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에 갇힌 고인물-559화 (559/563)

망겜에 갇힌 고인물 559화

심연 4402층 - 요르문간드(2)

전설은 어떻게든 와전되는 법이다.

세월이 묻어버리고 어느 개인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하지만 라그나로크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지상의 바이킹들에게 깊이 새겨져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이 붉게 물들자 아주 놀라진 않았다.

핌블베르트를 의심하지 않는 이는 이미 없었다.

북유럽의 겨울은 그 어느 시기보다 혹독했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놀라지 않을 수도 없다.

라그나르 역시 그랬다.

“별이 떨어지는군.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가 있나?”

그는 이 세계의 구조를 모른다. 현지에서 태어나 그렇게 스러지는 단지 인간의 왕일 뿐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대왕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자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 이다.

주변의 누구도 하늘에서 붉은 별들이 일제히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다.

라그나르는 결정해야하는 위치였다.

“별이 떨어지면 그 주변에는 재앙이 일어났지.”

운석이 뭔지 잘 모른다. 그저 별이 떨어지는 그런 일일 뿐.

하지만 그것이 만드는 파괴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다.

“세계의 가장자리인 것 같군. 아주 멀어. 이곳이 괜찮을 것이라 보는 이가 있나?”

* * *

* * *

* * *

“힘든 시기가 도래할 것으로 보입니다.”

“라그나로크가 닥쳐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라그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책임져야할 백성들이 있는 군주다.

생존을 위한 움직임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크나큰 파도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라. 그리고…….”

라그나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떨어지는 덕분인지 눈보라가 잠깐 그쳐있다.

정말 오랜만에 저녁의 하늘이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그래.”

하늘에서 떨어지는 붉은 별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수십 수백의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별들이 일제히 쏟아지자 오로라처럼 보인다.

얕고 길게 펼쳐진 빛의 커튼이다.

이들은 명백하게 그 가장자리에 살고 있었다.

라그나르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낀다.

별이 떨어진 곳과 가장 가까이 사는 인간들 중 하나가 될 예정이다.

“라그나로크를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보아야 한다. 준비해라.”

“왕이시여. 무엇을 준비해야겠습니까?”

“파도가 올 것 같군. 본 적 없을 정도로 거대한 파도가 말이야.”

미래에선 쓰나미라고 불리게 되는 지진해일이었다.

라그나르 대왕 휘하의 모든 이들은 곧장 고지대를 향해 도망쳤다.

모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왕은 바다를 건너가기 위해 병력을 모은 상태였고, 그것은 행운이었다.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산.

그건 그 시절에도 해발 145m였다.

물이 고이진 않겠으나 생존을 장담할 수는 없는 높이다.

헤임달은 제때 스칼라그림의 무리를 발견했다.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지체되고 있는 와중이었다.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들에게 한눈에도 차림이 다른 북쪽의 무리들은 수상하기 짝이 없었던 탓이다.

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자 그것은 더욱 심해졌다.

불길한 징조나, 재앙의 전조를 보면 낯선 이방인들에게 전가하게 되는 법이다.

헤임달이 듣기로도 그런 내용의 일이었다.

너희들을 죽여서 저 하늘의 별을 없애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여긴 그런 시대다.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신들은 오히려 미신을 믿지 않게 된다.

그들 자신이 그 미신의 대상이기에, 신비함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라그나로크와 인간들의 전쟁은 별로 다를 것 없다.

그저 피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일 따름이다.

어쨌건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이 그냥 어떤 징조 따위가 아니라 물리적 파괴라는 사실을 아는 입장에서 답답하기 그지 없다.

헤임달은 모습을 드러내었다.

광명의 신은 순백의 휘광을 드러내며 그들 위로 나타났다.

목소리에 에코를 넣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다.

[멈추어라. 인간들이여.]

순식간에 천사니 어쩌니 하는 굽신굽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스칼라그림의 무리들은 더 빠르게 헤임달이 누군지 알았다.

