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07화
메인 던전 - Lv.3796 파티 오르골(6)
계획을 들은 희우는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무한히 새로운 발상은 없다.
요컨대 로켓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질량을 움직일 수 있을까요?”
“그건 얘한테 물어봐야지.”
쥐새끼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블랑쉐까지 동반되어 몇 가지 취조에 가까운 질문을 했다.
희우가 이해한 것은 성배의 짐승이 가진 에너지가 상상 이상으로 막대하다는 것과 그걸 방출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확실히 그런 번개나 공간이동을 일으킬 정도의 힘이라면…….”
“이 녀석은 술식 같이 세련된 방식으로 그걸 하는 것도 아니야. 엄청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내고 있지. 에너지 누수가 얼마나 심각한데 그거.”
희우는 잠깐 고민한 끝에 쥐새끼를 살아있는 슈퍼 축퇴로 정도로 취급하기로 했다.
살아있으니 제어도 자유자재다. 과연 오빠가 이건 된다고 생각할 만 했다.
작전 개요는 간단했다.
이미 이 블록은 굉장히 파손되어있다.
이 블록을 띄워 고정하며 움직이는 힘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더 큰 힘을 낸다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이 단발적이라면 소용이 없기에, 그 소모를 감당할 수 없으니 지금껏 그쪽 발상은 봉인된 것이다.
“나도 해본건 아니야. 될거라고 생각하는거지.”
가짜 오빠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한다.
진짜도 꼭 이렇게 미소짓겠지.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도를 굉장히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니 여기까지 도달했겠지.
“일단 그럼 지하수로의 크기 파악부터 해야겠네요.”
“곧게 뻗어있을 확률이 높아.”
희우도 덩달아 신났다.
방금 전까지는 이 오빠를 오르골A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가짜 오빠 정도로 격상된다.
경계를 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친근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블랑쉐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 언니 역할에 심취한 이 암살자는 자신이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지하 수로로 내려간다. 광탄을 피할 수 있으니 정말로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비행이 가능한 멤버가 셋이다.
희우는 스킬을 활용하지 않으면 비행할 수 없는 오빠를 꼭 붙잡았다.
몸을 밀착시키고 뒤에서 꽉 끌어안은 형태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모습은 역시 진짜와 다른 부분이 하나도 없다.
노골적으로 가슴을 밀착시키자 은근히 의식하는 점도 똑같다.
쥐새끼는 블랑쉐가 목덜미를 붙잡았다.
디스트로이어가 고양이답게 쥐를 흥미를 보였다.
쥐새끼가 바짝 움츠러든다.
사실 쥐도 뭣도 아닌 놈이 말이야.
그나저나 진짜로 오빠가 여럿이라.
혹시 이 상태로 아군 삼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억하는 [아후라 마즈다]의 3 페이즈는 그리 쉽지 않았다.
복제 제니나 오빠들이 원군이 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
슝하고 그대로 가장자리로 뛰어내린다.
애초에 이곳으로 올라왔었다. 벽에 바짝 붙어서 저공 비행, 다행스럽게도 블록이 지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로스엘이 바쁜가?
낙하보다도 더욱 빠르게 내리꽂는다. 금방 블록의 아랫부분에 도착했다.
멀쩡한 지하를 통째로 뜯어서 들어 올렸으니 기묘한 단층이 형성되어있다.
지하수로로 쏙 들어가서 베이스 캠프를 차리려고 했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물이 없으니 단순한 던전이다.
“우선 지형 파악을 하고 준비를 하려면 뭐가 있으면 안 되니까 빠르게 길을 뚫으며 정리한다.”
[앗아아아! 누님! 기다려주십쇼!]
쥐새끼가 외쳤다.
[이곳의 쥐들이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제가 나름 존경받는 쥐거든요. 혹시 이곳에 쥐들의 왕이 있다거나 하면 물릴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오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우선 그냥 돌파한다.”
블랑쉐가 쥐새끼를 집어던지며 은신 스킬로 몸을 숨겼다.
오빠는 마법을 제니와 희우에게 걸었다.
“인식을 덜 하는 거지 안 하는 건 아니니 최대한 빠르게 돌파하자. 비행하지 말고 달려.”
“알겠습니닷.”
