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498화 (46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498화

메인 던전 - Lv.17500 왕관을 쓴 거미 [바알בַּעַל](9)

바알에게 세상은 흥미다.

악마답게 내키는 대로 사는 것들 사이에서도 완전히 흥미로만 살아간다.

그리고 그의 관심사는 대체로 싸움이다.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강자다.

[이거 재밌군. 이렇게까지 억지로 죽어보는 건 처음이다.]

이러면 어떻게 되더라? 인간형이 특별히 상하진 않는다. 그건 어차피 거대한 바벨의 자식을 인간의 형태에 구겨 넣은 압축기 같은 거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진 것처럼 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마지막에 당한 것은 뭐지?

유니크 스킬이라고 불리는 것의 조화는 때때로 바벨의 자식들도 따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미궁은 그런 힘을 부여하기에 그들에게 유배자를 먹이로 내몬다.

이번 먹이는 먹이 수준이 아니다.

바알은 저 유배자 파티가 얼마나 단단히 준비를 하고 왔는지를 새삼 느낀다.

새로 합류한 저것은 그 문에서 나온 것인가?

기억을 되새겨 보면 미궁이 유배자들에게 그런 기능을 주었던 것 같긴 하다.

* * *

* * *

* * *

[이거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적재적소의 동료를 필요에 따라 끌어 쓴다고? 비겁하잖아.

물론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즐거우니 나오는 너스레일 뿐이다.

거대한 어둠이 휘몰아치는 중심에서 짧은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바알의 공격 수단은 놀라울 정도로 물리에만 치중되어 있다.

[유니크 스킬이란 것이 만능은 아니지.]

인지를 초월한 미친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면 그만한 제약이 있다.

우선 지속시간은 아주 짧았던 것 같다.

그 타이밍을 조심하면 되겠군.

공격력에 공백이 있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겠다.

사실 이렇게 본체를 드러낸 이상 중요하지 않은 공백이다.

그 틈에 자신을 처리할 능력이 있을까?

몇 초에 불과한데.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파리 잡는 것을 방해하는 정도겠지.

바알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른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뭔가 가속을 더 강렬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어떻게 한 거지?

정확히 0.7초를 고민하고 고민을 그만두었다.

어떻게 하는지, 왜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되면 되는 거다.

이 감각을 놓치지만 않으면 바알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거미는 눈을 떴다.

거미의 하반신, 인간의 상반신.

차이라면 무수히 많은 팔들.

그리고 날 때부터 들고 있었던 무수히 많은 검들.

바알의 본질은 그렇기에 검사다.

미궁은 그에게 검을 쥔 운명을 내려주었다.

무수히 많은 검을 든 거미.

그것이 바알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바알의 몸에 붙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둠이 번져 나간다.

소용돌이치며 멀리멀리 뻗어나가 나헤마가 싸웠던 전장을 뒤덮는다.

[그러고 보면 내 자리는 아니군?]

뭐 어떤가.

바알의 팔이 어둠 속으로 잠겨든다. 그 끝에 달린 거검들이 소리 없이 스며들어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펼쳐진 어둠의 땅 사이에서 창백한 형체의 검을 쥔 팔들이 솟구쳤다.

“엄청 그로테스크한데요?”

미아는 이미 제니와 함께 출발했다.

제니는 가장 강력한 액티브를 소모했고 그 쿨다운이 돌아오기까지는 별다른 역할이 없다.

미아 역시 마법사가 확보된 이 시점에서는 잠깐 빠져나가도 좋다.

모두가 동시에 힘을 모아 싸운다는 것은 얼핏 당연한 일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스펙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진 보스와의 전투는 필연적으로 무리다.

전사도 마법사도 빠르게 소모당하고 쉬는 시간이 잠깐이라도 필요하다.

하지만 1초도 너무나 긴 이런 스케일의 전장에서는 잠깐 숨 돌리는 시간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다.

다같이 화력을 투사에 보스전을 끝낸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끝없는 교대와 순환이 필요하다.

