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2화 (2/288)

튜토리얼의 끝(2)

댈런은 어려운 게임을 좋아했다.

컨트롤 실력, 흔히 말하는 피지컬이 좋았기에 쉬운 게임은 금세 질리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이 게임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주인공 캐릭터는 연약하고, 미궁의 마물들은 강력했다. 바깥 세상은 멸망을 향해 치닫는데, 아군이었던 NPC들은 악마에게 홀리거나 뒤통수 치기 바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난이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흥미가 생겼고, 게임을 쉽게 놓지 못했다.

그렇게 열 번쯤 죽고 나자 흥미는 오기로 바뀌었다.

백 번쯤 죽자 오기에 불이 붙었다.

어떻게든 엔딩을 보고 말리라, 그런 생각으로 밤을 새운 날도 적잖았다.

그렇게 몇백 번을 죽었을까.

댈런은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짜증이라는 게 폭발했다.

‘그래. 지른다! 질러! 내가 더러워서 돈 내고 만다.’

돈 주고 파는 추가 능력치를 구매했다.

그것도 구매할 수 있는 최대 한도까지 구매해 먼치킨 캐릭터를 만들어버렸다.

‘무슨 빌어먹을 게임이 엔딩도 현질해서 봐야 돼? 씨발,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만 없었어도 바로 삭제했다.’

욕설을 중얼거리며 게임 시작을 누르자마자, 댈런은 게임 속 세계에 떨어졌다.

마우스와 키보드의 컨트롤 실력이 아닌, 진짜 팔다리로 움직이고 싸워야 하는 세계에.

결과적으로 보면 그 현질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 차라리 그때 게임을 지웠어야 했는데.’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댈런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큼직한 잔을 단숨에 반이나 비워버린 그는 테이블 곁으로 시선을 돌렸다.

[초라한 용병의 시체]

- 청동 구역 뒷골목의 건달들에게 난도질당한 용병의 시체다.

테이블 곁 바닥에는 흑백사진처럼 잿빛으로 물든 시체가 있었다.

난도질당하고, 단검이 꽂힌 채 피를 흘리는 시체.

여관 한가운데 사람이 죽어있는 건 누구라도 주목할 만한 광경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게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자기 일에 바빴다.

‘보이지 않는 게 맞겠지.’

저 잿빛 시체는 사실 허상.

정확히는 댈런만이 볼 수 있는, 그가 예전에 플레이했던 캐릭터의 마지막 모습이었으니까.

댈런이 분노의 현질로 구매한 건 추가 능력치만이 아니었다.

그는 개발사에서 직접 치트키라고 공인한 ‘계승자’ DLC도 같이 사서 끼워넣었다.

계승자 옵션은 이전 플레이에서 죽은 주인공 캐릭터들의 능력을, 새로운 캐릭터가 계승할 수 있게 해주는 옵션.

댈런처럼 수백 번씩 죽은 다회차 플레이어들에게는 무한한 성장이 가능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다만 딱 하나 흠이 있다면, 그 캐릭터의 시체를 직접 회수해야 한다는 점이겠지.’

댈런이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 이 허름한 여관에 온 건, 다름아닌 그런 시체들 중 하나를 찾아 회수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가 시체를 회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댈런의 마음은 살짝 초조했다.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 그가 단 한 번도 클리어하지 못한 게임 속 세계에서, 이건 그가 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였으니까.

‘시체 회수.’

댈런은 시체 위에 손을 가져다대며 속으로 읊조렸다.

파스스-

그러자 시체가 흐릿해지더니, 빛무리로 화해 댈런에게 스며들었다.

[초라한 용병의 시체를 회수했습니다. 능력을 계승합니다.]

[계승 보상 : 근력 +1, 기량 +1, 데하만의 갑주격투(D)]

‘음?’

댈런은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 보상이 너무 좋았다.

‘초라한 용병의 시체’는 댈런의 초창기 플레이 중 하나의 결말.

이 게임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이라, 여러 방면에서 미숙했던 캐릭터였다.

그런 걸 감안했을 때, 시체를 회수하면서 얻은 보상은 그의 생각 이상이었다.

‘개발사가 치트키라 공언한 이유가 있었군.’

뿌드득―

댈런은 어깨를 슬쩍 풀어보았다.

근력이 증가하며 몸이 약간 묵직해지고, 근육이 팽팽히 당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랄까. 헬스장에서 잔뜩 근육을 펌핑하고 나올 때와 비슷하달까?

거기다 손끝의 감각도 뭔가 저릿하더니 약간 달라졌다. 상승한 기량 능력치 때문이었다.

“음.”

뒤이어 능력치와는 다른 종류의 힘이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생소한 감각이었다.

이 세계에 떨어진 지 2년이나 됐지만, 스킬을 얻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스킬은 단순한 힘이나 빠르기가 아니다.

