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겜의 시체줍는 천재전사-8화 (8/288)

하수도의 마법사(2)

우루룩! 우루루루!

하수도의 통로에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단순한 짐승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프로그맨은 최하급 마물 중에서도 지능이 높아, 까다롭기로 유명한 개체지.’

개미 같은 군체가 아님에도, 프로그맨은 저들끼리 역할을 분담해 무리생활을 한다.

원시적인 언어체계를 구축하고, 자신들만의 사냥터를 정해놓고 전략적으로 먹잇감을 사냥하기도 한다.

사실 프로그맨은 원래 미궁에 살던 마물. 놈들이 어떻게 이곳에 발을 들였는지는 모른다.

사람들이 아는 건, 그저 언제부턴가 놈들이 하수도를 제 서식지로 삼기 시작했다는 사실뿐.

그리고 비록 미궁에 사는 친척들에 비해 퇴화했다고는 하지만, 놈들은 여전히 강력한 포식자였다.

우르르륵! 와륵!

첨벙!

한 놈이 달려들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우르르 뒤따른다. 하수도의 진창을 첨벙거리며 놈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댈런의 감각이 빠르게 놈들의 머릿수를 훑었다.

‘대략 스물 안팎.’

경비대 일개 중대를 몰살시킬 수 있는 전력이다.

댈런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페니는 그와 거리를 둔 채 얇은 소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걸 보긴 했지만, 그저 호신용인 줄 알았는데. 능숙하게 자세를 잡는 걸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걱정할 건 없겠군.’

하긴. 하수도에 3년을 들락거렸는데 제 몸 하나 못 지키겠는가.

댈런이 다시 앞을 바라볼 즈음, 프로그맨 무리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우르륵!

한 놈이 달려들었다. 놈은 길쭉한 팔다리로 5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훌쩍 뛰어넘었다.

능숙한 전사라도 채 대비하지 못했을, 상식을 벗어난 도약.

댈런의 반응은 간단했다.

그는 검을 가로로 그었다.

촤악!

오르―!

위아래 두 조각으로 나뉜 프로그맨이 댈런을 스쳐 지나갔다.

놈이 흩뿌린 내장이 하수도의 진창 위에 후두둑 물감처럼 내려앉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르르르!

와룩!

프로그맨이 달려들었다. 댈런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가로로 휘두르고, 세로로 베고, 방패를 밀어붙여 놈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프로그맨의 얇은 팔다리는 성인 장정의 힘을 압도한다. 상관없었다. 댈런의 힘은 더 강했다.

놈들의 매끈한 가죽은 날붙이를 곧잘 튕겨내곤 한다. 상관없었다. 댈런은 초인적인 근력으로 근육과 뼈까지 단번에 갈라버렸다.

우르르!

오로로록!

사냥감이 예상보다 강하다고 느꼈는지, 프로그맨들이 댈런을 포위하려 했다.

무리사냥에 익숙한 놈들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압박할 줄 알았다.

마법사를 상대할 때도 비슷했을 것이다.

대지술사의 강력한 마법에 몇 마리가 죽었으나, 끝내 살아남은 놈들이 주위를 돌며 빈틈을 노렸을 터.

체력과 정신력의 압박은 찰나의 실수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프로그맨은 그런 실수를 놓치지 않는 영리한 사냥꾼이다.

댈런 역시 모니터 너머에서 그 압박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콰직!

우르―

지금 댈런의 육신은, 고작 프로그맨의 몰이에 당하는 허접한 기본 캐릭터의 몸뚱이가 아니었다.

서걱!

그의 검이 번쩍였다. 포위를 위해 돌아가던 놈이 사선으로 쪼개졌다.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천장으로 도약하려던 프로그맨이 두 다리가 으스러진 채 진창에 처박혔다.

포위한 뒤 힘을 빼는 게 놈들의 전략이라면, 아예 포위당하지 않으면 그만.

