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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40화 (511/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40화

메인 던전 - Lv. 12500 달의 눈물 [가브리엘](2)

새로 진입하는 천사들을 내가 차단할 수는 있다.

공감각의 속에서 서슬이 시퍼런 감각이 놓치는 것은 없다.

아서와 에길이 어떨지는 몰라도 앞뒤를 동시에 상대하며 길을 틀어막는 거까진 가능하다.

스킬이 터져 나가며 밀어내었기에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양손에 검을 쥐고 휘두른다. 하나는 뒤의 천사를 상대하고 하나는 앞의 천사를 상대한다.

길항하는 서로의 힘을 이용할 수 있어서 약간 편리한 경우도 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 그렇게까지 좋은 상황은 아니다.

전멸하기 직전이라는 라리사의 비명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제니는 한번 쓰러진 후에도 일어서서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라리사도 전투에 합류했다.

아, 새 신부는 지켜줘야 하는데.

리온이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둠은 애초에 천사의 상극이다.

미아도 합류했기에 곧바로 거든다.

전문 마법사의 유무는 전투에서 크게 중요하다.

* * *

* * *

* * *

* * *

[마력 방벽 설치할게요!]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대신해 완전히 막아버렸다.

원래 같으면 좁은 입구를 둬야 한다. 안 그러면 벽 자체를 무너뜨리고 들어오려 할 테니까.

하지만 이미 내부에 잔뜩 들어온 이상 그렇게 몬스터를 유도할 이유도 없다.

미아가 온힘을 다해 천사들의 진입을 차단하는 동안, 멀쩡한 내가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

희우도 보조를 맞추기 시작하고 곧 아서도 합류했다.

에길은 눈치 빠르게도 내려가서 라리사와 리온의 전열이 되어주었다.

거대한 방패와 체격은 어떤 식으로건 마왕과 용사의 벙커가 되어준다.

블랑쉐도 그쪽에 합류했다.

방패를 든 상태의 에길은 가장 든든한 방벽이 된다.

실내의 천사가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한다.

언데드 천사들도 아직 조금 남아서 움직이고 있다.

겨우 한숨 돌릴까 싶을 무렵 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이제 뚫려요!]

순간적으로 마법을 그러모은다. 방벽을 유지한 채 만든 메모라이즈의 구슬들이 터져 나가며 어둠이 쏟아졌다.

들이닥치던 천사들이 휘말려 비틀거린다.

하지만 뒤에서 다시 밀어내며 몰려들어 왔다.

식인 비둘기 떼가 따로 없다.

슬슬 로스엘이 눈을 떠줘야 하는데.

로스엘, 아직 멀었어?

한 녀석의 창을 옆으로 쳐내고 그대로 찔러 베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공감각을 유지하는 게 힘들어지는 파티원도 생길 만하다.

다수와 너무 장기전을 치렀다.

좋지 않은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파티의 전문 마법사인 미아와 내가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 블랑쉐가 조금 늦게, 일단은 악마인 아서도 고개를 돌렸다.

[왔군.]

[엄청 화난 것 같은데요.]

[그건 좋은 일이야. 화나면 판단이 흐려질 테니까.]

마력이 아닌 신성.

강물을 퍼 담아 사용하는 것이 아닌 강물 그 자체가 움직이는 범람과도 같은 힘.

천천히 바깥을 잠식해 나가는 서슬 퍼런 달빛이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그리고 그 곁에서 빛나는 태양까지도.

[일단 신전을 날려 버리진 못할걸. 그러다 세피로트가 손상되면 자기들 손해니까.]

[확실히 여기까지 침투한 건 정답이었던 거 같긴 한데…….]

가브리엘에게는 날벼락이었다.

라파엘이 질책한다.

“그걸 왜 놓쳐?”

“직접 봐야 해. 쉽게 볼 놈들은 아냐.”

“강한가?”

“아니.”

“그럼 뭐가 문제지?”

가브리엘은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그녀에게는, 그리고 날 때부터 고위의 존재인 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개념이었다.

“잔재주가 많아.”

“유배자들 중에선 별종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

“정말로 뭘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느낌을 받았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문제가 있겠군.”

보고가 들어온 것은 서둘러 날아온 기천사 하인 하나에게서였다.

푸른 기사단장이 보냈다고 하며 털어놓은 것은 그 짧은 시간 사이, 불과 몇 분 만에 상층 요새가 공격받았고 역으로 점거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기사단은 뭘 했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내통이 있었나 의심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단지 서둘러 날아오르려 했을 뿐이다.