축복을 빈 적도 있으니만큼 모두 무릎을 꿇는다.

[지금은 싸움으로 바쁠 때가 아니다. 물러서라. 이들은 이 땅에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사태는 끝났다.

헤임달은 닥쳐올 재앙에 대해 경고했고 잉글랜드인들은 사색이 되었다.

고지대를 찾아라, 그렇지 않다면 물에 잠길 것이다.

스칼라그림이 예를 표하려고 하길래 궁둥짝을 걷어찼다.

“오르골 에길슨이 보내어서 왔다! 너희들을 더 빠르게 인도하기 위해서! 올라타라!”

빛으로 축복을 내린다. 말들의 발이 빨라지고 인간들의 체력이 회복된다.

“자! 달려라! 늦으면 다 죽을지도 모르니까!”

스칼라그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몇 아이들을 들쳐 업었다.

다른 어른들도 그리했다.

“짐은 그냥 두고 가라! 시간이 없다!”

헤임달은 다시 떨어지고 있는 별들을 올려다본다.

신의 스케일에서 볼 수 있기에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저것의 위력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거리감각도 인간들에 비해 정확하다.

정말로 아득히 높은 곳에서 떨어지고 있기에 아직도 보이고 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지상에 당도하고야 말 것이다.

그 전에 이 친구들을 안전한 곳에 구겨넣어야만 한다.

모두들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의 초인이라. 흠? 이 남자가?”

스칼라그림은 인간으로서는 놀라울 만치 강력하지만 신화에 등장할 정도인가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헤임달은 가호를 내리며 그들이 직진할 수 있게 도왔다.

그 와중에도 저 멀리 요툰헤임의 방향을 본다.

평평한 세계란 가시거리를 놀라울 정도로 높여준다.

미드가르드는 가뜩이나 고도가 다른 세계보다 조금 낮은 편이다. 그렇기에 황금빛 위그드라실과 요툰의 방향도 똑바로 보이는 것이다.

해가 지고 있으나 달은 보이지 않는다. 달의 신은 이미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그래서 없는 달 대신, 그 달이 가있는 곳의 전장이 하늘에 번뜩인다.

붉은 화염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헤임달은 짧게 신음했고, 곧 그들의 조력자에게 기대했다.

수르트가 나타난들, 요르문간드를 처리하고 돌아올 그자가 어떻게 해주리라.

“어이! 빨리빨리! 더 빨리 가! 저기 보이는 저게 떨어지면 여긴 끝이라고!”

그리고 헤임달은 조금 더 기특한 생각을 했다.

펜리르도 아니고 요르문간드도 아니다. 그냥 엄청 큰 파도와 지진이 좀 일어날 뿐이다.

그 정도는 신이된 자로서 어떻게 좀 무마할 수 있을 것이다.

미드가르드는 오르골에게 제법 소중한듯하니 호감을 살 수 있을법 했다.

“요르문간드와 싸우는 것보단 낫지.”

헤임달은 자신이 그 전투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난 쓸모가 없지.”

그래서 미드가르드에서 이 광경을 직접 볼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르문간드는 메인던전 시절에도 잠들어있는 녀석이다.

잠을 많이 자지 않으면 그 체격을 유지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을 좀 해보았다.

노골적으로 말해 펜리르보다 더 크니까 말이다.

이렇게 얼음에 잠들어있는 모습은 처음보지만, 그래도 그 덕에 깨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더 필요해 보인다.

제주도보다 커다란 눈알에 점차 빛이 돌아오고 있다.

세상을 한 바퀴 휘감은 몸에도 생기라고 할 만한 것이 차오른다.

시간은 꽤 넉넉하다.

아직 몸을 못 가눌 때, 최대한의 피해를 강요한다.

쿨다운은 적어도 한번은 돈다.

눈으로 파고들었다. 빙하를 가르고 수직으로 얼음을 관통해 마침내 수막마저 가르고 수정체 위로 도달했다.