프로그맨의 무리를 정면에서 막아서는 댈런의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벽처럼 보였다.

서걱! 콰직!

숨이 살짝 가빠온다. 팔다리의 근육이 팽팽히 당겨진다.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초인적인 육신은 강도 높은 전투에 만족하며, 형용하기 힘든 기이한 고양감을 선사했다.

현대인의 연약한 몸뚱이를 입고 있을 때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감각.

댈런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와라!”

우르르륵!!

흥분한 프로그맨은 그 고함에 반응했다.

한 뼘 길이의 이빨을 내세워, 먹잇감의 목줄기를 물어뜯으려 달려든다.

서걱―

댈런의 검이 번쩍이자 놈의 개구리 머리가 허공에 붕 떴다.

그리고 첨벙! 하수도의 진창에 처박혔다.

그걸 끝으로 하수도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놈이 마지막이었다.

“우, 우와.”

찰박.

댈런은 뒤를 슬쩍 돌아봤다. 페니가 놀란 얼굴로 걸어오고 있었다.

댈런은 그녀의 검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 검은 마물의 피.

페니의 뒤로 두 다리가 부러진 프로그맨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게 보였다.

“괜찮소?”

“네? 아···네! 다리 부러진 개구리 하나쯤이야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죠.”

아무래도 정신없는 전투 와중에 한 마리가 댈런을 지나친 듯했다. 두 다리가 으스러진 걸 보니, 아까 댈런을 뛰어넘으려다 방패에 처맞고 떨어진 놈이었다.

“이래봬도 3년차 청소부라고요? 한 번은 프로그맨 두 마리까지도 잡아본 적 있답니다. 맡겨주세요!”

의기양양하게 말하며 다가오는 페니. 댈런은 낮게 웃으며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오지 마시오.”

“네?”

“아직 안 끝났소.”

댈런은 프로그맨의 습성을 잘 알았다.

양서류 머리통을 달았다고는 하지만, 놈들은 똑똑한 사냥꾼이다.

댈런과 페니의 뒤를 멀리서부터 밟다가, 미리 정해놓은 자신들만의 사냥터에서 기습한 것부터가 그 증거.

‘대지술사 역시 그렇게 습격했겠지.’

기습하고 포위해, 끊임없이 체력을 압박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뿐이었다면, 적어도 도망칠 틈 정도는 찾을 수 있었을 터.

지하를 전장으로 삼은 대지술사가 무력화됐다는 건, 놈들이 준비한 수가 이게 끝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순간.

피이―

확장된 댈런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댈런은 곧장 검을 휘둘렀다.

까앙!

어둠 속에서 쏘아진 마비침이 검면에 맞아 불똥을 튀기며 튕겨난다.

즉시 방패를 놓아버린 댈런의 왼손이, 방패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허리춤의 도끼를 뽑아들고.

패래래랙!

한 순간 흐릿해진 왼손의 잔영 너머에서, 빛의 원반이 되어버린 도끼가 번쩍이며 어둠을 가른다.

으르―꺽!

나이스 샷.

멀리서 들려오는 단말마의 비명. 철푸덕 쓰러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어, 어라?”

페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인지한 것은 댈런이 휘두른 검에 무언가 튕겨나간 것과, 그의 왼손이 흐릿해지며 순간적으로 번쩍였다는 것뿐.

댈런의 허리춤에서 도끼가 없어졌다는 걸 뒤늦게 눈치챈 그녀가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마물들은 대체로 영악하지. 인간을 사냥하는 데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고.”

댈런은 어둠 속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두 마리였군. 한 마리가 도망가고 있소.”

“그러면 어떻게······.”

“바로 쫓아가지. 놈들의 둥지는 멀지 않을 거요.”

댈런은 방패를 주워들었다. 도망간 프로그맨의 기척은 벌써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댈런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의 감각은 놈이 좀 더 멀어지더라도 충분히 추격할 수 있었다.

“뭐 하시오? 갑시다.”