무투 스킬이라면 몸을 쓰는 방법과 지식, 주문이라면 마력을 움직이고 다스리는 방식과 체계의 총아였다.

[데하만의 갑주격투(D)]

- 제국 기사단장이었던 데하만이 창시한 갑주 격투술. 휘하 기사들이 무기를 잃어버리면 빈 깡통마냥 당하는 걸 보다 못해 만들었다. 갑옷을 방패이자 무기로 사용한다.

- 숙련도 4%

뿐만 아니라, D등급 이상의 스킬은 창시자가 담아낸 철학과 숙련된 경험까지 깃들어 있었다.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F나 E등급 스킬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댈런은 눈을 감았다. 추가 능력치로 구매한 높은 지능 수치는 스킬의 내용을 빠르게 분석해냈다.

댈런은 천천히 심호흡하며 그 깨달음을 온몸으로 녹여냈다.

술 몇 잔쯤 마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눈을 떴다.

‘좋군.’

스킬을 얻는 건 능력치의 상승과는 전혀 달랐다.

능력치가 오르는 게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근육이 붙는 것 같았다면, 스킬은 아예 날개가 달린 느낌이었다.

전에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것 같은 감각. 그 기이한 고양감에 몸이 달아올랐다.

드르륵.

댈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 남은 맥주를 단번에 비운 그는 팁으로 동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둔 뒤 검과 가방, 방패를 챙겨들었다.

시체를 회수하기 위해 이 구석진 여관까지 왔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자고 갈 마음은 없었다.

자다가도 누가 들어와서 칼을 찌를지 모르는 곳이 청동 구역 뒷골목의 여관.

오랜 시간 바깥에서 야영한 그에게는, 편히 쉴 수 있는 잠자리가 필요했다.

마침 품속에 은화 열 닢이 넘게 있으니, 대로변에 있는 적당한 여관에서 묵어도 괜찮으리라.

댈런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여관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여관을 나서려는 그를, 누군가 가로막았다.

***

“어이, 처음 보는 얼굴이시네?”

댈런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를 막아선 건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였다.

하지만 인상이 좀 더럽고 덩치가 좀 있다뿐, 그리 특별할 건 없어보였다.

“척 보니 어디 도시 밖에서 고블린이나 때려잡던 용병 나으리 같으신데, 이런 허름한 뒷골목 여관에는 뭐하러 찾아오셨나. 이쪽 상도덕도 모르시고.”

남자는 알딸딸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댈런은 가만히 그걸 보다가,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뭔 놈의 상도덕?”

“전입세 말이야, 전입세. 아무리 용병 나으리시라도 그렇지, 어디 여관에 새손님으로 오셨으면서 전입세를 안 내시나?”

“전입세?”

댈런의 물음에, 건달은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었다.

“그래. 이 여관을 관리하는 나, 말룬 님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돈이지. 여기라면 칼에 찔릴 걱정 없이 안심한 채 먹고 마시며 여자들이랑 뒹굴 수도 있는데, 그게 다 누구 덕이겠어?”

척. 건달은 엄지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다 반칼 님의 수하에서 이 여관을 관리하는 내 덕이지. 그러면 당연히 내게 돈을 내야 하지 않겠어?”

아, 그러니까 삥 뜯는 건달 새끼라는 거지?

미궁도시는 인구 수백만이 넘어가는 거대도시다. 그리고 그 규모가 큰 만큼, 뒷골목의 조직들 역시 왕성하게 활동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구수가 수백만을 넘어 천만에 가깝다는 도시에서, 중세 수준의 경비대에게 많은 걸 바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일곱 성벽으로 나뉜 일곱 구역들 중, 가장 외곽인 청동 구역은 뒷골목의 영향력이 가장 심한 곳이었다.

여기서 경비대의 역할은 구역을 가로지르는 대로와 그 주변을 순찰하는 것 정도가 끝일 정도.

나머지 땅은 폭력 조직이 저들끼리 갈라먹고 보호세를 걷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고보니 방금 회수한 용병 캐릭터가 이런 건달 놈들에게 죽었댔지.’

댈런의 눈이 건달의 허리춤을 훑었다. 보란듯이 걸린 단검. 그 검손잡이의 음각 무늬가 눈에 익었다.

높은 지능 수치는 기억을 뒤적여 그 출처를 바로 기억해냈다.

‘회수한 시체의 등에 박혀있던 단검.’

그 손잡이의 무늬와 정확히 일치했다.

‘저 놈이 내 캐릭터를 찔렀군.’

한두 번 죽은 것도 아니고,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다.

여관에 있던 시체를 만든 건 바로 이놈들이었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컨트롤 실력 하나는 어느 게임에서든 자신 있었던 그다.