앞장 서는 것은 오빠와 희우 그 뒤를 제니와 블랑쉐가 바짝 따른다.
어차피 강행돌파다. 단순히 어그로를 끄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굉장한 속도로 지하 수로를 주파하는 가운데 앞의 지형을 미리 아는 것은 필수다.
서로 간섭하지 않도록 간격을 둔 두 명의 마력 탐지가 번갈아가며 앞뒤에서 터진다.
“앞에서 점프.”
쥐들이 나타났다.
그대로 뛰어 넘는다. 마력을 느끼자마자 위로 그 대상이 지나갔다.
쥐 모양의 어둠이 무언가 하기도 전이다.
“오른쪽.”
벽을 박차며 꺾는다. 제동을 하면 속도가 떨어진다.
“큰 쥐가 있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이제 모두가 익힌 테크닉이다.
희우는 천장을 딛고 사람보다 커다란 쥐 몇 마리가 뭉쳐 있는 곳 위를 달렸다.
다른 사람들도 뒤따른다.
커다란 쥐들은 눈치 채지도 못했다.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 입구중 하나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이 앞에 물소리가 큰데.”
“흠.”
마력 탐지가 되돌아온다. 오빠가 말했다.
“큰길이다. 물이 가득 차있던 대하수도일거야.”
“게엑, 더럽겠다.”
“이제 그런 거 따질 시기 아니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요.”
점점 공간이 넓어지나 싶더니 예상대로 커다란 통로가 나타났다. 아직 덜 빠져나간 물들이 어딘가로 쏟아지고 있다.
“더럽진 않네요?”
“너무 오래 되어서 오히려 맑아졌나?”
“하긴 유기물이고 뭐고 다 분해될 시간이겠죠.”
“바깥은 박테리아도 없어서 음식이 썩지도 않는단 말이지.”
“그거보단 여기가 낫네요.”
수로는 예상대로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미로처럼 얽혀있는 것은 더 안쪽으로, 이 블록에서 잘려나간 수로는 직선의 대로가 뻗어있는 가운데 사방으로 가지처럼 샛길이 갈라져있을 뿐이었다.
“쥐들의 왕이 있다면 어디 있을까?”
[일단 제 둥지로 가보지요! 갑자기 땅이 들어올려졌으니 그곳으로 가있을 확률이 높습니다요!]
“이 근처야?”
[저는 자주 쏘다니니까 둥지를 외곽에다 틀었습니다요. 여기가 이런 곳인 줄도 몰랐다구요!]
쥐새끼가 길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통로가 넓어진 만큼 더 강적들이 나타난다.
“와 저거 쥐에요? 저게 쥐들의 왕인가?”
[아닙니다! 쥐들의 왕은 저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하지만 시커멓죠!]
버스만한 쥐는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저것의 본질이 어둠 정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으로 위협적이기도 하다.
“저건 그냥 못 지나가는데.”
“내가 맡지.”
블랑쉐가 고양이를 케이지에서 꺼냈다.
특제 발주한 오리하르콘 케이지는 디스의 몸에 꼭 맞다. 좁은 곳에 끼여 느끼는 안락함이라.
고양이는 아니지만 희우도 알 것 같다. 희우는 잘 때 침대에 배게를 잔뜩 채워서 몸에 꼭 맞게 만드는 편이었다.
디스가 제 차례임을 알고 튀어나왔다.
그대로 울기 시작한다.
“역시 벽은 안 부서지네요.”
“더 세게 쳐야지.”
커다란 쥐들이 뭉클뭉클 흩어지기 시작한다.
쥐새끼가 기겁한다.
[저거 고양이라는 거 맞죠? 제 본능이 너무 큰 경고를 합니다. 고양이는 정말 무서운 생물이군요!]
“모든 고양이가 저렇지는 않아…….”
불을 뿜는 캣틀링건으로 버스만한 쥐들이 물러나자 그 사이로 마법이 작렬했다.
순간적으로 공간이 이상하게 넓어진다.
블랑쉐가 디스를 난사하며 마지막으로 그 사이를 통과했다.
희우는 입술을 핥았다.
생각보다 너무 유능한데?
공감각이나 강제 연계 같은 꼼수가 없는데다 기술적 숙련도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런데도 너무, 미궁의 틀 내에서 완벽한 사람이었던 걸까?