“네, 네!”

멍하게 그를 보고 있던 페니는, 댈런의 말에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

댈런은 프로그맨 시체에서 도끼를 회수했다. 놈이 쏘아대던 마비침도 덤으로 챙겼다.

마비침의 형태는 원시적이지만, 거기 발린 독은 저들의 피를 독자적인 기법으로 가공한 것.

이거 한 주머니면 암시장에서 은화 몇 개쯤은 받을 수 있었다.

“보기보다 되게 살뜰하시네요. 신기하다.”

···보기보다라니. 뭘 어떻게 보였길래?

순수한 감탄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페니에게 차마 그렇게 물을 수는 없었다. 댈런은 대충 대답했다.

“용병으로 벌어먹고 살려면 이런 자잘한 수익을 놓치지 않아야 하지.”

“그렇겠네요. 저 같은 공무원이 부러우시겠어요.”

“······.”

두 사람은 달아난 프로그맨을 추적했다. 프로그맨의 발소리는 이미 멀어져, 댈런에게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댈런의 초인적인 감각은 놈이 급하게 달아나며 남긴 흔적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추적할수록, 댈런은 확신을 가지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놈이 맞군.’

마탑에서 쫓겨난 이단 마법사.

하수도의 마물을 부리는 악마 숭배자.

사교도들 중 가장 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단언컨데 가장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이.

‘델릭 발렌티노.’

원작에서 고전했던 보스몹의 이름을 떠올리며, 댈런은 미소를 지었다.

놈은 그의 캐릭터를 죽인 적이 있었다. 모니터 너머의 광경이었음에도,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사실 실종되었다는 마법사의 이름을 들을 때부터 혹시나 했다.

직계 스승을 둔 마법사들은 보통 스승의 성을 따르는 바. 발렌티노라는 성은 그에게 익숙한 성씨였기 때문이다.

하수도로 내려와 흔적을 조사하며 그 의심은 확신이 되어갔고, 프로그맨 무리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지금에는 사건의 전말까지 전부 유추할 수 있었다.

‘놈이 제 후배를 납치한 거였군.’

토미 발렌티노. 엘가이아 마탑 원로 마법사의 하나뿐인 제자.

마법사치곤 어린 20대 초반임에도, 눈에 띄는 재능과 성실함으로 원로 마법사를 감복시켰다고 하던가.

델릭 발렌티노가 그를 납치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탑에서 쫓겨난 자신과는 달리, 훌륭한 스승 밑에서 계속 가르침을 받아온 후배에 대한 질투?

아니면 그 후배를 끔찍이도 아끼면서, 정작 자신은 매몰차게 내친 스승에 대한 원한?

댈런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놈의 머리에 도끼를 박아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먼 미래에 놈에게 죽게 될 수많은 인명을 구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이 세계는 멸망에서 다시 한 발짝 물러서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그는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고, 어쩌면 미궁 저 끝에 있다는 소원의 돌을 찾아 지구로 돌아가게 될 수도······.

“댈런 씨?”

“음.”

댈런은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니 페니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소. 생각이 좀 깊어졌군.”

댈런은 잠시 감각을 확장해보았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그의 뛰어난 감각과 경이로운 지능 수치는, 상념에 잠긴 채로도 알아서 흔적을 추적해왔다.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은데요.”

페니가 말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긴 통로의 끝이었다.

통로 끝의 출구가 희미한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칠흑같은 어둠뿐인 하수도에서, 빛이라는 건 누군가 거기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대체 누가 저런 곳에 있는 걸까요?”

“누구겠소.”

댈런이 낮게 웃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이겠지.”

“그러면 납치범···!”

댈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는 완만한 내리막이어서, 내딛는 걸음마다 발뒤꿈치 쪽에서 물결이 작게 부서졌다.

통로 끝을 지나자 시야가 확 트였다.