라파엘이 의구심을 보이기는 했다.

“성배를 지키지 않고 비워둬도 되나?”

“그럼 아예 가져가지.”

가브리엘이 그렇게 말했다.

불길하고 불온하다.

그 어떤 악마 군단장도 천상의 도시를 이렇게 유린하지는 못했다.

수천 년 동안 말이다.

“누가 챙겨?”

“내가 책임지고 챙길게.”

라파엘은 끄덕였다. 미카엘이 그에게 귀찮게 구는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에게 귀찮게 굴 것이다.

성배를 빼자 도시의 기능이 멈춘다.

그렇다고 해봐야 뭐 대단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천상의 도시라는 것은 단지 전쟁에 필요한 병사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수뇌부인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잠깐 일을 처리하고 돌아와 다시 가동하면 될 뿐이다.

상층 요새로 도달하자 앞부분이 주저앉은 신전이 보인다.

처참하다.

미카엘이 이미 잔뜩 노발대발할 것이 보인다.

“혼나겠는데…….”

“이미 지난 일이야. 처리나 잘하면 될 뿐이지.”

천사 병력들이 물밀 듯이 몰려 들어가고 있다.

정면이 무너졌고 통로가 빛나는 나무 한군데뿐이다.

거기로 들어가야 하나?

가브리엘은 께름칙함을 느꼈다.

본능이 경고한다. 함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오랜만에 강력하고 노련한 유배자들이 천상의 도시에 들어왔다.

그래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어차피 혼날 것이니 신전을 날려버리도록 하는 건 어때?”

“진짜 크게 혼날 건데.”

라파엘은 조금 생각하다가 결국 동의했다. 이미 갈 데까지 갔다.

“나무까지 날리면 혼날 거니 조절하자고.”

가브리엘이 완드를 들었다.

한 번 크게 돌려 흔들고 내쏘았다.

달빛이 쏘아진다.

파도의 소리가 들렸다.

[아빠? 쏘는데요?]

이 생각은 못 해봤는데.

[나무 옆으로 붙어! 이건 못 부수겠지!]

그러면서도 혹시 모르니 전력을 다해 마력을 전개한다. 쏟아지는 천사들도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우리를 향해 부딪쳐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을지라도 대천사의 일격은 두려울 것이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나무를 노리진 않은 것이 맞았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푸른 광선이 섬뜩하다.

그 뒤를 이어 찰랑거리는 달빛과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달아오른 내부도 전혀 그 액체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뚫린 구멍으로 신전이 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틈을 새로운 힘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사막이 언뜻 비춰졌다.

라파엘이다.

입에 침이 바싹바싹 마른다.

여기서 죽으면 어떡하지?

끝인데.

끝은 아니지만 끝이다.

나는 다시 1층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러면 내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편린 둘을 그냥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이다.

그러니까 따로 보스등급도 책정되어 있다.

스펙으로 논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어야만 그 등급을 부여받는다.

산달폰은 그랬기에 영락한이 붙어있었다.

영락하지 않은 자들은 전혀 다른 괴물들이다.

그렇지만 입술을 깨문다.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아직 의식이 없는 로스엘을 들고 탈출해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리더의 상이다.

침착할 수 없어도 침착하게.

희우를 한 번 보고 미아를 보고, 파티원들을 보고.

다시 고개를 제자리에 돌린다.

[저쪽이 돌입을 시작하면 즉시 로스엘 들고 튑니다.]

[어디로?]

아서의 목소리에도 숨길 수 없는 다급함이 보인다.

이미 가브리엘은 한 번 겪었다. 2 대 1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로? 일단 세계의 구멍을 찾아야겠지.

쥐새끼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아 보인다.

방전이 끝나면 힘도 잃는다. 성배는 만능이 아니다.

강력한 에너지원에 불과하다.

세피로트를 뚫는 데 많은 힘을 사용하고 라리사 뒤에 숨어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게임 속이 아니다.

가브리엘은 우리가 구멍을 통해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그냥 두지 않겠지.

몇 가지 가능성.

파티원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간다.

내가 그렇게 살아남아야 할까?

거기까지 순간적으로 몰렸을 때.

다음 공격이 날아왔다.

돌입이 아니라 더 큰 입구 확장 공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뒤바뀌었다.

세피로트라는 것이 부여하는 힘은 신의 권능과 흡사하다.

그 권능이라 함은 전쟁의 신, 혼돈의 신, 정화의 신을 비롯한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그것을 나눠가진 것이다.