아무리 미숙했던 시절의 플레이라 해도, 정면 승부에서 곱게 당해줬을 리는 없는데.

정답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단검이 등에 박혀 있었지. 뒤통수를 쳤군.’

등에 박힌 단검은, 방심하고 있을 때 뒤에서 기습했다는 증거.

애당초 놈들은 동전 몇 푼 뜯는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판단을 마친 댈런은, 어깨를 으쓱이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쪽한테 줄 돈은 없는데.”

“돈이 없다?”

“그래.”

댈런의 대답에 건달은 순간 욱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표정을 풀고 웃는 표정을 꾸며냈다.

“···그럴 수 있지. 우리가 괜히 가난한 양반을 건드렸군. 술값은 제대로 냈겠지?”

“그럼.”

“그러면 갈 길 가시게나. 특별히 보내드릴 테니.”

슬쩍 몸을 틀어 길을 내주는 건달. 댈런은 예의상의 미소를 띄워주곤 그를 지나쳤다.

그 순간.

스릉-

건달이 허리춤의 단검을 와락 뽑아들었다. 놈은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곧장 단검을 찔러왔다.

댈런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웃겨서였다.

상대를 파악할 줄도 모르는 건달의 멍청함이.

그리고 그런 건달에게 칼빵맞고 죽은 예전의 자신이.

하지만 지금의 그는, 허접한 기본 캐릭터로 아득바득 엔딩을 보겠다고 달려들던 사람이 아니었다.

“씹새끼가 어디서 거짓말을 지껄여―억!”

건달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댈런의 주먹이 번개처럼 그를 후려친 것이다.

돌아간 고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였고, 놈은 그대로 스르르 넘어졌다.

우당탕!

그 소리에 여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댈런은 여관을 빠르게 둘러보고, 눈을 번뜩이는 몇몇 장정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기저기서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의자를 끌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소리쳤다.

“씨발, 다들 문 잠궈!”

***

생각보다 건달들의 대처는 민첩했다.

놈들은 순식간에 문과 창문을 걸어닫더니, 우르르 몰려와 댈런을 원형으로 둘러쌌다.

어느새 각자 손에 단검이며 팔뚝만 한 소검, 녹슨 쇠꼬챙이나 몽둥이 따위를 든 채였다. 패싸움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했다.

하지만 놈들은 댈런을 둘러싸고도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씨, 씨발 덩치가······.”

“북쪽에서 내려온 야만인인가?”

일단 무기를 뽑아들고 포위하긴 했는데, 댈런의 덩치가 생각 이상으로 큰 탓이었다.

2미터쯤 되어보이는 키. 갑옷 위로도 윤곽이 드러나는, 돌덩이 같이 크고 단단한 근육들.

거기다 허리춤에는 긴 검을 차고 등 뒤에 방패까지 메고 있다.

척 보기에도 그저 건달 나부랭이일 뿐인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이미 무기를 뽑아들었고, 자신들의 구역 안에서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존심을 세우고 싶어하는 놈들이기에 물러서지 못할 뿐.

댈런은 주춤거리는 놈들을 보고 픽 웃었다. 그리고 검과 방패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가방도 벗어 테이블 다리에 기대어 놓고, 손도끼는 방패 곁에 올려두었다.

그가 말했다.

“안 덤비냐?”

“죽어어어!”

그의 뒤에 있던 건달이 느닷없이 쇠꼬챙이를 찔러왔다.

뒷골목 싸움으로 연단된, 폐부와 심장을 곧바로 노리는 일격.

저 쇠꼬챙이가 찌른 사람의 숫자는 두 손으로도 꼽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턱.

돌아선 댈런의 손은 간단하게 놈의 쇠꼬챙이 든 손목을 잡아챘다.

우드득!

그대로 슬쩍 힘을 주자 뼈마디 깨지는 소리가 나며 손목이 꺾이고.

“끄아아악!”

댈런은 손목을 붙잡고 주저앉는 건달을 발로 한 번 걷어찼다.

덜컥.

목이 부러진 건달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소리쳤다.

“전부 덮쳐!”

“우와악!”

“씨발, 죽어!”

건달들이 고래고래 욕을 하며 달려들었다. 놈들은 거의 본능적인 동작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날붙이. 하지만 그래봤자 건달 나부랭이들이었다.

이런 뒷골목 여관에서 나뒹구는 깡패들이 제대로 된 병기술을 배웠을 리 없다.

어떤 정형화된 체술도, 수준 높은 검식도 없는 막싸움. 이런 뒷골목 싸움에서는 보통 한 가지 법칙이 통한다.

더 빠르고 힘이 센 쪽이 이기게 되는 것.

그리고 방금 얻은 스킬을 제외하더라도, 댈런의 근력은 그 자체만으로 성인 장정 여럿을 거뜬히 상대할 힘이었다.

