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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에 갇힌 고인물-458화 (42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58화

메인 던전 - Lv.17500 마술사왕 [솔로몬](1)

일이 복잡해지면 정답에 가까운 해결책은 오히려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아주 복잡한 상황도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딴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쉬운 일을 완벽하게 할 때다.

아주 어려운 난제가 있다면 그걸 해결하는 방식은 대체로, 판을 엎어버리거나 엎을 수 없더라도 그런 기세로 일을 진행해버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하는 말이 모든 계획은 시작과 동시에 죽는 다는 것과 항상 상대보다 반 발짝은 앞서 나가야한다는 것.

여기의 반 발짝 앞서나간다는 것은…….

의외로 내가 꼭 아는 곧을 디딜 필요는 없다.

어차피 뒤는 무너지고 있다.

헛다리를 짚을지언정 다리를 겁나게 놀리는 편이 생존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그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벌어졌다.

“조엘, 우리는 성배를 조금 더 찾아오도록 하죠.”

“무운을 빌겠네. 사도님들.”

표면상의 명분은 악마 측에 존재하는 기계신의 부품, 말하자면 성배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물건들을 더 찾아오겠다는 것이다.

* * *

릴리움도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이 없다면 내가 찾아올 수 있을 것이라 여길 것이며, 그렇게 확보된 성배로 내게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겠지.

그러나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미카엘과의 사이에 수립된 새로운 관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다.

우리엘이 될 천사.

혹은 될지도 모르는 천사.

유리가 우리엘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진짜로 될지는 앞으로도 모를 일이 아닌가.

“유리, 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있으면 좋겠네요.”

갑자기 붙잡고 이런 소리를 지껄여도 찌푸리는 기색 없이 공손한 것을 보면 착한 아이는 맞다.

“단지 그뿐? 뭔가 하고 싶은 건 없고?”

“음…….”

당장 알고 있는 보스급 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내가 알던 것과 달라지고 있단 것을 확인했다.

중요 인물인 우리엘의 상태를 넌지시 떠보는 정도는 해도 되겠지.

“사실 아무 생각도 없어요. 그냥 다들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구만.”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다. 기천사로서 만들어진 이들은 저런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좀 무감각하고 감정의 희박하지.

선주 문명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고위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그 부산물이 이것이고.

그렇다면 미카엘은 어쩌다보니 그 소원을 이루게 해준 셈일지도?

“좋아. 유리. 제 잘난 맛에 사는 빛의 천사가 나타나서 무슨 헛소리로 꼬여도 넘어가면 안 되는 거야. 알겠어?”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그건 맞지. 나도 그 상황에 처해서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할아버지 말을 잘 들어.”

“미카엘은 사악하고 끔찍한 존재라는 것 말이죠?”

“맞아. 분명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겠지만 그래도 거절해야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같네요.”

원래 같으면 일어나는데 이젠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미카엘은 유리에게 도달할 것이다.

나에게 그걸 묻지 않았다는 게 더 무섭다.

베데스다의 사도인 것을 뻔히 알 텐데.

여기로 올 방법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당장 미카엘을 족치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러니까 우리엘이 저쪽으로는 좀 안 넘어가면 좋겠다.

차라리 메타트론에게 붙어있는 편이 마음이 편하겠지.

“그 느끼한 놈이 뭐라고 지껄여도 반드시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사도님은 기적 같은 분이니 믿어볼게요.”

사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게 분명하지만 유리는 그렇게 대답했다.

메모리에 이런 말을 새겨놓은 것만으로도 뭐가 달라지긴 하겠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말은 어떻게도 흘러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변수를 더 추가해보자.

“가브리엘과 이야기를 좀 해보는 건 어때?”

객관적으로 가브리엘은 미카엘과 상당히 많이 반대 성향이다.

“안 그래도 이번에 제가 담당이 되었어요.”

“담당?”

“네. 돌보긴 해야 하니까요.”

흠, 조엘이 그 가브리엘의 껍데기에서 쓸모라도 찾아낸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사도들이 하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서포팅일까.

어쨌건 지금은 쓸모가 사라지긴 했다. 라파엘도 이미 없으니까 말이다.

진군하는 악마들은 우리 알 바가 아니게 되었다.

그건 미카엘이 알아서할 일이고 우리는 우리 일을 미카엘에게 토스 당했다.

“어떻게든 하려면 일단 저쪽으로 빠르게 떠나야지.”

“지옥의 성채는 어떤 곳이죠?”