훨씬 더 전투적인 권능으로 가다듬어지며 세피로트가 부여하는 힘은 보다 상징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가브리엘은 그 본체의 속성에 맞추어 달과 물을 상징한다.

라파엘은 태양과 바람이다.

그래서 그 둘의 권능이 발휘됨에 따라 변하는 세상 역시 그것을 따른다.

가브리엘의 힘이 지나간 곳은 물이 고인 달빛이 되며, 라파엘의 힘이 지나간 곳은 태양의 열기를 담은 사막의 삭풍이 된다.

하니엘로서의 로스엘이 부여받는 권능의 상징은 사랑과 별.

그 권능이 펼쳐지는 공간의 형태는 따스한 햇살과 산들바람, 싱그러운 잔디와 푸르른 신록이 있는 가운데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다.

사랑의 천사는 그녀의 영역을 ‘에덴’이라고 불렀다.

그 가운데에서 로스엘이, 아니, 하니엘이 눈을 떴다.

“안녕! 친구들! 사랑의 천사가 왔어!”

일단 신나서 내질렀다.

기천사로서의 핀 형태의 날개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하고 향긋한 향이 나는 여러 장의 날개도 생겼다.

세피로트는 어차피 제 형태를 가리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한 것.

그 좌에 앉으면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형태가 바뀐다.

빛바래고 고장 난 모습에서 생생하기 짝이 없는 왕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면 자랑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어라? 다들 반응이 왜 그래? 그리고 왜 그렇게 다쳤어?”

“와. 죽는 줄 알았네. 하니엘. 늦게 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로스엘은 정정했다.

“나 그냥 로스엘 할래!”

“네?”

“하니엘은 버린 이름이야. 사실 원해서 가진 이름도 아니고. 알겠지. 리더?”

“좋아요. 일단 빨리 라파엘을 상대해주겠어요? 그리고 에덴을 펴버려요 완전히 그냥 다 덮어버려.”

“너 내 영역 이름도 아는구나?”

“영역에 이름 붙인 게 당신뿐이잖아.”

“악마 쪽엔 더 있는데!”

“시끄러! 투정 부리지 말고 죽겠으니까 빨리!”

후후후, 요 귀염둥이 녀석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로스엘은 자신의 권능을 사방으로 뻗기 시작했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꿈결 같았다.

그래서 냉각수가, 아니, 이번에야말로 눈물이 흘렀다.

로스엘은 이 세상을 파괴할 것이다.

“……왜?”

라파엘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가브리엘도 입은 열지 않았으나 비슷한 기분이었다.

세피로트의 시스템이 처음 구축될 때. 그것은 만든 천사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이것은 결국 미궁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힘.

그리고 그것은 선주문명이라 불리던 먼 옛날의 기술로 만들어졌던 것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에서 보스를 하고 있던 천사는 같은 기술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 그들이 기계신을 통해 흉내 내어 만들어낸 기천사라거나, 카드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진 그런 기천사가 아니다.

신좌가 만들어지던 시절 그와 함께 태어나 같은 기술로 제조되고 제조 번호도 부여받은 그런 기계다.

그리고 신좌를 제아무리 비틀어 만지더라도 선주문명이 만든 핵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그러니 겉모습만 바뀌고 같은 기능을 다르게 활용하는 일의 연속일 뿐이다.

마법은 그것밖에 할 수 없었고 세상이 몰락해 가게 된 이후로는 그마저도 잊혔다.

그리고 세피로트에 앉은 기천사는.

선주문명의 유일한 생존자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길 수 없는데.”

“그 녀석이라면 확실히 그렇지. 차라리 미카엘에게 갈까?”

“도시를 버려? 좋은 생각은 아니야.”

라파엘이 패닉에서 회복되며 대답했다.

“그래 봐야 자리에서 쫓겨나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몰랐던 녀석이지. 지금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왜 저기까지 갔을까?”

가브리엘도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부터 기만이었다.

하니엘은 처음부터 저 유배자 일행에 있었다.

모든 것이 다시 자리에 앉기 위한 수작이다.

으득.

가브리엘은 옆에서 대천사의 이가 갈리는 소리를 들었다.

“온전할 리가 없지. 그랬다면 그냥 혼자 날아와서 앉았으면 되었을 거니.”

라파엘이 다짐하듯이 말한다.

“하니엘은 내가 죽인다.”

“나는 그럼 유배자들을 맡지.”

“빨리 처리하고 이쪽으로 와.”

가브리엘이 피식했다.

“역시 무서워?”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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