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08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7)
평타란 무엇인가.
게임이 아닌 미궁에서 평타라고 말하는 것, 더 정확하게는 오빠가 평타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5초 내의 쿨다운을 가진 지속적인 화력 투사가 가능한 수단이다.
스킬이란 것들은 다양한 쿨다운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배자들이 선호하는 것은 늘 말했듯이 쿨다운이 길고 단발 위력이 강력한 것.
지속적인 교전의 위험부담을 줄이고 일격에 모든 것을 결정짓기 위한 스킬 트리다.
딜찍누, 딜로 찍어 누른다.
그게 가능해지면 변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드니까.
하지만 메인 던전은 그 자체로 이미 변수 덩어리나 다름없다.
오빠가 평타의 중요성을 그리도 강조했던 이유를 파티 플레이를 익히며 충분히 느꼈다.
딜찍누는 애초에 불가능하니 지속적인 교전을 피할 수는 없고, 그렇게 되면 단발 화력은 의미를 잃는다.
무기군의 문제도 있다.
대검과 단검, 아니 그냥 검 종류는 애초에 일격필살과는 거리가 멀다.
사수를 겸하는 블랑쉐 역시 마찬가지다. 사수는 먼 곳에서 적을 갉아먹는 형태의 클래스다.
화기 역시 그렇다.
* * *
병기창의 탄창 수급이 허락하는 한 폭딜을 퍼부을 수는 있긴 하되, 일격필살이라기에는 긴 딜링 타임을 요구받는다.
캣틀링건이라는 변칙을 탑재하여 거의 무한탄창에 가까운 화력을 손에 넣긴 했다.
그러나 디스는 일단 생물이며 성격이 대범한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고양이다.
지치면 쉬어야하고 많은 육식동물들이 그렇듯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니 결국 블랑쉐도 제한된 탄환으로 꾸준한 화력 투사를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애초에 희우와 블랑쉐, 그리고 아서 같은 종류의 기초 스탯은 다양한 면에 균형이 잡혀있기에 일격필살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것에 적합했던 것이 에길.
마침 사용하는 무기군인 도끼 역시 암습에 기대지 않고서도 일격필살의 위력을 내는 무기군이다.
기믹을 다수 탑재했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에길과 아서, 미아는 잘하고 있겠죠?”
“문제없겠지. 그 셋이 합류해있다면 화력 자체는 우리보다 좋을 걸?”
“그건 그래요.”
아서는 균형 잡힌 전사고 에길을 화력에 특화된 전사다.
미아는 전사에게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줄 수 있다.
이쪽은 밸런스 있긴 했으나 특출 난 장점은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안정성은 가장 높다.
“저쪽은 어차피 일격필살 밖에 못 노리긴 하겠다. 아서 혼자서 어그로 핑퐁 하기엔 빡셀 테니.”
“맞아. 지속력이 부족하니 의외로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어.”
블랑쉐가 마법을 메모라이즈하며 말한다.
“그래도 미아가 있다면 무사하겠지.”
사실 블랑쉐의 기초 스탯상의 지능은 그리 낮지 않다.
사고방식과 지능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왕국 기준으로 이미 상당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마법사다.
이블의 종족보정을 감안하면 손색은 있으나, 어쨌든 본인은 그렇게 주장했고 사실이긴 하였다.
“저기 보인다.”
뱀장어와 싸우고 있는 쥐떼들이 보였다.
겉보기에는 돌연변이 동물들의 대혈전이지만 실제로는 고레벨 어둠의 정령들이 싸우는 형국이다.
하나, 누가보기에도 쥐들이 밀리고 있었다.
“도와달라고 한 이유는 알겠군 저것들 다 정령왕이야.”
희우가 의문을 표한다.
“생각해보면 여기는 다양한 원소가 풍부하게 있죠? 왜 이렇게 어둠의 정령왕만 많을까요.”
“빛은 [아후라 마즈다]가 모두 가져갔기 때문이지.”
빛의 부재는 어둠이기도 하다. 관념상 그렇게 처리되는 원소의 상성.
과연, 희우는 납득했다.
요컨대 [아후라 마즈다]는 필드에 깔려있는 어둠의 정령들을 모두 합친 것만큼 강하다는 암시다.
“이 테마에 대해 좀 더 이해한 기분이네요.”
“맞아, 여긴 균형이 문제거든. 빛과 어둠은 강제로 균형이 맞을 수밖에 없는 원소야. 그러니 이곳의 전쟁이 영원한 전쟁인 것이지.”
그렇긴 했다.
이 세계의 결말은 대체로 빛과 어둠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냐에 달려있다.
