한 점에 집중된다.
바로 다음 순간, 아서는 발을 내딛었다.
[초신속]
저레벨 시절 누구나 신세를 지는 [대시]의 상위호환 스킬.
레벨 4천을 가볍게 넘는 전사의 몸에서 펼쳐지자 빛살과도 같은 속도 되었다.
이것은 엑스칼리버를 뽑아들지 않은 아서가 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
번뜩이는 순간 이미 제니에게 유인당해 맹렬히 달려오던 어둠의 정령 앞으로 도달하고.
그 모든 보정의 끝에서 [무형검]에서 가장 강력한 액티브가 발휘된다.
유니크 액티브 [무명 : 난격]
서로가 서로를 향해 질주하던 운동에너지까지 더해졌다.
[파편의 무기]로 거대화된 제니의 검은 단숨에 스무 번에 가까운 빛의 참격을 적의 몸에 새겼다.
보스전에서 에길의 포지션은 방패를 들지 않는 한 언제나 최후방이다.
에길은 유니크 스킬 [천마(天魔)]를 제외한 모든 스킬셋을 예열이 필요한 종류로 맞추었다.
버프기도 같은 의미다.
모든 버프기가 공격의 순간 즉시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속공 버프기가 더 선호 받는 것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미궁에서는 당연하다.
하지만 당연히 위력은 준비시간이 필요한 것들이 더 강하다.
드라간 가라사대.
느린 것은 그만큼 더 강하다.
하지만 느려야 하는 것을 빠르게 한다면 더욱 강하다.
옳은 말이라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꽤 어려웠다.
리더조차도 에길에 관해서는 드라간의 조언을 받으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일격필살만으로 신좌에 앉은 것이나 다름없는 정신 나간 트롤이라고.
실제로 그 전직 전쟁의 신은 훌륭한 스승이긴 했다.
에길은 이 와중에도 쓴웃음을 지으며 도끼를 줄인다.
드라간이 모든 무기를 써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방이 강력한 무기는 모두 써보았다.
[푸른 닻] 역시 에길이 미리 연습을 해볼 수 있었던 무기다.
도끼는 애초에 이상한 기믹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조건이 붙으며, 그것을 만족할 경우 더 강해진다.
그런 무기군이다.
찌이이잉하고 정신이 울린다.
에길은 공감각 자체를 그리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에 접어드는 순간의 기묘한 고양감만은 마음에 들었다.
전사의 함성을 외칠 때처럼 마음에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우선은 시간이 걸리는 종류의 버프를 몸에 두른다.
[광기의 화신]
저절로 몸이 동작을 취한다.
캐스팅 모션이 존재하는 버프.
[무고한 괴물]
[사관제신]
[제천대성]
강제 모션이 존재하며 그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수 없는 종류의 버프.
지속 시간은 짧은데, 쿨다운은 긴 편이다.
고스펙으로 갈수록 찰나마저 쪼개는 마당에 느려터지다 못해 쓸게 못 되는 수준이다.
드라간과 리더만은 그런 버프들을 고평가했다.
에길의 스킬셋은 실로 기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에길이 오로지 솔로로만 미궁을 헤쳐나간다면 큰 문제가 생기겠으나, 그에게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으니까.
만능 캐릭터는 파티에 많이 필요하지 않다. 전문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할 뿐.
에길은 왕국에서 드라간 다음가는, 어찌 보면 이상 가는 단발성 물리 공격수다.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겠지.”
쿨다운을 계산하여 버프 중 일부를 남긴다.
장년의 바이킹은 이 나이 먹고 이렇게 수학을 공부하게 될줄은 몰랐다고 한탄한다.
그렇지만 에길의 마인드맵은 그 무엇보다도 딜 계산과 버프 계산이 중요하다.
“아서의 공격력이 그 정도 나올테니.”
미아의 신세를 많이 졌다.
에길은 가끔 자신이 아서보다 마법을 더 잘 다루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수학 바이킹이니까.
“딱 좋군.”
도끼에는 아직도 [신성한 분노]가 휘감겨있다.
멀리, 아서가 제니의 검을 받아들었음이 보였다.
검의 방향이 변하고 이내 무언가 번쩍했다.
괴물의 몸에 빈틈없는 실금이 그어진다.
“지금이군.”
혼잣말은 리듬을 재기 위하여 들인 습관이다.
리더처럼 그냥 속으로만 대충 굴려 때려맞추는 것은 난이도가 너무 높다.
한순간에 버프를 활성화하고.
[영웅의 기상]
[빛이여 어둠이여 - 빛]
[잠력격발]
[역류하는 하늘]
[용의 문장]
[위대한 자]
다시 한 번, 집중에 또 집중한 끝자락을 부여잡아.
유니크 액티브 [아수라파천무(阿修羅破天舞)]
허공에 유니크 액티브마저 낭비하며 그 연격의 동작 하나하나를 캔슬해 이어 붙인다.
이 액티브는 스택형이며, 스택이 쌓일수록 강해진다.
다만 에길은 아직 3스택 이상을 깃들여보지 못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1스택으로 충분하지.’
꼼수란 것은 이런 것이다.
본래 지속 딜링으로 설계되어 딜타임이 기나긴 대신 총화력이 압도적은 스킬을.
“흐읍!”
잡스킬과 연계하며 강제로 보정을 이어붙이는 방식을 통해 한 점에 모은다.
검은 기운이 모여든다.
접혀있는 한손 도끼는 이미 거대한 병기같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에길은 날개를 펼치고 높이 날아올랐다.
아서에게 무력화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어둠 정령이 반쯤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다.
에길의 공격은 피하기 쉽다.
강력하지만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파티원들이 언제나 저렇게 밥상을 차려준다.
잘 받아먹는 것은 그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격 액티브.
제일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한다.
[토르의 망치]
그리고 은사인 트롤의 괴성을 입에 담으며.
“죽어라아아아아아!”
빛 속성 버프와 동시에 아수라파천무라는 스킬 특유의 검은 기운이 동시에 뭉쳐진 괴상하리만치 거대한 도끼가 펼쳐진다.
누군가 보았다면,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으리라 느낄 것이다.
그로기에서 풀려난 암흑 정령이 고개를 든다.
시커먼 기운이 모여든다.
방어해야한다고 생명체조차 아닌 저것마저 깨닫는다.
결정화된 육체를 분해하여 힘으로 바꾼다.
맞부딪치는 순간.
숲이, 블록이, 그리고 대기가 뒤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