악마 측으로 향하는 건 좀 더 이후의 일일거라 생각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라지엘이 메타트론의 통수를 후려갈길 때 쯤?

그런데 그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차피 그 꼴이 날거면 미리 가서 난장판을 벌이는 편이 좋다.

“변수는 제어하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나.”

“이미 끝장났지 않습니까. 이제 다 같이 미쳐 날뛰며 이 세계를 불사르는 편이 차라리 더 나을 겁니다.”

미카엘이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게 문제다.

일단은 운명공동체 비슷하게 묶였다. 주도권이 내게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미카엘은 필요하다면 언제건 미아를 제거할 수도 있다.

“뭔가 사고를 칠거라면서요? 미아에게 무슨 언질이라도 주었나요?”

“그럴 시간은 없었는데 그냥 믿는거야.”

미아는 누구를 많이 닮았다.

“저요?”

“그래. 너 2층에서 기억나냐. 오크랑 엘프 사로잡아서 둘둘 감아뒀던거.”

“오…….”

어차피 판을 가능한 많이 박살내려면 미아도 뭔가 사고를 쳐주면 된다.

리온과 라리사는 쓰기 좋은 말일 것이다.

미아가 그걸 어떻게 활용할까?

나는 전혀 모른다.

“미카엘이 머리 아프게만 되면 충분해. 달리 말하면 우리가 뭔가 해내기 전엔 미아가 안전하다는 뜻도 되니까.”

서로가 병신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에 성립하는 신뢰다.

“일단 달린다.”

피로 회복 후에 곧장 성지로 달려갔다.

지키고 있던 천사 병력들이 떨떠름하게 자리를 내준다. 책임자는 무려 은빛 기사단장이었다.

“으윽.”

단순하게 말해서 기천사 중 최강인 존재다.

스피드스터 타입은 항상 플레이어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대응이 된다면 쉽지만, 대응하기 힘든 타이밍에 핀 포인트로 찔리면 훅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잡몹 중 가장 킬 수가 높은 존재라고 하면 될까?

붉고 푸른 놈들은 비교적 정직하니까 차라리 할 만하단 말이지.

물론 지금은 적이 아니다.

다행이다.

급하니까 후다닥 물장구치고 포션 병을 챙겼다.

딱 인원수만큼 예쁘게 리젠 되어있다.

로스엘은 샘물의 맛을 그윽하게 음미했다. 유배자와 관련 된 것에서는 변태가 되어버린다.

아닌가? 평소에도 변태군.

기천사답게 단정하고 깔끔한 얼굴로 블랑쉐를 할짝거리는 건 참 거시기한 일이지.

유배자맛 난다나 뭐라나.

“이게 있어야 모험할 맛이 나지.”

“없는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이젠 마법사가 없지만 말이야.”

이걸 위해 내가 올라운더를 하지. 용사를 좀 천천히 버린건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영원한 분쟁]에는 인간 종족일 때만 발견할 수 있는 이벤트성 지역도 있다.

곧바로 출발했다.

천상의 도시에서 눈에 띄게 날아가진 않는다.

비교적 외곽부를 로스엘을 통해서 이동했다. 만능 포탈이나 다름 없는 슈퍼 기천사지.

로스엘은 그 호칭을 쓸데없이 마음에 들어한다.

슝하고 날아가자 끔찍한 참상이 보인다.

“음, 전선이 사라졌군.”

“좋은 일이죠. 산발적으로 밖에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있군요.”

바알을 위시한 악마군단장들은 곧바로 미카엘이 있는 천상의 도시로 날아간 모양이다.

거기서 지지고 볶게 냅두고 내친 김에 미카엘도 제거한다면 정말로 좋겠지만, 그럼 남는 것은 거의 온전한 악마세력 뿐이다.

하나하나를 상대하는 것과 그 모든 녀석들에게 다구리를 얻어맞는 것은 심각하게 다른 문제지.

“그나저나 이 필드 너무 쓸데없이 넓은 것 아니에요?”

“게이트부터 찾자. 물자 보급해야해. 누아르도 수리하고.”

블랑쉐가 눈을 크게 떴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군.”

지나치게 강행군이었다. 미아와 부하들은 하루 정도는 미카엘의 비호 아래에서 잘 쉴 테니까 우리도 좀 쉬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시정지를 누르고 쉬는 건 메인 던전을 공략하는 유배자들의 특권이다.

그런 거라도 없으면 이걸 어떻게 하나.