파티 오르골은 이미 그냥 이 세계 자체를 닫아버리기로 계획하고 있다.
균형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진엔딩 루트 뭐 그런거인거 같은데. 시작하자마자 그걸 보고 있다니.
하지만 그마저도 틀어져가고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걱정보다는 희망이 앞선다.
어떻게든 되겠지.
단검을 뽑아서 돌린다.
흔하디 흔한 양산형이 아니라 고유 기능을 다 소모한 [아카샤의 눈]이다.
카크리쉬가 가지고 있던 심연의 성물은 이제 특수한 능력 대신 강력한 내구력과 공격력을 가진 물리적 무기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단검을 한 번 던졌다가 받았다.
별다른 의미는 없다. 멋있는 행동. 그런걸 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
블랑쉐가 캐스팅을 끝마쳤다.
오빠가 말했다.
“공격!”
평타 화력을 위해서는 무기에 거는 인챈트나 몸에 거는 버프가 중요하다.
이제 갓 천사가 된 것이나 다름없어 세팅을 정밀하게 만질 시간이 없었던 파티원들과 다르게 희우는 오랫동안 천사를 해왔다.
[아카샤의 눈]에는 [신성한 진노].
다른 쪽의 아다만타이드 단검에는 [신성한 분노].
그 검을 교차하며 상위 시너지 스킬로 바꿔낸다.
[하나님의 오른쪽]
[하나님의 왼쪽]
좌우가 묶여서 딸려 나오는 쌍수용 스킬.
[빛과 어둠의 경계]라는 테마의 보정을 받아 더 환하게 타오른다.
이제 그저 신성하고 새하얀 불길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속성은 그대로지만 거기에 조금 다른 힘이 깃든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대로 신성의 영역에 도달한 권능이 깃든다.
이것은 신벌과 같은 속성이다.
정화의 신을 믿는다면 얻을 수 있는 인챈트. 물론 그것보다는 성능이 떨어지겠지만 스킬로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 외에도 천사라는 종족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버프를 칠한다.
기본기 이외의 동작이 큰 액티브는 거의 채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계하기 힘들기에 대단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메인 던전에서 레벨업 해가며 채워나갈 예정이다.
“쌍수 단검도 이제 많이 익숙해졌네.”
13층에서 보았던 그것과 동류의 존재지만 그것만큼 많은 힘을 그러모으고 있지는 못했다.
애초에 정령왕급 존재가 이 좁은 곳에 지나치게 많다.
강하다고는 하더라도 단순히 휘두르는 힘의 규모는 비할 바가 아니다.
새삼 그때의 그 미세먼지 같은 스펙으로 카운터쳐낸 오빠의 기술적 숙련도가 감탄스럽다.
비행과 함께 파고든다. 이미 쥐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다.
하지만 뱀장어 셋은 전혀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쥐들은 퍽퍽 터져나가며 본래의 어둠으로 돌아가고 으스러지는 중이었다.
순식간에 천장에 도달했다.
대로라고는 하나, 거대한 회랑 수준에 불과하다. 버스만한 쥐들이 모여있다면 길이 막힐 수준.
이렇게 좁은 곳에서 더 높은 스펙을 가진 적과 대치하는 것은 난이도를 더욱 상승 시킨다.
희우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유틸리티에 특화된 마법의 종족, 이블인 블랑쉐가 건 버프들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뱀장어들은 아직 희우와 제니, 그리고 오빠를 눈치 채지 못했다.
각자 무언가 하나씩 검을 빛내면서 각기 하나씩을 맡았다.
마인드맵을 켜는 과정조차 생략하고 공감각 속으로 빠져든다.
세상의 흐름 하나하나가 다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뱀장어는 본질이야 어쨌건 지금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계신이 유지하는 이곳의 질서는 자연을 최대한 모방하는 형태, 그에 순응하여 정령들 역시 자연의 일부로 의태하고 있다.
저것들은 신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생물을 흉내낸다.
그것은 급소조차 동일하다는 뜻이다.
신경절이 지나가는 부분을 찾는다.
거기서부터 척수까지 뇌줄기를 따라 갈라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아직도 들키지 않았다.
희우는 천장을 박차고 그대로 내리꽂혔다.
제로백이 거의 없는 기천사의 날개가 한순간에 음속에 도달한다.
속도가 곧 힘이라는 사실은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법.
소리의 벽을 뚫고, 공기의 충돌을 이겨내며 교차한 쌍검이.
[초신속]
마지막 순간 한 번의 가속을 더 받아서 뱀장어의 등줄기를 강타했다.
각도를 맞췄다.
공감각의 예민함은 쥐와 싸우며 요동치는 뱀장어의 경로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마지막 순간의 방향 전환을 통해 그대로 갈라내었다.