특히나 미아는 아직도 체력의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마법은 집중력의 유지가 중요하다. 휴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아와 제니는 지금 전력 외 판정을 받았기에 휴식 겸 간단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파티 오르골이 속전속결을 외치면서도 언제나 대기하는 인원이 존재하는 전술을 취하는 이유다.

제니는 미아를 안고 영역을 벗어나 날고 있었다.

가속관문을 연달아 설치하고 순간적으로 모든 속력을 초월하자 영역이 덮치기 전에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임무는 수색.

아빠는 말했다.

[기믹이 있을 거야. 우리가 해온 것들 중에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이 있지?]

지극히 게임적인, 그리고 미궁적인 유추다.

기계무덤의 캠프가 그대로 메타트론의 보스룸에 등장했다.

나헤마에서는 남겨두었던 리프트와 왕국의 문이 등장했다.

그럼 바알의 보스룸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법사는 유틸리티의 클래스.

색적은 사수와 함께 투탑을 달린다.

적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력 탐지를 연속해서 걸기 시작한다.

위에 떠 있는 쥐새끼호도 그에 호응하여 카메라를 놀린다.

따지고 보면 저 방주도 메타트론의 보스전을 치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숨겨진 보상인 셈이었을까?

바알의 보스룸은 무너진 세상의 잔해가 쌓이고 쌓여 둘러싼 벽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의 계단에서 천상의 군주가 굽어보고 있다.

미카엘이 이 전장에 끼어들 것 같지는 않다.

편을 먹진 않을 테니 차라리 그래주면 좋을 텐데.

차근차근 수색하기 시작한다.

[천리안]을 마력탐지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발동하면서 바알의 콜로세움을 꼼꼼하게 훑었다.

무언가 있다.

있어야 한다.

미궁은 1막에 나온 총을 반드시 2막에서 발사하니까.

곧, 미아는 세피로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태는 말이 아니다. 콜로세움의 모양으로 쌓여 있는 잔해의 구석에 파묻히다시피 박혀 있다.

끄트머리의 절반 정도만이 지상에 나와 있어 발견하지 못할 법도 했다.

주변에 함께 무너져 있는 것들이 천상의 도시 상층의 잔해들이란 것을 그 뒤에야 눈치챈다.

“이거 지금 쓰나요?”

제니가 묻는다. 미아는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져본 결과 이미 망가져 있다.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으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일단 더 찾아보자. 이것만 있을 리가 없어.”

발견되어야 할 것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세 번째 [왕관의 검] 사용처, 클리포트, 기근이라는 이름의 악마, 그리고 어쩌면 사탄.

생각해 보니 사탄은 발견하면 안 되는데.

그리고 미아는 곧 의외의 인물들을 발견했다.

“생각해 보니 가브리엘도 캠프에 없었죠?”

라파엘은 순순히 말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이 어디로 흐르는가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미카엘이 껍데기인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도 도리어 좋은 일이었다.

그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가브리엘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자력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연금당한 채로 그냥 그렇게 가만히 숨만 쉬며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이러면 가브리엘을 보러 갈 수 없는데.”

앉아 있던 의자와 함께 앉은 자세 그대로 심연으로 추락하면 중얼거린 말이다.

그대로 수직으로 추락하고 또 추락하며 한마디 더 했다.

“아닌가, 가브리엘이 있는 곳도 심연에 먹히고 있는 곳이라고 했군. 그럼 심연에서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심연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유배자 출신의 권속들이나 적어도 뭔가 아는 이들에게 주워들은 것이 전부다.

바벨의 자식은 날 때부터 왕국에 존재하고 그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특별히 실감도 없다.

사실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존재니까 크게 감흥이 없다.

이미 죽은 몸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로댕의 자세로 가만히 의자에서 고민하며 추락하고 또 추락했다.

어느 순간 그 추락은 멈춰 섰다.

앉아 있던 의자가 바닥에 충돌하며 산산조각 났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고 인상을 쓰는 직후 그 위로도 잔해가 잔뜩 쏟아졌다.

생매장이었다.

하지만 썩어도 대천사. 껍데기여도 고위종족.

