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에 갇힌 고인물 413화
메인 던전 - Lv.15000 [기계신 - 아후라 마즈다](2)
엄밀히 따지면 미아가 죽음을 겪을 확률은 낮았다.
감속은 충분히 이루어졌으며, 신체의 지구력과 무관하게 물리적 방어력은 갖추어져있다.
데몬 역시 악마다.
그렇기에 더 큰 중상을 입은 것은 제니였다.
또 하나의 제니가 멍하니 서서 날개를 잃고 기절한 제니를 본다.
“저건……. 뭐죠?”
기절한 제니를 안고 있던 에길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미 도끼를 쥐고 있었다.
갑작스럽지만 새로운 제니가 이곳에 도착한 이상, 미아를 구출한 후에 곧바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야 그럴 것이, 애초부터 기계신의 하수인으로 창조된 복제다.
본인도 모르고 함께하고 있으나 이런 상황이 되면 즉시 적으로 돌변한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는 법은 없었다.
리더가 말한 경우의 수 중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제거하려고 드는 경우도 있고, 끝내는 진짜를 죽이고 본인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단 무기를 꺼내드는 것이 보통이다.
* * *
* * *
정말로 진짜 같은 기억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이건 본질적으로 제니의 모습을 한 괴물일 뿐이니까.
날아다니는 괴조와 큰 차이가 없는 존재다.
“왜……?”
기억에 혼선이 온듯한 이런 모습은 리더에게 들은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에길은 우선 도끼를 쥔 손에서 힘을 뺐다.
그것은 미아를 안고 대검을 뽑아든 아서 역시 마찬가지다.
“넋이 나갔군. 지금 제거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에길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잠깐 세상이 멈추고 이상한 메시지들이 떠오를 때 이미 느끼시지 않았습니까.”
“정해진 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
정해진 대로 하는 것이 정답도 아닐 것이다.
리더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메인 던전에서는 뭔가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그 판단의 근거는 서브 리더였고, 괴이쩍을 정도의 행운 혹은 불운에 관해서는 충분히 깨달은 바였다.
“제니. 이보게. 제니.”
“네 네. 아서.”
귀가 축 쳐져있다. 꼬리도 늘어진다.
“일단 광탄을 피해 내려가지. 내가 시간을 끌겠네.”
에길이 괜찮겠냐는 듯 보았다.
“적대적으로 보이나?”
“연기일지도요.”
“이길 수 없나?”
바이킹은 미소 지었다.
“어떻게든 해보도록 하죠.”
리더가 한 번도 직접 말한 적은 없다.
그래도 아마 그는 이러기를 바랄 것이다.
일단 광탄이 쏟아졌고, 굳이 그것을 감내하기 싫다면 아서를 내버려두고 내려가야 했다.
미아가 비틀비틀 걸었다.
에길이 다른 손에 미아를 들었다.
멀쩡한 이쪽의 제니가 멍하니 따라왔다.
에길의 옆구리에 끼워진 미아가 열심히 눈을 굴렸다.
로스엘은 환호했다.
“나이스 드라이빙!”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흥미진진하고 쫄깃쫄깃한 질주였다.
그녀의 블록도 그에 호흡을 맞춰 환상적으로 따라붙었고, 마법사와 고양이 천사는 기가 막힌 드리프트로 그 위에 탑승했다.
그녀가 이 통제실에서 뇌에서 연기가 나도록 고민하고 노력한 것 중 가장 훌륭한 성과였다.
이제 리더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로스엘은 파티에 도움이 되었노라고.
정말로 객원 파티원으로 받아달라고 해볼까?
지금 진짜 모험을 하고 있다.
심지어 성공했다.
로스엘은 싱글벙글하며 지도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지도 위에는 또 다른 블록 하나가 질주하는 중이다.
다만, 아까보다는 속도가 떨어진 것 같았다.
일단락 된 저쪽 대신 그쪽을 들여다본다.
황금빛이 찬란하게 내뿜어지던 곳의 힘이 약해졌다.
그리고 곳곳에 금이 가있었다.
“어, 그러니까. 내부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이기지 못하고 블록 자체가 망가지고 있나?”
검지와 중지로 이마를 톡톡 두드린다.
“확실히! 저 정도를 이동시키려면 내부가 못 버틸 만도 해.”
다르게 생각하면 약해진 것이 아니다.
빛이 새어나가고 있다.
온전히 진행방향으로만 추진력을 내뿜던 에너지가 갈라진 틈으로 분출중인 것이다.
“성배의 짐승이랬나? 그 녀석이 내뿜는거구나. 저렇게 강한 놈이었나.”
무의식 중에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를 가늠한다.
아무래도 지금은 못 이길 것 같다.
“힝, 내가 제일 약하네.”
이미 마음은 객원 파티원이다. 그러면 더 도움이 돼야 하는데 로스엘은 가진 것이 없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블록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거기에 새로운 광탄이 쏘아져 움직이고 있는 블록을 향하고 있었다.