뱀의 고통이 느껴진다. 내 알 바는 아니다. 문자 그대로 바다와도 같은 곳의 수정체 위에서 가능한 가장 강력한 일격을 시도한다.

얼음 속이었지만 몸 전체가 꽁꽁 얼어있진 않았다.

내부의 거대한 공간 속에 몸을 뉘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거대 빙하가 형성된 후에 요르문간드의 독기를 버티지 못하고 녹아내렸겠지.

생체조직이라 부르기도 힘든 수준의 수정체 위, 그리고 약간임에도 바다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는 눈물이 있다.

내가 만든 충격파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 사방으로 번져나간다.

뱀이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그것만으로 지진이 발생할 것이다.

확실히 이 거대한 크기를 보면 꽤 막막해지긴 한다.

빙하가 덮고 있어서 몸 자체를 공격할 수 없는 것도 매한가지다.

내 한 몸 통과야 하겠으나 빙하 전체를 밀어버리는 건 메테오를 기다려야 하지.

그대로 생체조직의 바다 속으로 잠수했다.

커도 너무 크니까 나를 인지할 수는 있을지 의문이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조직의 구성이 바뀌어간다. 시신경이라 할 만한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눈이 멀어버린다면 나를 무시하고 미드가르드를 작살내진 못하겠지.

혼자서 숨통까지 끊는 것은 너무나도 중노동이 될 예정이니 저 아래 펜리르의 시신이 있는 곳까지만 유기하는 게 목표다.

비행 능력을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타격만 준다면 충분히 시간이 벌어지겠지.

충분히 눈이 멀었다고 판단될 만큼 한 후에 위로 빠져나왔다.

이제 반대쪽 눈이다.

작업은 길면 길고 금방이라면 금방이었다.

뱀은 눈이 멀었거나 적어도 세상이 뿌옇게만 보일 것이다.

서서히 몸을 가누기 시작했다.  피트기관 앞까지 다가간다.

내 마력을 짙게 풀어서 흩뿌렸다.

요르문간드 사이즈면 냄새로 뭔가 파악하긴 힘들다. 일반적인 뱀과는 다르게 이것의 피트 기관은 마력을 구분하고 추적할 수 있다.

마력의 성질은 생물의 채취 이상으로 뚜렷한 개성이다.

이 세계에 종족으로서의 천사는 나 뿐이니 더욱 더 그러리라.

그 다음에 칼빵을 또 열심히 먹였다.

혀에도 비슷한 작업을 했다.

뱀이 화가 난 것 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도 더 격렬하게 움직인다.

흠,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는 분리해야하는데.

메테오는 술식으로 소환을 한 이후에는 더 이상 내 마법이 아니다.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의 다 왔다.

멀리 보이는 평탄한 미드가르드의 대지를 살폈다.

피해 정도를 생각은 해봐야겠다.

충격은 지진이 될 것이며 파도가 될 것이다.

많은 해일들이 육지를 수장시키겠지.

그래도 금새 빠져나갈법하다.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둥근 원형의 커튼처럼 궤적을 남기는 운석들이 각기 작은 구멍을 낼 것이고, 그 빙하와 대지의 구멍은 요르문간드의 각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내가 미드가르드를 벗어나면 잔뜩 화난 요르문간드가 나만 따라오겠지.

고의적으로 마력을 갈무리하지 않고 사방으로 표출한다.

어차피 이 세계는 마력과잉의 세계다.

그래서 인간도 짐승도 스펙이 높다.

내 마력을 좀 소모한들 회복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천천히 노심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인공 외장노심처럼 기능하게 해야 요르문간드와 싸울 출력이 유지되겠지.

그리고 하늘로부터 불러온 파괴가 마침내 미드가르드에 도달했다.

오딘은 부상을 입었다. 금새 치유될 정도에 불과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서도 그는 생존해있어야 한다.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니 당연하기도 하다.

