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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09화 (40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09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8)

블랑쉐는 표정의 변화 없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은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다.

뒤에서 지켜보며 지원을 하는 것이지 검을 들고 나설 수 없다.

처음 암습을 넣은 셋 중, 암살자 클래스를 겸하고 있는 것은 한 명 뿐이다.

그러니 그쪽의 뱀장어가 가장 큰 대미지를 입은 것은 당연했다.

최초의 일격은 그저 늘 보던 테크니컬한 베기였다.

뱀장어의 등줄기를 그대로 찢어발기는 압도적 파괴력의 암습.

의태를 잃고 폭발하듯 본래의 정령으로 돌아온다. 그 어둠 속에서 쌍수단검의 빛만은 활활 타오른다.

짙은 안개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의 검이 다시 벤다. 시야가 트이고 어둠을 폭파시킨 내려베기에서 그대로 다시 올려 벤다.

고무공 같은 탄력으로 천장을 딛고, 벽을 딛고.

어둠을 걷고 빛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블랑쉐는 사수를 겸하고 있기에 동체시력만큼은 파티 내에서 최고다.

초음속의 영역도 블랑쉐의 시선을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선명하게 보이던 천사의 인영이 흐릿해지고 점차 잔상이 된다.

* * *

* * *

리더와 제니는 그 시점에서 빠져나왔다.

각기 맡은 정령의 의태가 풀릴 만큼의 대미지를 구겨 넣는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면 아군이 휘말릴 정도의 화망에서 잠깐 벗어나 대기한다.

선제공격으로 시작하는 전투에서의 정석이다.

스펙이 올라가면서 아군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공격이 점점 줄어들었다.

적은 강해지고, 아군도 강해진다.

하지만 공격력만큼 내구력이 올라가진 않았다.

블랑쉐가 보기에도 스펙이 올라가면 전술도 변해야한다.

프렌들리 파이어로 동료를 잃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찍! 하는 새된 소리와 함께 뱀장어와 전투중이던 쥐들이 물러난다. 몇몇이 오폭된 것 같으나 별 수 없다.

블랑쉐의 시야 속에서도 흐릿한 섬광이 되어버린 천사는 이제 빛조차 아닌 무언가로 보였다.

그것은 차라리 흐릿한 잔영이다.

모든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검 하나가 날았다. 마찰열로 붉게 달아오른 아다만타이드 단검이 유성처럼 쏘아진다.

블랑쉐는 고개를 까딱하며 피했다.

열기가 귓가를 스친다.

천사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쌍수를 포기한 시점이었다.

이제 대기도 달아오른다.

천천히 달궈지는 것이 아니라 열풍에 가까운 열기가 확 하고 피어올랐다.

다른 색이 섞이기 시작했다. 과열된 날개의 붉은 빛이 보인다.

본래도 미궁에서 가장 빠른 종족인 기천사다. 그 이질적인 형태의 날개는 체내의 동력원을 활용하여 가속한다.

그 추진은 사실 온전히 전력을 내고 있지 않다. 가짜 리더가 위에서 말했듯이 기천사는 그 자체로 최고의 마력로다.

그러나 출력이 가늘고 긴 마력로다.

내장된 에너지야 어쨌건 일정 질량 이상이나 일정 속력 이상으로 가속하기는 힘들다.

거기서 필요했던 것이 기이할 정도로 예리한 초감각.

날개의 조작법에 익숙해짐을 넘어 어떻게하면 이것을 오버클럭할 수 있는가.

그런 것을 연구한 끝에 도달한 정답이다.

일종의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액티브 스킬.

시스템적 쿨다운으로부터 자유로운 힘.

인체의 근육을 연구하고 동작과 관절을 연구하듯이.

날개와 내장된 에너지를 연구하고 그것을 끌어낼 방법을 찾는다.

인체라면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연구해온 무술이나 무기술.

바깥에서 유배자들이 가지고 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종족은 어떤 식으로건 인간과는 다르다.

그 호환이 되지 않는 부분을 하나하나 느끼며 조율하고, 최선에서 다시 최선을 끌어낸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녀의 귀여운 여동생은 저런 짓을 전투 사이사이에 계속 할 수 있다.

약간의 휴식이 쿨다운이다. 몸을 식히고 날개를 식힌다.

물론 소모가 없지는 않다.

천사의 강인한 신체조차도 무리한 가동에 치명적으로 손상된다.

요컨대 포션을 탄환삼은 도핑이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용.

생명의 담보이기도 한 포션마저도 딜링으로 치환한다.

“슬슬, 지금인가.”

피잉하는 소리와 함께 폭주하던 천사의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벽을 타고 길게 그어진 마찰의 상흔이 보인다.