날개로 몸을 보호하여 무사했고 악으로 깡으로 기어올랐다.

돌은 부숴 틈을 만들고 어떻게든 위로 위로.

살아야 가브리엘을 볼 것이니.

그리고 고개를 폭 내밀었다.

푸하! 하고 입에 들어간 잔해들을 뱉어내는데, 바로 눈앞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라파엘은 차라리 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어이, 거기 유배자 마법사. 가브리엘은 어디 있지? 여긴 심연인가?”

작고 어린 악마는 고양이 귀를 한 기천사에게 안긴 채로 골똘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라파엘은 자신이 너무 어려운 말을 했는가 약간 고민해야 했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애초에 저쪽이 훨씬 똑똑하지 않은가.

“어이, 내 말이 들리지 않나?”

마법사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었다. 무언가 결단한 것 같았다.

미아는 세피로트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같으면 빈자리에 어떻게 무리하면 앉을 수조차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접속하는 것조차도 고된 일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단말이 필요하다.

“우리엘은 하니엘만큼이나 강력한 존재에다가 딱히 바알에게 상성상 우위를 점할 부분도 없어.”

하지만 라파엘은 다르다. 불의 원소는 필연적으로 빛을 동반한다.

하물며 라파엘은 바람과 태양의 천사다.

태양.

그게 중요하다.

그리고 바람은 물리력을 상징하는 원소.

라파엘은 그래서 불을 사용하는 전사이며 작열하는 사막의 천사다.

미아는 제니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라파엘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상반신을 지하에서 꺼내고 있던 라파엘에게 손짓하자 잔해들이 저절로 일어나 치워진다.

라파엘은 만족스럽게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뭐냐. 유배자 마법사.”

“라파엘, 당신 바알이랑 싸워본 적이 많나요?”

“많지. 미카엘을 제외하면 내가 제일 상성이 좋았으니까.”

“이길 수 있었나요?”

“그건 무리지. 원래 우리끼리의 싸움이란 건 승패가 존재하기가 참 힘든…….”

그 뒤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확인해 준 상성 관계다.

“가브리엘은 저기 위에 있어요.”

미카엘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마법사.”

미아는 미카엘이 반짝반짝하며 바알을 지켜보고 있는 방향을 가리킨다. 빛의 천사니까 눈에도 잘 띈다.

라파엘은 그 모습을 보더니 납득했다.

“저놈이라면 왠지 가브리엘을 데리고 있을 것도 같군. 내 사랑의 방해자 같은 녀석.”

“왜 납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해해 주니까 다행이군요.”

사실 미아는 가브리엘이 저기 있는지, 혹은 살아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그냥 막 집어던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라파엘이 철석같이 믿고 있다는 점이다.

“또 뭘 도와주면 되는 거지?”

“세피로트 옆으로 가서 그 자세 좀 해볼래요?”

“흠, 또 그건가.”

라파엘은 날개를 떨치며 먼지를 털고는 그대로 브릿지 자세를 취했다.

제니가 얼른 미아에게 말한다.

“누구를 불러올까요? 역시 에길인가요?”

악마인 미아가 천사의 자리에 앉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천사라면 훨씬 다루기 쉬울 것이다.

에길이라면 강력한 힘을 다루는 것에 특화된 스킬트리다.

제니는 얼른 소식을 전달할 준비를 마쳤다.

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영역을 뚫고 들어가야 해. 그럴 시간은 없을지도 몰라. 그리고 여기도 천사가 하나 있잖아.”

“누구? 저요?”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이닝 파이어 엔젤 캣으로 진화!”

“저저저저는 자신이 없는데요?!”

“괜찮아. 우린 둘이지만 하나.”

가끔 엄마나 아빠가 농담처럼 말하던 단어의 뜻을 안다.

이건 집정관 메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가자! 제니몬! 압도적인 힘으로!”

“아아안 돼요! 저 힘없어요……! 이건 아니야!”

당연히 제니의 저항은 모두 기각당했다.

라파엘은 더 각이 잘 다듬어진 자신의 브릿지 자세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