수르트의 출현부터는 전황이 지지부진해지기 시작했다.

토르는 용맹하게 날뛰며 불의 거인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밀어내지는 못했다.

여러 이름이 있거나 예언에 새겨진 운명의 거인들이 황급히 달려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운명 밖에서 이 모든 일을 조장한 자가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후방으로 물러나 비프로스트 앞에서 자리를 지킨 오딘은 미드가르드를 보았다.

그의 한쪽 눈이 세상의 운명을 읽어내기 시작했…….

이상한 것이 보인다.

하늘에서 떨어진 바위들인가?

태초의 거인 이미르가 죽고 그 시신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

모든 것을 활용하진 못했다.

남은 부산물들은 저 높은 곳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특별히 큰 편인 것들이 낙하하고 있다.

오딘은 실로 수백년만에 멍해졌다.

“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저런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밖에서 온 자의 모든 운명을 읽을 수는 없다.

그의 지혜는 어디까지나 이 세계 내부가 중심이다.

그렇기에 그자의 운명을 직접보려고하기보다는 미드가르드의 미래를 보고자 했다.

“역시 멸망은 바뀌지 않는가.”

영원한 겨울도 오지 않을 것이다.

미드가르드를 전장으로 신과 거인들의 전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운명에 따라 미드가르드는 파멸할 것이다.

“그래도 많이 살겠군.”

이전보다는 나은 파멸이다. 수천배는 많은 이들이 생존하여 미래를 꾸려나갈 것이다.

큰 틀에서는 같은 멸망이더라도, 이후에 싹틀 것들이 전혀 다르다.

“흠, 잘 해주었군. 이미 운명은 바뀌기 시작했어.”

오딘은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저 멀리 미드가르드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하늘 높이 치솟는 가장자리의 빙하 조각과 대지 파편들이 오딘의 시야마저 가린다.

미드가르드의 구름까지도 닿을 지경이었다.

꿰뚫어보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보인다.

바다가 출렁인다.

물 고인 얕은 접시의 가장자리를 구슬들 때린 것과도 같다. 크게 요동치고 떨리고 사방으로 파편을 떨어트리기 시작한다.

미드가르드는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자리만을 철저하게 노렸다.

요르문간드가 잠들어있던 빙하의 높은 벽과 그 아래의 기반들이 물러지기 시작한다.

뱀이 날뛴다면 그대로 추락하리라.

“그렇다 해도 이건…….”

어쩌면 당면한 인간들에게는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보다 겨울이 좀 오래가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충격파가 먼저 도달하여 미드가르드 전체를 뒤흔든다. 축마저 흔들려 세상이 조금 기울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요르문간드가 움직인다. 계획대로 그것은 지반과 함께, 빙하와 함께 저 아래의 무저갱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다가 바깥으로 쏟아지지 않게 막고 있던 가장자리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미드가르드의 바다는 점차 공허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형의 폭포가 형성된다.

너무나도 커다란 세계의 커다란 가장자리기에 조금씩조금씩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물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미드가르드는 결국 메마른 대지가 될 것이다.

“장관이로군.”

오딘은 참으로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신들도 자신의 손으로 저런 짓을 할 생각은 못했다.

할 수 있냐의 문제 이전에.

“아주 그냥 세상을 다 때려 부숴버렸어.”

이제 뭐가 라그나로크인지 모르겠다.

“과연, 운명을 뒤집으려면 저 정도 각오가 필요했군. 나조차도 물렀을지도 몰라.”

그럼 저 남자는 요툰헤임에도 저걸 할 수 있겠지?

거인들도 낙사는 할 수 있다.

이건 새로운 개념이었다.

제발 아스가르드에는 참아줬으면 한다.

약속을 안 지켰다간 저 남자가 새로운 라그나로크가 되어 예언이 실행될게 분명했다.

“모두의 미래에 축복 있으라. 하하하.”

실로 수백년만에 오딘은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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