때맞춰 들려온다.

“저는 좀 식을 때까지 여기 있을게요!”

어디까지나 가버린 것인지 희미한 목소리지만 귀가 좋은 블랑쉐에겐 들려왔다.

옆을 보자 입을 딱 벌린 쥐새끼가 있다.

“어이. 어이.”

[앗! 넵! 알겠습니다!]

잠깐이나마 협력하는 마당에 어둠의 정령왕급이나 되는 존재들을 썩힐 이유는 없다.

좌우에 늘어선 쥐 두 마리가 입을 벌렸다.

검은 원소의 격류가 쏘아진다.

아직 채 식지 못해 일그러진 대기를 향해 짙고 짙은 광선이 그어졌다.

쥐새끼도 입을 벌렸다.

기계무덤에서 로스엘의 머리를 볶아버린 전격이 내쏘아진다.

그 폭압에 시야를 어지럽히던 열기가 다시 통째로 날아간다.

전격도 어둠도 열량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다. 마법적인 에너지가 들끓었다.

그 힘이 달아오른 대기를 밀어내고 흐릿해진 뱀장어 셋의 본모습을 밝혀낸다.

디스트로이어가 제 차례임을 알고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산산히 부서져나간 결정화된 정령의 육신이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맞춰 다시 분해된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물리공격이 지나간 자리에 그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화력이 투사되고 있다.

뱀장어였던 것들은 육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만하면 되었어. 이제 원소의 구름에 불과하니 핵을 찾아 두들겨 패면 될 거야.”

“정지!”

블랑쉐의 외침과 함께 포격이 중단되고 리더와 제니가 나선다.

이제는 비교적 평범한 검격의 시간이다.

대로라곤 해도, 스케일에 비해 그리 넓지 않았던 공간이 여파만으로 확장되었다.

운신도 편안하니 전투를 오래 지속할 필요도 없다.

선제공격에 기선을 제압당한 필드보스 3체는 그대로 쓰러졌다.

천사가 포르르 날아왔을 때는 이미 상황이 정리된 후다.

“어, 벌써 끝났어요?”

“포션 얼마나 썼어?”

“절반 정도?”

“벽 안에서 치고 달리느라 더 빨리 다리가 나갔나보네.”

“그러게요. 이거 좀 더 잘 제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위력은 충분하니까 소모를 줄이도록 노력해.”

단발 화력으로서 사용하려는 게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도 따져볼 필요는 있다.

“어지럽진 않아?”

“최근엔 괜찮아요.”

“좋아. 문제없군.”

블랑쉐는 디스트로이어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고 간식을 물려준 후, 케이지에 다시 집어넣는다.

어쩐지 쥐들이 조금 안심하는 느낌이었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이봐. 너 제니는 무섭지 않나?”

[제니요?]

제니가 에엥? 하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고양이지 않나.”

[고양……이 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요!]

“그래요! 전 고양이가 아니라구요!”

“종종 자칭을 고양이로 하던 것은……?”

“그거야. 미아양이 그걸 더 좋아하니까?”

충직하군.

블랑쉐는 어깨를 으쓱 했다.

그 이후의 일은 주로 쥐새끼가 괴로운 일이었고, 다른 이들에게는 단순 노동이었다.

“수로의 형태가 깔끔해. 이 대로의 주변만 막아버리고 저쪽에 구멍을 몇 개 뚫어주면 그대로 방출되는 에너지를 유도할 수 있을 거야.”

“과연, 신성 로켓이네요!”

공사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블랑쉐의 가상 전함, 누아르가 불을 뿜는다. 신성으로 보호받는 블록의 외벽이 그다지 오래 지나지 않고 무너져 내린다.

물론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는다.

정말 지독하게도 단단하다.

그곳을 제니가 [무오의 광휘]를 활용한 채 다듬어 파낸다.

서브 리더는 잠깐이나마 아군이었던 어둠 정령 쥐들을 대피시키고 있었고 쥐새끼는 리더에게 요령을 듣고 있다.

[아아니, 그렇다면 제가 주인공입니까?!]

“그럼! 물론이지! 너만 믿고 있다고.”

“쥐새끼 파이팅!”

욕인지 응원인지 모르겠지만 희우의 응원은 나름대로 감명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이후에 일어난 일은 그야말로 리더답게 과격하면서도 일리 있는 방식의 강행 돌파였다.

“로스엘을 믿기는 좀 힘드니까, 자력구제 해야지.”

실제로는 제어중인 것이 로스엘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지금 할 수는 없다.

희우와 블랑쉐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늘 그렇듯이 겁이 많은 편인 제니가 눈을 굴린다.