“그리고 솔로몬의 무덤도 찾아봅시다. 나헤마를 가지고 뭘 하려면 그게 제일 편하니까요.”

금전 접미를 달고 있었던 마법의 신 출신이다. 재보를 거절하는 타입도 아니며 거절할 이유도 없는 것을 가지고 가면 된다.

그리고 마술사왕 솔로몬은 인간이다.

“오빠가 인간으로 남은 이유가 그거군요.”

“안 살아있으면 좋겠는데.”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아니다.

가끔 아직 생존하고 있다.

줄여서 숨겨진 챌린지 보스.

당연하지만 편린급이다.

“아니 대체 왜죠?”

“세피로트와 클리포트를 그 양반이 만들었거든.”

“뒤지게 세겠네요. 바로 납득이 돼서 너무 화가 나는데.”

이 필드에 도착할 정도로 구르다보면 세피로트랑 클리포트 같은 걸 대충 지금은 멸망한 과거의 문명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술이 사라졌다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복선을 뿌려뒀으면 그 기술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도 등장하는 편이 옳다.

“여기 필드는 완전히 랜덤이야. 그냥 대따시만한 땅에 자기 꼴리는대로 아무렇게나 배치해둔거란 말이지.”

“악마 부대가 다가오는데.”

“숨어.”

이미 눈에 띄지 않기 위한 저공 비행중이지만 더 급격하게 내려가 구덩이 근처로 숨는다.

이미 천사가 한번 쓸려나간 전장이라 악마가 더 많지만, 아직도 잔존 천사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바알과 기타 등등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권속들이기 때문이다.

급이 맞는 놈들끼리 너무 치열하다. 수만 년간 전쟁을 하면 이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서로 증오할 뿐이다.

이 와중에 천사 악마 혼성 그룹을 만나면 참 좋아도 하겠다. 그치?

“보스보다 위험할 수도 있겠군.”

“어쩌면 전면전이 숨어들긴 더 좋을 수도 있죠. 수색해야하는 입장이니까.”

다구리는 위험하다. 보스보다 위험하다. 압도적인 수의 폭력은 정형화된 패턴 같은 것보다 대응할 수단이 적으니까.

여전히 온 사방에 빛과 어둠이 춤춘다. 불사르듯이 수 만 년간 이어온 전쟁터가 일렁인다.

적절한 깊이, 전장의 완전 중심부까지 들어오자 악마들의 비중이 아주 높아진다.

그리고 현재 우리 파티에 악마는 둘 뿐이다.

적절한 곳을 찾아 진지를 꾸린다. 들키지 않기 위한 수단은 모두가 능하다.

“아서와 블랑쉐는 악마들이 많은 방향을 수색해줘요. 적당히 둘러댈 수는 있겠죠?”

“물론이다.”

블랑쉐가 진중하게 자신감을 드러낸다. 어쨌건 미카엘을 상대로 실전을 치른 셈이니?

천사인 에길, 희우, 로스엘, 제니, 그리고 인간인 나는 헛짓거리 하지 말고 인적이 드문 곳을 수색한다.

“생각보다 챙길게 있을 겁니다. 수 만년간 처 싸워대었으면 루팅할 거도 그만큼 많거든요.”

나와 로스엘이 같은 조가 되었다. 희우는 에길과 제니를 데리고 움직일 것이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오브젝트나 랜덤 인카운터는 이미 숙지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조심해요. 게이트 발견하면 두말없이 여기로 돌아오고요.”

매 한 시간마다 다시 지금 위치로 집결하기로 한다.

“좀 지루한 작업일 수도 있는데, 그게 낫죠. 정신을 치유하도록 합시다.”

반복 작업은 정신적 피로를 감하는 효과가 있다. 무엇을 하건 지금부터 몇 시간동안 진행될 일은 앞의 일보다는 덜 스펙타클할 거다.

안도하는 파티원들을 보면 과연 라파엘과 정면 승부가 옳았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라파엘과 순수하게 싸워서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로스엘과 함께 방향을 잡고 움직인다.

생각이 문득 혼잣말로 새어나왔다.

“장비가 더 필요한데. 라파엘 장비로 잡을 수 있는 건 악마 쪽이니…….”

악마군단장 [벨페고르].

단순히 상성을 따라간다면 라파엘 무기로 제거해야할 대상이다.

금방 죽겠지만 그래도 계획은 필요하다. 차근차근 정리하며 일단 저지를 일들을 생각한다.

윤곽이 잡히고 그 안은 혼돈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이번에 해본 신은 혼돈의 신뿐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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