저거에 맞으면 아작나는 게 아닐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건너갈 새로운 블록을 만들어 줘야한다.
“이거 완전히 제어에서 벗어났네.”
이 도시의 시스템도 저런 상황은 상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블록을 강제 이동 시킬거라고는 상상 자체를 못했던 거겠지.
다시 눌러도 무슨 짓을 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애초에 각도도 이상하다.
바둑판식 배열 내에서 홀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쏘아져나가고 있지 않나.
“그럼 근처에 있는 다른 블록을 옮겨야겠는데.”
부스터씩이나 쓸 필요는 없었다.
진행 방향이 혼자 이상하니까 주변의 블록을 이동시켜 길을 열어주고 있던 참이다.
비켜선 블록들 중 하나만 옆으로 대어주면 된다.
적절한 게 없을까 찾아본다.
괴조들이 내려가 작은 기천사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어딘가 고장 난 것들은 서로 다르게 생긴 것들을 적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그런 아비규환이 아니라 차라리 어둠 정령이 있는 쪽이 나을 것 같다.
눈을 부릅뜨고 지도 위를 훑는다.
오버클럭은 끝났지만 그래도 아까 봐둔 것들의 기억은 남아있다.
적어도 간단한 색으로 어떤 블록인지는 알게 되었다.
도심지 블록은 기본적으로 적들이 우글거린다.
자연환경 블록들은 그나마 어둠 정령들이 무언가로 의태하고 있을 뿐이다.
개중에는 저 회복의 샘이 있는 블록처럼 휴식할 수 있는 무언가도 존재할 것이다.
로스엘은 그걸 제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곤란하다. 이건 지식의 영역이다.
너무 뒤틀리고 비꼬인 탓에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애초에 여긴 도심지도 아니었다.
로스엘은 자연에 대단한 관심이 없었다.
[리프트]와 [왕국의 문]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심지에서 유배자들과 함께 온갖 서버를 여행하곤 했을 뿐이니까.
로스엘은 이래뵈도 꽤 쓸만한 용병이었다.
왕국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 이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지도를 보고 있는데 보스 주변에서 익숙한 것이 보였다.
“닫힌 리프트네.”
닫힌 이후에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다.
세상이 가라앉기 시작하며 제일 먼저 사라진 것이 저것들이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지냈다.
이곳은 이미 메인 던전.
그곳에서 리프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저쪽 세계로 돌아가는 길이다.
로스엘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동작을 빠르게 하면 어쩐지 머리회전도 빨라지는 기분이다.
“저걸 붙여주면 되겠지?”
다만, 거리가 있기는 했다.
“왕국의 문도 찾아봐야겠다. 그러면 다른 유배자들을 더 볼 수 있을거야.”
유배자 너무 좋아!
로스엘의 눈에 생기가 팍팍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번 베이스캠프는 깃발을 올리진 않았다.
어차피 서로 찾기는 글렀을 뿐더러 광탄이 다 밀어버릴 것이다.
그래도 제일 좋은 것은 포션이다.
에길은 미아와 함께 날아온 제니에게 포션을 부었다.
날개가 재생되며 기절한 제니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이쪽 제니, 에길은 편의상 전사 제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전사 파티에서 활약했으니까 그런 셈 치는 것이다.
반대로 매직 제니라고 불리게 될 제니는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몸을 굴리고 포션으로 복구되는 것은 아주 익숙한 일이다.
정신을 차리는 과정도 익숙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난 날 동안 배웠다.
전사 제니가 말했다.
“저건 저죠? 또 하나의 저. 이거 미궁의 기믹인가요? 혹시 이 맵의 기믹? 기억이 전혀 없는데. 제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요……?”
제발 그렇다고 말해달라는 눈빛이었다.
에길은 입맛을 다셨고 미아는 침묵했다.
그럴 수는 없다.
조용히 다시 도끼를 든다. 미아도 마력을 끌어올렸다.
제니가 그 동작에서 이미 깨달았다.
“제가 맵 기믹이군요.”
“본래라면 이 시점에 적이 되어야하는데 어째서인지 그렇진 않군. 제니.”
“제니라고 불러주나요?”
“물론.”
전사 제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이 진짜겠죠?”
“아니. 이쪽도 가짜다.”
“진짜는 어디 있어요?”
“모른다.”
제니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혹시 뭐 이상한 생물이거나 그런 거 아니죠? 고위 도플갱어 같은 위험한 몬스터라거나?”
실제로는 훨씬 위험하다. 저기 위에 날뛰는 괴조들과 동류니까.
에길은 그래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다. 여긴 그냥 완벽하게 복제하는 기믹이거든. 넌 제니가 맞다.”
어느 정도는 의도된 발언이기도 하다. 어차피 복제들은 이 기믹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으니 진위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인격까지 그대로 살아있는 복제기도 하고.
“몽환의 숲 같은 건가. 그래도 전 이곳을 떠날 수는 없겠네요.”
“그건 그렇지.”