그리고 손맛이 좋았다.
시원한 암습 판정.
뱀장어들이 폭발했다.
희우만 성공하지 않았다.
셋이 모두 터져나간다.
제니가 성공한 것은 복제 보정의 덕이겠으나 오빠 역시 성공함은 오빠의 대단함이리라.
뭉클 피어오르는 본래의 모습에 불길이 옮겨 붙는다.
어둠과 빛은 서로에게 상극.
“맞으면 아프겠지만!”
안 맞으면 된다.
그게 최고다.
가속한다.
스킬이 아니라 그간 쌓아온 신체능력과 요령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몸을 비틀며 움직인다.
좁은 곳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꼭 비행이 아니더라도 얼마건 거대한 적을 상대로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일종의 무아지경이었다.
공격을 방어하는 것보다 마주 공격하여 상쇄한다.
13층의 힘만 센 바보 같은 정령왕은 아니었다.
셋은 곧바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휘몰아친다. 정령왕의 힘은 아군으로도 적으로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많이 겪었다면 그만큼 익숙해진다.
가속 또 가속.
어둠은 결코 빠른 원소가 아니다.
대응하는 빛이 초신속의 공격이 가능하다면 어둠은 도리어 묵직하고 단단한 느낌.
상극인 어둠이 몸을 좀먹어가는 느낌을 견디며 양 손에 쥔 빛으로 헤쳐 나간다.
가속 또 가속.
인지하는 시간의 점점 더 짧고 촘촘해진다.
이 유적이 단단해서 다행이다. 이미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발이 천장이건 벽이건 바닥이건 어딘가에 닿았다는 사실 뿐이다.
중력은 이런 수준의 영역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시 한 번 가속.
날개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온전히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제 몸의 일부 같다.
심장이 있을 자리에 위치한 에너지 코어가 마구 날뛴다.
한 번, 더. 또 가속.
마침내 공감각의 사고 가속으로도 인지할 수 없는 세계가 다가왔다.
이제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긴 채로 검이 있어야할 곳에 있게 팔을 움직일 뿐이다.
쌍검을 사용할 수조차도 없다. 오른손에 집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가속.
공감각은 이런 초고스펙의 전투에서 더 정밀한 전투를 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 생각이 깨지는 데는 상당히 오래 걸렸다.
팟, 하고 어둠이 걷혔다.
시야가 환하게 트인다.
[아카샤의 눈]을 간신히 벽에 걸쳤다.
벽에 박힌 성물이 불쾌한 소음을 내며 긁힌다.
불똥이 아니라 거의 폭발이 일어났다.
단순히 단단하고 날카롭기만 한 무기를 특수한 기능을 가진 무기보다 좋다고 여겨야하는 이유.
새빨갛게 달아올라 손을 불태우고 있는 단검을 놓는다.
날개가 비명을 질렀다. 숨은 돌입의 순간부터 쉬지 않았다.
어차피 천사에게 산소는 필요 없지만, 그럼에도 기합이나 리듬을 위해 호흡은 조절하고 있다.
크게 심호흡하며 숨을 들이쉰다.
산소도 질소도 아닌 무언가가 마찰에 의해 불타버린 향기가 난다.
짙은 재의 향기 속에서 공감각을 빠져나왔다.
“후우우.”
위치는 수로를 빠져나가기 직전이었다. 하머트면 괴조와 싸울 뻔했다.
단검이 박힌 벽이 찢어지듯 길게 뜯겨나가있다. 연기가 피어오른다.
지나온 길의 공기도 타올라 시야를 일그러뜨린다.
병을 찾았다.
벌컥하고 들이킨다.
공감각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정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 종족의 한계까지 신체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날개에서, 몸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회복되었음에도 몸이 머금은 열기가 다시 기천사의 저항력마저 뚫고 손상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조금 있으면 나을 정도다.
“저는 좀 식을 때까지 여기 있을게요!”
멀리서 폭음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블랑쉐 언니라면 들었겠지.
아직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았다.
약 10초간은 냉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날개를 이루는 핀의 색이 변해있다.
종래에는 여기에 [오버클럭 익스텐션]을 섞음으로서 마무리하는 스킬 트리다.
1초에 4000회 정도 참격을 날릴 수 있다면 무기에 거는 인챈트가 유니크 스킬보다 더 높은 화력을 낸다.
당연한 것이다.
“쌍검으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럼 공격횟수가 지금의 1.5배 정도로 늘어난다.
지금은 너무 빨라지는 중간부터는 오른손만 사용하고 있으니까.
손으로 부채질하며 얼굴을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