쿠르르르―

종착지는 반구 모양의 드넓은 공동이었다. 하수도의 수많은 통로가 모여들어, 지금껏 품고 온 오물을 뱉어내는 장소.

벽에 붙어있는 수십 개의 통로에서 오수가 쏟아져, 이끼 가득한 벽을 타고 콸콸 흘러내렸다.

그 썩은 물들이 모인 공동은 늪지와 같은 모습이었다.

발 디딜 곳이라고는 중간중간 섬처럼 지대가 높은 장소들. 그리고 반구형의 공동을 십자 모양으로 가르는 긴 보행로뿐.

그 공동의 정중앙.

높이 쌓아올린 제단 위에 마법사가 있었다.

‘오랜만이군.’

댈런의 기억 그대로였다. 엘가이아 마탑 특유의 때묻은 짙은 갈색 로브. 입 모양이 크게 과장된 은빛 가면.

넉넉한 로브로도 다 가려지지 않는 왜소한 체구의 마법사는, 댈런과 페니를 내려다보며 불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는 누구냐? 누군데 내 연구 표본에 손을 댔지?”

댈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가만히 산책하다 습격한 마물을 죽이는 게 이상한가?”

“이상하지. 보통 사람은 이런 하수도 깊은 곳에 산책하러 오지는 않거든.”

마법사는 강박적으로 팔을 긁어대며 덧붙였다.

“도망간 프로그맨을 쫓아서 둥지까지 오지도 않고.”

마법사는 팔을 긁어대는 걸 멈추고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사방의 늪지에서 거품이 부글대더니, 푸르죽죽하고 매끈한 피부의 괴물들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 어어?”

페니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눈에 보이는 것만 벌써 수십 마리. 아니, 백 마리도 넘을지 몰랐다.

이만한 마물의 무리나, 이걸 다루는 듯 보이는 마법사나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이런 게 도시에 풀려나는 순간······.’

사람들이 학살당한다. 경비대는 저항하지 못할 테고, 도시는 무너질 것이다.

불타는 청동 구역을 상상하며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순간.

턱.

댈런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을 받혔다.

“······.”

페니는 댈런을 올려다봤다. 그의 표정에는 미동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입꼬리가 약간씩 올라가는 듯 느껴졌다. 페니는 왠지 그 표정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웃음. 안도. 복수심. 그리고 희망.

등허리를 받친 팔과, 큼직하고 두툼한 손에서는 굳건함이 느껴졌다. 이 남자라면 어쩌면 거인과도 힘싸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맨의 수는 벌써 삼, 사백에 달하는 듯 보였으나.

‘이 사람이라면, 몇 마리가 오든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며, 페니는 가까스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스윽.

페니가 혼란에서 벗어난 듯하자, 댈런은 그녀에게서 손을 거뒀다.

그는 슬쩍 웃었다. 어린 나이에 비해 심지가 단단한 청소부였다.

마법사는 흥미롭다는 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댈런은 도끼머리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고 말했다.

“사람을 찾으러 왔소. 그쪽 애완 개구리들이 마법사 한 명을 납치한 것 같더군.”

“···쯧. 늙은이가 보낸 건가. 직접 오지 않고서.”

“늙은이?”

“아니, 됐다.”

댈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 왜 지 할 말만 하고 지랄이야?

“네놈들이 찾는 마법사는 내 수중에 있다. 안전한 곳에 감춰두었지.”

“살아있나?”

“아직은. 사실 나보다도 건강하지. 보여줘야 할 사람이 있거든.”

“그럼 됐군.”

마법사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뭐가 됐지?”

댈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도끼를 곧장 뽑아 집어던졌다.

패래랙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른 손도끼는, 순식간에 마법사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화들짝 놀란 마법사가 무어라 외치려 했다.

“에낙사―”

쨍그랑―!

마법사가 제대로 말을 맺기도 전, 무언가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소리가 들리고.

퍼억!

댈런의 허리춤에서 사라진 도끼가 마법사의 머리에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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