사실 제니도 이제 겁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겁이 많다면 메인 던전까지 따라오지도 않는다.

파티원들은 그것을 신중함이라고 불러주기로 했다.

신중한 제니가 말했다.

“혹시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진 않겠죠?”

“아무리 잘못되어도 반파야. 여긴 위치상 시가지 외곽이고 뒤틀림도 비교적 적은 편이니까.”

수로의 중앙대로도 곧게 뻗어있었고 위에서 본 시가지의 모양도 경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평탄한 지형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상태였다면 탑과도 같은 깎아지른 각도를 보았으리라.

“혹시 반파되면 다른 블록으로 갈아타야지. 딱, 그거야.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군요.”

[저는 아니면 말고 일 수 있는 걸까요?]

“당분간 힘을 못 쓰게 되긴 하겠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기꺼이 노력해보겠습니다요!]

희우가 오빠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쟤 힘도 빼놓으려고 하는 거죠?”

“맞아. 이미 단단히 틀어진 상황에서 성배의 짐승이 계속 아군이란 보장도 없으니까.”

“과연.”

그런 흉계 속에서 파티원들이 대피한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이미 있다.

위에는 뒤틀린 기천사들이 득실거렸지만 쥐들의 왕이 아군인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쥐새끼가 홀로 자신의 둥지였던 곳에 남아 기합 내지르기 시작했다.

[흐으으으으오오옷!]

로스엘은 대강 이곳의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조작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능숙하진 않더라도 서투른 대로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오버클럭이 천천히 끝나간다.

사고의 속도가 정상으로 되돌아오며 상황의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화면 속의 꼬물이 같은 유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곧 로스엘은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아니, 이 녀석들 왜 움직이는 거지?”

블록 위에 얌전히 있는 게 정상이지 않을까? 필드 보스급 적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로스엘 역시 유배자로서의 지식은 많이 가지고 있다.

함께 어울린 세월이 얼마인가.

그런 기준에서 제 아무리 현실이 된 미궁이더라도 최소한의 룰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완전히 불합리하기 만한 것이 아니다.

그 일관성은 적어도 보스들이 한 곳에 뭉쳐 협력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럴 여지가 있다면 그 부분은 맵의 바깥으로 잘려서 형성되는 식이다.

애초에 미궁이라는 것부터가 어떤 커다란 틀 아닌가.

그 틀을 벗어나는 일은 없는 셈이다.

“저거 커다래 보이는데. 엄청 세겠지?”

뒤틀린 기천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력한 개체들은 괴조가 되어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먹잇감을 찾아 블록들 사이를 떠돌고 있다.

그래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그게 유지되지 않았다.

괴조들이 하나 둘 착지하기 시작한다.

필드 위로.

“어어, 저런 건 원래 그냥 비행 금지 기믹이어야 하는데?”

왜 그런지는 보통 생각해보지 않게 된다.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련을 보장하기 위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 파본다면 어떤 생태계적 균형이 그것을 유지하고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래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

이 경우에는 그저 블록을 옮기는 기믹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보스에게 도달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큰일인데. 마법사가 위험해!”

이미 다른 그룹들이 어떤 식으로건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래버리니 갈 곳을 잃은 광탄이 한곳에 집중되고 있다.

작고 귀엽던 은발의 마법사와 그 마법사를 안고 날아다니는 고양이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단, 어떻게든 움직여야 해.”

로스엘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는 가운데 지도에 이변이 일어났다.

“뭐야! 저건 뭐야!”

블록 하나가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안에서 무언가 새어나오고 있다.

이내 블록의 벽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으잉?”

블록이 통째로 무너지는가.

그 걱정을 하는 찰나에 블록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스엘은 마법사를 보느라 바빠 그쪽 블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무너져 내린 구멍은 이상할 정도로 예쁜 모양으로 뚫렸다. 의도한 것처럼 말이다.

로스엘은 화면을 그쪽으로 돌렸다.

“이거 혹시…….”

혹시가 맞았다. 블록이 천천히 추진을 시작한다. 내부의 수로에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가 단단하기 그지없는 내부에서 부딪친 끝에 한쪽 방향으로 방출된다.

너무 당연하게도 그 에너지의 반작용이 추진력이 되어 블록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다른 파티원들이었다면 대충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겠으나, 로스엘은 그러지 못했다.

“지금, 뭘 하는 거야!”

바둑판식 격자 배열에 맞춰 사 방향으로만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다.

하나가 완전히 이탈하여 대각선으로 가속하기 시작한다.

[아후라 마즈다]가 있는 장소를 향해서.

로스엘은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게 유배자……?”

알던 것과 많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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