상대의 태도가 차분했기에 에길은 전투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전투가 일어난다면 지금 회복 중인 제니의 목부터 베어야 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추지는 않는다. 미궁의 기믹 속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예상대로, 리더가 아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전사 제니는 깊은 심호흡을 두어 번 했다.
때맞춰 바깥에서 쿠르릉하고 광탄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서라면 무사할 것이다.
제니가 미아를 보았다.
미아도 조용히 눈을 들어 전사 제니와 마주본다.
이쪽 제니는 지금이 초면이다.
그래도 그 눈빛에 담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아양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지금 신음을 흘리기 시작한 마법 제니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전사 제니가 천천히 걸어왔다.
에길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긴장했다.
그 긴장을 느낀 전사 제니가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기묘한 상황극 같았다.
여전히 동료로 대하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전사 제니는 리더의 오랜 고뇌에 대해서, 그리고 아예 고정 NPC인 에길이나 아서에 대해 생각했다.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왕국의 제니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 그러니까.
진짜 제니 말이다.
지금의 자신은 복제다. 태어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싱싱한 새로운 몸인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다.
비로소 다른 파티원 모두가 한번씩 겪었던 일에 대해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감했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몰랐다.
제니는 의외로 이 상황에 대해서 긍정적인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생각보다 낙천적일지도 몰라.
다가서다 말고 무기를 천천히 뽑았다.
에길도 마찬가지로 도끼를 천천히 들었다.
미아의 눈에도 긴장이 서린다.
발검을 하려면 한순간에 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천천히 뽑으니까 아직도 자신을 동료로 대해주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진실이지만 믿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미궁에 괴이한 일은 너무 많다.
거기에 이런 파티와 함께라면 갑자기 네놈은 가짜라는 말을 들어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것을 배웠고 느껴왔으니까.
제니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뽑힌 검은 쌍검이 아니다.
하나를 먼저 뽑고 바닥에 떨어트렸다.
다른 것도 떨어트렸다.
한손검의 판정을 받는 몸의 장비를 모두 해체하여 바닥에 떨어트린다.
마스터리의 보정이 없다면 그녀가 갑자기 돌변하더라도 쉽게 제압될 것이다.
에길과 미아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제니는 이제 눈물이 주륵주륵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다.
성큼성큼 걸었다.
에길은 제지하지 않았다.
미아가 가까워지는 전사 제니를 올려다본다.
“저, 미아양. 한번 안아 봐도 될까요?”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처음 안아보는 거겠네요. 기억은 많지만.”
미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전사 제니는 흥하고 코를 풀었다.
그리고 기합으로 눈물을 날려버린다는 생각을 했다.
흡하고 기천사이자 고레벨 전사의 신체능력으로 눈물이 날아간다.
그리고 미아를 꼭 끌어안았다.
“저는 말이죠. 항상 제가 약한 게 불만이었어요. 그래도 제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더 강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건 나도 알아. 제니. 항상 고마웠어.”
좀 더 힘을 더 준다.
꾸욱하고 작고 여린 몸이 품안에 더 강하게 느껴진다.
가느다란 뼈와 근육.
제니가 알던 미아가 맞다. 그것 그대로다.
그렇다면 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강해지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차라리 제가 여럿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리더의 유연한 사고방식.
힘이 모자라면 물량.
그런 식으로 처리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떠올린 발상이었다.
이미 몽환의 숲의 개념 같은 것을 알아서기도 했다.
“제 꿈이 이루어졌어요.”
제니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녀의 생각이다.
그녀가 그렇다고 생각했다면 그게 사실이다.
일어난 일은 간단하다.
미아의 호위가 복사가 된다.
그거면 된 거다.
미아가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고는 살포시 마주 안아준다.
“제니는 강하구나.”
“저는 이제 단수가 아닙니다. 제니즈라고 불러주세요.”
물론 마음이란 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는다.
제니는 이를 악물었다.
결코 미궁의 수작에 놀아나지 않겠노라.
복제고 뭐고 나는 오로지 나니까.
좀 더 미래가 보였다.
여기서 승리하고, 파티원들을 떠나보내고, 평생 혼자 여기서 살아가게 될지라도.
제니는 제니다.
제니가 정했다.
진짜는 살려서 돌려보낸다.
미아를 지켜야하니까.
그리고 문득, 그 다음이 다시 떠오른다.
그래도 가끔은 파티원들이 찾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그럴 수 없다는 생각도 했다.
여길 클리어하면 그녀는 사라지겠구나.
이 세계는 무너지고 닫혀 버릴 테니까.
그리고 제니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미궁이 그렇게 많은 죽음을 겪게 했던 것은 이런 순간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소리 없이 흐느꼈다.
눈물을 참으려 했더니 콧물이 되어 나온다.
울먹이면서 말했다.
“저기 저 녀석은 제가 설득해볼게요. 아마 똑같은 생각이겠지만.”
그래도 제니즈에서는 자신이 제일 선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에길이 도끼를 쥔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