“끄억!”

댈런의 손이 번개같이 한 놈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놈의 가슴팍이 망치에 맞은 듯 움푹 들어갔다. 건달은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뒈져, 새끼야!”

뒤이어 소검 하나와 몽둥이가 휘둘러왔다.

댈런은 소검을 슬쩍 피하고 그걸 휘두른 건달의 배를 걷어찼다. 억 소리와 함께 놈의 허리가 꺾였다.

사실 단순히 능력치 차이만 생각해도 싸움은 압도적이었을 터.

댈런이 습득한 D등급 스킬, ‘데하만의 갑주격투’는 거기에 무게추를 더 얹었다.

제국의 기사단장이었던 자가, 검을 잃으면 무방비해지는 후배들을 보다못해 창안한 기술이라고 하던가.

안 그래도 여관에 도착하면 연무장으로 가서 스킬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칼까지 꼬나쥐고 달려들어주니 오히려 고마울 따름.

퍼억!

소검을 피해낸 사이, 빈틈을 파고든 몽둥이가 댈런의 등을 내리쳤다. 퍽 하는 소리가 나고 신음소리도 뒤따랐다.

“으윽!”

그건 댈런의 신음이 아니었다. 도리어 휘두른 놈이 몽둥이를 놓친 채 손을 부여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으으, 무슨 쇳덩어리를 친 것 같이―어억!”

콰득!

댈런은 놈의 얼굴에 주먹을 먹여주었다.

안면이 먼젓번의 가슴팍처럼 움푹 들어가고, 부러진 이빨과 피가 쫙 튀었다.

댈런이 생각이 없어서 무기를 놓은 게 아니다.

데하만의 갑주격투는 전장에서 갑옷을 입지 않은, 혹은 가벼운 천갑옷 정도만 입은 다수를 상대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격투술.

한 마디로 지금 같은 일 대 다수의 상황에 더없이 효과적인 스킬이라는 소리였다.

‘물론 본인이 갑옷을 입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댈런은 그 전제를 만족했다.

천 갑옷을 바탕으로 가죽을 덧대고 부분적으로 사슬과 철판을 이어붙인 그의 갑옷은, 썩 멋져 보이지는 않지만 방호력은 어느 정도 괜찮았다.

뿐만 아니라, 댈런의 근력 능력치는 무려 23.

근력을 높이면 힘이 세지고 빨라질 뿐 아니라, 몸뚱이의 내구성 역시 올라간다. 근육이 단단해지고 강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근력 23이면 맨손으로 철판도 우그러뜨릴 힘. 내구성 역시 그에 비례했다.

단단한 근육에 갑옷까지 걸쳤으니, 건달 나부랭이의 몽둥이 찜질 정도야 간지럽지도 않을 정도다.

“씨, 씨바알! 다같이 덤벼!”

남은 세 놈이 한번에 들이닥쳤다. 단검 둘. 쇠꼬챙이 하나. 댈런은 단검 든 놈을 걷어차고, 오른팔을 밖으로 휘둘렀다.

“어억-!”

쇠꼬챙이 든 놈이 손등에 맞아 쩍 소리와 함께 여관 거의 끝까지 날아갔다.

걷어차인 건달은 이미 저만치 굴러가며 테이블을 부수고 쓰러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찔러오는 단검을, 댈런은 왼손으로 잡아냈다.

찌직!

무딘 단검 날이 가죽 장갑을 가르고, 손바닥을 찢어놓았다. 댈런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실수였다.

원래 의도는 사실 팔목을 잡아채려 한 거였는데.

‘아직 다 흡수하지 못했나.’

이 게임의 스킬에는 숙련도라는 개념이 있었다. 스킬을 얻었다고 바로 전문가 수준이 되는 게 아니다.

댈런은 높은 지능 수치와 초인적인 육체 능력으로 어느 정도 그 제약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물론 별 문제는 아니었다. 앞으로 훈련을 계속하면 될 일.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씨, 씨발. 무슨 단검을 그냥 손으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믿지 못하겠다며 중얼거리는 건달. 댈런은 상처가 더 벌어지기 전에 오른손으로 놈을 후려쳤다.

“커헉!”

건달의 고개가 휙 돌아가고, 붉은 피와 함께 하얀 이빨들이 우수수 튀었다.

부러진 이빨들과 함께 여관 바닥을 뒹군 놈은, 부르르 떨더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시끄럽던 여관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댈런은 손을 슬슬 털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은 댈런을, 그리고 쓰러진 건달들을, 다시 댈런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요!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살인이라니! 경비대에 신고하겠소!”

내려앉은 정적을 깬 건, 다름아닌 여관 주인이었다.

그리고 댈런은 저도 모르게 도끼로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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