공간마법을 대응할 생각까지 해야 하다니.
그렇게 계속 진행해 나간다.
이제 희우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뒤편의 적이 쌓여있었다.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럼 소모를 생각해도 전력으로 벽을 깨부수고 탈출해야지.”
입체적인 지도가 그려진다. 대강의 현위치가 표기된다.
“그걸 외우고 있어요?”
“습관이야.”
버스만한 쥐 열 댓 마리가 뒤쫓아 오게 되자 저쪽대로 병목 현상이 일어난다.
뱀장어도 세 마리나 나타났다.
“와, 저거 잠깐만.”
“상대 하지 말아야해.”
[저 놈들이 왜 여기에? 주변 해자만 자기들 영역일 텐데!]
“갑자기 들리니까 일단 숨은 것 아닐까?”
필드 보스가 한군데 모여 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물이 줄어 퍼덕이고 있어 다행이다. 거대한 몸통을 넘어 그대로 달렸다.
쫓아오던 쥐들이 뱀장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오히려 좋을지도?”
“이렇게 들린다고 저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역시 뭔가 이상하네. 이젠 내가 아는게 별로 쓸모 없는게 맞겠어.”
“경우의 수에 없는 일인가요?”
“맞아. 이거 새로운데.”
오빠가 희미하게 웃는다. 어딘가 희열이 깃든 그 모습에 희우는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불굴, 이 사람을 상징해도 좋은 말이 아닐까.
[저기가 제 둥지입니다요!]
“숙여!”
[으아아앗?]
콰아아아아아앙
다들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방금 전까지 몸이 있던 곳으로 시커먼 광선이 지나갔다.
“와와와, 뭐지?!”
“죽는다! 죽어버려!”
제니가 파들파들 떠는 가운데 희우는 어딘가 방금 지나간 것이 낯익다고 느꼈다.
“아, 미아가 가끔 쏘던 거.”
“쥐들의 왕인가 본데?”
언더 그라운드 유적에서 기천사 떼를 쓸어내었던 어둠의 광선.
혹은 13층에서 어둠의 정령왕을 상대로 쏘아냈던 포격.
어떤 의미로선 순수한 원소의 격류다.
“확실히……. 쥐들의 왕이란 거 어둠의 정령왕이라고 했죠.”
“쥐 모양이라 방심했다 많이들 죽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힘이라 저항이 잘 안 먹히거든.”
[내 둥지! 무슨 짓이야! 부서졌잖아!]
위력은 확실했다. 부분적이나마 벽이 파괴될 정도였으니까.
“공사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가라!”
[제 제게 맡기십쇼!]
쥐새끼가 서둘러 달려갔다. 안쪽에서 격렬한 찍찍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토론하는 걸까요?”
“설득하고 있는 모양이야.”
“저걸 알아들어요?”
“쥐 수인 종족도 있거든. 플레이어블은 아니지만. 대강은 알 수 있지.”
진짜 쥐와 쥐 수인은 언어를 공유하는 것일까?
제니를 보았다.
“저는 디스가 하는 말 못 알아들어요. 그런 눈으로 보지 마요…….”
“뭔가 실망스러워.”
“훗.”
애오옹.
블랑쉐가 득의만만한 미소를 짓고, 디스가 가소로워하는 가운데 쥐새끼가 시커먼 쥐 두 마리와 함께 둥지에서 나왔다.
왜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샛노란 가운데 주변에 신성이 아른거리는 쥐새끼처럼 어둠이 아른거리고 있다.
저 몸은 결정화된 어둠이겠지.
[동의했습니다! 뱀장어 치우는 거만 도와준다면 협력한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오빠를 보게 된다.
“일종의 퀘스트인가?”
“이런 경우의 수 없어요?”
“듣도 보도 못한 전개야.”
하긴 지금 시도하는 일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긴 하다.
오빠가 말한다.
“녹화 켜.”
“음, 아직 쿨다운인데.”
“그럼 [은빛 섬광] 없이 해.”
“그러죠 뭐.”
유니크 스킬에 의지하는 전투는 지속력이 아쉽다.
희우도 블랑쉐도, 평타로 싸우는 법은 충분히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